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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9:25

현관에서 도로까지는 자전거를 타지 않고 옆으로 끌었다. 오후 7시부터 호박색으로 점등되는, 주택 단지의 어스름하고 투명한 조명 속에서 맥코이의 그림자는 두 다리와 두 바퀴와 넓은 지느러미를 가진 해저 생물처럼 유동했다. 커크는 페달이 서로 엉키지 않을 정도의 간격만 두고 그와 가까이 걸었다. 페달을 밟지 않고 바퀴를 굴릴 때 특유의 점선 같은 소리가 나란히 보조를 맞췄다. 맥코이의 아파트는 해변 공원과 무척 근접해 그들은 늘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전 목표점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태양은 게으르게 수평선에 하반신을 담그고, 배경으로 아득한 금문교는 왕관처럼 빛난다. 길은 원동기 없는 탈것 전용이라 좁은 차선이 양방향으로 하나씩이었다. 해안선을 따르느라 무한히 길었으며, 모래와 아스팔트의 경계는 명확하지만 난간이 없어 도로 가장자리가 갈대 웃자란 백사장과 곧장 맞닿았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둘은 자전거에 올라타 잠시 두 다리를 땅에 딛고 매무새를 정돈했다. 맥코이는 안장을 허벅지 사이에 넣어 지탱하며 안전모 끈을 턱 아래에서 조이는 커크를 가만히 바라봤다. 여름이라 소매와 바짓단이 모두 짧았다. 팔과 다리에 불규칙적으로 붙은 반창고가 젊은 남자를 무늬 있는 동물처럼 보이게 했다. 대다수는 자전거 위에서의 실패한 균형이 만들었지만, 몇 개는 병원에서 얻고 미처 지워지지 않은 바늘 자국이다. 경청받지 못하리란 것을 알면서 맥코이는 그의 등에 대고 말을 걸었다.

“짐, 넘어지지 마.” 

그런데 사실 그것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맥코이의 어조는 그 자신의 귀에도 권위적으로 들렸다. 경솔했을까. 하지만 그런 성찰을 하기에 맥코이는 커크가 퇴원한 이래, 집 안과 밖에서, 심지어는 병원에서부터, 이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해 왔다. 커크가 건성으로 듣는다고 해도 타박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근원적인 질문은, 왜, 페르시아의 흑단 목마처럼 거침없는 1000cc짜리 바이크도 맨몸으로 곡예하듯 몰던 그 무모한 어린애가 지금은, 고작 허리 높이의 자전거를 상처투성이로 타야 할까. 자신과 자신의 괴리를 마주하고도 예전처럼 화를 내지 않는 그는 의젓해진 걸까. 아니면 맥코이가 감당하지 못할 어떤 다른 이유를 안고 있을까.

“내 말 들었어?” 

커크는 돌아보지 않고 손을 끄덕이듯 저었다. 상아 대모갑 같은 흰 투구를 쓴 그는 보기 좋았다. 어쩌면 아니거나. 너무 수척했다. 발을 구르는데 자꾸 흔들거렸다. 그가 어떻게든 전진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맥코이는 자신도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말하자면 재활 도구였다. 전형적이고 흔했다.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아니라도, 대근육의 복구가 필요한 경우라면 그 어떤 환자든 받는 처방이다. 그의 상태는 특별히 나쁘다고 할 구석이 전무했다. 그들은 정상적인 과정을 밟아 회복하는 중이다. 어느 날 자전거 두 대와 함께 귀가하더니 맥코이가 그렇게 말했고… 커크는 동의했다. 일체의 연설을 현관에 선 그대로 쏟아낸 의사의 표정이 무척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신문처럼 낱낱이 쪼개지는 전개였고 장면들은 모두 구식 인쇄물에 헌정하듯 우아한 흑백이었는데, 끊긴 지점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자전거들은 동일한 모델이었지만 커크 몫의 한 대엔 보조 바퀴가 달렸었다. 본체는 큼직하고 투박한 어른용이라 몹시 부조화스러운 꼴이었으나 커크는 그걸 받았고, 맥코이가 다소 강압적으로 떠안긴 안전모도 잠자코 썼다. 어쨌거나 그들이 지난 반 년간 함께한 활동 가운데선 가장 여가에 가까운 일 아닌가. 더 지루하고 더 번거로운 재활도 여럿 겪었다. 정신 병동의 독방처럼 푹신한 진주색 면면으로 둘러싸인 방과, 그 끝에서 다른 끝까지 붙들고 기어야 했던 금속 지지대를 회상한다. 열 번을 넘어지면 세 번을 다쳤는데 대개는 오직 그 자신의 뼈와 뼈가 부딪혀서였다. 그건 견딜 만한 난관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에 커크는 무척 강했다.

소근육의 재생은 상대적으로 빨랐던 반면 대근육은 퇴원할 당시에도 여전히 빈약해 보조기 없이 일어서고 걷는 그만큼이 최선이었다. 그마저도 가끔 무너져 맥코이는 부쩍 신경에 날이 섰다. 집은 강박적으로 포장됐다. 마찰판으로 도배한 욕실 바닥은 고양이 혀 같았고 잠재적인 사금파리로 분류되는 장식품은 죄다 서랍으로 퇴장하며 가구 모서리마다 둥근 완충재가 덮였다. 작업이 완료되자 실내는 과도하게 친절한 한 채의 온실이라, 맥코이가 그를 바깥으로 내보낼 결정을 했다는 사실이 의아해질 지경이었다.

외관상으로 우스꽝스럽다는 점만 제외하면 보조 바퀴는 더할 나위 없이 유용했다. 영영 달고 다니기엔 부적절하다는 것만이 문제였다. 열흘째에 맥코이는 손수 나사를 풀어 바퀴를 뗀 뒤 신발장 아래의 작은 선반에 넣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안으로 밀었다. 작은 송곳니를 베개 밑에 숨기는 일곱 살처럼, 그러나 요정의 방문이나 동전 따위가 아니라 다른 무엇을 바라는 표정으로. 

깨끗하고 위태해진 뒷바퀴를 가누고자 커크가 사력을 다할 때 의사는 미시시피의 소아 병동 뒷마당에서 하던 그대로 지도했다. 그 외엔 더 적절한 방법이 없었다.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안장 뒤쪽을 잡고, 자전거에 탄 사람에겐 오로지 앞으로만 나가길 종용하며, 속도에 맞출 듯 재게 달리다 홀연히 놓은 뒤 초심자가 홀로 서는 모습을 바라봤었다. 으레 곁들이는 거짓말은ㅡ안 넘어질 거야 내가 잡았잖아 그래 계속 앞만 봐ㅡ스물일곱에겐 물론 성가시리라고 판단했기에 맥코이가 건넨 말은 "넘어지지 마!" 그뿐이었지만, 어린 남자가 3미터를 못 가 성대하게 추락할 때 범람하는 죄책감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직후의 공포에 매몰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죄책감을 조금 더 연구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뭐가 무서운데?)

오늘 짐 커크는 여느 때보다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다. 스스로 느끼기엔 그랬다. 아주 반듯하진 못했으나 멀리서 관찰하면 직선으로 쳐 줄 만한 궤적이었다. 인공위성 궤도까지는 나가야겠지만. 그는 고개를 약간 틀어 바다로 트인 쪽을 바라봤다. 모래에 단단히 침투한 낮고 도톰한 식물들은 도로 옆에 군락을 이뤄 갈맷빛이고, 붓자국 같은 파도가 긴 파장으로 들렸다.

“앞을 봐.” 등 뒤에서 맥코이가 외쳤다. “앞만!”

일련의 가로등을 한 개씩 추월할 때마다 맥코이의 그림자가 뒤로 끌려가듯 사라졌다. 필요 이상으로 날카롭던 그의 목소리와 더불어, 만화경 같은 반복이 커크의 기분을 차츰 깎듯 망가뜨렸다. 요컨대 견디기 버거운 고난은 그런 것들이다. 할 수 있던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무능해지는 것, 우주를 날다가 돌연 끌려내려가 납작히 땅을 길 때 죽는 채로 남는 게 나았다는 생각을 하고 마는 것. 지금쯤이면 맥코이가 앞으로 가거나 옆으로 오길 바랐지만 그는 뒤에서 따라가기만 고수했다. 커크는 그가 져 주지 않는 것이 낯설었다. 사체에서 오려다 꿰매둔 양 이질적인 커크 자신의 사지만큼이나. 

완벽한 평지였지만 커크의 몸은 바위를 굴리며 언덕을 오르는 코린토스 왕처럼 지쳤다. 살아난 이후로 언제나, 그는 스스로가 둔하고 무겁고 비대하다고 느꼈다. 사실 뼈에 붙은 살은 사고 이전의 반절이래도 좋을 만큼 왜소해져 있었지만, 근력이 줄면서 몸을 지지하기 매우 어려웠기에 오히려 자신의 체중이 갈수록 벅찼다. 시시각각으로 옮겨다니는 축의 균형을 유지하느라 잔뜩 긴장한 척추가 아파 왔다. 모든 게 낯선 감각이다. 전자는 감당할 수 있으나 후자는 아니었다. 

언젠가 지나간 길은 시간이 지나도 찾아갈 수 있다. 어떤 일이든 한 번 터득하면 다시 태어나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근간의 진리인데, 그에겐 달랐다. 그런 명제는 어지간한 방해로는 예외를 만들기 어렵다. 개인을 초월하는 단위의 비가역적인 폭력이 개입하지 않고선 사람을 그 정도로 무력하게 박피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자타의 실책이 아님을 커크는 알았으나 진정한 가해자가 탓할 수 없는 존재일 때 그보다 보잘것없고 만만한 상대를 찾아 굴절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었다. 그러니까 타나토스에겐 틀어쥘 멱살이 없고, 짐 커크가 온 생을 통틀어 가장 멸시하는 대상은 바로 그 자신.

대각선의 측면을 관람하며 그는 계속 전진했다. 오기로 볼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정면만을 보면 너무 외로웠기 때문이다. 적어도 풍경을 누릴 자유는 필요했다. 주의가 분산되는 것과 상관없이 오로지 체력과 기능의 부족으로 그는 매 초 조금씩 더 크게 휘청였다. 그래도 정차하진 않았다. 거기서부터는 어엿한 오기였다. 

도로는 하염없었다. 바닷바람이 어린 남자의 금발을 유령처럼 만진다. 태양은 지고 하늘은 설탕 같은 별이 산재하는 감색. 한 뼘 앞에서 달리는 그의 흰 셔츠가 활짝 부풀어 맥코이에겐 돛처럼 보였다. 병실 침대 위를 덧없게 장식하던 파란 그림을 상기한다. 바람에 건조된 눈을 깜박이면 그 단발적인 암전이 의사를 몇 달 전으로 끌어당겼다. 처음도 아니다. 그러니 그는 잦은 노출이 공포의 마모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론의 신선한 증거인 셈이다.

심정지 발생 4분 이후부터 환자는 소생하더라도 영구적인 손상을 입고, 10분을 초과하면 아예 가망 없는 사체로 취급한다. 커크는 한 시간을 까마득히 넘기도록 엔진실의 유리벽 뒤에 죽은 채 누워 있다 극저온 캡슐에 들어갔다.

몇 가지 특수한 행운의 교차로에서 뇌는 보존, 심장은 재생, 간은 교체되었지만 끝내 인간은 기계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병상에서 내려왔을 때 그는 한 걸음을 딛기 위해 사지를 다 써야 했다. 인공 관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부은 무릎, 간헐적으로 마비되는 어깨, 괴사한 근육을 잘라낸 자리의 환상통. 맥코이는 그 시기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다면 뭐든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죽음에 반박해 본 사람조차 우주를 편집할 자격은 없고, 기억이야 그보다는 훨씬 무른 재질이지만, 의도적인 망각은 순수한 무지보다도 나빴다. 도의가 아니라 진통의 효과 면에서 그랬다. 그래서 의사는 불안한 채 그냥 살았다. 

반투명한 필름을 섞듯 겹치는 흰 셔츠와 환자복, 상아색 헬멧과 인공 호흡기, 병상의 난간과 자전거의 바큇살, 보조 바퀴 한 켤레, 빠진 손톱 여섯 개, 끈 풀린 운동화, 병원에서 지급하는 창백한 실내화, 더 창백한 두 발, 상한 혈관이 만든 복사뼈의 어두운 궤양, 중단된 영화 속 배우의 애매한 손동작, 담뱃불을 붙이고 싶었을까, 가쁜 호흡, 제거된 조직, 이식한 기관, 안 돼 잠들지 마 날 봐 내 손가락을 따라와 오른쪽을 바라봐 네 가운데 이름 철자를 불러 줘, 근사한 해안가 도로, 안락의자에 긁힌 자리가 곪아버린 분홍색 염증, 닫힌 복도, 휠체어, 아마색 반바지, 목제 평행봉, 엎드린 환자, 쓰러진 함장, 청결하고 차가운 병실 바닥과 아름다운 해변, 그는 고작 침대에서 창문까지 걸을 때도 외줄을 타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맥코이는 늘 커크를 앞에 두고 걸어야 했다.

그가 넘어졌는데 자신은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이 무서웠고, 그랬다간 때를 놓칠지도 몰라 겁을 먹었다. 경험에 기인한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보다 강하다. 지금도 봐, 넌 무게 없는 사물처럼 휘청거리고…. 

“짐!”

다리는 이미 박자를 놓쳤다. 손은 운전대를 놓친다. 붉은 휘장이 공중을 날았다가 가라앉으면 우리 안의 토끼가 비둘기 또는 모자 쓴 조수 혹은 공백이 되는 마술처럼 커크는 간 데가 없다가, 갑작스레 모래톱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맥코이는 널브러진 그의 자전거 옆으로 자기 것도 내던지고 커크를 따라 뛰어내렸다. 밟고 온 길이 허공에서 무너지는 중이라고 해도 그처럼은 절박하게 뛸 수 없으리라.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는 부드러웠다.

옷 안으로 들어간 작은 조가비를 제거하기 위해 커크는 앉은 자리에서 어깨 솔기에 손을 넣어 몇 번 털었다. 서너 번을 굴렀으니 필연적인 현기증이 들긴 했으나 제자리에서 춤만 춰도 겪는 그 정도였다. 부러진 곳도 찢긴 곳도 없다. 머리카락에 잔뜩 파고든 모래나 뒤로 털어내려고 했지만, 맥코이가 달려들어 그를 낚아채는 바람에 몸이 휘어 대부분은 이마로 떨어지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다. 옷 밖으로 드러난 부분부터 문명 사회의 예의에선 감히 건드리지 않는 부분까지 일일이 움켜쥐고 누르는 맥코이의 손은 다친 곳을 확인하고 싶은지 만들고 싶은지 모호할 정도로 거칠었다. 다급해서였다. 마지막으로 양 뺨을 에워싸는 열 손가락 안의 뼈가 느껴졌다. 직전의 몰아치는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엄지의 넓은 면이 눈가를 살짝 건드렸다가 느리게 훑어 모래를 닦아준다. 그의 체온은 주머니에 너무 오래 넣어 미지근해진 조약돌과 비슷하다. 커크는 눈을 떴다. 맥코이가 이제야 그의 앞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비로소 손을 털어내듯 거두고 아무렇게나 다리 사이에 늘어뜨린 채 맥코이는 숨을 몰아쉬었다. 넋이 나갔던 커크는 금세 초점을 되찾았다. 의사의 깊게 팬 눈이나 경련하는 입술 따위를 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윽박지르면서 그는 맥코이가 무슨 말을 하든 날카롭게 받아칠 채비를 했다. 그러나 추락이 남긴 현기증이 완전히 걷힐 때까지도 정적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불과 몇 걸음 위에 엉켜 쓰러진 자전거들처럼 팔과 다리를 겹쳐 두고 둘은 거기 앉아 있었다. 달의 높이와 비례해 바닷물이 다가왔다. 더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래선 안 됐다.

“미안해.”

커크가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어.”

맥코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리고 무릎으로 걸어가 파도에 수거되기 직전이던 헬멧을 가까스로 주웠다. 그것을 한 팔로 받치고 커크에게 돌아와 붙잡으라고 손을 내밀었다가, 돌연 한 점에만 작용하는 기묘한 중력에 굴복하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발치로 눈물이 낙하할까 커크는 경직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일어난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변에서 집까지 그들은 자전거를 타지 않고 옆으로 끌었다.

영화를 도로 틀었다. 병원 이곳과 저곳의 풍경화만큼이나 무의미한 꼴로 자전거 헬멧을 쓰고 소파에 묻힌 커크는 무릎을 가슴으로 당겨 안았다. 거기에도 반창고가 붙어 있고 재단된 직사각형 안에서는 인형극이 돌았다. 일어난 일이라고 믿으면 일어난 일이 된다지만 맥코이는 그런 기적을 불신한다. 검은색과 흰색뿐인 화면에서 이상하게도 그는 색채를 볼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영화 속에선 혁명이 한창이었다. 선언문을 방송하다 신호를 복구하러 송전탑을 오르던 청년이 벼락을 맞아 감전사한다*. - 그는 궤도 위에서 가속해 우주적 시공간 안의 은하계 바깥을 향하는 무적의 혜성이 아니다. 

검은 곱슬머리도 정장도 흔적 없이 전소된 청년은 짐 커크와 전혀 닮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사물을 동일시하는 근거와 기반은 늘 외관 너머에 존재하는 법이었고 맥코이는 차마 옆을 볼 수 없었다. 

- 그것보다는, 젊어서 죽고 말 청년이다. 

범람하는 눈물을 감추고 싶어서 그는 화면이 발산하는 빛을 등졌다. 곁에 앉은, 방금 죽은 청년과는 다른 얼굴의, 더구나 온전히 살아 있는, 그러나 한 번은 죽었던 남자의 어깨에 옆이마를 기댔다. 기실 얹는 시늉에 가까웠다. 함부로 무게를 싣지 못할 천 개의 이유가 있었다. 포장된 집 안에 앉아 둘은 가로로 평행했고 각자 다른 곳이 아팠으며 터득한 일과 상실한 역량 사이에서 방황했다.

청년의 퇴장은 물론 이야기의 기점이다. 그래야만 하니까. 한 대목을 끝낸 영화가 다음 막을 열면서 점선으로 노래했고 커크는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전에 헬멧을 벗어 팔걸이 아래에 내려놓았다. 맥코이의 팔을 열어 그 안으로 기울 때 그는 눈을 감아 앞을 보진 않았지만 두 무릎은 부드러운 표면 위에 견고했다. 모래와 소금물 냄새가 나는 젊은 남자를 끌어안고 맥코이는 해결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사유했다. 가슴에 진동이 직접 가도록 의사의 쇄골을 깨문 채 커크가 중얼거렸다.

“내일은 좀 옆에서 타.”

더 일찍 져 줄 수도 있었다고, 맥코이는 생각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럴게.”








*<프렌치 디스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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