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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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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쁜데 왜!"
- 어 너 바쁜 거 알지. 아는데 도저히 안되겠어서 전화했어.
"말해."
- 근데 뭐 먹고있어?
"엉. 점심."
- 또 숨도 안 쉬고 먹지. 천천히 먹어.
"콜 뜨면 못 먹잖아. 용건?"
- 너 또 색깔 구분 안해서 빨래 돌렸더라?
"아... 내가 그랬나?"
- 자기야 제발...! 다 물든다니까!
"아 미안. 어제 급히 하다 보니까..."
- 하...
"아 한번만 봐주라. 애인 좋다는게 뭐냐."
-...와서 뽀뽀 몇번 해줄건데.
"입술 닳아없어질 때까지."
-...진짜?
"당연하지. 나 내일 오프야."

그 말에 졌다는 듯 숱많고, 자연스럽게 내려온 머리칼 뒤로 쓸어넘긴 벤이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음. 사랑해 같이 대답하려다 의국으로 들어오는 동료에 허니 왠지 민망해져서 답 얼버무리고 전화 끊음. 입에 부리또 욱여넣다시피 해서 다 먹고 목 좀 축이려는데 콜이 무진장 뜸. 아침에 케잇. 컨퍼런스 하느라 거진 3일 동안 밤 샌 터라 온 몸 축축 쳐지지만 어쩌겠음. 레지던트 3년차의 설움인걸.

그렇게 크록스 바닥 닳도록 환자 보고 차트 정리하고수술 어시 서고 또 당직을 섬. 스테이션에 서서 조는데 응급환자 들어왔대서 다급히 나가는데...

"...벤?"

왜 그가 여기에 누워있는 걸까. 분명 아까 내일 집에서 보자고 이야기했던, 결혼을 약속한 자신의 피앙세가 어째서. 2주의 출장을 다녀오느라 오늘부터 사흘간 회사 휴가를 냈다고 했지. 여느때처럼 엉망이 된 집안 살림을 보살피고 장을 봐두고 또 간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병원으로 오는 길이었나봐. 졸음운전 하던 덤프트럭이 덮쳣대. 병원 사거리에서.

정신 못 차리는 허니 확인한 선배가 그의 존재 알아채고 허니더러 저리 가있으라고 함. 그제야 정신 든 허니가 자기가 보겠다고 하는데 밀어내겠지. 제정신으로 볼 상태 전혀 아닐테니까. 그렇게 수술방 앞에서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앉아서 기다리는데 긴수술 끝에 의사가 나옴.

의식을 되찾을지 불분명 하다는 말에 허니는 울 새도 없이 그냥 픽 쓰러짐. 그리고 다음날 말리는 동기들 울며 제치고 달려가보지만 중환자실에 있는 그인지라 면회도 쉽지 않고...며칠 후 일반병실로 옮기긴 하는데 여전히 의식 없는 그.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 이런 비극이 자신에겐 해당 될 리 없다 믿었는데 한달이 가도, 두달이 가도, 반년이 지나고 1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코마상태. 그의 부모님도 이젠 허니 살 길 찾으라고 위로하고 산소호흡기 떼자고 하는데 그제서야 무너져서 울 것 같음. 진짜 어린애처럼 바닥에 주저앉아서. 그리고 언젠가 그가 돌아올거란 희망 하나 가지고 어떻게든 유지하던 일상이 죄다 무너지고 흔들리던 중 기적처럼 벤이 눈을 뜨겠지.

"...벤? 정신이 들어?"
"..."
"벤..."
"...누구..."

그리고 정신이 든 벤은 최근으로부터 15년의 기억이 휘발된 채였음 좋겠다. 그래서 허니와의 첫만남도 허니와의 꽤나 웃겼던 썸도, 오순도순 했던 연애시절과 잠시 장거리커플이 되어야 해 힘들었던 시기도, 그리고 그 모든 걸 지나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된 최근도 모두 기억하지 못했으면.

그렇게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기억을 맞추고 사랑을 되돌리고 시간을 붙잡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힘들고 슬펐다가도 허니가 아무데나 둔 신문을 말없이 정리하고, 소금과 설탕 헷갈리는 그녀를 위해 조미료통에 늘 스티커를 새로 붙여두고, 거꾸로 벗은 그녀의 양말을 뒤집어주고, 속 예민한 주제에 매운 걸 좋아하는 허니를 위해 위장약을 늘 구비해놓던 벤을 위해 허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지.

그렇게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벤 울면서 울 것 같다. 놀란 허니가 그의 뺨을 감싸면 그러겠지.

"내가 청혼할때."
"아...벤...말도 안돼..."
"되게 구린 색의 넥타이 했잖아."
"..."
"왜 말 안해줬어?"

그의 물음에 허니는 내내 울다가 소매에 눈가를 벅벅 비벼닦곤 답해.

"안 보였거든."
"..."
"그냥, 나한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는 당신 눈 밖엔 안 보였어."

그 말에 벤이 천천히 팔 벌리겠다. 의아했거든. 어렴풋이 낯이 익은데 도무지 모르겠는 여자가 우리가 10년 가까이 열렬히 사랑했다며 편지며 사진 보여주고 매일 찾아와 울고 한동안은 밉다고 원망하며 엉엉 울다가 다음엔 찾아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게 이상하면서도...가슴이 너무 아팠거든. 여전히 기억에 빈자리들이 존재하지만 괜찮을 것 같아. 왜냐면...

"당신이 목에 훌라후프를 걸고 왔대도 몰랐을 거야."
"..."
"당신이 나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순간, 나 또 반하고 있었거든."

그냥...있잖아 그런거. 눈 앞에 그 기억들이었던 그 존재 자체가 있는데 조금 기억 안 나면 어때.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그냥 자기를 함께 끌어안은 이 손만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두 사람 보고싶다.

써주세요. 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