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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6:26
슬덩
우성태섭
태웅백호




진짜아주존나 사소한 일상 해프닝 같은거 보고싶다
너무 사소해서 존나 뻔한 이야기 같은거
예를들면 이사를 간다던지 하는












아주 드물게 좋은 부동산 매물이 나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네 사람 중 세 명이 기숙사를 탈락하고 나머지 한 명은 스튜디오 계약이 곧 만료될 때였다.
심지어 매물은 두 개나 계약할 수 있었는데 무려 같은 건물의 같은 층, 마주 보고 있는 호수였다.
혹자(라 쓰고 중개인이라 읽는다)는 천운이라고 말한다.


"이 정도 가격에 이런 매물은 이 드넓은 미대륙에서도 없다고 봐야지."


보아라, 나 쩔지. 마치 본인이 만들어 낸 것처럼 생색을 내던 중개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되게 별거 아니어 보이는 말을 덧붙인다. But, 지은 지 좀 된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없어. 매물은 5층."


어쩐지. 중개 수수료를 느닷없이 깎아 주더라.
역시 어느 나라 말이건 However가 중요하다.







_____





미국놈들의 건물은 고국의 것보다 평균적으로 층고가 높은 편이었다.
그렇다보니 물리 법칙(?)에 따라 층간 높이도 자연스레 높았다.
필연적으로 올라야 할 계단의 수도 많았다.
계단이 적다? 그렇다면 단 차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사는 본래 중노동이다.
멀쩡히 엘리베이터가 살아있는 건물이나 층고가 높지 않은 고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허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서의 이사는 노동 지옥이다.


🌸 야 송태섭! 힘주고 있는 거 맞아? 소파가 점점 내려오는데!

🥦 오호라 선두에게 소리칠 기운이 있으시겠다? 진짜 힘주고 있는지 아닌지 알게 해주랴?

🌰 거기 앞에 둘! 중간에 멈추지 말라니까아-!

🍁 ..빨랑 가, 멍청이!



퍽! 두터운 서랍장의 무게를 참아내며 계단에 버티고 서 있던 서태웅은 앞서 있는 강백호의 엉덩이를 결국 걷어찼다.
무거운 가구를 버텨내면서 뻗을 수 있는 그의 튼튼하고 긴 다리는 역시 자랑거리다.
쓸데없이 무겁기만 한 싸구려 소파를 등골 휘게 옮기던 강백호는 악소리 내는 것으로 반격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냈다. 악! 여우 새끼!


이삿짐을 내릴 때 송태섭과 강백호는 말을 맞춰 소파를 선점했다.
구입할 당시 배송비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는 말에 그냥 둘이서 가볍게 옮긴 소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다시 들어 올린 소파는 간밤에 무엇을 처먹었는지 개같이 무거웠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때는 가게 문 앞 주차장까지 들어 옮긴 게 다다.
그 후엔 이삿날까지 계속 차에 실어둔 채였다. 그래서 가벼웠나.


큰일이었다.
사실, 소파를 2개 샀다. 두 집에 하나씩 두려고.
이걸 언제 또 옮긴담?


기숙사를 나오고 살 집을 얻어 좋다고 가구를 사들인 게 패착이었다.
싸구려 합판과 스펀지로 만들어져있을 것이라 우습게 본 것이 원죄다.
1층부터 5층까지 수차례 오르내리며 쌓여버린 두 다리의 무게는 말로만 듣던 중력이 아니시던가.
타이밍이 지금뿐이라고는 하지만, 한 여름에 이사를 강행한 것은 감히 더위의 벌을 받아 마땅함이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 덕에 짭조름해진 입술을 꽉 물고 4층 계단의 코너를 돌던 송태섭은 절로 콧김을 내뿜었다.


🥦 야이씨.. 여기 뭐야. 5층이야? 5층 어디야. 왜 안나와??

🌸 송꼬추! 빨리 돌아! 죽겟다고~!

🥦 지금 돌고 있는거 안 보이냐아아!



시끄럽다.
흰색의 합성피혁으로 마감된 적당히 저가형 소파의 양 끝을 짊어진 송태섭과 강백호는 코너를 돌며 소리친다.
특별히 화가 난 것은 아니었고 그저 힘들어서 그랬다.
힘들고, 더워서, 그냥 대화를 한 것 뿐인데 언성이 높아졌다.


때문에 뒤쪽의 상황은 맨 뒤에 있는 사람만 알았다.
맨 뒤에 있는 사람. 서태웅과 묵직한 앤틱(이라고 소개받은) 서랍장을 나눠 들고 있는 정우성이다.
대체 집에 앤틱 서랍장이 왜 필요했을까. 앤틱이라니. 앤틱이 뭔데.


"What the fuck is going on!?"


갑자기 뒤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다.
정우성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세상 삐딱한 자세의 남자 두 명과 눈이 마주쳤다. 입주민인 모양이다.
날이 더워서인지 사면이 푹 패인 민소매를 입고 있다. 근데 왜 딱 달라붙는 긴 청바지를 입고 있는 걸까. 심지어 한 명은 가죽 재킷을 입었다. 덥게시리.


정우성은 가만히 그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왜냐하면 딱히 할 말이 없어서였다.
아, 새 이웃이니 인사를 할까. 헬로? 아니, 하이? 아 아니지. 굿 애프터-


"뽀킹 아시안 길막 하지 말고 저리 꺼져!"


인사는 사치고, 화려한 언변이 돌아온다.
양쪽눈을 째는 시늉을 하며 퍼킹 포킹 짐승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며 잘도 낄낄거렸다.
일단 정우성은 눈썹을 찌푸리고 인상을 써 봤다.
너무 뻔한 일차원적 공격에 오히려 아무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례한 건 사실이니까.
무시할까 욕을 해줄까. 고민하다 흘낏 위쪽을 쳐다봤다.
앞서 올라가 있는 녀석들은 지들끼리 바쁜지 뒤쪽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으흠, 인사라도 시킬까. 새 이웃인데.


🌰 Guys-! 여기 인사하고 싶은가봐-

🥦🌸(🍁) 아앙~~!??


정우성의 부름이 끝나기 무섭게 번뜩이는 세 개의 눈- 아니, 세 쌍의 눈이 일제히 아래쪽을 향한다.
이삿짐을 나르느라 축적된 피로와 더위로 인해 핏발 서 있는 안광이 형형하게 빛났다.
움직이기 편하려고 팀복처럼 맞춰 입은 민소매 티가 무거운 가구를 짊어져 성난 팔뚝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고강도 노동으로 이미 출타한 정신은 눈의 초점을 앗아간 지 오래지만 다시 챙길 여유 따윈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 송태섭은 맛이 간 눈을 내리깔아 아래를 바라본다.
포인트 가드로 산 인생이 벌써 십여년. 눈앞에 보이는 상황 파악은 본능에 가깝다.


밤톨머리 뒤로 어정쩡히 서 있는 두 명의 외국인. (사실 여기선 송태섭이 외국인이다)
보아하니 이웃인 것 같은데 아마 인사를 하려는지 말을 걸어 온 것 같다.
하지만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잘 안 들렸으므로 소리를 조금 높여 되물어야 한다.
상황파악 완료.


송태섭은 또박또박 외쳤다.


🥦 What Did you Say?!


잘 안 들려서 물었다.
그러나 아래쪽에 있던 외국인 남자 두 명은 움찔하더니 지들끼리 작게 중얼거리며 가운뎃손가락을 보여주곤 급하게 아래층으로 사라졌다.
송태섭은 어리둥절 했다. 왜 갑자기 욕을 하고 그래?
그건 아마 강백호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 뭐야? 왜 그냥 가? 까까중! 쟤들이 뭐래?

🌰 음- 우리가 길막하고 있어서 못 가겠대

🌸 그, 그으래?


정우성을 제외한 세 사람은 진심으로 머쓱해 했다.
이것 참.. 미안하게 됐는 걸-.

사실은 불청객이었으나 덕분에 분위기를 환기한 네 사람은, 다시 힘을 내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정우성은 가장 뒤쪽에서 앞선 세 명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 (보기완 다르게 참 마음 좋은 녀석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