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5361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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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2:47
페리한테 도망친 바비가 버논집으로 숨어드는거
3나더 https://hygall.com/605209350
진찰은 별달리 특별할 게 없었다. 연고라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혹시라도 저를 알아볼까 전전긍긍 하는 건 바비 뿐이었다. 긴장하는 게 되려 수상해보이겠다 싶어 바비는 애써 의사의 말에 집중하며 얌전히 답을 내놓았다. 최근에 무리를 하신 일이 있나요? 네, 밖에서 좀 오래 돌아다녀서. 감기와 같은 질환을 앓는 분을 가까이 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다른 사람이 쓰던 식기를 사용했나요? 아니요.
이딴 식이면 나도 의사 하겠다. 속에서 볼멘소리가 치고 올라올 즈음에서야 진료는 짧게 막을 내렸다. 이 병원은 방문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곳인듯 했다. 진료를 받는 사이 집주인은 바깥에 있다 왔는지 외투에 찬바람을 가득 묻히고 나타났다. 담배를 피우고 온 것 같았다. 보이는거라곤 눈덮인 들판과 산이 전부인 풍경을 내리 20분 넘게 달려 도착한곳이니 진료내용이 좀 맘에 안 들어도 봐줄만 하다고, 바비는 생각한다.
약제사로부터 약을 처방받으며 바비는 한꺼번에 계산을 마쳤다. 그래도 현금을 어느정도 챙겨 달아나 다행이었다. 병원비에 약값까지 계산하라고 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것 같았다. 품에서 지갑을 꺼내려던 버논은 바비가 선수를 친 탓에 도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야 했다.
아직 해가 저물려면 한참을 있어야 했다. 남은 하루를 마저 소화하기 위해 두 사람은 병원에서 멀지 않은 창고형 대형마트에 들렀다. 금방 다녀올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는 버논의 말에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바비는 운전석의 문이 닫히자마자 정신을차리고 얼른 문을 열었다. 찰나의 순간, 차 안에 홀로 남겨지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었다. 다급하게 내려 제 뒤를 따르는 바비를 버논은 의아하게 바라본다. 바비는 굳이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다, 답답할 거 같아서. ...나도 같이 가.
바비는 마트에 처음 와 보는 사람처럼 굴었다. 각종 과일즙이며 시럽을 파는 진열대에서 한참을 머무르다가 주방용 세제 코너에서 또 한눈을 팔았다. 50달러짜리 세트를 46퍼센트 세일 한다고? 공급가가 얼마길래. 안에 물탄 거 아니야? 중얼거리며 쓰잘데기없이 원가공급율 대비 마진이 얼마겠냐며 계산을 하는 건 덤이었다. 살 것만 대충 구입하고 얼른 나가려던 버논은 카트에 물건을 하나 담을 때마다 시야에서 자꾸만 사라지는 바비 때문에 애를 먹었다. 냉동식품 코너에서 한참을 머무르던 바비를 통해 버논은 그가 집안일과 거리가 먼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물건을 들여다보는 패턴이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버논의 옆으로 따라붙더니 카트에 가득 담긴 야채를 보며 바비는 음식을 직접 해먹는 거냐며 질문을 던져왔다. 버논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사흘 사이에 버논이 관찰한 바비는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겁이 많지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야채를 써는 현장을 흥미롭게 들여다 보다가도 스프에서 당근만 쏙쏙 골라 한 쪽으로 밀어놓는 식으로 뒤통수를 치곤 했다. 혼자 있는 건 또 어찌나 불안해 하는지, 앉았다가 일어나기만 해도 어딜 가냐는 물음을 던져왔다.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시비조로 말을 건네오는 바비를 보며 버논은 그가 종잡을 수없는 인간군상이라고 여겼다.
열흘 정도가 지났는데도 저더러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 버논의 속을 알 수 없어 바비는 조금 초조한 상태였다.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건가?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빳빳하고 깨끗한 코티지에서, 제가 하는 일이라곤 마른 행주로 그릇을 닦는다던가 하는 게 전부였다. 연속성이 허락될 것 같지 않은 체류기간에 크게 불안감을 느끼는 바비였으나 굳이 먼저 묻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나가라고 할까봐서였다.
도망나올 때는 그냥 도망치던 도중에 콱 죽어버려도 아쉬울 거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우스웠다. 그래서 돈이 될만한 것들도 적당히 가지고 나왔던 거였다. 이런 식으로 신세를 질 줄 알았으면 좀 더 가져오는건데.
버논이 건네준 옷들은 항상 허리 품이 크게 남거나 소매가 벙벙했다. 가져왔던 옷들을 첫날 전부 태워버렸기 때문에 바비는 모든 피복을 그에게 신세지고 있었다. 걷다가 바짓단을 잘못 밟아 바닥에 넘어진 날, 그는 다락에서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와선 바비에게 건넸다. 안에는 곱게 개어진 옷들이 한가득 이었다. 그는 상자를 바비 앞에 내려놓고는 자리를 떴다. 얼마 안 가 멀리서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장작을 패러 나간 것 같았다.
옷은 거짓말처럼 어깨며 팔 길이에 딱 맞았고 바지도 마찬가지였다. 셔츠부터 스웨터, 안에 받쳐입을 무지 티에 실내복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아무리 봐도 집주인 옷은 아니었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내놓지."
포대자루같은 옷을 벗어내려놓고 품에 꼭 맞는 옷을 입으니 마치 내 옷을 꺼내입은 것 같은 편안함이 찾아들었다. 은은하게 다락의 나무 향이 배어있는 게, 구석에 오래 처박혀 있던 모양이었다.
노란색, 분홍색 체크무늬, 꽈배기무늬 스웨터, 단추에 포인트가 있는 니트한 블라우스. 아무리 봐도 집주인은 전혀 아니고 마치 대학에 갓 입학한 애들이나 입을법한 스타일이라 바비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누구 거지? 마저 상자를 뒤지던 그는, 안쪽에 접힌 후드티에 파묻혀있던 뭔가를 발견한다.
잘잘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비의 손에 딸려 올라온 것은 하얗고 작은 약통이었다. 작게 흔들어 남은 양을 가늠한 그는 하얀 원통형을 둘러싼 포장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독일어로 설명이 쓰여있는 탓이었다. 일러스트와 함께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arzneimittel. 개중에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단어였다. 의약품? 대충 진통제나 되겠지 싶어 내려놓으려던 순간, 겉 표지에 까만 네임펜으로 휘갈긴듯한 글자가 보였다.
Bud
얼마 전 병원에서 신분을 빌려 쓴 이름이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곱씹으며 철자까지 반복해서 읽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도끼질이 뚝 끊긴다.
인기척이 가까워지고, 육중한 발걸음이 저를 지나쳐가려는 순간 바비는 물음을 던진다. 이거 뭐야?
바비의 손에 들린 약통을 가져가 슥 훑은 그가 도로 돌려주며 짤막하게 답한다.
"억제제."
가벼운 두통약 이었다면 이렇게 본격적으로 패키징 되어있지 않았으리란 걸, 뒤늦게 바비는 자각한다. 버드라는 이름이 쓰인 오메가 억제제. 이쯤되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메가? 버드, 버드 크레인 이 친구 거야?"
"...."
"이런 걸 고이고이 다 모셔둔 게 신기하네."
그래서, 버드 크레인 씨는 어디 있는데? 신분증까지 놔두고.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버논은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바비를 지나친다. 극지방이라 해가 빨리 저무는 곳이었지만 요즘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위협적으로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저물어가는 풍경을 잠깐 응시하다가, 그가 커튼을 내려 바깥과 실내를 차단한다.
"죽었어."
상자를 마저 열심히 들추던 바비의 손이 우뚝 멎었다. 응?
"그 애가 살아있으면, ...나이가 네 동생 정도쯤 되겠네."
버논바비 페리바비 약버논버드 슼탘
3나더 https://hygall.com/605209350
진찰은 별달리 특별할 게 없었다. 연고라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혹시라도 저를 알아볼까 전전긍긍 하는 건 바비 뿐이었다. 긴장하는 게 되려 수상해보이겠다 싶어 바비는 애써 의사의 말에 집중하며 얌전히 답을 내놓았다. 최근에 무리를 하신 일이 있나요? 네, 밖에서 좀 오래 돌아다녀서. 감기와 같은 질환을 앓는 분을 가까이 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다른 사람이 쓰던 식기를 사용했나요? 아니요.
이딴 식이면 나도 의사 하겠다. 속에서 볼멘소리가 치고 올라올 즈음에서야 진료는 짧게 막을 내렸다. 이 병원은 방문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곳인듯 했다. 진료를 받는 사이 집주인은 바깥에 있다 왔는지 외투에 찬바람을 가득 묻히고 나타났다. 담배를 피우고 온 것 같았다. 보이는거라곤 눈덮인 들판과 산이 전부인 풍경을 내리 20분 넘게 달려 도착한곳이니 진료내용이 좀 맘에 안 들어도 봐줄만 하다고, 바비는 생각한다.
약제사로부터 약을 처방받으며 바비는 한꺼번에 계산을 마쳤다. 그래도 현금을 어느정도 챙겨 달아나 다행이었다. 병원비에 약값까지 계산하라고 하는 건 너무 파렴치한 것 같았다. 품에서 지갑을 꺼내려던 버논은 바비가 선수를 친 탓에 도로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야 했다.
아직 해가 저물려면 한참을 있어야 했다. 남은 하루를 마저 소화하기 위해 두 사람은 병원에서 멀지 않은 창고형 대형마트에 들렀다. 금방 다녀올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는 버논의 말에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바비는 운전석의 문이 닫히자마자 정신을차리고 얼른 문을 열었다. 찰나의 순간, 차 안에 홀로 남겨지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었다. 다급하게 내려 제 뒤를 따르는 바비를 버논은 의아하게 바라본다. 바비는 굳이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다, 답답할 거 같아서. ...나도 같이 가.
바비는 마트에 처음 와 보는 사람처럼 굴었다. 각종 과일즙이며 시럽을 파는 진열대에서 한참을 머무르다가 주방용 세제 코너에서 또 한눈을 팔았다. 50달러짜리 세트를 46퍼센트 세일 한다고? 공급가가 얼마길래. 안에 물탄 거 아니야? 중얼거리며 쓰잘데기없이 원가공급율 대비 마진이 얼마겠냐며 계산을 하는 건 덤이었다. 살 것만 대충 구입하고 얼른 나가려던 버논은 카트에 물건을 하나 담을 때마다 시야에서 자꾸만 사라지는 바비 때문에 애를 먹었다. 냉동식품 코너에서 한참을 머무르던 바비를 통해 버논은 그가 집안일과 거리가 먼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물건을 들여다보는 패턴이 그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새 버논의 옆으로 따라붙더니 카트에 가득 담긴 야채를 보며 바비는 음식을 직접 해먹는 거냐며 질문을 던져왔다. 버논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사흘 사이에 버논이 관찰한 바비는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겁이 많지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야채를 써는 현장을 흥미롭게 들여다 보다가도 스프에서 당근만 쏙쏙 골라 한 쪽으로 밀어놓는 식으로 뒤통수를 치곤 했다. 혼자 있는 건 또 어찌나 불안해 하는지, 앉았다가 일어나기만 해도 어딜 가냐는 물음을 던져왔다. 심각한 얼굴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시비조로 말을 건네오는 바비를 보며 버논은 그가 종잡을 수없는 인간군상이라고 여겼다.
열흘 정도가 지났는데도 저더러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 버논의 속을 알 수 없어 바비는 조금 초조한 상태였다. 계속 여기 있어도 되는건가?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빳빳하고 깨끗한 코티지에서, 제가 하는 일이라곤 마른 행주로 그릇을 닦는다던가 하는 게 전부였다. 연속성이 허락될 것 같지 않은 체류기간에 크게 불안감을 느끼는 바비였으나 굳이 먼저 묻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나가라고 할까봐서였다.
도망나올 때는 그냥 도망치던 도중에 콱 죽어버려도 아쉬울 거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우스웠다. 그래서 돈이 될만한 것들도 적당히 가지고 나왔던 거였다. 이런 식으로 신세를 질 줄 알았으면 좀 더 가져오는건데.
버논이 건네준 옷들은 항상 허리 품이 크게 남거나 소매가 벙벙했다. 가져왔던 옷들을 첫날 전부 태워버렸기 때문에 바비는 모든 피복을 그에게 신세지고 있었다. 걷다가 바짓단을 잘못 밟아 바닥에 넘어진 날, 그는 다락에서 커다란 상자를 하나 들고와선 바비에게 건넸다. 안에는 곱게 개어진 옷들이 한가득 이었다. 그는 상자를 바비 앞에 내려놓고는 자리를 떴다. 얼마 안 가 멀리서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장작을 패러 나간 것 같았다.
옷은 거짓말처럼 어깨며 팔 길이에 딱 맞았고 바지도 마찬가지였다. 셔츠부터 스웨터, 안에 받쳐입을 무지 티에 실내복까지 없는 게 없었다. 아무리 봐도 집주인 옷은 아니었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작에 내놓지."
포대자루같은 옷을 벗어내려놓고 품에 꼭 맞는 옷을 입으니 마치 내 옷을 꺼내입은 것 같은 편안함이 찾아들었다. 은은하게 다락의 나무 향이 배어있는 게, 구석에 오래 처박혀 있던 모양이었다.
노란색, 분홍색 체크무늬, 꽈배기무늬 스웨터, 단추에 포인트가 있는 니트한 블라우스. 아무리 봐도 집주인은 전혀 아니고 마치 대학에 갓 입학한 애들이나 입을법한 스타일이라 바비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누구 거지? 마저 상자를 뒤지던 그는, 안쪽에 접힌 후드티에 파묻혀있던 뭔가를 발견한다.
잘잘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비의 손에 딸려 올라온 것은 하얗고 작은 약통이었다. 작게 흔들어 남은 양을 가늠한 그는 하얀 원통형을 둘러싼 포장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무슨 뜻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독일어로 설명이 쓰여있는 탓이었다. 일러스트와 함께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arzneimittel. 개중에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단어였다. 의약품? 대충 진통제나 되겠지 싶어 내려놓으려던 순간, 겉 표지에 까만 네임펜으로 휘갈긴듯한 글자가 보였다.
Bud
얼마 전 병원에서 신분을 빌려 쓴 이름이었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곱씹으며 철자까지 반복해서 읽었으니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던 도끼질이 뚝 끊긴다.
인기척이 가까워지고, 육중한 발걸음이 저를 지나쳐가려는 순간 바비는 물음을 던진다. 이거 뭐야?
바비의 손에 들린 약통을 가져가 슥 훑은 그가 도로 돌려주며 짤막하게 답한다.
"억제제."
가벼운 두통약 이었다면 이렇게 본격적으로 패키징 되어있지 않았으리란 걸, 뒤늦게 바비는 자각한다. 버드라는 이름이 쓰인 오메가 억제제. 이쯤되면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오메가? 버드, 버드 크레인 이 친구 거야?"
"...."
"이런 걸 고이고이 다 모셔둔 게 신기하네."
그래서, 버드 크레인 씨는 어디 있는데? 신분증까지 놔두고.
물수건으로 손을 닦은 버논은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바비를 지나친다. 극지방이라 해가 빨리 저무는 곳이었지만 요즘엔 유독 그 정도가 심했다. 위협적으로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저물어가는 풍경을 잠깐 응시하다가, 그가 커튼을 내려 바깥과 실내를 차단한다.
"죽었어."
상자를 마저 열심히 들추던 바비의 손이 우뚝 멎었다. 응?
"그 애가 살아있으면, ...나이가 네 동생 정도쯤 되겠네."
버논바비 페리바비 약버논버드 슼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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