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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2:23
탐사기간 중 오랜만의 긴 휴가를 받은 커크는 파이크 제독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후견인으로서의 가벼운 독대라고 생각했겠지. 최연소 함장에 승승장구하는 커리어 성과가 끊임없이 나오는 여정까지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우시겠음. 커크는 맞은편에 앉아 적당히 겸손 떨 말들이나 생각해뒀음. 그랬는데...




"...그래서 자네같은 경우가 다시 나올걸 대비해 조기졸업 조건 등을 손 봤네"
"그게 작년에 허가가 됐다구요? 저도 그럼 그 조건을 갖춘거죠, 이제?"
"실행은 이번학기부터 라고 하더군. 해서 말인데..조기졸업이 거론되자 위원회에서 자네 얘기가 나왔어. 그래, 그들이 자네 아카데미 학점을 들춰보았네"




나라다 호 사건 이후에는 미디어와 위원회에 끌려다니기 바빴고 칸과의 전투때는 문자 그대로 생사를 오고 간 뒤 곧바로 5년 탐사(ing중)를 떠나게 되었으니 이 벼락출세한 핸섬가이는 어엿한 핸섬맨이 될때까지도 졸업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거였음. 위대한 영웅이자 조지 커크의 아들인 그에게 결함이 있다는 걸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기 힘들었던게 여기까지 온거지.



그런 이유로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 대령은-이제는 Fleet Captain인-졸지에 함선 크루를 꿈꾸는 파릇파릇한 새싹 생도들과 같은 수업을 듣게 된거임. 연인과 함께 보내기로 마음 먹은 금쪽같은 휴가기간에.






파이크는 최소학점만 따라고 가볍게 말했지만 그 학점은 거저 받는게 아니잖아. 후보생들과 같은 생도복을 입고 같은 홀을 걸어다니며 같은 양의 과제와 시험을 치뤄야 하는거지.


커크는 첫 수업날 수많은 공로로 수여받은 훈장 중 약식 훈장 5개만을 달고 출석했으나-생도복도 어엿한 제복이니 규정을 지키려고 한것이었음-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생도들 시선에 한번, 강의를 진행하는 교관이 본인이 앉아있는 자리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허겁지겁 고개를 숙이는 관경을 수어번 목격하고 나서는 그 훈장들을 전부 뜯어내 바지 주머니에 구겨넣었음.

몇몇 교관들은 강의가 끝난 뒤 커크에게 따로 인사를 하러 오기도 하겠지. 자신의 수업을 듣다니 영광이다, 자신의 영웅이시다, 가까이이에서 한번 뵙고 싶었다. 이렇게 황공해하는 열성팬이 있는 반면....


"풉! 제임스ㅋㅋㅋ 커크ㅋㅋㅋ생도ㅋㅋㅋ 자세가 매우 불량하군요ㅋㅋ 짝다리를 짚고 서있다니"
"나 다음 수업도 있어 할 말 없으면 간다"
"어허 지금 교관님한테 태도가 그게 뭐야?"

붉은 생도복을 입은 커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웃음을 굳이 참지않는 레너드 맥코이 같은 자도 있었음.



"필수수료 과목에 암호학 고급 기술이 있어. 최악이야"
"우후라는 절대 안봐주겠지. 넌 술루가 바빠서 항해법 특별 강의를 거절한거에 감사해. 지휘부 부하한테 항해법을 듣는 함장이라니..."
"그거 체콥이 대신해"


본즈는 과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우 저런' 같은 소리를 내다가 체콥이 벌써 그럴 짬이냐며 남일처럼 평화롭게 놀라워했음. 커크는 눈동자를 한번 굴리고 뒤돌아 강의실을 빠져 나옴. 다른 홀로 이동하는 동안 세 명의 교관 두명의 장교급 인물들에게 인사를 받아야했음.



커크는 유달리 반가운 티를 숨기지 못하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파벨 체콥 강사의 특별강의도 무사히 받고 우후라의 암호학 수업도 출석 치팅이나 과제 제외를 부탁하지 않으며 성실히 임하면 좋겠다. 사고는 저 넓은 은하에서 질릴도록 치뤘기도 하고 철이 든 것도 있음. 그리고 그의 연인과 이 기간을 무사히 지내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했으니까.
커크는 학기 시작 전 자신이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사적인 친분을 이유로 유리한 성적을 줄 수 없다던 스팍의 말을 떠올림.


"그것보다 우리 휴가가 사라진거에 대해 서운해 할 수는 없어?"
"탐사선에 상선하는 크루는 정해진 수업을 전부 수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걸 왜 이제 와서...! 잠깐만, 교관인 네가 그걸 잊었을리 없지. 여태까지 언급 안 하고 가만히 있었던거야?"
"저는 위원회에서 짐을 예외로 두고 일을 진행했다고 짐작..."
"벌칸은 짐작하지 않지. 굳이 확인을 안했구나? 나랑 있으려고 말이지"


스팍은 입을 꾹 다물고 있을뿐이었음. 커크는 자신과 스팍이 안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막 대령이 되었을때 그가 이 문제에 대해 특별히 주장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에 탄복함.

"당신은 바빴으니까요."
"그래 너랑 지냈던 날들을 빼고 말이지"

스팍은 침묵함으로써 커크가 본인과 같이 하는 시간들을 나름대로 지켜낸거였음. 그가 수업을 들으러 갔다면 오와이오에 따라가서 커크의 옛 거처를 함께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없었을거임. 스타플릿의 초호화 장비가 아닌 싸구려 망원경으로 별을 구경하며 이름을 맞추며 장난치던 순간도 없었겠지.

커크가 이마에 주름이 지도록 눈썹을 올리며 눈을 키우자 스팍의 왼쪽 눈썹이 살짝 올라감. 추궁을 멈추기를 바라는 애인의 속내를 들어주기로 한 커크는 대신 스팍의 허리를 손가락으로 쓸었음. 입술은 가슴보단 목에 더 가깝게 대겠지.


"그럼 이번에는 학생때로 돌아가 캠퍼스 데이트를 하는걸로..."
"교관과 생도가 아카데미 내에서 연애를 할 수는 없습니다."
"오 네가 원할 때 나는 언제나 네 캡틴이 되줄게."

입술을 느리게 움직여 끝마친 그 한마디는 스팍의 신체 내 불씨를 당기기엔 성공했지만 난잡한 행위가 끝난뒤의 이 벌칸은 매정하게도 그래도 연인 사이인 것은 발설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선언했음.

커크는 일부러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을 가리고 '너무해 내 몸만을 취하다니!' 하며 싸구려 대사를 날렸으면 좋겠다. 벌칸 애인이 자신의 벗겨진 어깨와 목에 붉은 자국들을 헤아리며 타인과 신체접촉이 필연적인 체술 과목은 예전에 전부 수료한 것에 안도를 느꼈다는건 영영 모른채로.







그래도 커크는 괜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건 동의해서 스팍에 대한 언급은 한번도 하고 있지 않았음. 애초의 둘의 열애관계도 장교급 크루가 아닌 이상 자세히 모르니까. 커크는 본즈와 가끔 장난을 치기는 해도 다른 간부들과의 가까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어느때는 체콥이 서운해 할 정도로.


"커크 대령님과 같은 수업을 받게되다니"
"이 수업을 받으려고 인원확장을 요구하는 생도들도 많아요"
"여기서는 커크 생도라고 하도록 해요. 그리고 저를 보려면 수업보다는 USS 엔터프라이즈호가 좋을겁니다.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어요"

출석을 한지 삼주째, 생도들의 관심이야 정중하지만 산뜻하게 받아낼줄 아는 커크겠지. 이 정도면 말썽없이 조용히 이수를 할 수 있을거야. 파이크 제독님도 흐뭇해 하실거라고 믿음.

"커크 생도!"
"네"
"넬슨 홀은 반대 방향이에요"

새까만 우주에서 키를 잡는 건 이젠 잠꼬대로도 하는데... 커크는 길을 알려준 학우에게 여유로운 미소만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함. 거기에 집중하느라 아카데미에 유일하게 있는 벌칸이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건 모르겠지. 눈을 찌푸리고 발끝의 방향을 돌리며 이성보단 본능이 앞서는걸 저지 하면서 말이야.






커크가 가장 좋아하는 강의는 '초공간의 이해' 였음. 그 주제 자체에 강한 흥미를 가진건 아니고 그 강의를 지도 하는 교관 스팍을 관찰하는 것이 이 아카데미 생활의 즐거움이겠지. 어깨선이 잡혀 허리까지 절묘하게 떨어지는 교관복은 그의 엉덩이를 살짝 가렸고 반듯한 하의는 긴 다리를 돋보이게 했음.

그 다리로 강의실 단상의 끝에서 끝으로 이동할때 팽팽해지는 허벅지를 감상했고, 화면을 설명할 때 치켜드는 고개에 긴장되는 턱선에 감탄했으면 좋겠다. 스팍이 강의하는 '초공간의 이해'라는 것이 초공간의 이론이나 해석이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는 다른 나 자신과 생명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이었음. 하지만 커크는 이 벌칸인의 변화에 대해 대견함을 느끼기에는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은지 패드를 든 손의 힘줄이나 보고 있었지.

'오늘도 놀랍도록 잘생겼구만'



스팍은 자신이 커크에게 시선을 던지는 건 모든 생도의 학습진행 확인을 위한 공평한 행위라고 여김. 그래서 앞자리의 학생들을 한번씩 톺아본 뒤 5분 후 다시 커크가 앉은 제일 뒷자리쪽으로 고개를 돌리겠지. 그걸 커크가 지켜보며 웃고 있는다해도 말이야. 스팍은 자료 터치를 실수할 뻔했음. 수업 중 미소를 짓거나 턱을 괴거나 볼 한쪽에 바람을 넣는 건 금지된 사항이 아니기에 커크를 지적할 수도 없었음. 여태까지 저런 행동을 해서 수업방해를 시도한 생도들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그런걸 정리한 이력은 없었거든. 그냥 커크니까 신경 쓰이는거였어. 아카데미라는 공간과 수업 중이라는 상황 속에서 비논리적인 자극이 발생하다니, 그렇지만 이제는 고개만 살짝 저을뿐 놀라지는 않겠지. 비슷한 일들이 그에겐 아주 많았으니까.


대신 사적인 애정에 휩쓸려 공평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과제는 팀별로 진행되었고 제출 또한 익명으로 진행한 뒤 선평가 후공개를 하기로 했지. 팀 과제라니... 쟤는 아직도 본인이 생도들에게 욕먹는 이유를 모르나봐.



팀 과제뿐만이겠어 실습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는 일들이 자기때보다 많아졌음. 다행히 이제는 베테랑 함장인 그에게 장교도 아닌 아카데미 생도들을 다루는 것쯤은 스코티가 리플리케이터를 수리하는 정도의 난도였음. 각자의 의견에 대해 하나씩 적절한 호평과 피드백을 남겨주고 이런 설전이 현장에서는 팀에게 얼마나 발전을 안겨주는지 격려한 후,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상호협력과 크루에 대한 존중이 우선시 될 때의 이야기라고 충고를 잊지 않았지.

커크는 여전히 무모하지만 천방지축인 초짜가 아니었고 또 여전히 유쾌하지만 선을 지킬 수 있는 어른이었음.


'나 방금 되게 멋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곱씹긴 해도 누군가에게 입으로 자랑하지 않는 정도의 어른이었지.


안그래도 상승곡선을 타던 커크의 주가가 그래프를 뚫은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음. 명성에 비해 고압적이지 않고 상냥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아 신비감이 더해진거지. 그런데 잘생기기까지함. 아카데미 센터 홀 화면에 띄워지던 영상이나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야, 스타플릿 기술력도 아직 멀었다. 커크 함장 미모도 구현 못하네.


생도들의 가벼운 플러팅은 일상이 되었고 종종 진지하게 개인적인 만남을 요청하는 이들도 있었어. 그치만 커크는 그마저도 마냥 풋풋하고 귀엽게 보였음. 요크타운에서 대화 내내 꼬리로 어깨 아래를 간지르던 연합 소속 외교통신관을 상대하는 것에 비하면 생도들의 관심따위야 어리광으로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러니 커크는 억울했음. 생도들의 인사를 받아주기는 하지만 윙크를 한 적은 없었어. 손을 들어 인사할때도 중지와 약지 새끼손가락만 살랑거리며 흔드는 짓은 안함. 벽에 기대서 패드를 확인하고 펜 끝으로 아랫입술을 누르는 짓도. 더티블론드 헤어를 쓸어넘기는 것도. 거기다 눈을 3초 정도 마주친 후 눈꼬리를 접어 관심을 끄는 짓도 하지않았어.


"또, 또, 웃을때도 0.3인치 이상 입꼬리를 올리지 않았다고!"
"...그건 올바른 처사셨습니다"


누군가라면 0.3인치가 뭐라고, 이해 안가는 표정을 지었겠지만 스팍은 그의 함장의 '필살기'가 새하얀 치아를 내보이고 파란 눈동자를 반쯤 숨겨 눈웃음을 짓는 것 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음. 외교목적의 자리에서 커크가 그 얼굴을 하면 테란의 표현이 스팍의 머릿속을 스쳤지. 아주 작정을 했구나.




커크는 생도신분으로 스팍의 개인실을 찾는다면 무척이나 에로틱하고 아드레날린이 흘러넘치는 상황일거라고 상상함. 수업 중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던 자신을 보던 저 벌칸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연구실로 끌고와 문도 채 잠구지 못한채 데스크에 눕히는 그런거 말이야. 할 때 프로페서라고 부르면 내 허리 망가지는거 아니야? 킬킬 웃으며 잔뜩 기대하고 쪼르르 따라 왔더니 뭐 다른 생도들을 유혹해? 평판에 금이 생겨? 그걸 지금 설교라고 하고 있는거야 이 벌칸이?


에로틱한 상황은 커녕 자신의 눈물 나는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애인 때문에 아카데미에 와서 처음으로 속이 뒤집히는 커크였음. 생도복도 가슴과 엉덩이가 남을 정도로 맞춰입었건만. -아 물론 실사용 용으로 하나 더 맞추긴 했어. 실망하지마 스팍- 커크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미숙한 생도들한테는 자극제일거라고 하겠지. 수업과 실습이 반복되는 아카데미 생활에 대령이 학우로 옆자리에 앉는거잖아.

그것도 무지 잘생기고 섹시한. 커크는 마지막 말을 하고 키득키득 웃었지만 스팍의 미간이 여전히 좁혀진 채라 헛기침으로 마무리함.

"뭐 내 말은 얼굴 반반한 고위급 인사니까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런거였어"
"일리가 있습니다.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지적생물에게 반응하는 것은 번식과 사회활동의 본능이지요."
"번식은 좀 그렇다. 뭐, 근데 이것도 잠깐이잖아. 이수가 끝나면 난 엔터프라이즈에 복귀할거야."
"....짐이 맞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일탈입니다. 교관으로서 생도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야겠군요"

스팍의 정적이 다른 때 보다 길었지만 커크는 대답을 들었으니 만족했음. 일탈이라는 표현을 되짚으려다가 커크는 학점을 채우러 가야하느라 바빠 굳이 꼬집지는 않겠지. 그는 교관에다가 벌칸이기까지 하니까 좋은 수를 내놓을거임. 그럼 자신도 생도들의 사적인 접근 같은 귀찮은 상황은 피할 수 있을거야.



그리고 사회화 된 지적 생명체들에게 스팍은 효과 좋은 해결 방법을 내놓음. 스팍은 자신의 강의 끝에 그저 몇마디를 남기는 걸로 충분했어.


"그리고 오늘 수업의 마지막으로 권고사항을 알립니다. 제임스 타이베리우스 커크는 스팍 중령과 교제 중이니 그에게 구애활동을 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못한 체력과 정신 낭비입니다. 여유 시간에는 학업에 더욱 집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금 저 벌칸이 뭐라고 하는거야?

커크는 우르르 고개를 돌려 쏟아지는 많은 눈들을 애써 피하며 손이나 들어 까딱였어. Hi... 입꼬리가 0.3인치 올라감. 왼쪽으로만 지나치게 치우쳐서. 미친 벌칸아 나 아직 2개월은 더 아카데미에서 지내야하는데!





별트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