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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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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행맨편이 보고싶어서..




행맨은 오메가로 발현한 이후로 자신의 향을 맡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생선 비린내가 페로몬인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을 것이다. 행맨에게 제 향은 항상 죽음의 냄새였다.







행맨이 루스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두에 가장 먼저 한 일은 제 마음을 즈려밟는 것이었다. 행맨은 제 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보편적으로 혐하는 대상이 되곤 하는 그 냄새는, 빈말로라도 호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루스터와 사이가 조져진 마당에 향이라도 좋았으면 좀 어필이 되렸으려나. 부질없는 상상을 덧대어보지만 그래봤자 이미 한참전에 발현한 형질을 이제와서 다시 되물릴 수도 없다. 그저, 그냥 혹시 그랬으려나 미련이라도 떨어보는 것이다.


애초에 향이 좋았다 하더라도 루스터가 저에게 관심을 보일 일은 없다는걸 행맨은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가지못한 길에 대한 청승이고 미련이었다. 제 향이 보편적인 혐오감을 자아내는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이미 루스터와 돌이킬 수 없을만큼의 척을 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메가의 페로몬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향을 가지고 있으니 미친척 러트 때 꼬셔낼 수도 없고. 애초에 별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다지 제 향에 미련이 있지는 않았다. 그걸로 어떻게 해 볼 생각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래도. 혐오만큼은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오메가로 발현 이후, 행맨은 히트사이클이 오지 않게끔 강박적으로 억제제를 챙겼다. 그 누구도 행맨에게 그렇게하라고 말 한 적이 없지만 행맨은 그렇게했다. 해사 시절 유일하게 곁을 내주었던 코요테조차도 거의 졸업을 할 때가 다 되어서야 그의 향이 무언지 알았을정도니까. 히트사이클의 앞 뒤로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 향조차 행맨은 틀어막기 위해 행맨은 약효과 센 억제제를 썼고, 결국엔 점점 더 센 억제제를 복용할 수 밖에 없었다. 진즉에 복용 중지 권고를 받았으나 행맨은 병적으로 제 향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나마 행맨에게 다행인 점은 자신이 우성이라는 점이었고, 때문에 향 컨트롤을 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어지간해서는 타인에게 제 향을 들킬 염려도 없었거니와 만약 들킨다하더라도 제 향을 오메가의 페로몬이라는 착각으로 이어지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 일반적인 향이 아니니까. 오메가라 의심을 받지 않는건 좋지만 그렇다고 오메가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못 할 정도의 향이 마음에 든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좋은게 좋은거 아닌가 위로하곤 했다. 슬프지만 실수로라도 제 향을 오메가의 페로몬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기에.  










제 향이 알파에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었다. 오메가로 발현한 이후 강박적으로 억제제를 챙겨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맨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지 기계가 아니었기에 가끔씩 어쩔 수 없이 히트사이클이 오기도 했다. 예상치 못 한 일이 닥치거나 몸이 지나치게 피곤하여 한계에 부딪히면 그랬다. 그러면 행맨은 방안에 틀어박힌채 꼼짝도 않았다. 잊을만 하면 돌아오는 히트사이클에 끝없는 모멸감이 온 몸을 휩쓸었다. 어차피 향이 다르다고 해서 루스터가 저를 좋아해줄 일 따위 없을거란걸 알면서도, 미련이 발목을 붙들었다. 혹시나, 만약에. 하지만.



걘 날 오메라고 생각도 안 할거야.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먼저 이런 생각을 한다는게 웃겼다. 행맨의 비참함은 루스터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앤 날 오메가로 생각하기나 할까. 멍청한 질문이었다. 오메가인걸 알면 뭐 어떡할건데. 히트사이클 내내 행맨은 제 향에 짓눌린채 엉엉 울었다. 어차피 걘 나를 오메가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비참함에 몸서리를 쳤다. 한때는 제 향이라도 사랑해줄 알파가 세상 한 명쯤은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안 그래도 우성이라 향의 농도가 강하고 짙은데다가 향마저 그모양이라 그저 꿈으로 남았다. 히트사이클 때마다 멍청하게 희망을 가졌다.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나를.

많은 날이 지나고나서야 행맨은 자신이 순진하고 멍청했다는걸 인정했다. 얼굴과 몸뚱어리는 몰라도 제 향까지 사랑할 알파는 없다는 것을 드디어 인정했다. 저를 사랑한다 말하던 이들도 향 때문에 돌아섰는데 하물며 저를 싫어하는 루스터가 제 향을 좋아해줄리가. 행맨은 나름 객관적이었다. 알파에게 제 반반한 얼굴과 튼튼한 몸뚱어리가 플러스 요인으로 다가온다는것을 알았다. 향만 아니라면 행맨도 단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루스터 그놈이 금발이랑 푸른계열의 눈에 환장한다는건 유명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행맨은 알았다. 그래봤자 루스터는, 



나를 싫어하잖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불안했다. 원래 주기가 한참 남아서 그저 그냥 미열이겠거니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비행 내내 따라다니던 어지러움증은 히트사이클에 대한 전조증상이었는데 억제제로 오랫동안 히트사이클을 억제해왔던 행맨은 그걸 몰랐다. 이 빌어먹을 향이 퍼지면 안 돼. 우성인지라 그나마 향을 잘 조절할 수 있어 사람들이 자신이 오메가인걸 잘 모른다는게 천만다행이었다. 향도 이럴 때는 도움이 되었다. 아무도 이게 발정난 오메가의 페로몬이라고는 생각지 않을테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도록 경멸하고 미워했던 향이 이럴 때 도움이 될거라고는.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했는지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발정나지 않는 것은 오로지 제이크 행맨 세러신으로써의 자존심과 우성 오메가라는 형질 덕분이었다. 그나마 우성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판이라니. 하지만 반대로 우성이라는 것은 향의 농도가 진하고 강하다는걸 뜻하기도 했다. 원치 않아도 히트사이클 때 억제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페로몬이 주변에 퍼진다는걸 의미했다. 빌어먹을 페로몬. 행맨은 다시금 자신의 페로몬을 경멸했다. 차라리 좀 평범했으면 좋았을텐데. 아무도 이 향을 맡고 자신이 오메가인걸 상상할 수 없다는게 더 비참한지, 대놓고 이런 향이었냐며 경멸 받는게 더 비참한지 열로 멍해진 머리로 가늠해보았다. 어차피 무슨 소용이야. 걔는, 날...

 


지금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놈이 서있었다.




루스터는 친절했다. 그 친절이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문제였지. 누구에게나 공평한 친절은 반대로 말하자면 그 누구에게도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심 없는 선의가 얼마나 고통으로 다가오는지 행맨은 잘 알았다. 병원으로 데려다주겠다는 루스터의 실랑이를 뿌리치느라 시간을 더 허비했다. 쓸데없이 다정하긴. 아무래도 제 주변을 맴도는 향을 맡아서 저러는걸지도 모른다. 차마 이게 히트사이클 중인 오메가의 페로몬이라고 생각하지는 못 해서 그런걸테지. 아프는게 틀림없다 생각했는지 빨리 병원에 가야 된다는 소리만 반복하는 녀석이 어지간히도 다급해 보여서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면 안 되는데. 제가 웃는게 쇼크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루스터의 목소리가 더 다급해졌다.

히트사이클 중인 오메가의 페로몬이라는 생각조차 못 할만큼 기상천외한 향을 가진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히트사이클이라 오해를 안 받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열기로 흐려진 이성을 다급히 붙잡아 밀어내본다. 병원데 같이 가봤자 히트사이클이라는 진단이나 받을테고, 그럼 루스터는 자신이 맡았던 향이 페로몬이라는걸 알아차릴니 차라리 혀를 깨무는게 낫지. 

쓸데없는 친절이라 해도 잠깐은 좋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권유에 행맨은 이제 조급해졌다. 더이상 페로몬을 가둘 수 없었다. 성큼 다가온 히트사이클은 좋아하는 알파 앞에서 발광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좀 울고 싶어졌다. 얼른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코 앞에 관사를 두고 루스터에게 가로막힌 행맨은 죽을것 같았다. 눈 앞이 가물거리고 열이 바짝 오른 머리는 김이 날 것 같고. 무뎌지는 손 끝의 감각에도 불구하고 루스터의 향이 느껴졌다. 당황해서 그런거라는건 안다. 어쨋든간에 사이가 좋건 나쁘건, 루스터는 동료의 위험을 내버려두고 갈 위인은 못 됐다. 그 쓸데없는 친절이 제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지만. 






행맨은 루스터의 페로몬을 알았다. 흔히 알파의 향이라 생각되지 않는 향이었다. 바닐라향이었다. 형질인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페로몬은 그 사람의 성격을 닮는단 말이 있었다. 넌 진짜 꼭 너같은 향이네. 부드럽고, 달콤하고. 그에 반해 나는..... 행맨은 자조했다. 딱히 루스터에게 인정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향으로는 도저히 밝히지 못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루스터가 신경쓰지 않을거라는걸 아는데. 넌 왜 나를 도와주려고 그래.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괜찮냐고, 저를 부축하며 다급하는 소리가 이명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반복하기 시작했다. 어, 이거 진짜 위험한데. 의심을 받더라도 이젠 당장 이 친절하지만 귀찮은 수탉을 떼어놓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날 내버려둬, 제발. 언제부터 네가 이렇게 친절했다고 그래. 매몰찬 말과 반대의 마음이 미련스럽게 붙잡았을까. 결국 녀석은 끝까지 저를 외면하지 못 했다. 그런 놈이었다. 알고서도, 그러니까 그녀석이 떨어져나갈만큼 매몰하게 밀어내지 않은 제 탓일지도 몰랐다. 겨드랑이 사이로 두텁고 따뜻한 손이 들어와 저를 끌어올렸다. 온 몸이 축축 늘어지며 루스터를 반겼다.



날 구해줘.


아니, 무시하고 지나가줘.



"행맨. 정신차려!"



물결처럼 루스터의 목소리가 아스라히 번졌다.






루스터행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