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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02:04
아메+히트 결말 스포 요소가 있음




배리가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흙먼지가 이는 더러운 철판 바닥이었다. 배리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무시하며 마지막 기억을 되새겼다. 교육을 받고 나온 뒤 차에 타자마자 복면을 쓴 남자가 다가왔다. 남자는 총구를 배리의 머리에 겨눴고 이제 죽는다 하는 순간, 큰 소리가 나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배리는 눈동자만 굴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조악한 쇠 울타리에 천을 덧댄 걸 봐선 낡은 수송차나 트럭 같았다. 배리의 양옆으론 복면을 쓴 남자들이 앉아있었고 전부 무장한 상태였다. 남자들은 배리가 깨어난 것을 아무도 모르는 눈치였고, 배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왜 거기서 죽이지 않고 살려둔 거지? 아니, 그런 것보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머리를 굴리며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자니 누군가가 신발 끝으로 배리의 손을 건드렸다. 아까 눈 뜬 거 봤어. 자는 척 하지 말고 일어나. 쥐새끼 같은 놈... 남미 억양이 짙게 깔린 목소리가 낮게 투덜거렸다. 배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배리를 깨운 남자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고글 너머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형형한 눈빛에선 살기가 드러났다. 남자는 친절하게 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해 줬지만 내용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배리를 빠르게 제거하고 사라지는 것이었으나, 조직을 능멸한 미국의 스파이를 그냥 죽이는 것도 김 빠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직의 보스는 배리를 본거지까지 끌고 와 본보기로 처형하기로 한 것이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배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배리지만 이번엔 정말 죽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배리가 겁에 질리자 남자는 기분이 좋아진 듯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에 앉았다. 배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몸을 웅크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죽음의 공포가 코 앞까지 다가오니 가족의 얼굴이 자꾸 맴돌았다. 차라리 주차장에서 죽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배리는 누군가가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헬멧을 쓴 남자가 먹으라는 듯이 작은 생수병과 에너지 바를 내밀었다. 배리가 고개를 젓자 그는 두 번 권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배리를 지키는 남자는 조직원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다. 다른 조직원들은 편하게 복면을 벗고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남자는 절대 헬멧을 벗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뻘뻘 나는 날씨에도 완전 무장을 한 남자는 늘 혼자였고 조직원들과 친분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배리가 그를 눈여겨 본 이유는 남자가 그나마 배리에게 친절하게 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조직원들은 심심하면 배리를 위협하거나 우리에 갇힌 동물 대하듯이 굴었지만 남자만은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해주는 게 느껴졌다. 극한에 몰린 상태에서 작은 호의가 쌓이고 쌓이자 배리는 남자를 조금씩 의지하게 됐다. 그도 자신을 납치한 조직원 중 하나란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러한 상황에선 사소한 친절도 단비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다른 이들이 식사를 하러 가거나 휴식을 취할 때 배리의 감시를 자처했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모두가 다 잠든 밤에 단 둘이 남아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배리는 남자에게 자기 인생사를 풀어놓곤 했다.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고 남자가 알아 들을지도 몰랐지만 밤이 될 때마다 찾아오는 우울함과 두려움을 달래기 위해선 뭐라도 지껄여야만 했다. 남자는 관심 없다는 듯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으나 가족 이야기나 비행 이야기엔 반응이 있었다. 처음으로 남자가 반응을 보이자 자연스레 이야기 주제는 그 쪽으로 흘러갔다. -아무리 친밀감을 느낀다 해도 카르텔 사람에게 가족 이야길 하고 싶진 않으니- 주로 이야기 했던 것은 하늘을 날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떳떳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를 누비며 비행기를 몰면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 이야기를 하는 배리의 얼굴은 꿈에 젖은 소년처럼 반짝였다. 동시에 이미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흥분해 말이 빨라진 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기된 옆얼굴을 눈에 담았다. 



남자에게 눈에 보이는 별자리를 설명해주던 배리는 문득 생각난 듯 그를 돌아보았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전 둘째가라면 서러운 조종사거든요.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당신을 태우고 쿠바에서 미국까지 횡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바다 위를 누비며 자유로움은 느껴보지 못 한 사람은 몰라요. 먼 곳을 바라보는 배리의 마음은 이미 비행기를 타고 떠나버린 것 같았다. 나를 억압하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귀가 먹먹할 정도로 달리다 보면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다시 한 번 느껴봤음 좋겠네요. 터무니없는 소원이라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리는 정말로 모든 것을 다 잊고 다시 한번 기류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생각에 잠긴 배리는 눈치채지 못 했지만, 옆에서 이야길 듣고 있던 남자는 총을 손질하는 것도 멈추고 배리의 얼굴을 남자가 빤히 바라보았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국경을 넘은 후부터였다. 미국을 벗어나고 인터폴이나 경찰의 추적도 전부 따돌린 걸 확인하자 가만히 앉아있던 남자가 조직원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무방비하게 앉아 있던 조직원들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배리는 소리도 못 내고 굳어버렸다. 이미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남자는 탄창이 빌 때까지 시체에 총알을 갈겨댔다. 더 이상 총알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남자는 미련 없이 총을 던져 버렸다. 그리고 그는 곧장 몸을 돌려 배리에게로 다가왔다. 검은 방탄복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모습은 사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남자가 손을 대자 배리는 화들짝 놀라 몸을 물렸지만 그가 수갑을 풀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곤 얌전해졌다. 배리의 손발을 구속한 족쇄를 풀어준 남자가 헬멧을 벗어 내렸다. 머리를 감싸고 있던 헬멧이 벗겨지자 안에 숨겨져 있던 긴 금발이 흘러내렸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운 인상일 거라 생각했던 남자는 할리우드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수려한 얼굴이었다. 다른 카르텔 멤버에 비하면 곱상하게 생겼다고 할 수 있는 남자에게 배리는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다. 단순히 그가 사람들을 쏴 죽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남자의 눈은 공허하게 비어 있었다. 지독한 상실을 겪은 것 처럼 갈 곳 없는 체념과 분노, 상실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눈은 오직 배리만을 고집스럽게 담고 있었다. 배리는 이 지경이 되어서야 남자의 집착을 눈치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자는 배리에게서 희망을 본 것 같았다. 목적 없이 떠돌던 남자에게 유일한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겁고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시체들에서 쓸만한 물건을 챙긴 남자가 배리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저기... 휘청이며 끌려 올라간 배리는 덜덜 떨며 남자를 올려다봤다. 크리스. 짧은 대답에 배리가 멈칫했다. 크, 크리스. 구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크리스가 바라보자 배리는 입을 다물었다. 카르텔과 정부 사이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는 것은 목숨 보존하는 눈치 뿐이었다. 크리스가 자신을 곱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란 건 손목이 아릴 정도로 옥좨오는 손아귀 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배리가 고개를 숙이자 크리스는 배리의 손목을 붙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수갑 자국이 남은 손목은 이제 크리스의 손이 감싸고 있었다.



배리의 행방을 쫓던 FBI가 발견한 것은 총알구멍이 난 카르텔 단원들의 시체 뿐이었다. 시체들 사이에 백인 남성이 없다는 걸 들은 셰이퍼는 이마를 짚었다. 배리를 쫓기 시작한 이튿날 밤, 낡은 모텔 뒤에서 카르텔 조직원의 시신이 발견됐다. 얼굴에 큰 화상 자국이 있어 늘 헬멧을 쓰고 다녔다는 정보가 있었지만 남자의 헬멧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 헬멧은 지금 여기에 있고 말이야. 마스크 안에 붙은 금발의 긴 머리카락은 누가 봐도 조직원이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카르텔 조직원으로 위장해서 배리 씰을 데려갔는가? 셰이퍼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숲속으로 사라진 발자국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다시는 배리 씰을 볼 수 없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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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같이 믿던 동료들과 가족들까지 전부 잃은 뒤 위험한 일만 자처하며 여기저기 떠돌던 크리스가 배리를 만나 권태에서 벗어나는 게 싶었음. 처음엔 진짜 보수가 세 보여서 몰래 잠입한 건데 자기랑 비슷한 처지임에도 과거의 반짝임이나 희망이 퇴색되지 않은 배리를 보고 닐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서 배리를 데려갈 계획을 세운 거였음 좋겠다. 배리는 크리스가 자기를 죽일 거라 생각하진 않는데 크리스의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항상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음 좋겠어.(잡히면 죽을까봐 도망가진 않음) 그래도 같이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속마음도 나누다 보면 점차 사이가 나아지지 않을까 싶음 마음도 맞고 배도 맞고... 크리스가 종속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마음의 원동력이 되는 누군가는 필요한 타입이라고 생각해서 여유로우면서도 일은 크게 벌릴 줄 아는 배리랑 진짜 잘 어울리는 같아.



크리스배리
아이스매브
[Code: ec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