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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2:31
오나더








ㄴㅈㅈㅇ
날조주의​​​​​
약캐붕주의​​​​
개연성 없음 주의







하치너 눈빛.
검사, 아니 로스쿨 시절 모의 재판을 할 때부터 하치의 뒤를 따라다니던 별명이었다. 바로 그 눈빛을 무기 삼아 연방 검사가 될 수 있었고 FBI 아카데미에서도 추가적인 훈련 없이 비교적 쉽게 정식 요원이 될 수 있었다. 눈빛을 무기로 수없이 많은 살인범들의 자백을 이끌어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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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가 그의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제 가이드가 자신을 무서워한다는 걸 인식하자마자 하치는 눈빛부터 바꾸려고 노력했다. 잭 앞에서만 풀어지던 눈빛이 허니의 앞에서도 부드러워졌다. 매일 아침 허니를 데리러 가면서 그랬고, 같이 사건을 논의하다가 눈이 마주칠 때도 그랬다.
그 덕에 콴티코 내에 소문이 돌았다.
SSA 하치너가 사내연애를 한다, 애인을 보기만 해도 눈빛이 풀어지더라, 아침마다 커피를 사다 준다더라. 하치는 그 소문을 허니도 들었으리라 믿었다. 첫 마디부터 잘못된 그 소문을. 정작 사람들이 그의 애인이라고 믿는 가이드는 그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다.

“어, 여보세요?”
“허니, 아직이야?”

이제 허니의 집 문은 안전하게 고쳐졌고, 하치는 호텔이 아닌 허니의 집 앞에서 허니를 기다렸다. 집에서 나올 시간이 지나도 허니가 건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걱정 반, 초조함 반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허니는 연결음이 두 번 울리자 전화를 받았고, 휴대폰 너머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우당탕하고 제법 큰 소리가 들렸다.

“허니, 허니??”

공동 현관을 지나 허니가 지내는 층으로 뛰어 올라가며 재차 불렀다.

“아야...하치, 그, 저 좀 도와주실래요...?”

문이 빼꼼 열린 틈으로 들어가자 허니가 티셔츠를 목에 건 채로 어색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동그란 탁자가 넘어져있었다.

“어디 다쳤어?”

하치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냥 다리에 멍들 거 같아요. 옷 급하게 입다가 균형을 잃어서 넘어졌어요.”
“내가 괜히 전화했네.”
“아니에요. 옷 입는 것만...좀 도와주세요.”

어깨에서부터 팔꿈치 전까지를 감싸는 붕대에다 고정 장비 때문에 셔츠는 꿈도 못 꾸고 부드러운 티셔츠만 입는 허니였다. 여전히 가시지 않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는 허니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팔을 끼우는 걸 도와줬다. 그의 도움을 받아도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매일 혼자 준비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지내고 싶었지만 요 근래에는 잭이 헷갈려할 것보다 허니가 스트레스를 받을 게 더 신경쓰였다. 정신 없이 움직이는 동공에 뭐라도 더 도와주고 싶었지만 허니가 불편할까봐 말도 못 꺼냈다. 그냥 걸음을 옮겨 탁자를 원래대로 세워놓고, 허니가 항상 가져가는 가방을 먼저 집어들었다.

“늦겠다...죄송해요.”
“괜찮아. 내가 더 미안하지. 다 챙겼어?”
“가방은— 아.”

하치는 언제나처럼 조수석에 앉아 그가 미리 사온 커피를 마시는 허니를 곁눈질했다. 커피 한 모금에 입가에 번지는 미소에서 왠지 눈을 뗄 수가 없어서 가만히 바라봤다. 도와줄 수 있냐는 그 한 마디에 가슴 한 켠이 부풀어오르는 듯, 가이드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이상한 자부심이 올라왔다. 그렇게 느껴서는 안 되는데.

“아직도 많이 아파?”
“아침에 유난히 심한 것 같아요. 괜찮아지겠죠, 뭐.”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늦은 오후, 갑작스러운 의뢰에 팀원들이 급하게 전용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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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 JJ랑 모건이 가장 최근 현장으로 가보고, 데이브는 허니랑 같이 검시소로 가보세요. 나머지는 경찰서로 가자고.”

떼어놓기 싫은 거 아니었나. 허니가 전용기 옆 자리에서 하치를 올려다봤다.

“한 번도 안 가봤잖아.”

허니가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은 질문에 하치가 나직하게 답했다.
하치의 변화를 허니도 알고 있었다. 팔을 부러뜨릴 정도까지 갔으면 가이드가 또 도망치지 않을까 하는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집착이다 싶을 정도로 같이 다닐 줄 알았는데. 죄책감 때문인지, 배려인지, 출퇴근할 때와 같이 서류를 처리할 때 빼고는 허니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뒀다. 전처럼 허니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닐 거다. 오히려 허니의 눈치를 본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허니는 거기에 기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저를 내려다보는 하치의 시선이 한결 풀어진 게 싫지는 않았다.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덮쳐오는 마이애미의 더위는 끔찍했다.

“시신이 발견된 지 얼마나 됐다고 했죠?”

밴의 에어컨은 강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허니는 안 그래도 더운 공기에 보호대까지 더해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틀. 여기 습도를 생각하면—”
“하치가 일부러 보냈을까요?”

허니가 반쯤 농담으로 로시에게 물었다.

“그건 아닐거야.”

허니는 무릎 위에 펼쳐놓은 사건 파일이 에어컨 때문에 자꾸 움직이는 걸 한 손으로 누르려고 애썼다.

“그냥 둬, 허니. 가면 다 알게 될 거야. 그건 그렇고, 사고 아니지?”
“ㅁ, 뭐가요?”
“팔. 하치가 그런 거잖아.”
“어— 아뇨, 이거 진짜 그냥 사고...”
“애런이랑 자네가 대체 뭐가 비슷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혔는데 고집 세고 인정 안 하는 거 보니까 똑같네. 그 팔 오른쪽이잖아. 애런은 왼손잡이지.”

허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몰래 나가려다가 그런 거에요.”
“애런이 그럴 줄은 몰랐는데 매칭이라 다르긴 한가봐. 애런이 자네한테 혹독하게 굴었다는 거 알아.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애런은 평생 헤일리밖에 몰랐으니까 혼란스러울 만도 하지. 둘이 고등학교 때부터 만났거든.”
“저도 그건 이해해요.”

허니가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애런이 잘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쉽지 않을 거야. 그래도 노력하는 게 보이긴 하던데,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
“그러게요.”

허니가 보호대에 튀어나온 실 한 가닥을 쭉 잡아당겼다.
하치는 평소 모두에게 높은 장벽을 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로시도 확신할 수 없지만, 그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부터 그랬던 걸 보면 결혼이 위태로워졌을 때부터, 혹은 팀장이 된 이후부터였을 거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팀원들 앞에서는 가끔 그 장벽을 내려놓기도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가이드의 앞에서는 더더욱 힘들었을 게 분명했다. 하치와 허니는 이미 몇 달 동안 평범한 센티넬-가이드 관계에서는 겪어도 되지 않을 일들을 겪어왔으니, 앞으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익사했다고 했어요. 그 이전 피해자들은 교살이었으니까 살해 방법이 달라졌죠. 하지만 다른 특성은 유사해요. 상황적인 변수가 있었을 거에요.”

경찰서로 돌아온 허니가 한 손으로 보드마카 뚜껑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내가 할게.”

하치가 허니에게서 보드마카를 받아들었다.

“확실히 ‘특별’ 요원이긴 하네요.”

그걸 지켜보던 형사 한 명이 허니를 향해 씩 웃었다.

“우리 요원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시죠.”

하치가 몸을 돌려 으르렁댔다. 허니가 손을 뻗어 하치의 팔을 붙잡았다.

“하치,”

눈이 마주치자 날서있던 시선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풀어지고 형질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허니는 센티넬에게 기가 눌려 알아서 자리를 뜨는 형사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요원 취급을 받은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한편으로는 하치가 ’우리 요원‘이라고 말한 게 팀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서 꽤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러니까,”
“응?”

하치가 책상에 걸터앉아 허니에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유기 장소가 바뀌었잖아요. 처음 2구가 발견된 장소가 언썹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였을 거에요. 그런데 거기가 들키니까—”
“잡히지 않기 위해 바꾼 거군. 수법도, 장소도.”
“맞아요.”
“잘 했어, 허니.”

하치가 허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온 몸이 끈적거려요.”

해가 떨어지면서 더위도 한풀 꺾인 늦은 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허니가 모건과 나란히 걸으며 칭얼댔다.

“넌 더하겠다.”

하치는 맨 뒤에서 걸으면서 과장되게 흐느적대는 허니를 보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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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제 가이드를 보며 미소가 비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허니는 꽤 귀여웠다. 제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허니의 형질이 하치에게 닿아있어서인지, 다른 팀원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허니가 팔이 부러진 채로 돌아와서 처음 투입된 사건이라 배정된 방 개수는 그 전에 하치가 부탁했던 대로, 인원 수에서 하나 모자랐다. 당연히 이번에도 하치와 같은 방일 거라고 짐작한 허니가 하치의 곁으로 다가가 섰다.

“혼자 쓰고 싶지?”
“...네?”
“방. 혼자 쓰는 게 좋으면 솔직히 말해도 돼.”
“같이 써도 괜찮...은데요.”
“정말?”

마지막으로 같이 썼을 때는 하치가 허니의 팔을 으스러뜨렸으니까. 하지만 허니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그럼.”
“혼자 들 수 있는데..!”

도움 안 받고 싶은데.
하지만 꽤 무거운 가방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들어버리는 센티넬에 허니는 할 말이 없어졌다.

“먼저 씻으세요. 저 오래 걸려요.”

하나뿐인 침대와 바닥에 놓여있는 보스턴백,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겨 푸는 하치. 데자뷰 같아서 허니가 침을 꿀꺽 삼켰다. 어깨가 어쩐지 욱신거렸다. 그때 몰래 나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그때 경찰에 붙잡히지 않았으면, 그때 더 멀리 갔더라면, 그때 기차역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하지만 이미 다 엎어진 물이었다. 허니가 보호대를 풀어내는 동안 화장실에서 나온 하치는 색이 빠지기 시작하는 허니의 어깨의 멍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허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치의 젖은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짙은 검은색 눈썹이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흉터가 많지만 균형 잡힌 상체를 따라 물방울이 미끄러졌다.
잘생기긴 참 잘생겼다.
하치의 갈색 눈과 허니의 검은색 눈은 꽤 오래 얽혀있었지만 먼저 시선을 뗀 건 허니였다.

“혼자 씻을 수 있겠어?”
“계속 그래왔는걸요.”

한참 시간이 지나 나온 허니를 눈으로 따라가던 하치가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한 번 봐도 될까?”

왼쪽 팔을 옷에 끼운 허니가 하치의 옆에 걸터앉았다.
멍이 옅어지고 있다고 하긴 하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검푸른 멍에 쉽사리 손을 대지 못하던 하치가 혹시나 아플까, 손가락으로 어깨를 천천히 훑었다.

“혹시....”
“괜찮아요.”

가이드는 센티넬 생각을 읽을 수 있나? 하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깨에 입술이 스칠 듯 닿았다.
잠깐,
가슴 한 켠이 콕콕 쑤셨다. 헤일리는 더이상 없고, 2년 전에 이혼했고, 별거를 시작한 건 그보다도 더 전인데 어쩐지 헤일리를 두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하치는 헤일리가 그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았다. 정적 속에서 울리던 전화 벨소리를 여전히 떠올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헤일리는 여전히 그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허니가 아무리 그의 매칭이라고 해도, 여전히.

“미안해.”

하치가 몸을 바로 세웠다.

“....붕대 좀 감아주세요.”

하치가 묵묵히 붕대를 감았다. 두껍고 거친 손가락치고 섬새한 손길에 팔을 맡긴 허니는 하치가 수건을 들고 머리를 말려주는 것까지 가만히 받았다.

“아침부터 고생 많았어.”
“하치도요.”
“잘 자.”

마킹은 안 해주면서 챙길 건 다 챙겨준다. 객관적으로 하치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매칭 센티넬로서는 최악이었다. 매칭도 아니지만 반평생을 함께 해 온 가이드를 잊지 못했고, 매칭 가이드를 죽도록 밀어내던 것도 잠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집착과 소유욕으로 그의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못 하게 만들었다. 모든 걸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워질라 치면 다시 멀어진다.
허니는 하치의 호흡이 그때처럼 고르게 가라앉고도 한참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하치가 미웠다.
조금, 아니 많이.
옷도 제대로 못 입는 상황이니 체포에는 당연히 열외일 거고, 보드마커 하나 제대로 못 써서 키링 요원 취급까지 받았다. 자립심 강한 허니가 하치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부탁—명령?—까지 해야 된다. 원인 제공은 허니가 했다고 해도, 그렇게 만든 건 하치였다. 사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원인 제공도 하치가 했다. 허니는 천장을 노려보다가 입술을 꾹 다물고 몸을 틀어 하치의 팔을 세게 때렸다.

“허니....?”

방어할 틈도 없이 날아온 난데없는 공격에 하치가 몸을 일으키며 반쯤 잠긴 목소리로 허니를 불렀다. 그래봤자 하나도 안 아프겠지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파?”

나직한 목소리에 결국 울음이 터졌다. 그동안 겪은 무시와 이유 없는 증오에 대한 서러움과 짜증, 분노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하치는 숱하게 많은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로해봤지만 눈 앞에서 순전히 자신 때문에 우는 허니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겨우 손을 뻗었지만 허니가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허니가 뒤로 떨어질까, 등을 받치는 건 본능에 가까웠다. 결국 불안함을 이기지 못한 하치가 허니를 끌어당겨 기어코 품에 안았다.

“때리고 싶으면 더 때려. 괜찮아. 내가 미안해.”

마음껏 때리지도 못하게 만든 게 누군데. 왜 그동안은 그렇게 대해주지 않은 건데. 온갖 말이 차올랐지만 허니는 하치의 반응이 무서워서 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무섭게 해서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거짓말. 허니가 하치의 티셔츠를 꽉 쥐었다. 하치가 그 손을 떼어내 손마디에 입을 맞췄다.

“눈 붓겠어. 그만 울어.”

쉬이...하치가 허니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고 귀 뒤쪽, 밝게 새겨져 있는 제 이름에 입술을 눌렀다. 느릿한 손길에 잘게 떨리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하치는 다친 팔을 건드리지 않게 조심히 몸을 틀어서 허니를 제 위에 올린 채로 다시 누웠다.

“좀 풀렸어?”

허니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 하치는 평생 허니에게 사과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의 이기적인 마음은 차치하고서라도, 허니의 인생을 이렇게 꼬아놓았으면 그가 풀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치의 가치관을 받치고 있는 건 정의였고, 그렇게 훈련 받았다.

“얼마든지 화내도 돼. 지금은 자야지, 허니. 내일 할 일이 많잖아.”

귓가에 울리는 깊은 목소리에 또 한 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센티넬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나쁜 꿈 꿔요.”

중얼거린다. 하치는 나직하게 웃고 허니의 등을 한 번 더 쓸어내렸다.

“좋은 꿈 꿔.”




뻑뻑한 눈을 깜빡이며 옷을 꿰어입은 허니의 앞에 따끈한 커피가 내밀어졌다.

“더운데...”

작게 중얼거리자 이번에는 아이스커피가 내밀어진다. 허니는 그 커피를 받으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원래 가이드가 갑이다.

“감사해요.”

하치는 로시와 모건에게 팀원들에게 현장 주변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라고 주문했고, 현장에 나갈 수 없는 허니에게는 현장의 지리적 특성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나머지 팀원들과는 짝을 이뤄서 피해자의 주변인들과 다시 대화를 나눴다.

“찾았어요!”

BAU가 본부로 쓰고 있는 회의실에 앉아 두꺼운 서류 몇 개를 나란히 펴놓고 한참을 뒤적거리던 허니가 인기척에 맞춰 고개를 반짝 들었다.

“...!”

원래 이렇게 예뻤나.
밝게 빛나는 허니의 눈과 들뜬 입꼬리를 마주한 하치의 심장이 순간 덜컹 내려앉았다.
예쁘다.
눈이 부시게 사랑스럽고 다른 사람들한테서 가려버리고 싶을 정도로 예쁘다. 하치는 제 가이드가 그렇게 예쁜 줄 몰랐다.
마른 하늘에 머리 위로 번개가 내리치듯 눈 앞의 모든 게 무너지고, 에너지 음료를 들이켠 것처럼 심장이 질주하는 와중에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됐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옳게 느껴졌다. 별들이 늘어서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자리를 이루듯,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었다.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면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시리도록 서늘했다.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게 눈 앞에 있을 때의 당혹감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헤일리를 처음 만났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아찔함에 공간이 핑 돌았다. 뒤통수를 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가 멍했다.
그래서 허니가 손짓을 해가며 하는 설명을 하나도 못 들었다.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 하는 거죠.”
“...뭐라고?”

하치가 느릿하게 되물었다.

“다 얘기했는데,”
“미안해, 다시 한 번만.”

하치가 몸을 숙여 허니와 시선을 맞댔다. 종알종알 움직이는 입술에 정신을 뺏기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하자 그제서야 허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종의 미로 같은 곳이에요. 그러니까 여기를 잘 아는 사람일 거고, 사건 이전에도 자주 와봤을 거에요. 사실 마지막 유기 장소는 별 의미가 없어보여요. 이성을 잃고 저지른 거니까요. 그 이전 장소가 더 중요하죠.”
“고마워. 가르시아한테 전화해볼게.”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그동안 하치는 허니의 주변을 뱅뱅 맴돌았다.

“이...쥐새끼 같은 변태를 찾았어요. 그리고 말씀하시기도 전에 집이랑 직장 주소를 보냈답니다!”
“모건, 리드, 에밀리, 직장으로.”

하치가 자켓을 벗고 방탄조끼를 입었다.

“센티넬은 더위도 안 타나.”

중얼거린 허니는 팀원들이 하치를 앞세워 달려가 정문 너머로 사라지자 보고서 양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하치가 없으면 채우지도 못할 양식이었지만 뭘 어떻게 써야할지 구상하는 것만으로도 하치의 곁에 있어야 할 시간이 줄어들테니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센티넬이 우글거리니까, 아무 문제 없이 언썹을 잡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30분쯤 뒤, 팀원들이 돌아왔다. 소매를 접어올린 하치가 수갑이 채워진 언썹의 뒤에 바짝 붙어 걸어왔다. 언썹이 경찰서 안을 둘러보다가 허니를 보고 씨익 웃었다.

“눈 돌려.”

이를 악물고 짓씹은 하치가 언썹의 뒷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팔뚝의 근육이 갈라졌다. 눈썹을 치켜올렸던 허니는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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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허니?”

방탄조끼를 벗는 하치의 등에 땀이 흥건했다. 더위를 안 타는 건 아닌가보다.

“괜찮아요.”
“별 일 없었어?”
“네. 뭐 적을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말해. 적어줄게.”

눈빛이 왜 저러지. 방금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듯 인상을 구기고 있던 하치의 눈빛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졌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보는 듯.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

“더위 먹었나...?”

센티넬이 그럴 리가 없는데.

“뭐라고?”
“아니, 이렇게 더운 데에서도 왜 꼬박꼬박 수트를 입나 해서요.”
“우리가 FBI의 얼굴이니까.”

FBI의 얼굴인 팀. 그 팀을 이끄는 FBI를 대표하는 센티넬. 그리고 그 옆의, 팔이 부러져서 제 역할도 다 못 하고 사랑받지도 못하는 가이드. 허니는 조소를 흘렸다가 하치의 시선이 느껴지자 눈을 내리깔았다.

“왜?”
“아니에요.”
“그만 들어가자. 고생 많았어.”

하치의 손이 허니의 등에 가볍게 닿았다.

전날 밤과는 반대로, 이번에는 하치가 오랜 시간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하치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잭에게 하듯이 잠든 허니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검은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겼다.
가이드가 저를 두고 또 가버릴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또 다시 상처를 줄까봐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저번처럼 밀어내기만 하면 그의 의도를 오해할까봐 불안했다. 품 안에만 가두고 싶었지만 자제할 수 없을까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하치는 프로파일러에다 센티넬이었지만 눈도 쉽사리 안 마주쳐주는 허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대화를 해야했다. 대화 없이 속앓이만 할 때의 최후를 하치는 이미 경험했다. 만약 그때 헤일리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다면—
하치의 손이 뚝 멈췄다.
헤일리.
더 밝은 색이었던 왼손 약지의 작은 반지 자국도 이젠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손목에 새겨진 이니셜은 단 한 번도 헤일리를 가리킨 적이 없었다. 믿었던 것과 다르게 헤일리는 그의 생명줄을 쥐고 있지 않았다. 헤일리와의 첫키스보다 허니와의 피 묻은 키스가 더 강렬했다. 헤일리의 곁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온갖 난폭한 감정들이 허니를 앞에 두고 날뛰었다. 이젠 헤일리를 지워야했다. 하치는 허니의 손을 잡아야했다.
잘못된 걸 되돌리기 위해서는 헤일리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솔직한 대화가 필요했다.

“미안해.”

하치는 이제 지워야 할 여자와, 사랑해야 할 여자에게 동시에 답이 돌아오지 않을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다.

“저, 허니.”
“네?”

차 앞을 돌아와 문을 연 하치가 머뭇거렸다.

“잠깐 얘기 좀 할까?”
“집에 안 들어가셔도 돼요?”
“잭이 조금 전에 잠들었대서, 내일 데려오려고. 우리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얘기해본 적이 없잖아.”

허니는 하치를 피해왔고, 하치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음...알겠어요. 들어오세요.”

하치가 어둠에 싸여있는 집으로 먼저 들어가 불을 켰다.

“ㅁ, 뭐 드실래요?”

넥타이 매듭을 당겨푸는 두 손가락에서 시선을 뗀 허니가 물었다.

“내가 할게. 피곤할텐데 앉아있어. 물 줄까?”
“네.”

여기 우리 집이 맞는 건가? 턱을 긁적인 허니는 하치가 찬물 두 잔을 들고 오는 걸 지켜봤다.

“무슨 얘기 하고 싶으신데요?”

허니가 보호대의 실 한오라기를 잡아당겼다.

“긴장돼?”
“왜 안 되겠어요? 둘이 있을 때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잖아요.”

하치의 무릎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와다다 뱉은 허니가 뒤늦게 센티넬과 눈을 마주치고는,

“어, 그러니까 제 말은요...”
“아냐,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냥 전부 다 말해.”

하치가 손을 뻗어 허니의 손을 감싸쥐었다.

“무서워?”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가슴 한 구석이 쓰렸다.

“난 허니가 떠날까봐 무서워.”

작게 대답한 하치가 엄지 손가락으로 허니의 손등을 천천히 문질렀다.

“제가 가이딩해주니까 좋으세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땐...내 생각이 짧았어.”
“솔직히 헷갈려요. 왜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생각 좀 해보려고 테네시까지 간 거고...결국 답은 못 찾았지만요.”
“나도 모르겠어. 아마 매칭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뺨을 긁적이는 허니가 한없이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도 매칭 때문일 거다.

“사람 마음이 웃겨요. 처음에는 하치가 가이딩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이용 당하는 것 같거든요.”
“이용하는 거 아니야.”
“정말요?”

정말 아닐까?
하치가 망설였다. 허니가 곁에 있는 게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가이딩이었다. 비록 허니의 외모에 이제 반했다고는 하지만, 허니를 사랑하기는 커녕, 이성으로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애틋함도 없었고 그냥 많이 가봤자 허니를 이제 동료로 받아들이고 요원으로서의 실력을 인정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치에게 허니는 그냥 가이드, 혹은 동료. 아직은 그뿐이었다.

“하치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나는, 노력하고 있어. 허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동안 잘못 했다는 거 알아. 둘 다 힘든 시간이었잖아. 나도...아무리 헤일리랑 진작부터 이혼한 상태였다고 해도 헤일리가 내 전부인 줄 알았거든. 그게 아니라는 건 이제 알고...솔직히 말하면 네가 필요해. 왜 이용하는 것처럼 느끼는지도 알겠고. 오래 걸리겠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게 내가 더 노력해볼게.”

하치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 얘기는 모든 사람들한테 다 들었어요. 정말 유감이에요. 그 사건이 없었으면 하치가 저를 만날 일도 없었겠죠. 저도 이렇게 고생할 일 없었고요.”
“미안해.”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하치랑 잘 지내고 싶어요. 서류에서 사진 보고 반한 것도 맞고, 지금 봐도 멋있거든요.”

하치의 뺨에 보조개가 패였다. 허니는 어쩐지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빛을 피해서 급하게 시선을 내렸다.

“왜...왜 그렇게 쳐다봐요?”

하치가 허니의 턱을 감싸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예뻐서.”

엄마야...! 눈을 도륵도륵 굴리던 허니가 입술을 말아넣었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어, 그, 어...어디까지 얘기했죠?”
“나랑 잘 지내고 싶다고?”
“음, 어, 네. 좋든 싫든 평생 볼 사이잖아요. 제 팔도 나아야 되고. 감정이 없으면 없는 채로 그냥 지내도 괜찮아요. 전에도 말했지만 데이트도 필요 없고요.”

이제 보니까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중얼거린 허니가 고민하듯 턱을 톡톡 두드렸다.

“헤일리한테는 내가 소홀했어. 일에 밀려서 제대로 챙기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같이 있잖아. 내가 더 잘 할게. 저번처럼 또 놓치고 싶지 않아.”
“제가 다른 팀원들만큼 하치를 오래 본 건 아니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요. 빈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죠. 사실 지금까지 한 말은 다 지키셨잖아요. 그래서 그 말도 지킬 거라는 거 알아요.”
“그렇지.”
“하지만 하치는, 그 사람을 원했던 것만큼 저를 원하지 않을 거잖아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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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침묵이 무겁게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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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 장점: 순정남임
하치 단점: 순정남임
근데 이제 허니한테 치임





믣 크마 하치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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