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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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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션이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예쁠 때 아니냐고..

근데 그때 만났던 두청이 션이의 인생에 너무 큰 생채기를 그어버려서 조사받고 나온 뒤 한 달동안은 도저히 연필이고 펜이고 아무것도 잡을 수가 없었겠지

'그릴 수 없는 나'도 충격인데 더 충격인 건 '그리지 못하게 만든 사람'에 대해 진짜 복잡한 감정이 든다는 거였음 시간이 지나 제일먼저 작업다운 작업을 하게 된 게 그 감정 그린 추상화였을듯 근데 하나로는 모자라서 그걸 몇 개나 연작으로 그리다가 병 얻어버림 ㅇㅇ 꽃토병...

꽃을 뱉는 병도 있나, 어이없게. 근데 이걸 뭐 누구한테 말할수도 없고 찾아보니 꽃으로 천천히 기도가 막혀 수 개월에서 수 년 내 사망에 이르게 되며 간혹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발병원인과 호전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고 나오는거임. 근데 일각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그게 사랑 때문이라는 거야.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시작해서 속이 새카맣게 타면 재수없게 걸린다는 거임. 션이는 좀 당황스러웠음. 사랑? 그런 상황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나? 사람이 보통 미치지 않고서야...

그러다 션이는 꽃잎을 세 번째로 뱉게 되었을 때 인정했음. 결국 그 형사에 대한 미안하면서도 미웠고, 기대에 부응해주고 싶었고, 부끄러웠고, 압도당했고, 두려웠던 복잡한 자신의 감정이 어쩌면 사랑이 맞을수도 있겠다고 말이지. 이 문제에 대해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웠었는데 인정하고나니 편했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척이나 또렷해졌음

그래서 션이는 자신의 주변의 경악스러운 반응과 만류에도 모든 그림을 모아 불태웠음. 하나하나 애정을 쏟아 그렸던 작품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후회되진 않았지. 그리고 진로를 수정하는데에 온 힘을 쏟았음. 많은 사람들이 션이의 의지를 한때의 치기로 여기거나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했지만 하나도 신경쓰이지 않았음. 아니 솔직히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음. 션이는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간간히 꽃잎을 토했는데 그러고나면 공부를 더 멈출수가 없어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곤 했지. 어쩌면 제게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만큼 션이는 가능한 빨리 경찰이 되고 싶었음. 아니 경찰이 되어야만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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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운이 좋게도 그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을 때, 션이는 여전히 냉랭한 두청의 태도에 안심했음. 그가 저를 따돌리거나,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고 말해도 괜찮았음.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음. 아직 두청에게 자신은 쓸모가 있었고, 오래전부터 품었던 감정을 들킬 염려도 없었기 때문에. 뱉는 꽃잎의 수가 늘어갔지만 곁에서 일하게 되어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음. 수사팀에서, 두청의 옆에서 단서를 얻고 션이는 그저 7년의 세월동안 하나만 보고 바래왔던 일을 아쉬움없이 완수하기만 하면 되었음.

그러나 션이가 예상하지 못했던 건 두청이라는 남자가 쓸데없이 다정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었음

존경하는 선배를 죽이도록 단서를 준 사람에게 가당치도 않을, 당신의 조용한 신뢰와 존중이 마음의 균열을 만들었음. 일부러 단 둘이 차에 타게되면 입을 닫고 잠을 잤음. 일과 관련된 것 이외에는 얼굴을 보거나 말하는 것도 조심했음. 저를 차갑고 다소 무례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거리를 둬 주길 바랬음. 그러나 션이가 한 발자국 뒷걸음질치면 두청은 션이의 체감상 거의 다섯 발자국을 앞질러 다가와 션이의 곁에 머물렀음. 406호 사무실에 들어와 가만히 작업하는 걸 지켜보기도 하고, 션이에게 고생했다며 웃으면서 어깨를 툭 쳐주기도 했으며, 함께 야근하는 날에는 커피를 타 와 나눠마시기도 했음. 누구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테지만, 션이에게는 가볍지만은 않은 문제였음.

그때부터 션이는 처음으로 부서진 꽃잎이 아닌 완전한 꽃을 토해야만 했음. 꽃을 본 처음엔 꽃을 다 토하고 목이 막히지 않았는데도 어쩐지 쉽게 구역질을 멈추지 못했음. 두청의 가벼운 친절을 왜곡하고 착각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그치만 역시나 두청과 함께했던 시간은 너무 소중해서 자꾸 곱씹고 위로받을 수 밖에 없어서. 이러니 그런 망할 병에 걸리지. 넌 사랑받을 가치도 없는 놈인데...

이젠 정말 시간이 없을지도 몰랐음. 션이는 취조실에서 저를 몰아세우던 두청을 떠올리며 초조하게 연필을 집어들었음 애초에 답을 기대했던 관계도 아니었을 뿐더러 7년 전부터 션이의 목표는 딱 한 가지였음.

제 병으로 삶을 다 하기 전에, 레이형사를 사주한 그 여자를 두청에게 그려주는 것.

그러나, 그러려면 두청을 더는 사랑해서는 안됐음. 션이는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그 날의 기억이 얼른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랬음.

재생다운로드17c5c20e68.gif





엽죄도감 두청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