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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03:53

 

전편 : https://hygall.com/606412830



 

 

제가 그런 게 아니라고요!”

 

 
 

바람이 스치는 소리 울려 퍼지던 고요한 사냥터가 난장판이 된 건 순식간이었다. 루케리스는 아에몬드의 손아귀에 목덜미가 잡힌 채 바둥거렸다. 서슬이 퍼런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지 오래였다. 고래고래 소리도 쳐보고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과 다리를 부지런히 흔들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에몬드-”

 

삼촌!”

 

 

비명을 듣고 달려온 아에곤과 자캐리스가 둘을 떼어 놓기 위해 달라붙으며 동시에 소리쳤다. 순간 사냥터는 주먹질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떼어 놓으려는 이와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이. 아에곤은 누군가의 주먹에 나뒹굴어 진지 오래였고, 자캐리스 혼자 분투하느라 꽤 진땀을 빼고 있었다. 사태는 뒤늦게 합류한 장정 몇이 개입하고서야 진정되었다.

 

 

그만하거라!”

 

저 사생아 놈이 한쪽 눈을 가져간 것도 모자라…….”

 

제가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루케리스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다시 한번 달려들려던 아에몬드 앞을 자캐리스가 막았다. 그는 숙부가 이토록 분개하는 이유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사냥에 나설 때만 해도 흉 하나 없던 그의 목덜미가 짧게 베여 피가 새고 있다. 사고라고 하기엔 상처가 정교하게 뻗었다. 삼촌. 자캐리스의 목소리에 손을 내둘러 장정들의 떼어낸 아에몬드는 짧게 숨을 뱉으며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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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깊진 않습니까?”

 

따라오지 말 거라.”

 

루케리스는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정중하게 건네는 말에 아에몬드는 자리에 멈춰 자캐리스를 쳐다보았다. 사생아를 거들먹거리며 제 동생을 욕보였는데 무던히 침착하다. 난투극으로 엉망이 된 얼굴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곤죽이 된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리는 모습에 아에몬드의 외안이 삐딱하게 솟았다. 의중을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이었지만, 깍듯한 말투에 비아냥거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작게 코웃음을 친 아에몬드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따라붙은 이에게 물었다.

 

 
 

언제 돌아갈 생각이지?”

 

루비아가 더 머무르고 싶은 눈치라, 저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굳이?”

 

이곳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친우를 두고 가기 마음에 쓰이는 건지.”

 

 
 

도통 속을 모르겠단 말이죠.

 

친우라. 아에몬드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단어를 곱씹었다. 자캐리스의 약혼자인 루비아와 허니가 간혹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긴 하였으나, 친우라 칭할 만큼 긴밀한 사이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눈앞에 선 한 사람을 두고 있으니 친우라기보단 연적에 가까운 사이가 아니던가. 속으로 말을 삼킨 아에몬드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하마터면 큰 상처를 얻을 뻔한 판국에 이런 생각이 다 무슨 소용일까.

 

 

약혼식은 언제 하실 예정입니까?”

 
 

 

되도록 보고 가고 싶은데-

 

끝에 머뭇거림이 섞인 목소리에 아에몬드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만찬 중 약혼을 선언한 이후, 온 가족이 그의 약혼식을 꿈꾼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중 제일 들뜬 사람은 어머니였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황한 것도 잠시,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누구보다 약혼식에 진심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토록 염원하던 가문과의 결탁이 아니던가.

 

 

 

지겨울 정도로 쫓아다니며 약혼식을 운운하는 어머니를 아에몬드는 부지런히 피해 다녔다.

 

 

여하간 충동적인 구혼이며 약혼 선언이었다. 사경을 헤매던 와중에도 절절히 놓지 않던 제 조카의 이름을 부르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어지러울 정도로 머릿속을 지배해서. 조카를 마주할 때면 자신이 목도한 뒤엉킨 모습이 돋아나서. 그래서 반발심에 말이 튀어나온 걸지도 모르겠다.

 

 

삼촌?”

 

 

나른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아에몬드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꼬집어 보면 이미 약혼 선언을 한 마당에 약혼식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미 엎어진 물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었다. 허나 아에몬드가 망설이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온종일 어지럽히는 그 얼굴.

 

 

약혼을 물려주세요.’

 

 

밤마다 찾아와 수척해진 얼굴로 부탁하는 그 얼굴이- 자꾸만 아른거려서였다.

 

 
 

 

#

 
 

 

난 이곳이 싫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던 허니는 비쭉거리는 루비아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약혼식 내내 행복한 웃음을 짓던 루비아의 얼굴은, 마치 나무 그늘처럼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책을 덮은 허니는 드리프트마크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이를 마주 보았다.

 

 

이곳은 너무 삭막해. 곧 나까지 이상해질 거 같아.”

 

언제 돌아가는데?”

 

네 약혼식은 보고 가야 할 거 같대.”

 

 

하여간. 가끔 정말 질투 난다니까?

 

 

루비아의 투덜거림에 허니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덮었다. 다행히 순진한 아가씨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하루라도 빨리 자캐리스가 돌아가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래서 매일 밤 아에몬드의 문을 두드려, 약혼식을 물려달라고 사정한 거였다. 평판 같은 건 어찌 되든 좋았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게 무슨 대수라고. 허니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가문 사람들은 오히려 좋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순간 씁쓸함이 파도처럼 밀려 일렁거린다.

 

 

낮이면 막스를 찾아가 갈기를 쓰다듬으며 교감을 하고 밤이면 아에몬드에게 부탁했다. 부디 약혼을 거둬 달라고. 저와 얽매이지 말아 달라고. 불과 사흘 전까지 이어지던 일상은 그의 말 한마디에 모두 아스러지고 말았다. 막스를 저만 아는 곳으로 꼭꼭 숨겨 버린 아에몬드는,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불같이 소리쳤다.

 

 

또다시 찾아와 파혼을 고한다면, 막스를 불태워버리겠어.’

 

 

그 말은 실로 위압감이 커서 허니는 더는 마에고르 성채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지척인 곳에서 서성거리던 일도 이틀 전 그만두었다. 행여나 아에몬드의 눈에 들어 화를 돋울까 봐 겁이 났다.

 

 

아가씨!”

 

 

헐레벌떡 뛰어오며 루비아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컥컥 거리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말하는 목소리가 호들갑스럽다. 심드렁하게 하녀를 바라보던 루비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이럴 줄 알았어!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허니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그랬잖아, 여긴 불길하다고!”

 

 

사냥터에서 소란이 있었다고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상해 돌아왔다는 말에- 성한 곳이 없다는 경박한 말에- 허니의 심장은 쿵 끊겨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

 

 
 

 

아에몬드는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오늘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오랫동안 방랑하고서야 마주한 사슴 한 마리. 거슬리는 소리 하나 없이 풀숲에 앉아 조용히 활을 당겼을 때였다. 바람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든 것은 제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고, 그 사달이 난 거였다.

 
 

 

다행히 상처가 깊지 않습니다.’

 

 
 

궁정의의 말처럼 깊지 않은 상처가 의뭉스럽다. 작정하고 노렸다면 이 정도 상처로 끝나지 않았겠지. 더군다나 경동맥이 흐르는 목덜미가 아니던가. 까딱 잘못 나갔다면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루케리스가 그런 것까지 계산하여 활시위를 당겼을까. 그럴 깜냥은 되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똑똑

정확하게 두 번 울린 두드림이 아에몬드를 깨웠다. 궁중의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바락바락 화가 난 어머니의 방문일까.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문 앞에 서 고리를 돌렸다. 그의 예상을 빗나간, 며칠간 보지 못한 얼굴이 눈앞에 드리우자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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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를 지껄일 거면 찾아오지 말라 했을 텐데.”

 

다치셨다고 들었어요.”

 
 

 

수심이 가득한 눈동자가 쭈뼛거린다. 아에몬드가 잠자코 문을 열어주자, 허니는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섰다. 불빛이 밝은 곳으로 들어가자 그의 목덜미에 난 상처가 보였다. 사선으로 그어진 것은 그리 깊어 보이진 않았다. 최소한의 치료만 한 건지, 군데군데 피가 맺힌 상처에 허니는 저도 모르게 손을 가져다 댔다. 손끝에 닿는 상처는 예상외로 차가웠다.

 

 

그냥 두면 흉이 지겠어요.”

 

 

나지막하게 말한 목소리로 말한 이는, 지금 겪는 상황이 무척이나 익숙한 듯 했다. 불빛을 하나 사이에 두고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아에몬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잠시. 속삭이는 말이 귓가에 흩어져 날린다. 목덜미에 머물던 손이 뺨으로 올라와 꼭 쥐었다. 무례를 운운하는 낯익은 형상에 아에몬드는 손을 들어 허니의 것을 덮어버렸다.

 
 

 

그럴 필요 없어.”

 

하지만 그냥 두었다간…….”

 

하룻밤 사이 상처가 낫는다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테지.”

 

“......아니셨어요?”

 

뭐라고?”

 

 
 

제 능력을 바란 게 아니시냐고요.

분명 뭉개진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귓가에 울려 퍼진다. 말의 저의를 알아챈 아에몬드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성난 움직임이 여전히 딱 붙어 있는 제 손에 고스란히 느껴져, 정도라 허니는 뱉은 말을 후회하며 움찔, 몸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단단하게 고정된 손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구혼한 게 그대의 능력 때문이다?”

 

, 그게 아니란 말씀인가요?”

 

전혀-”

 

 
 

손을 떼며 차갑게 대꾸하는 말에 허니는 고개를 숙였다. 순간 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간 듯한 느낌은 착각일까. 아래로 떨어진 시선에서 아에몬드의 발걸음이 멀어졌다. 그럼 도대체 왜. 질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쿵쿵 소리를 낸다. 오직 자신이 쓸모 있으므로, 사생아 문제를 가린 채 거두는 거로 생각했다.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에몬드는 왜 자신과의 약혼을 고집하는 걸까. 혼란스러움에 속이 매슥거린다.

 

 
 

남의 고통을 즐기는 악취미는 없어.”

 

이 정도 상처는 금방.”

 

그러니까. 금방 나으니 두라고.”

 

 
 

순간 배알이 곤두서 목소리가 올라갔다. 의자에 몸을 기댄 아에몬드는 허니를 힐끔거렸다. 소리 지를 일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두 눈이 동그래진 채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혀를 짧게 찼다. 갑자기 소리를 낸 탓인지 목덜미 상처가 쓰라렸다. 자꾸만 의식이 가서 애꿎은 목덜미만 더듬거리던 그의 앞에 인영으로 그늘진다.

 

 
 

협탁 위에 올려져 있던 연고를 가져온 허니는 조심스럽게 목덜미에 닿은 그의 손을 거뒀다. 하지만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 끝에 아에몬드는 기억을 더듬었다. 아주 많이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머릿속에서 꺼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마 허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으레 짐작했다.

 

 
 

스톰즈 엔드에서 작은 사고가 있던 날. 아에몬드에게 연고를 발라주려던 어린 허니의 모습이 지금과 겹쳐 보였다. 혹여나 실수할세라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을 쳐내며 거부하며 했던 말이 똑똑히 기억났다.

 

 

손대지 마! 더러운 사생아 주제에.’

 

 

차갑게 떠오른 기억에 아에몬드는 허니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때와 다른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

 
 

 

미루고 있던 약혼식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평온하던 아에몬드의 얼굴이 일그러진 건 삽시간이었다. 조찬에 참석한 이들은 그 모든 게 비어 있는 옆자리 때문이라고 으레 짐작했다. 시종의 말에 따르면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짧게 읊조린 아에몬드는 이따금 비어 있는 자리를 힐끔거렸다. 약혼식 이야기로 북적거리던 분위기는 점점 차분해져, 끝내 어머니마저 입을 다물었다.

 

 

소식 들었습니다.”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만 나던 연회장을 깨운 건 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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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을 진심으로 경하드리옵니다, 삼촌.

 

 
 

뒤늦게 들어와 인사를 건네며 앉는 마주하고서야, 아에몬드는 그제야 자신의 기분이 바닥을 친 이유를 깨달았다.

 

여전히 상처가 남은 제 목덜미와 달리, 자캐리스의 얼굴은 어제와 달리 매우 깨끗한 상태였다.

 

 

 

 

 

 



 

자캐리스 : 하프 타르가르옌, 또라이가 되

 

 
 

사생아니 뭐니 해도 점점 감기는 아에몬드랑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넹글넹글 돈 자캐리스가 보고 싶었는데 늘어지고 있지요.

 
 

 

하오드

아에몬드너붕붕

자캐리스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