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연애




밥의 관사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자리했어. 밥이 무슨 말이라도 이어보려했지만 행맨이 손을 내저어 그럴 필요 없다는 의사를 취했지.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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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거절의 이유가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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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어."




행맨은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풀어내야할 지 감도 오지 않아 그저 눈을 감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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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그랬어. 항모에서 내린 제이크는 내리자마자 꽃집에 들러 꽃을 샀어. 은은한 푸른색과 연보라 계열의 꽃들이 조화롭게 어울린 꽃다발은 밥과 꼭 어울리게 예뻐서 마음에 들었지. 제발 이 꽃을 좋아하기를 바라는 설렘이 마음을 간지럽게 스치고 지났어. 2주 동안 떨어져 있으며 행맨이 느낀 건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떠났다 돌아오는 생활 말고 밥을 제 옆에 꽉 붙들어 놓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지. 물론 제가 저지른 일들이 있어 당장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결국엔 밥이 절 받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기 위해선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만 말이야. 피닉스와의 대화에서도 이야기를 잘 해보라고 했으니 오늘은 그 시작이었어. 





그렇게 도착한 밥의 집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밥이 자신을 맞아줄 때까진 좋았겠지. 로버트는 꽃다발을 받자마자 환하게 웃어주었고 무사히 잘 다녀왔다며 제이크를 끌어안아주기까지 했으니까. 들어오라며 안으로 이끈 밥이 이번 임무는 어땠냐며 피닉스랑 다툰 건 아니냐며 묻는 물음에 차분히 대답한 제이크였어. 그리고 배고프지 않냐며 나가서 밥 먹자고 하는 밥을 소파로 끌어와 앉혔지. 그렇게 분위기를 잡자 밥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어색한 미소를 흘렸을 거야.


제이크는 그런 밥에게 고해성사를 시작했을듯. 내가 너를 만나는 2년 동안 여러번의 이별과 만남이 있었지만 결국 너에게 돌아왔는데, 나도 내가 너무 몹쓸 놈이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안했다. 이런 말들 지금 해봐야 하나도 믿음 없고 와닿지 않겠지만 이제 너한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다. 아니, 애초에 이제 떠날 일도 없을 거다. 네가 없는 내 미래를 상상하니까 숨이 막히고 토할 것만 같았다. 심장이 뜯겨나간다는 게 이런 거라는 걸 처음 경험 해봤다는 둥.....뭐 사실 들어보면 바람핀 남친이 돌아올 때 하는 레파토리 말들이었어. 근데 그걸 말하는 제이크 표정이 너무 진지하고 답지않게 말도 계속 더듬고 허둥거리고 했던 말 또 반복하고 하는 거 보니까 로버트 입장에서는 너무 웃긴 거야.


그래서 처음에는 진지하게 눈 땡그래져서 듣다가 숨도 안 쉬고 막판에는 랩하듯이 그래서 말인데...너만 괜찮다면 나는 우리를 더 진지한 관계로 여기고 싶어! 하는 걸 듣고 푸스스 웃어버렸을듯. 행맨은 자기가 진심으로 온몸을 내던져서 한 얘기였는데 밥이 웃어버리니까 제가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어정쩡하게 굳어 있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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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

"그러자고. 좀 더 진지한 관계. 난 좋아."

"정말?"

"내가 싫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 제이크. 네 말대로 널 매번 받아준 건 나인데. 아직도 부족해? 난 너 사랑한다니까."






그 말에 제이크 입에는 웃음꽃이 폈겠지. 밥은 그런 제이크를 보면서 손에 들려있던 꽃다발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고는 말했어.


"꽃도 고마워. 너무 예쁘다."



활짝 웃는 밥의 얼굴에 제이크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둘은 사이좋게 손잡고 밥 먹으러 나갔을듯.








*





그렇게 한동안 너무나 순조롭게 잘 지낸 둘이었어.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또 헤어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자 르무어 기지 내에서는 드디어 천재 WSO가 기기도 모자라서 사람까지 고쳤다는 소문이 돌았지. 루스터는 밥의 말을 듣고 긴가민가했었는데 꾸준히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며 행맨에게 이제 드디어 정신차린 거냐는 농을 건네기도 했어. 피닉스는 여전히 뭔가 찝찝했지만 둘의 행복을 응원했어. 가까이에서 본 둘은 꽤 안정적이고 탄탄한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었거든. 

그러나 이런 관계를 순식간에 얼려버린 건 행맨의 프로포즈때문이었을 거야.




*



1년이 되던 날. 행맨은 프로포즈를 기획했어. 멋지고 거창한 프로포즈 보다는 진정성에 의미를 두고 싶어 집 안에서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을 거야. 그리고 팬보이에게 도움을 요청해 밥이 좋아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 컨셉 반지함에 반지까지 담아뒀어. 둘이서 그 영화를 보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고백할 마음을 제이크였어. 




*



과정은 성공적이었어. 두근거림을 숨기고 영화를 다 본 제이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서 준비한 반지를 들고 밥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았고, 엔딩크레딧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밥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돌렸어. 그리고 고개를 돌렸을 땐, 행맨이 반지를 내밀며 긴장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겟지.


의아함에서 놀람으로 물들던 밥의 표정이 종래에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변했어. 큰 눈을 깜박이는 밥에게 행맨은 장난스럽게 물었지.


"그래서 대답은..?"

".......제이크."

"알아. 나도 갑작스러운 거. 그치만 너랑 진지한 관계가 되고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내 목표는 이거였어."

"......."

"....우리 오늘 만난고 처음 맞는 1주년이기도 하고. 음....그러니까 내말은...."

"......."

"나랑 결혼해줄래? 베이비. 나 너랑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제이크....있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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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락의 말대신 고개를 푹 숙인 밥은 조용히 말했어.





"미안. 결혼은 좀 그래."




웃음기가 걸려있던 행맨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빛을 일었어. 둘 사이에는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지.







*





".......이유가 뭐야?"



한참의 정적 후에 제이크가 반지를 내려놓고 이유를 물었어. 밥은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제이크를 바라봤지.



"얘기를 해줘.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라면 내가 고칠게. 어? 로버트."

"......."

"아니면 여전히 내가 과거에 한 행동들이 용서가 안 되는 거야.....? 그런거면-"

"그런 거 아냐."

"......."

"용서가 안 됐거나, 널 미워했으면 나도 매번 돌아오는 널 받아주지도 않았고 진지한 관계가 되고 싶다던 걸 거절했을 거야."

"......그럼?"

"제이키. 이건 좀 냉정하게 생각해야해. 네가 나랑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거? 괜찮아.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어. 물론, 나도 한계가 있긴 하겠지만."

"........"

"하지만 결혼은 달라. 결혼은 법적인 거라고. 결혼으로 묶이게 되면 헤어지는 건 예전처럼 가볍고 쉽지 않을 거야."

"베이비. 넌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알아. 지금은 아닐 거야. 네 말대로 진지한 관계를 갖고 싶어한 이후로 네가 엄청나게 노력하고 우리 관계가 얼마나 안정적인지 나도 느껴. 그리고 그거에 대해서 너무 고맙고 그만큼 널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우습지. 널 더 이상 어떻게 사랑할까 싶었는데, 그 마음이 더 커지기도 하더라."

"......."

"그래서 난 더 두려워. 제이크. 널 잃는 게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이제 처음으로 두려워."

"......."

"결혼까지 하면 내가 정말로 전처럼 널 못 놓아줄 것 같아. 제이크. 그땐 정말 말라비틀어질 것 같거든."

"......."

".......미안해."

"정말 거절의 이유가 그거야?"

".......그럼 내가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어."








*





한참 후의 침묵 후에 제이크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눈가가 붉게 물든 상태였겠지.


"크흠. 밥.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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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행복한 시작을 꿈꾸던 제이크였는데, 벌써부터 끝이 두려워 시작도 하고 싶지 않다는 연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어. 이것도 다 자신의 업보려니 하는 거지. 진짜 모든 걸 내려놓고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을 추스린 행맨은 그대로 반지 케이스를 닫아서 밥에게 쥐어줬어. 


"흠. 음. 이건 네가 갖고 있어."

"......"

"네가 날 거절했다고 난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네 말대로 결혼해야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확실하게 말할게. 내가 청혼한 건, 널 진심으로 평생 내 옆에 붙들어 놓고 싶어서야. 그냥 지금의 기분에 취해서 어줍잖은 마음으로 한 말 아니라는 거 꼭 알, 알아줬음 좋겠어. 흠. 그리고-"


말하는 족족 쓴 물이 올라와 목을 몇 번이고 가다듬은 행맨은 마지막 말까지 내뱉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했어.


"난 이제부터 네가 내 청혼을 승락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거야. 네가 두려워서 도망가지 않고 내 손을 잡을 수 있게 되도록.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할 거야."

"......."

"그러니까 만약에, 만약에 나중에라도 이 반지가 낄 결심히 서면......그때는 꼭 승락해줬으면 해."

"......"

"그래 줄 거지.....?"






초조함과 슬픔이 뒤섞인 표정의 제이크가 물어오는 말에 밥은 잠시간 침묵을 유지했어. 그리고 손에 쥔 반지 케이스를 꽉 붙들곤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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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럴게. 제이크."




















아 뇌절;;ㅈㅅ 곧 끝남

행맨밥 파월풀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