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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9 00:52
 
빻요소 있음, 노잼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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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최근들어 집에 자주 안 들어오셨다. 아마 그 도박장 주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을것이다. 아버지가 집에 없으니 여유롭게 산책도하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하루의 절반을 후미진 옆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데, 그날도 도서관에 있다가 집에 오는 길이었다. 복도 계단으로 올라가다가 익숙한 인영에 걸음을 멈췄다. 옆집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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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팔짱을 끼고 계단 난간에 등을 기대 서 있었다. 그의 큰 키, 긴 다리, 날렵한 콧대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그임을 알 수 있게했다. 오늘은 시가렛을 물고있지 않았다.

심드렁해 있던 그가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나에게 인사했다. 그는 손도 컸다.


“어디갔다 와?”




“도서관이요.”





“도서관? 이 주변에 그런 게 있었나?”





그가 모를만 했다. 이 동네는 도서관이 없어 옆 동네까지 먼 길을 가야했다.





"옆동네까지 가야해요."





“그래서 이 시간에 온 거군. 그래도 늦은시간까지 돌아다니면 안 돼. 위험해.”





왜 나를 걱정해주지. 친아버지도 안하는 걸.




“책이 주변에 없어서요.”




“공부를 좋아하는거 같은데, 홈스쿨링 한다고 했나? 왜지?”




“엄마가 죽고나서부터 아버지가 홈스쿨링 시켰어요. 학교에 돈 들어가는거 아깝다면서.”




말하고 바로 후회했다. 저번에 몇 마디 나누었다고 나도 모르게 편해진 건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던 집안 사정을 술술불고있다. 나를 불쌍한 애로 보겠지. 엄마도 없고 친부에게 학대받는 아이로.
그런 동정심은 받고싶지 않다. 그런 얄팍한 호의는 내가 어떤 현실에 처해있는지 더욱 명확하게 알게 해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그가 먼저 입을 뗐다.



”저녁은?“




“아직..”




그가 자기 집 방향으로 눈짓했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



낯선 사람 집에 함부로 가는거 아닌데. 생각해보니 안면은 텄으니 낯선 사람라고 할 수 없지. 또 옆집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거절하기엔 너무 배고프기도 했다.




식탁에 앉아서 그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원목으로 된 가구가 많았고, 솔직히 깨끗한..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커튼이나 러그, 조명이 잘 어울려져 따듯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낡은 쇼파조차도 빈티지 인테리어의 일부같았다. 생각보다 잘 꾸민 것이 의외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요리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정말 키 크다. 어깨도 넓고 근육이 많아 일반인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몸 쓰는 일을 하나? 나도 모르게 넋 놓고 감상하고 있는 와중에, 그가 음식을 식탁위로 가져왔다.




그가 차린 요리는 미트파이였다. 모양은 비록 엉성했지만 맛은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나도 모르게 허겁지겁 먹고 있었는데, 그가 나를 보더니 무심히 툭,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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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네.”



괜사리 부끄러워진 나는 그 뒤부터 의식적으로 천천히 포크질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낡은 쇼파에서 반쯤 드러누운 채로 그의 집에 있는 책 하나를 읽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나에게 왜 잘해주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는 바닥에서 기계 부품같은 걸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날 집에 부른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왜 나에게 잘해주고 있지? 왜? 도대체 왜? 그의 뒷통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왜?”




아씨, 깜짝이야. 눈이 뒤에 달렸나. 내가 쳐다보고 있다는걸 어떻게 알았지.




“그…생각 좀 하느라요. 왜 저한테 잘해주시는지..”




내 말을 듣자마자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다가, 그리고 다시 돌려 하던 일에 집중했다.




“그냥”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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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는거야. 하고 싶어서.”



그냥이라니, 그게 행동의 이유가 되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선행을 받은 게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

밤이 깊어지자 졸음이 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잠은 집에서 자야지.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는데,



”책. 다 못읽었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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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와서 마저 봐.”






얼떨결에 알겠다고 말하고 집으로 왔다. 불과 몇 걸음되지 않는데 내 방과는 완전 딴 세상 같았다. 침대에 엎어져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왜 내일도 오라고 했을까. 혹독하게 기브 앤 테이크로 돌아가는 세상논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아직도 그 의미를 모르겠다.


자려고 하는데 가슴에서 작게 심장이 떨려왔다. 나는 조건없는 관심에 취약했다.








**


그 날 이후로 나는 매일 그의 집을 들락거렸다. 그와 점심과 저녁을 함께먹고 내내 붙어있었다.


그의 집에는 책이 많지 않았는데, 있는 그 책이 모두 기본 50년 전 판본이었다. 책 수집가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오래된 책만 있지 않는데, 그렇다고 수집에 관심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와 부쩍 친해져 같이 티비 프로그램도 보고 (별로 재밌어하지 않아했지만), 라디오도 들었다(이걸 더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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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끔씩 나의 상처나 멍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연고가 화한건지 그의 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손가락으로 바르며 부드럽게 지나간 자리에 뜨끈뜨끈한 느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내 몸에 들었던 푸른 멍들이 차차 사라져 거의 보이지 않을 쯤에, 새로운 사건이 터졌다.









평화롭던 시기는 불청객에 의해 산산조각났다. 잘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가 어느날 매우 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그는 화로 가득 차 있었고, 잠들어 있던 딸의 방 문을 벌컥 열었다.




“너.. 이 발정난 년이..”




”으음…” 나는 비몽사몽 잠에서 깨고있는데,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내 고개가 돌아갔다.

너무 놀란 나머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뭘 똑바로 눈을 부라려? 이 발랑까진 년, 아비가 집을 비운 사이에 옆집놈이랑 붙어먹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눈만 끔뻑대니 반대쪽 손이 날아왔다.



짝—




“내가 너 옆집 가는거 다 봤다. 뭐가 그리 좋아서 실실 쪼개든? 걔한테 대줬지?”
하고는 갑자기 내 뒷목을 잡아 이마를 바닥에 처박았다. 차갑고 더러운 마룻바닥이 시야가득찼다.




“누가 몸을 함부러 놀리라고 가르치던?”



그가 혀를 차고 강제로 내 하의를 벗기기 시작했다.




“...!!!”



“안되겠어, 이 아비가 교육좀 시켜줘야겠어.”



필사적으로 버둥대는 나를 제압하고 뒷목을 잡지 않은 다른 손으로 내 두 손목을 잡아 등 뒤로 둔 채로 옆에 있던 전깃줄로 묶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몸을 꼼짝 할 수 없어 덜컥 겁이났다. 아버지한테 강제로 당한다는 사실에 토가 올라왔다. 죽을만큼 공포스러웠다. 그때, 한 사람이 생각났다.






"도움이 필요하면 와.”





로건, 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로건!!!, 로건!!!! 도와줘요!!!!”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의 귀에 내 목소리가 닿기를 바랬다. 제발, 제발….



아버지는 당황했다. 잠깐 주춤하더니, 내 뒷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썩을, 꼴에 한번 잤다고…“



그 때, 빠르게 쿵쿵거리는 소리와 현관에 있는 낡은 경칩이 뜯어지는소리, 점점 커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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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방문이 부셔질듯이 쾅 소리가 나더니, 그 소리에 뒤를 돈 아버지의 등에서 칼이 관통했다. 칼은 그의 손과 이어져 있었다. 순식간에 방바닥은 피로 점칠되고, 분이 안풀린 듯 여러번 그 칼을 그에게 찔러댔다. 아버지의 피가 사방에 튀었고, 벽까지 피로 물들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고, 어떠한 말 조차도 목에 메인듯 나오지 않았다. 배가 넝마가 된 아버지를 바닥에 던지고 그렇게 굳어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입어"






내 몸 위로 강제로 벗겨진 하의를 툭 던졌다. 나는 주섬주섬 그것을 입고, 뒤돌아 있는 그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잠깐!…"





"이제 어떻게 할 거에요?"







**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중독자가 대다수 차지하는 이 낙후된 동네의 장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CCTV가 없다는 것이었다. 로건과 나는 같이 아버지의 시신을 뒷 산에 묻었고, 피로 엉망이 된 방을 함께 치웠다. 날밤을 꼴딱세워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 되었을 땐, 이미 해가 밝게 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가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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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라고 했지,”




“꼬마야,아니,허니.”




"같이 살자. 나랑."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러준 내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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