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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23:46
전편 : https://hygall.com/600980479
아뇨. 전 아마 거기서 못 살 거에요. 엄마 무덤 옆에 묻힐거라서요.
아나킨의 안내를 받아 자바의 성으로 향하는 동안, 오비완은 씁쓸한 마음으로 짧은 대화를 되새김질 했다.
기껏해야 스물을 갓 넘겼을 나이임이 분명한 저 어린 이는, 너무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코러산트에 있는 제다이 사원에서도 특출나지 않은 이상 아직 파다완일 나이. 그런 짧은 생의 목표가 오로지 복수로 귀결되는 삶이라니. 아우터림 주변 행성 노예들의 삶이야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종이는 누군가의 인생을 담기엔 너무나도 얇았다. 그들은 수 십 개의 종이보고서, 몇 개의 홀로그램 영상으로 정의된 것 보다 훨씬 비참하고, 안타깝고, 또 한편으론.... 선명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노예상들에겐, 자바 더 헛에겐, 나아가 제다이와 의원들에겐- 그저 숫자로 셈해지겠지. 오비완은 어쩐지 조금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발이 무거운 건 더위에 지쳐서일까.
오비완은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말했잖아요. 자바 더 헛을 죽이기 전엔-
아뇨. 당신이 복수를 결심하기 전 말입니다.
..... 아, 엄마가 살아있을 때 말하는 거구나.
글쎄요. 어릴때야 누구나 부질없는 꿈을 꾸긴 하니까요. 별 거 없었어요.
그렇습니까. 괜한 질문을 해서 불편을 끼쳐드렸군요.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해요. 가만보면 남 무안 주는 걸 즐기시네.
무게감 있는 대화도 잠시뿐, 어쩌면 일부로 피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 말을 증명하듯 눈 앞의 어린 이는 어느새 발을 바삐 놀려 오비완과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언제 봤다고 그 사이 조금 편해진 말투 너머로, 제가 그어놓은 울타리를 절대 넘지 말라는 엄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처음 보는 타인, 그것도 저를 이용할 게 자명한 이에게 까지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절대 곁을 내주진 않는다. 아마 애정을 갈구하는 건 천성일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고작 10여 분 동안 말을 나눈 상대가 내민 값싼 동정에 제 속을 잠깐이나마 내비칠 리 없으니까. 그리고 곁을 주지 않는 건.... 학습된 것이겠지.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수없이 배신당하고, 끝내 애정을 착취당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저런 천성에 곁이라도 틀어막지 않으면 이미 그 마음이 갈가리 찢겼으리라. 오비완은 아나킨이 겪어왔을 일들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흔하다면 흔한 사연이니까. 오비완도 은하계를 돌아다니며 이런 복수극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때 오비완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고작 누군가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저 안타까움에 혀를 몇 번 찼을 뿐이었다.
그런데 왜.
왜 유독 이자만.
그래도... 정말 아무 꿈도 없었던 건 아니고요. 진짜 별 거 아니긴 한데.... 파일럿이 되어서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을 가보고 싶었어요.
음, 역시 좀 바보같죠?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어쩌면 그냥, 오비완 케노비의 변덕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늘 이성에 기대 감정을 다스리며 살아왔던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에게 이런 상황은 상당히 껄끄럽고, 또 불쾌한 경험이었다. 저 남자, 아나킨이 다시 스스로를 바보취급 하는 꼴이 밉다. 제법 멋진 아나킨의 꿈에 잠시 감탄했던 자신조차 '대단하지 않은 것' 이 된 것만 같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정작 눈 앞의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마치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숲 속의 호수에 누군가 납덩이를 던진 것 같았다. 울렁이는 호수마냥 요동치는 감정탓에 마음 속의 자신이 이지러진다. 어쩐지, 참 볼품없는 꼴이다. 오비완은 울렁이는 마음에 비친 제다이가 미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비완의 허리춤엔 라이트 세이버가 달려 있고, 명망 높은 제다이 마스터는 클론 전쟁을 일으키려는 배후의 뒤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호수가 일렁인다면 메우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오비완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닙니다. 낭만적인 말이네요.
굳이 포장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다이가 낭만을 운운하다니, 듣기에도 현실성이 없긴 한가보네요.
포장이 아닙니다. 제다이라고 드로이드는 아니니까요. 저희도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가면 감탄하고, 신기해 한답니다.
하긴, 그래야 숨통이라도 좀 틔우겠네요. 아깐 죄송했어요.
제가 먼저 실례했습니다. 무례한 언급이었어요.
... 제다이가 정의를 위해 평정심을 추구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힘을 가진 집단이 범인들처럼 행동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단지 저는 그러지 못할 뿐이에요.
.... 당신의 방식을 존중하겠습니다.
사박사박 발을 스치는 모래 사이로 더운 바람이 분다. 그 뒤로 오비완과 아나킨은 더 이상 아나킨의 복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서로가 얼마나 다르게 살아왔는 지 뼈저리게 느낀 두 공범의 암묵적인 합의였다. 아나킨은 복수가 제다이에게 이해받을 수 없을을 납득했고 오비완은 자신에게 아나킨의 복수를 막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 대신 둘은 시시콜코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타투인에서 자라나는 제법 예쁜 꽃에 대한 얘기에서 부터, 행성들 간의 문화나 신형 포드의 주행 방법 등둥... 말 그대로 심심풀이용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날카로운 분위기가 언제였냐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오비완은 꽤 놀란 상태였다. 오비완이야 제다이 카운슬의 멤버가 될만큼 유능하고 박학다식한 사람이었지만, 아나킨의 경우는 분명 평생을 노예로 살았을텐데도 오비완이 언급하는 어려운 주제들에도 곧잘 대답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드로이드에 관한 것과 항해법에 관해선 언뜻 자신을 앞서는 것 같기도 했다.
오비완은 어느새 자신이 조금 들뜬 상태로 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곤 큼큼. 하는 헛기침과 함께 말을 줄였다.
... 제가 말이 좀 많았군요.
노예치곤 주워들은 게 제법 돼죠?
주워들었다기엔 해박하시더군요.
그래봤자 고작 자바 더 헛의 침대에서 요깃거리로나 쓰일 잡지식인데요 뭐. 제가 이걸 가지고 자바 더 헛의 목이라도 죌 수 있답니까.
또다. 또 자신을 깎아내리고 베어내 '자바의 후궁' 이라는 틀에 끼워맞춘다. 왜 칭찬을 냉소로 받아치는 걸까. 자바의 후궁이랑 곧 성노와 다름이 없다는 건 알지만 정말 저런식으로 밖에 말을 못하나. 오비완의 마음 속에서 갈피 잃은 원망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오비완은 자바의 후궁을 칭찬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눈 앞에 있는 '아나킨' 이라는 사람을 칭찬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폄하해 장식품으로 치부해버린다. 아나킨의 마음 속에 친 울타리는 자기 자신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둘 모양이다. 그럼 그 울타리 속에 핀 잔디는 머지않아 말라죽을 텐데도. 아니면 그걸 바라고 있는걸까. 무뎌지고, 무뎌저서, 마침내 자신조차 복수를 위한 도구가 되길 바라는 건가. 오비완은 어쩐지 속에서 화가 치미는 기분에 미간을 한껏 구겼다. 아나킨의 재능과 살아갈 날이 아까워서라고 애써 변명해봐도, 오비완도 이 감정이 단순한 연민과는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당신이 목표를 이루고도 살아있으면-
마스터 케노비, 제가 그 일 다음을 말한 적이 있던가요?
....
미안하지만 제가 너무 지쳐서요. 진짜, 정말로, 좀 쉬고 싶어요.
오비완의 고개가 힘 없이 떨어진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미래를 안다. 그는 복수에 성공할 것이고 결국 이 행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을 것이다. 아마 아나킨도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나킨이 바라는 일이자 거래의 핵심이었다. 더 이상 꿈꾸던 어린 소년은 없다. 으레 다른 복수자들이 그러하듯, 구체적이고 잔인한 목표만이 있을 뿐. 그들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쉽다. 그래서 오비완은 이런 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껄끄러웠다. 시스에 가까운 눈. 제다이들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눈이었다. 아마 복수의 그때엔 아나킨의 저 푸른 눈도 징그러운 노란빛으로 물들것이다. 아나킨은 포스 센서티브니까. 그렇다면 오비완은 작은 카메라로 그의 눈을 촬영할 것이고, 시스가 이 전쟁을 연장시키고 제다이와 공화국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대서특필 될 것이고, 그러면 클론들의 머리에 칩을 심은 자의 정체도 자연히 수면위로 떠오르게 될테고, 그렇게 된다면-
마스터 케노비?
아나킨은 죽겠지.
자바 더 헛의 어린 후궁이자 파일럿이 꿈이었던 사람은 시스의 비밀 간자가 되어 죽을것이다. 오비완 케노비가 그를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의 꿈을 듣고, 그의 사연을 알고, 그의 이름을 알고, 그와 대화했던 오비완 케노비가- 그를 공화국의 주적으로 만들어 분리주의자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배후에 있는 자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것이다. '아나킨'이라는 한 사람의 목숨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마저도 더럽혀지고 짓밟힌채로 완전히 죽어버리고 나면, 마침내 모두가 그리던 평화가 오는건가? 오비완은 갑자기 욕지기가 올라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오비완은 클론들이 머리에 칩을 심고 모든 여론을 조작하는 자와 자신이 다를 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아나킨에게는 둘 다 똑같이 자신의 죽음조차 이용하려는 악인이 아닌가. 어쩌면 그 모습을 보고 있을 타투인의 노예들에게도, 나아가 전쟁에서 장기말로 쓰이고 있는 클론들에게도 나는, 우리는, 제다이는 그저-
걱정스레 다가오는 아나킨의 발목에서 절그렁거리는 사슬이 오비완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았다.
아나킨의 눈을 보고싶지 않다.
아나킨의 푸른 눈이 노랗게 물드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아나킨의 눈을 보는 것이.... 두렵다.
어느새 드러난 자바의 성 너머로 두 개의 태양이 점멸하고 있다. 타는 듯한 열기가 사그러들고, 저물어가는 빛줄기가 아나킨의 얼굴을 비춘다.
마스터 케노비, 괜찮으세요?
아, 정말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른눈이구나.
오비완은 결국 눈을 돌려버렸다.
오비완이 자기가 지금 가져선 안될 감정을 가졌다는 걸 처음 자각한 순간 ㅇㅇ 제다이 마스터로서든, 임무를 위해서든 끊어내야 될 감정이었는데 오비완의 말처럼 제다이들도 멋진 경치에 감탄하는 사람일 뿐이라서 마음 가는 건 뭐 어떻게 못할 듯.....
별전쟁 유안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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