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ㅈㅈㅇ
1.
비 부부는 조금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비 가문은 영국 마법 사회에서 이름 있는 명문가였지만, 비 부부는 여타 마법 사회 명문가들과는 달리 머글 세계와 꾸준한 교류를 해왔다. 물론 머글에게 우호적인 가문 자체는 위즐리 가문을 비롯해서 더 있었지만, 그들이 정작 머글에게 우호적인 것 치고는 머글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것에 비해 비 부부는 머글 사회에 대해 잘 알고 그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녹아들 줄 알았다.
그런 비 부부는 머글 세계와의 교류 중 하나로 머글 사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는 했다. 특히 고아원 봉사를 자주 가고는 했는데, 고아원 봉사를 갈 때면 언제나 올해로 10살이 된 딸 허니를 데려가고는 했다. 외동딸인 허니에게 또래와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비 부부가 런던의 콜 원장의 고아원에 봉사를 시작했을 때였다.
비 부부가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허니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어울려서 놀고는 했다. 허니도 부모님을 닮아 머글 아이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녹아들 줄 아는 아이었고, 자신이 마녀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은 채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고는 했다. 우중충한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햇살 같은 허니를 좋아했지만, 유독 허니와도 놀지 않고 혼자 다니는 소년이 있었다.
허니는 고아원의 아이들과 두루두루 친했고, 늘 혼자 다니는 그 소년과도 친해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사실 허니가 그 소년을 유독 신경쓰는 것에는 비단 허니의 사교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년은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서 자길 괴롭히는 아이의 다리가 부러지게 하는 등 고아원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마법사 집안에서 자란 허니의 눈에는 그의 특별한 능력이 사실 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의 이름은 톰 리들이었다. 톰이 혼자 책을 읽고 있을 때 다른 아이들과 놀던 허니는 잠시 핑계를 대고 무리를 빠져나왔다. 허니가 톰에게 다가오자 톰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니를 쫓아내려고 했다. 허니가 같이 놀자는 시시한 말을 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허니가 꺼낸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있지, 저번에 존 다리가 부러진 거 네가 그런 거지?"
"…뭐?"
"네가 특별한 능력을 써서 그 애 다리를 부러트린 거지? 난 다 알아. 사실 나도 너와 같거든."
"너도 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야?"
"응. 그리고 그 특별한 능력을 마법이라고 해. 넌 마법사야, 톰. 나도 마찬가지고."
허니는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창문 근처에 있는 화분을 발견했다. 허니가 화분에 손을 가져다대자, 식물이 꽃을 피웠다. 그 모습을 보자 톰은 허니가 자신과 같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신을 어딘가 이상한 아이 취급하던 고아원에서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사람을 만난 톰은,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허니가 그런 톰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난 내년이면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에 들어갈 거야. 너도 내후년이면 들어갈 테고. 우리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는 거야."
허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을 찾는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이 이야기는 비밀이라는 말과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덧붙이고는. 톰은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또 만난다는 게 기대되기 시작했다.
비 부부와 함께 집에 돌아온 허니는 비 부부에게 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허니의 예상대로 비 부부는 진작 톰이 마법사라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아이 취급 받으며 고아원에 섞여 들어가지 못하는 톰에 대해 걱정의 이야기를 꺼냈다. 비 부부도 머글과 교류를 곧잘 하고는 했지만, 어린 아이가 이상한 아이 취급 받으며 또래와 섞여 들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였다. 고아원 원장이 톰을 정신과 의사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허니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톰을 우리집으로 데려오는 건 어때요?"
그 말에 비 부부는 잠시 살짝 놀랐지만 이내 미소를 지어보였다. 확실히 허니의 말대로였다. 이대로 이상한 아이 취급 받으며 주변과 섞여들지 못하느니, 차라리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톰은 자신과 같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될 테니까. 동생이 생기기만 해도 질투하는 게 어린 아이인데, 그런 제안을 먼저 꺼내준 딸이 대견한 비 부부였다. 그리고 그런 딸의 대견한 모습에 비 부부는 결심했다.
톰을 데려가는 절차는 간단했다. 고아원의 원장조차 톰을 꺼리고 있었던지라, 톰을 데려가겠다는 비 부부의 제안을 환영했다. 비록 톰은 여전히 톰 리들이었지만, 사실상 비 가문에 입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톰 역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고아원보다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는 비 부부의 집을 더 원했기 때문에, 입양 절차는 금방 끝났다. 비 부부는 집으로 톰을 데려갔고, 집에서는 이제 톰의 누나가 될 허니가 톰을 반겨주었다.
"어서 와, 톰!"
그리고 톰 역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 지낼 것을 기대하며 자신을 반기는 허니에게 인사했다. 톰 리들은 그렇게 비 가문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2.
비 가문 저택은 햇빛이 잘 들었다. 그것이 비 가문 저택에서 처음으로 아침을 맞은 톰이 한 생각이었다. 우중충한 고아원과는 달리 햇빛이 잘 드는 창문 너머로 드는 햇빛이 톰을 아침 일찍 깨웠다. 비 가족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듯 싶었다. 톰은 비 가족이 일어날 때를 기다리며 어제를, 비 가문 저택에 처음 온 날을 회상했다.
허니는 부모님과 함께 온 톰을 반겼다. 외동딸이었던 허니는 동생이 생긴다는 것이 신이 났는지 톰의 손을 잡고는 톰에게 방을 안내했다. 톰의 방은 2층에 있는 허니의 방 바로 옆이었다. 저택이라도 불러도 손색 없을 정도로 넓은 집이었지만 사는 사람이라고는 비 가족 3명과 집요정 하나 뿐이라 남는 게 방이었지만, 허니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톰의 방은 허니의 옆방이 되었다. 톰을 방으로 안내한 허니는 신나서 말했다.
"원래 2층은 나 혼자 썼어. 그치만 이제 톰이랑 같이 쓰게 되는 거야."
톰을 그리 자주 만나 교류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허니는 톰을 동생으로 생각하며 그와 함께 지낼 생각에 들떠 보였다. 아직은 그런 허니가 조금 부담스러운 톰이었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허니는 자신을 괴롭히던 고아원의 무능하고 멍청한 아이들과는 다르니까. 자신과 같은 마법사이며, 톰이 처음으로 만난 자신의 이해자였으니까. 만약 톰이 심사가 조금 덜 꼬인 아이였다면 따뜻한 새 가족에게 벌써부터 애정을 쏟기 시작했을 것이다. 허니가 벌써부터 톰에게 애정을 쏟기 시작한 것처럼.
새로운 방의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회상에 빠져있던 톰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집요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곧 아침 식사 시간입니다."
도련님이라. 톰에게는 낯선 단어였다. 그러나 톰은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믿고 있는 아이였고, 그 호칭은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비 가문에서 지내는 이상 앞으로 집요정에게는 계속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릴테니 적응도 해야 하고 말이다. 톰은 곧 나가겠다는 말과 함께 잠옷을 갈아입고 식당을 향했다.
"어머, 톰. 간밤에 좋은 꿈 꿨니?"
식당으로 오자 미세스 비가 앞치마를 정리하며 톰을 반겨주었다. 집요정과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한 듯 싶었다. 식탁에는 아침 식사라기엔 꽤나 화려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미세스 비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먹는 아침이니까, 오늘은 특별히 좀 신경썼단다."
우리 아들. 아까 집요정이 부른 도련님 이상으로 톰에게 낯선 단어였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톰에게 있어서 그런 따뜻한 단어와는 평생 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간질간질한 감정이 낯선 단어에 대한 경계심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톰은 식탁에 앉았다. 톰의 옆자리에 앉은 허니는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톰에게 배시시 웃으며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맛있게 먹으렴, 톰. 엄마가 직접 만든 요리는 아주 맛이 좋지만, 항상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란다?"
미스터 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집요정이 있는만큼 평소에는 미세스 비가 직접 밥을 차리기 보다는 집요정 혼자서 밥을 차리는 듯 싶었다. 그리고 미스터 비가 미세스 비를 톰의 엄마라고 칭한 것도 톰에게는 여전히 낯설었다. 톰은 식사를 하기 전 정성스러운 식사를 차려준 미세스 비에게 감사 인사를 꺼냈다.
"감사합니다. …부인."
톰은 잠시 그녀에 대한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미세스 비가 그를 우리 아들이라고 칭한 것이냐 미스터 비가 미세스 비를 톰의 엄마라고 칭한 것을 생각하면 엄마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경계심이 강한 톰에게 아직 그건 낯설었다. 그리고 엄마라고 하면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친모가 떠올라서 어딘가 불편해졌다. 자신을 낳고 허무하게 죽었다고 이야기를 전해 듣기만 한 그 여자가.
"어머, 엄마라고 불러주지 않는 거니?"
미세스 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톰이 조금 당황하자 미세스 비는 후후, 하고 웃으며 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은 그 호칭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 편한대로 하렴, 톰. 그렇지만 이 엄마는 네가 언젠가 엄마라고 불러줄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
"아빠도 기다리고 있단다?"
미세스 비와 미스터 비가 차례로 말했다. 그들은 그 말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양자라지만 아직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들은 어째서 벌써부터 자신에게 이런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일까? 톰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톰은 여전히 이럴 때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간질간질한 감정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수프를 한 입 입에 넣자, 톰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맛에 저도 모르게 놀랐다. 고아원의 수프도 먹을 만은 했지만, 이건 먹을 만하다 수준히 아니라 아주 맛있었다. 평생 고아원 음식만 먹어온 톰에게 있어서 여태껏 먹어본 수프 중 가장 맛있는 수프였다. 그 맛있는 수프를 한 입 삼키자, 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톰이 어른스럽고 냉철한 아이라지만 아직 9살 짜리 아이인지라, 표정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그 표정을 본 미세스 비가 톰을 흐뭇하게 보며 말했다.
"음식은 입에 잘 맞니?"
"네. 정말로 맛있어요."
톰은 솔직하게 음식에 대한 감상평을 얘기했다. 톰의 극찬에 미세스 비는 기분이 더욱 좋아진 것 같았다. 수프 뿐만 아니라 다른 음식들도 톰에게 있어 정말로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톰은 정말로 오랜만에 식욕에 돈 채로 음식을 깨끗히 비웠다.
아침 식사를 하고 소화도 시킬 겸 비 가문 저택 정원을 걷는 톰이었다. 혼자 산책을 하면서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감상하던 톰의 시야에 작은 그네가 눈에 들어왔다. 어른이 타기엔 조금 작아보였으니, 허니가 타는 그네인 걸까? 그때 톰을 부르는 허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톰! 여기서 뭐해?"
허니는 그렇게 말하며 톰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왔다. 톰에 시선이 그네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눈치챈 허니가 말했다.
"그네 타볼래? 내가 밀어줄게!"
동생과 놀고 싶었던 허니가 한 제안이었다. 사실 톰은 고아원에서 지내면서 그네 같은 걸 타볼 일이 거의 없었다. 사실 여타 어린아이들의 놀이기구에는 크게 흥미가 없는 톰이었지만, 어쩐지 허니의 제안만큼은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톰이 허니의 제안을 받아들이자 허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네에 조심스럽게 앉은 톰을 허니가 밀어주기 시작했고, 톰은 그네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
잠시 후, 그네가 멈추고 톰이 그네에서 내렸다. 허니는 더 밀어줄 수 있다고 했지만 톰은 거절했다. 대신 허니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이번엔 네가 그네에 타. 내가 밀어줄게."
허니는 톰이 자신과 계속 놀고 싶어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서로 위치만 바꾸어서 이번에는 허니가 그네에 앉고 톰이 그런 허니를 밀어주었다. 톰에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허니를 보며 생각했다. 나에게 너는 어떤 존재일까? 늘 이상한 아이 취급 받으며 주변에서 이해받지 못한 톰에게 있어서 허니는 첫 이해자였다. 그리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일단은 가족이기도 했다.
사실 아직까지는 톰에게 비 가족은 가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고아였던 그에게 가족이라는 것은 너무 멀고 낯선 개념이었다. 거기다 비 가족과 자신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경계심이 강한 톰으로서는 아직 그들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톰이 비 가족을 받아들인 것도, 그저 멍청하고 무능한 사람들로 가득한 고아원에서 벗어나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분명 비 가족도 이를 눈치채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자신이 그들을 가족으로 완전히 받아줄 날을 기다리겠다는 비 가족의 태도는, 톰에게 있어서 이름 모를 낯선 감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3.
톰은 며칠 간 하루의 대부분을 비 가문 저택에서 비 가족과 함께 지냈다. 미스터 비나 미세스 비와 지낼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혼자 보내거나 허니와 함께 보냈다. 비 가문 저택은 넓어서 저택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잘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들어가보고 싶은 방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비 부부가 특별히 출입을 금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톰은 이제 이 집의 아들이었으니 충분히 방을 드나들 수 있었지만, 톰은 똬리를 뜬 뱀처럼 아직 몸을 사리고 있었다.
"톰. 요즘엔 뭐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니?"
네 사람이 모두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미스터 비가 톰에게 한 말이었다. 톰이 비 가문 저택을 탐색하는 걸 몇 번 본 적 있는 그인데도,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텄다.
"요즘엔 저택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조를 파악하고 있어요. 앞으로 살 집인데 집이 넓어서 구조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더라고요."
"집이 좀 넓긴 하지.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을 보관해둔 방은 잠궈 놨으니까 나머지는 맘대로 돌아다녀도 된단다."
톰이 대부분의 방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그 말에 미세스 비가 말했다.
"그치만 톰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우리나 허니 입장에선 위험하지 않은 물건이라도 톰이 실수로 함부로 건드려서 위험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아, 그렇지. 허니랑 같이 저택을 탐색하는 건 어떠니? 해줄 수 있지, 허니?"
"좋아요! 톰, 내가 우리 집에 대해 알려줄게. 내일부터 나랑 같이 다니자."
허니의 씩씩한 대답에 비 부부가 미소를 지었다. 톰 역시 허니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라 보호가 필요한 소년 취급인 게 썩 달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평생을 마법사로 지낸 비 가족에 비하면 톰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허니와 보내는 시간은 썩 나쁘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허니는 톰에게 집을 안내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층에는 플루 가루를 사용할 수 있는 벽난로가 있는 거실, 톰과 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식당, 그리고 그 식당과 이어진 주방과 집요정이 지내는 작은 방, 비 부부의 침실, 그리고 서재 등이 있었다. 톰은 서재에 흥미를 보였고, 허니는 그런 톰을 보고 일단 저택 안내가 끝난 후에 서재에 안에서 놀자고 제안했다.
지하에는 창고와 잠긴 방이 있었다. 아마 미스터 비가 말한 위험할 수도 있는 물건들이 보관된 곳이겠지. 리들은 그곳에도 흥미를 보였지만 허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긴 나도 가본 적 없어. 그래도 성인이 되면 저기에도 자유롭게 출입하게 해주시겠대."
그렇게 말하고는 톰에게 2층을 안내했다. 사실 비 가문 저택에서 주로 쓰는 방은 대부분 1층에 있었고, 2층엔 허니와 톰의 침실을 제외하면 대부분 거의 쓰이지 않는 방이었다.
"이제 서재 가볼래?"
저택 안내를 마친 허니가 아까 톰이 흥미를 보인 서재를 언급했다. 톰은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된 이후 마법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빠져 있었다. 허니와 보내는 시간도 허니가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때가 많았다. 서재라면 분명 마법에 관한 책이 잔뜩 있을 테니 톰이 흥미를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두 사람은 함께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서재 안은 넓고 수많은 책들이 있었다. 톰의 눈이 흥미로 가득차기 시작했고, 그런 톰을 본 허니가 말했다.
"나도 서재에서 시간 많이 보내. 대부분은 어른들이 읽는 책이라 내가 읽기엔 어려운 책이지만, 부모님이 나를 위한 책도 잔뜩 구비해두셨거든. 다음번엔 서재에서 읽을 만한 책도 소개해줄게."
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흥미롭게 서재를 둘러보았다. 허니의 말따마다 마법을 잘 모르는 9살 소년이 읽기에는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영특한 톰은 그 책들에게도 흥미를 보였다. 언젠가 마법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저런 책들도 읽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톰의 눈빛을 본 허니가 말했다.
"톰은 나랑 처음 대화했을 때도 책을 읽고 있었지? 정말 책을 좋아하는구나. 어쩌면 호그와트에 가면 래번클로에 들어가게 될 지도 모르겠다."
호그와트. 허니가 말한 영국의 마법 학교였다. 11살이 된 마법사 아이들이 입학해서 7년 간 마법을 배운다는. 톰은 그 얘기를 들은 이후로 호그와트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비 가문 저택에서의 삶에 적응하느라 호그와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었다. 사실 허니도 아직 호그와트를 입학한 것은 아니고 그저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고 말이다. 그래도 허니는 분명 톰보다는 호그와트에 대해 잘 알 것이다.
"오늘도 마법 얘기 해줄 수 있어?"
허니는 톰과 함께 놀면서, 평범한 아이들처럼 놀 때도 많았지만 톰에게 마법 이야기를 해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톰은 전자보다는 후자를 훨씬 좋아했다. 허니도 톰이 마법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지라, 톰과 함께 놀 때면 마법 얘기를 해주고는 했다.
"물론이지! 오늘은 무슨 얘기 듣고 싶어?"
"방금 말한 호그와트라는 학교에 대해 궁금해."
사실 톰이 허니와 보낸 시간 자체가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허니에게 들은 마법 얘기가 절대적으로 많지는 않았다. 호그와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11살이 되는 해에, 그러니까 허니는 내년에 자신은 내후년에 그 학교에 들어갈 것이라는 점, 비 부부도 그 학교를 나왔다는 점, 그리고 4개의 기숙사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사실 허니도 아직 호그와트에 입학하지 않은 10살이었기 때문에 호그와트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톰을 위해 부모님에게 들은 호그와트 이야기를 기반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호그와트에 4개의 기숙사가 있다는 건 얘기했었지? 4명의 창립자가 함께 학교를 세운 데에서 기원된 거야. 4명의 창립자들은 이렇게 말했대. 고드릭 그리핀도르는 '그 이름에 걸맞은 용기를 보여주는 아이들은 누구나 다 가르치도록 하세.', 로웨나 래번클로는 '가장 똑똑한 아이들만 가르치도록 하세.',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가장 순수한 혈통을 지닌 아이들만 가르치도록 하세.', 마지막으로 헬가 후플푸프는 '나는 그 아이들을 똑같이 가르칠 걸세.'라고."
"그럼 그 창립자들이 말한대로 기숙사에 배정되는 거야?"
"응. 기숙사 배정 방법은 부모님이 안 알려주셨는데, 각 창립자들의 창립 이념에 맞는 성향의 아이들이 배정된다고 들었어. 그치만 슬리데린은 순수혈통만 들어가는 게 아니고 혼혈도 있어서 좀 애매하다고 생각하긴 해. 우리 부모님 말로는 야망이나 교활함을 가진 아이면 순수혈통이 아니어도 슬리데린에 가게 되는 거 같대."
야망과 교활함, 그리고 순수혈통이라. 톰은 생각에 빠졌다. 야망과 교활함이라면 톰도 잘 아는, 어쩌면 그를 잘 표현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순수혈통이라는 단어는 낯설었다. 사전적 의미는 알고 있었지만, 마법 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 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톰은 허니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순수혈통이라는 건 뭐야?"
"마법사들은 보통 혈통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첫 번째는 머글 부모에게서 태어난 머글본."
"머글 부모에게서 마법사가 태어난다고?"
"응. 생각보다 흔하다던데? 우리 부모님 말로는 25퍼센트 정도는 머글본이래."
톰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허니의 마법 능력이 비 부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톰은 마법이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그는 자신이 마법의 피를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신을 낳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어머니가 마법사일 리는 없으니 아버지가 마법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머글본이 흔하다는 말에 어쩌면 톰은 자신이 마법의 피를 물려받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톰이 마법의 피를 이어받았건 이어 받지 못했건 톰이 마법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자신의 부모가 모두 고아원의 무능하고 멍청한 사람들과 같은 머글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톰은 애써 아버지쪽이 마법사일 것이라고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허니에게 이야기를 이어갈 것을 요구했다.
"두번째는 순수혈통. 사실 순수하다의 기준이 애매하긴 한데, 마법부에서는 부모와 조부모 6명이 모두 머글본이 아닌 마법사일 걸 기준으로 두고 있어. 극단적인 순수혈통주의자들은 머글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우리 부모님 말로는 머글의 피가 한 방울도 안 섞인 사람은 없을 거래. 아무튼 마법부 기준으로도 순수혈통은 그 수가 적은 편이야. 그리고 이 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나머지가 혼혈. 말 그래도 마법사와 머글 사이의 혼혈들이야."
"그럼 너는 어느쪽이야?"
"나? 나는 마법부 기준으로 순수혈통이긴 한데, 어차피 우리 조상님들 머글본이나 머글이랑도 많이 결혼해서 머글 피도 섞였을 거야. 당장 우리 엄마도 혼혈인 걸."
"순수혈통이면 좋은 거야?"
"으응, 글쎄? 순수혈통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우리 부모님은 딱히 그렇지 않댔어. 우리 아빠도 순수혈통이지만 순수혈통의 우월성 같은 얘기는 전혀 안 하셨는 걸. 마법부는 순수혈통 우대법 같은 것도 만들어두긴 했지만."
"순수혈통 우대법?"
"응. 우리 아빠 말로는 순수혈통 가문의 압박 때문에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법이래."
"순수혈통 가문들이 영향력이 커?"
"아무래도 대대로 마법사들이랑 결혼하면서 마법 사회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톰이 생각에 잠겼다. 허니의 말대로라면 순수혈통들은 마법 사회에서의 영향력이 크고, 그들은 슬리데린에 많이 배정될 것이다. 그리고 톰은 야망이 넘치는 아이였다. 만약 슬리데린의 순수혈통들과 연을 잘 쌓아둔다면 톰은 자신의 야망을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슬리데린에 배정되는 것이 좋을까? 자신은 분명 마법의 피를 물려받았을테니, 야망과 교활함을 갖춘 자신이라면 슬리데린에 배정되어 슬리데린의 순수혈통 가문들과 연줄을 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던 톰에게 허니의 목소리가 생각에 갇힌 톰을 깨웠다.
"더 궁금한 거 있어? 오늘 마법 얘기 많이 했다, 그치? 기숙사 얘기도 하고 혈통 얘기도 하고."
톰이 순진무구하게 웃는 허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허니는 어떤 기숙사에 들어가게 될까? 순수혈통이니 슬리데린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야망이나 교활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자기도 모르게 허니와 같은 기숙사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톰은 자신의 무의식을 멀리 치우기 위해 주제를 돌려 허니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어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어?"
"나? 글쎄… 솔직히 말하면 어느쪽이건 상관없긴 해. 내 성향에 맞는 곳에 배정된다면 거기가 어디든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부모님도 기숙사는 중요한 게 아니랬어. 기숙사로 사람 판단하는 거 아니래."
"두 분은 어느 기숙사 출신이신데?"
"아빠는 후플푸프, 엄마는 래번클로. 우리 친가쪽은 대대로 후플푸프가 많았대."
"…그럼 너도 후플푸프에 들어갈까?"
솔직히 말하자면 톰은 후플푸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가르치겠다니, 무능하고 멍청한 열등종자까지도 가르치겠다는 뜻 아닌가. 허니가 용기도 지혜도 혈통도 갖추지 못한 멍청이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될 걸 생각하니 어쩐지 속이 쓰리는 톰이었다.
"글쎄? 근데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우리 아빠가 말했는데, 후플푸프는 사실 선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숙사래.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가르치겠다는 것부터가 선의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을까?"
톰은 선의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의를 가져봤자 결국 착한 바보들 아닌가. 톰은 등쳐먹히기 좋은 착한 바보가 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허니에게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이것이 자신의 첫 이해자인 허니를 등쳐먹히기 좋은 착한 바보 취급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니가 선의를 중요시 여기는 후플푸프와 어울린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인정하기 싫은 것은 이 와중에도 허니와 같은 기숙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드는 톰 자신이었다.
"어쩌면 슬리데린에 들어갈 수도 있겠다. 너도 일단 순수혈통이잖아."
"그럴수도 있고. 너는 슬리데린에 들어가고 싶어?"
"…아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긴 기숙사 얘기를 방금 알았으니까 이렇게 들어도 딱히 체감이 안 될 수 있지. 거기다 기숙사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으니까. 어느 기숙사를 가도 톰은 톰일 거야."
허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톰의 거짓말을 받아들였다. 톰은 그런 허니를 보고 빨리 호그와트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렇게 허니에게 연연하는 건, 허니가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라서 그런 것일 뿐일 거다. 호그와트에 들어가 마법사 또래들은 많이 만나면 톰의 이해자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에 가면 허니에게 이렇게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톰에게 상냥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허니를 보고는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호그와트에 가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허니가 자신의 첫 이해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머릿속을 파고 들어왔다.
4.
오늘은 비 가족이 머글 사회로 가는 날이었다. 그들은 톰에게도 함께 갈 것을 제안했지만, 톰은 머글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갈 거라는 말에 거절했다. 톰을 배려해서 톰이 지냈던 콜 원장의 고아원이 아닌 다른 고아원으로 봉사를 가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톰은 고아원이라는 장소 자체를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비 부부와 허니는 고아원으로 봉사를 하러 가고, 톰은 집요정과 둘이서 비 가문 저택에 남겨졌다. 사람은 많지 않아도 시끌벅적한 느낌이었던 집이 굉장히 고요했다. 물론 톰은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했지만, 비 가족이 없는 저택의 고요함은 뭔가 어색했다. 톰은 이 어색함이 그닥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비 가족이 저택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 비 가족은 톰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그날도 그렇게 평범하게 지나갔다.
다음날, 톰은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비 가문 저택은 정원이 꽤나 넓었고 또한 잘 꾸며져 있었다. 저택 곳곳에 가을 꽃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꽃이 잔뜩 심어져 있는 꽃밭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허니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허니가 톰이 온 것을 눈치챘고 웃으며 옆에 앉으라고 톰을 잡아 끌었다. 톰은 그 손길에 이끌려 허니의 옆에 앉았다. 주변에는 꽃이 잔뜩 피어져 있어서 꽃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뭐하고 있었어?"
톰의 질문에 허니가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화관을 톰에게 당당하게 보여주었다.
"잘 만들었지? 톰 것도 하나 만들어줄게."
"화관도 만들 줄 알아?"
"예전에 엄마아빠 따라서 머글 고아원 갔을 때 거기 애들이 알려줬어."
허니는 비 부부를 따라 머글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자주 가는 편이었다. 어제도 그랬고, 애초에 톰을 만난 것도 봉사활동으로 온 고아원에서였으니 말이다. 허니와 처음 대화를 하기 이전부터 허니가 고아원 아이들과 노는 모습은 종종 봐왔다. 그때는 곱게 자란 아가씨의 위선적인 놀이로 생각하며 허니가 머글 아이들과 노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허니가 머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다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불쾌했다.
"...너는 머글 애들이랑 놀아주는 게 재밌어?"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거지."
"그치만 너는 그 애들이랑 다르잖아."
"뭐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허니의 질문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허니와 머글 아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마법 따위 전혀 부리지 못하는 무능한 아이들이고, 마법 따위 이해하지도 못하는 멍청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허니는 다르다. 허니는 자신과 같은 마법사고, 머글 아이들과는 달리 유능하고 똑똑한 특별한 아이이다. 그런 허니는 절대 머글 아이들과 같을 수 없다. 같아선 안 된다.
"...너는 마녀잖아. 걔들은 머글이고."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일반인들을 머글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려준 이후로, 톰은 머글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톰이 지금껏 봐온 머글들은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자신과 같은 특별한 능력도 없는 주제에 특별한 능력을 지닌 자신을 되려 이상한 아이 취급하며 배척한 사람들이었으니까.
"그게 뭐 어때서? 마법을 쓸 수 있건 못 쓰건 똑같은 사람인데."
그러나 허니의 대답은 톰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비 가문 저택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 적 없는 톰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톰은 저도 모르게 허니의 말에 반박했다.
"달라. 우리는 걔들과는 달리 특별하다고. 우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걔들은 능력도 없는 주제에 멍청하기까지 하잖아. 머글들은 마법사들과 달리 무능하고 멍청해. 그러니까 머글들이랑 어울리는 건 시간 낭비야."
톰이 평소와는 달리 흥분해서 내뱉는 반박이 끝날 때까지 허니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아까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사라지고 진지한 표정이 된 허니였지만, 그 표정은 톰에게 실망하거나 화가 난 것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톰이 말을 끝내고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던 허니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런 말 하면 안 돼."
"뭐?"
"물론 너를 이상한 아이 취급한 건 잘못한 게 맞아. 하지만 그건 그들이 마법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야.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무능하고 멍청한 것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남을 구분지으며 급을 나누다 보면, 머글들과 어울릴 기회는 영영 없게 될 거야."
"왜 머글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안 돼?"
"머글도 우리랑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이잖아. 사람은 서로 인연을 이루면서 살아가.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런데 머글이라고 무조건 배척하다 보면, 머글과 이룰 수 있는 소중한 인연을 놓칠 수도 있잖아? 인연을 놓친다는 건 쓸쓸한 일이니까, 머글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다가 소중한 인연을 놓쳐버리면, 정말 슬프겠지?"
허니는 그렇게 말하며 먼 허공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표정이었지만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톰은 그런 허니의 옆얼굴을 지켜보았다. 비 부부가 머글 사회와 교류하며 허니를 머글 사회에 데려가는 것도 이러한 인연을 만들어주기 위함일까? 그러나 지금의 톰에게는 인연이라면 비 가족, 그리고 호그와트에서 만날 마법사들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허니의 희미한 미소를 띤 옆얼굴을 보고 있자니 반박을 마음조차 들 지 않았다. 소중한 인연을 놓치는 건 슬픈 일이라는 말에는 톰도 동의하니까. 만약 톰이 비 가족과의 인연을 잃는다면 톰은 분명 슬플 것이다. 얼마나 슬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허니의 말대로 톰에게 있어서 머글과의 인연도 소중한 인연이 될 수 있을까? 톰은 그렇게 믿지 않았지만, 허니의 말에는 분명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고 두 사람의 머리칼이 흔들렸다. 어느새 허니는 화관을 완성하고는 톰의 머리에 씌어주었다. 아까의 쓸쓸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에서 다시 평소의 밝은 미소로 돌아온 허니였다. 톰은 화관을 쓰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지만, 허니가 씌어준 화관을 잠시 동안 쓰고 있었다.
5.
톰이 비 가문에 오게 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게 흘렀다. 가을이었던 계절은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12월을 맞이하자 머글이고 마법사고 할 것 없이 모두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초를 기대하며 보내고 있었다.
사실 톰은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초를 기대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나 그는 생일이 12월 31일에 있었음에도 말이다. 고아원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의 생일을 하나하나 챙겨줄 수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역시 가끔 돈이 넘쳐나는 후원자들이 아이들에게 똑같은 선물을 돌린 게 전부였지, 톰을 위한 선물은 받아본 적 없었다. 그렇기에 톰은 자신의 생일이 끼여있는 메리 크리스마스 앤 해피 뉴이어 시즌을 즐겨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비 가문 저택은 그런 고아원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그들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거 같은 화목한 가정이어서, 12월 초부터 저택을 꾸밀 크리스마스 장식을 고민하고는 했다. 물론 집이 넓으니 필요한 장식이 많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톰,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뭘 갖고 싶니?"
"아직 잘 모르겠어요."
미스터 비의 질문에 톰이 대답했다. 사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제대로 받아본 경험이 없기도 하고, 굳이 선물을 받자면 마법 아이템을 갖고 싶었지만 톰은 마법 아이템을 아직 많이 알지 못했다. 사실 가장 탐나는 것은 미스터 비와 미세스 비가 마법을 쓸 때 사용하는 마법 지팡이였다. 그들이 지팡이로 마법을 쓰는 걸 보면 톰은 자신도 얼른 자신만의 지팡이를 갖고 마법을 쓰고 싶었지만, 지팡이는 호그와트를 입학하는 11살 때 가질 수 있다고 하니 아직 9살인 톰으로서는 가질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아직 크리스마스까지는 많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렴. 위험한 물건만 아니면 뭐든 사줄테니 말이다."
미스터 비는 그런 톰에게 인자하게 말했다. 톰은 굳이 따지자면 평범한 선물보다는 마법 아이템을 갖고 싶었지만, 어차피 이들은 마법사이니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법 아이템을 선물로 고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말해둬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한 톰은 굳이 따지자면 마법 아이템을 갖고 싶다고, 마법 아이템이라면 뭐든 좋다고 얘기했다. 예전의 톰이었으면 자신이 갖고 싶은 선물을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웠을테지만, 톰은 그동안 비 가족에 대한 경계가 많이 풀린 상태였다. 그걸 눈치챈 미스터 비는 그런 톰을 기특해하며 톰이 좋아할 만한 마법 아이템을 잘 골라보겠다고 말했다.
12월에 들어서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첫눈이 내린 그날 허니는 톰에게 찾아와서 같이 눈사람을 만들며 놀자고 졸라댔다. 톰은 같이 놀자는 허니의 제안을 거의 항상 받아들이는 편이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눈사람을 만들다가 나중에 가서는 서로 눈을 던지며 격하게 놀았다. 사실 톰은 고아원에서 친구가 없었기에 눈이 오는 날에 이렇게 또래와 노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른스럽고 아이들의 놀이에는 큰 흥미가 없는 톰이었지만, 난생 처음으로 해보는 눈싸움은 나쁘지 않았다. 상대가 허니라서 더더욱.
비 부부는 첫눈을 만끽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창 너머로 흐뭇하게 바라보며 집요정과 함께 저택을 크리스마스 풍으로 꾸미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수록 비 가문 저택이 점점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화려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따끔씩 눈이 오면 허니와 놀면서 어느새 12월도 하루하루 지나가고, 어느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은 톰이 처음 비 가문 저택에 온 날 이상으로 화려한 만찬이 차려져 있었다. 비 가족 모두가 그 만찬을 즐겼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니까 일찍 자라는 비 부부의 말에 톰과 허니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했다. 둘의 방에는 비 부부가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놓여져 있었다. 올해 비 부부가 준비한 선물은 최신형 빗자루였다. 톰과 허니가 함께 놀던 모습을 보고는 둘이 함께 빗자루를 타고 놀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준비한 선물이었다. 톰이 갖고 싶다는 마법 아이템 중에서 고민하다가 보편적이면서도 유용한 아이템인 빗자루를 고른 것이었다. 마침 허니도 이제 슬슬 개인 빗자루를 가져도 좋을 나이가 되었으니 둘에게 선물해서 함께 비행하고 놀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비 부부가 고른 것이었다.
마법사들이 탈것으로 빗자루를 쓴다는 얘기는 톰도 허니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사실 평생을 머글 사회에서 살아온 톰에게 있어서 빗자루의 이미지는 깨끗하지 못한 청소도구라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게 그닥 멋있는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하늘을 난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마법사 답다고 생각해서 비 부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나쁘지 않았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노크 소리의 주인은 허니였다. 선물이 나쁘지 않은 정도인 톰과 달리 허니는 선물이 아주 좋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톰은 마법사들의 빗자루에 대해 잘 모르지만 허니는 아니었다. 허니는 자신의 첫 빗자루이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아주 좋은 성능의 최신 빗자루를 선물해줬다는 게 기뻐 보였다. 허니는 톰도 빗자루를 선물로 받은 걸 확인하고는, 같이 빗자루를 타고 놀면 좋겠다고 기뻐했다. 톰도 허니와 함께 하늘을 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1층으로 내려오자 비 부부가 있었다. 비 부부는 아이들에게 선물은 마음에 드냐고 물었고, 두 아이 모두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비 부부는 만족스러워 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아침 식사 자리에서 미세스 비가 말했다.
"톰은 6일 후에 생일이지? 그때는 뭘 받고 싶니?"
그 말에 톰은 조금 놀랐다. 생일이 크리스마스와 가까운지라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일 선물까지 겸사겸사 쳐도 섭섭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일 선물은 또 따로 챙겨주겠다는 말이 조금 놀라웠다. 그러나 톰은 이번에도 무슨 선물을 받아야할 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이유였다.
"잘 모르겠어요. 크리스마스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생일 선물도 골라주셔도 좋을 거 같아요."
"그래. 엄마랑 아빠가 열심히 고민해서 골라볼게."
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톰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2층에 있는 톰의 방에서는 겨우살이 나무에 장식된 크리스마스 장식이 보였다. 그때 겨우살이 아래를 걷고 있는 허니가 보였다. 시선을 느낀 허니가 톰에게 손을 흔들었고, 톰은 외투와 목도리를 차려입고 허니에게로 갔다.
"산책 중이야?"
"응. 정확히 말하자면 정원 구경하고 있었어. 엄마아빠가 열심히 꾸미신 덕분에 정원도 예뻐졌잖아. 내 생각엔 톰이 우리집에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라 특별히 신경 쓰신 거 같아."
허니가 겨우살이 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크리스마스 겨우살이에 관한 전설은 마법 사회에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아직 어린 톰과 허니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금새 발걸음을 옮겼고, 잘 꾸며진 정원을 함께 구경하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연휴도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금새 12월 31일이 되었다.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날이자 톰의 10살 생일이었다. 허니와 같은 나이가 된 톰은 아침에 눈을 뜬 후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으로 내려오자 비 가족이 생일 축하한다며 톰에게 선물 상자를 건넸다. 크리스마스 때보다는 작은 상자를 풀자 검은색 일기장과 깃펜이 나왔다. 톰이 일기장에 손을 대자 겉면에 TOM MARVOLO RIDDLE이라는 금빛 글자가 새겨졌다. 손을 대자 이름이 겉면에 새겨지는 것을 보아 평범한 다이어리는 아닌듯 싶었지만, 어떤 마법이 걸려 있는 아이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선물 감사합니다. 이건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 건가요?"
"일기장이랑 깃펜이 한 세트란다. 우선 깃펜은 잉크를 별도로 묻히지 않아도 쓸 수 있고 잉크가 절대 닳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펜이야. 여기까지만 들으면 평범해 보이지만, 이 일기장이랑 같이 쓰면 얘기가 다르단다. 톰의 이름이 새겨졌지? 이건 일기장이 톰을 주인으로 인식했다는 뜻이야. 이 펜으로 여기다 일기를 쓰면 톰 너 말고는 아무도 일기를 읽을 수 없단다. 다른 사람이 펼쳐보면 그냥 빈 일기장으로 보여."
그 말에 톰은 생일 선물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남에게 속내를 잘 보이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남이 절대로 볼 수 없는 일기장이라는 것은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다. 톰이 비 부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는 찰나, 미세스 비가 톰을 꼬옥 안아주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톰은 당황했지만 따뜻한 품을 밀어낼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연이어 미스터 비가 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비 부부는 동시에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우리 아들."
우리 아들. 비 부부가 톰을 몇 번이나 그렇게 불렀지만 아직 적응되지 않은 호칭이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으로 축하 받는 생일 속에서, 비 부부의 포옹은 너무나도 따뜻했다. 생일을 축하하며 그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평소보다도 무게가 실려있었다. 톰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번 크리스마스 때까지만 해도 비 부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그들을 미스터와 부인으로 부른 톰이었지만, 이제는 다르게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미세스 비의 품에서 나온 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톰이 드디어 자신들을 어머니 아버지로 불러줬다는 사실에 비 부부는 눈에 띄게 감격했다.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비 부부는 이번엔 부부가 동시에 톰을 끌어안았다. 허니도 자신의 세 가족이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을 끌어안았다.
1936년 12월 31일. 톰 리들이 10번째 생일을 맞은 날이자 진정으로 새로운 가족을 받아들인 날이었다.
이대로 하나씩 쓰면 리들너붕붕 색창 도배할 거 같아서 여러개씩 모아서 쓰기로 함. 기존 4나더에 5나더 더해서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