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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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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고든이가 아기고양이 같이 귀여우니깐...


너붕은 고든이가 수인인 줄 모르고 비 오는 날 울고있는 게 너무 불쌍해서 주워 왔겠지.. 근데 문제는 너무 어릴 때 부모랑 떨어져서 고든이도 스스로가 수인인 줄 몰랐음. 주변 고양이들은 말이 잘 안 통하고 오며 가며 인간 말은 주워 들어서 대강 알아들었는데 이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도 몰랐을 거야. 그래도 주변에 밥 챙겨주는 사람들도 많고, 말도 안 통하는 별종이지만 아기고양이를 배려해주긴 했던 주변 길냥이들 덕분에 그럭저럭 맛없는 사료 먹어가면서 살았음.

하지만 며칠째 하늘이 무너질듯 비가 내리던 날에 더 이상 이러고 있다가는 추워서 죽겠다 싶었던 고든은 결단을 내려야 했어. 곰곰이 생각하다가 왜인지는 몰라도 마주칠 때마다 웃으며 인사해주던 너붕이 떠올라 너붕의 집 앞으로 찾아갔지. 그러곤 하염없이 기다렸어. 문을 조금 긁적거리면서, 왜앵, 하고 작게 울면서. 나와 봐. 나 추워. 배고파.

다행히 연이은 비에 투덜거리며 집을 나서던 너붕이 늦지 않게 발견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집 안에 들여놨을 거야. 고든은 낯선 집안에 경계하면서도 바깥보다는 훨씬 따뜻하고 뽀송하고 좋은 냄새도 나는 실내에 기분이 좋아졌음. 수건으로 물기를 조심스레 털어주는 너붕 손길을 느끼며 갸르릉거리다가, 아기고양이가 뭘 먹는지 몰랐던 너붕이 우왕좌왕하다가 챙겨준 닭찌와 깨끗한 물도 배불리 먹었음.

너붕이 “미안, 이제 누나는 나가야 돼서! 쉬고 있어!!” 하고 부리나케 나가자 고든은 집을 한 번 돌아 보고 가장 폭신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어. 그러곤 젖은 털을 열심히 그루밍하다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한참을 잤음.

너붕은 덕분에 직장에 지각하고 하루종일 일에 집중 못한 채 집에 들여놓은 낯선 고양이를 생각했지만ㅋㅋㅋ 걱정반 설렘반으로 돌아온 집은 평소처럼 조용하고 깔끔했음. “뭐지, 나갔나?” 하고 침실로 들어가니 침대 한 구석에 몸을 말고 자고 있던 까만솜뭉치가 귀를 움찔거리며 일어나 기지개를 켰어. 심장에 폭격을 맞은 너붕이 소리없이 녹아내리자 솜뭉치는 너붕 발 근처로 걸어와 꼬리로 너붕의 발목을 감으며 살랑거렸지. 그 날 너붕은 이 작은 고양이를 평생 지켜줄 거라고 다짐했음.

그 작은 아기고양이는 너붕 보살핌을 받고 쑥쑥 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고양이는 어디 갔냐 싶게 길쭉하고 커다래져서는 털에 윤기가 흐르는 미묘로 성장했음. 바깥 생활을 하며 잘 못 먹어서 수인형이 아기 상태에 머물렀던 거지만 너붕이나 고든이나 그걸 알리가.. 너붕은 그냥 고양이는 빨리 크네.. 하고 말았고 고든은 바깥에서 보던 길냥이들보다 자기가 커진 것 같아서 매우 만족했지.


그러던 어느날, 여느 때처럼 너붕의 침대 한 구석에서 몸을 말고 자던 고든은 누가 기분 나쁘게 다리를 쭉쭉 잡아 당기는 것 같은 느낌에 짜증스럽게 눈을 떴어. 온몸이 뻐근하고 찌뿌둥한게 기분 나빠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버릇처럼 그루밍을 하려고 앞발을 핥았는데.. 물컹한 혀가 매끈한 맨살에 닿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어. 깜짝 놀란 고든은 몸을 파드득 떨면서 침대에서 일어났음. 그런데.. 침대가 작아졌어. 거기다가 너붕의 팔이 아닌 길쭉하고 두툼한 팔이 시야에 들어와서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


“으악!”


침대가 요동치는 느낌과 웬 낮은 비명소리가 너붕의 잠을 깨웠고, 너붕이 눈을 번쩍 뜨자 겁 먹은 표정의 남자가 자기 팔을 내려다 보면서 ‘으악..!’ 하고 소리 지르고 있었어. 꿈인가..? 무슨 이런 개꿈이...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 현실인 걸 깨달은 너붕도 같이 비명을 질렀어.

그 후로 몇분간 둘은 다른 이유로 함께 소리를 질렀음.


“당신 누구야!”
“으아..”
“누, 누구냐니까!!”
“몸이 이상해.”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목소리도 이상해.”
“오, 옷은 왜 안, 안 입고..”
“앞발이 딱딱해.”


너붕이 하는 말은 다 씹고 여전히 자기 손만 내려다보며 갸우뚱거리는 나체의 남자를 보다가 어쩐지 동거하는 고양이가 떠오른 너붕은 그제서야 침대 주변을 둘러 보면서 고든을 찾았어.


“고든!!”
“응?”
“내 고양이.”
“엉..?”
“고든!!!!”
“응!”
“..뭐야 내 고양이 어쨌어.”


고양이를 불렀는데 어디에서 튀어나온지 모를 잘생긴 남자가 자꾸 대답을 하는 게 무서웠던 너붕은 침대에서 튀어나와 방 구석구석을 뒤지면서 고든을 찾았어. 상식적으로는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상황이지만, 침실에 나타난 이상한 남자한테 겁먹고 도망갔을 고양이가 너무 걱정됐던 너붕은 상식대로 생각할 수가 없었음.


“고든? 어딨어?”
“나 여깄는데.”
“고든.. 고든...ㅠㅠ”
“누나.”
“어딨어어ㅠㅠㅠㅠ 나와 봐ㅠㅠㅠㅠㅠ”
“나 몸이 커졌나봐.”
“무슨 소리예요ㅠㅠ 제 고양이 어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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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붕이 자기한테 그렇게 소리지르는 건 처음 본 고든은 깜짝 놀랐다가 시무룩하게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방구석에 놓인 의자에 올라가 앉았어. 허니한테 삐진 게 있을 때 고든이 등을 돌리고 앉아서 몇 시간이고 허니를 무시할 때 주로 쓰는 자리였지. 평소보다 늦게 들어왔든지, 자다가 실수로 세게 쳤다든지, 그럴 때마다 고든은 구석자리에서 말없이 시위를 하곤 했어. 침실에는 캣타워가 없어서 대신 높은 스툴을 놔둔 거였는데.. 덕분에 성인 남성의 몸집이 된 고든도 살짝 휘청거렸을 뿐, 무리 없이 앉을 수 있었어. 물론 허니를 등지고 앉았지.


“뭐야, 뭐야..?! 저기요! 왜 거기에..”


고든은 등 뒤로 힐끗힐끗 허니를 돌아보면서 억울한 눈빛을 보냈어. 나 삐졌는데 안 달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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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왜 화내.. 나 커진 거 싫어?”


그 말을 듣고서야 허니는 벼락을 맞은 듯 상황이 이해됐어. 수인인가...?


“고든..? 고든이야??”


고든은 대답하지 않고 입술을 삐죽거리곤 고개만 작게 끄덕였어. 그러곤 다시 허니를 등지고 뒤돌아 앉았지. 이젠 달래주겠지, 하고 앉아있는데 허니는 여전히 다가오지 않았어. 그래도 오기가 생긴 고든은 가만히 앉아 기다렸지. 설마 누나가 내가 싫어졌겠어.


허니는 완전히 패닉 상태였음. 저.. 저 사람이 나의 아기고양이라고?? 저렇게 큰.. 잘생긴 남자가? 근육이 예쁘게 잡혀있는 널찍한 등짝을 멍하니 바라보던 허니는 그제서야 지나치게 빨랐던 성장속도나, 지나치게 말을 잘 알아 듣는 지능이 이해가 됐어. 수인이었구나.. 요즘 세상에도 떠돌이 수인이 있구나...


“저.. 저기...”


하지만 저 사람이 자기가 사랑해 마지않는 고양이라는 걸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자기 침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삐져있는 게 분명한 초면의 남자에게 말을 거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음.


“역시 싫은 거지..”
“..뭐?”
“내 몸이 달라져서 싫은 거잖아..”
“그,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냥 너무 갑작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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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몸이 좋았던 거지 누나는!”
“..어?”


거기서 그런 대사를 쳐 버리면 상황이 많이 이상하게 들리는데..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고든의 충혈된 눈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본 허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음.


“..일단 옷 좀 입자..”



사이즈 미스로 옷장 구석에 넣어뒀던 옷들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추리닝 반바지와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대강 입혀두고 침대에 나란히 앉을 때까지도 너붕은 사실 이 남자는 정말 미친 불청객이고 내 고양이는 어딘가에 숨어서 벌벌 떨고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음. 하지만 진심으로 서러워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왜 자길 싫어하냐는 미남을 달래는 일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싫지 않았지.


“아니야, 내가 왜 널 싫어해! 누나가 미안해. 그냥 놀라서 그런 거야.”
“안 내쫓을 거야?”
“안 내쫓아.”
“밖에 비 오는데?”
“안 내쫓는다니까.”
“나 비 맞는 거 싫어해..”
“알아. 집에 있을 거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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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여전히 고양이일 때처럼 자연스럽게 만지며 예뻐해줄 수는 없었지만, 너붕은 자기보다 커다란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눈을 맞추고 온 힘을 다해 안심시키려 애썼어. 조금 진정이 됐는지 작게 훌쩍거리던 고든은 슬쩍 눈치를 보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어. 약간 지친 너붕은 어딜 가는 거지.. 하고 눈으로만 고든을 쫓았음.

잠시 후 고든은 밥그릇과 함께 나타났어. 그러니까.. 거실 바닥에 두었던 귀여운 노란색 밥그릇 물그릇 세트를 양 손에 들고 돌아왔지.


“누나 나 배고파.”
“...아.”


고든이 그릇을 내밀며 말하자 고양이 사료를 수상할 정도로 안 먹어서 닭찌나 익힌 고기만 해먹여야 했던 지난 날들이 너붕의 머리에 스쳐지나갔어. 수인이니까.. 그러니까 사료를 싫어했구나... 늦잠 자서 밥을 늦게 주면 밥그릇을 질질 끌고 와서 시위 하듯 왱와앙왜옭 울어대던 건 역시 배고프다고 말하는 거였구나...


“이제 거기에다가 안 먹어도 돼.”
“그럼?”
“...커졌으니까 나랑 똑같은 데다가 먹자.”
“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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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은 언제 울었냐는 듯이 베시시 웃으며 그릇들을 제 자리에 두고 왔어. 식기를 제대로 사용하기엔 갈 길이 멀어 보였지만 어쨌든 둘은 늦은 아침을 무사히 먹을 수 있었지.

고든은 밥을 맛있게 먹고 그루밍을 하려다가 부드러운 털과 강력한 혀가 없어진 것에 또 기분이 상했어. 입을 삐쭉거리는 고든에게 양치하는 법과 물로 씻는 법을 알려준 너붕은 기가 빨려 소파에 쓰러지듯 기대 앉았지. 고든은 쫄래쫄래 따라와서 굳이 너붕 옆에 낑겨 앉았음. 그러곤 한다는 말이,


“나 누나보다 커졌어.”
“..그러네.”


아무리 2인용 소파라지만.. 좁았어. 그런데 잘생기고 건장한 성인 남성이 퍼스널 스페이스 따윈 없다는 듯 몸을 붙여오니 기분이 조금 이상해진 너붕은 눈을 피하며 대답했음.


“나 많이 컸지?”
“응... 악!!“


다른 곳을 보며 대답하던 너붕은 갑작스럽게 어깨에 박치기를 당해 소리를 질렀음. 왜? 왜..? 그러거나 말거나 고든은 다시 너붕의 팔에 머리를 콩, 하고 부딪혔어. 그러곤 기분 좋게 헤헤 웃으며 머리를 부비적거렸음. 너붕은 고양이가 새삼스럽게 커진 것 같을 때마다 ‘아이고 많이 컸네~ 아이고 예뻐~’ 하고 말하며 여기저길 마구 쓰다듬어주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 아니, 근데 이제 정말.. 정말 많이 커버려서...


“..아이 이뻐...”
“응.”
“많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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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쓰다듬는 손길에도 기분이 좋아진 고든의 등에서 진동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정말로 골골송이 들리고, 까맣고 복실복실한 귀가 뿅 튀어나오고 나서야 너붕은 정말 이 남자가 제 아기고양이란 걸 받아들였음. 물론 여전히 낯설긴 하지만, 수인이지만,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아기고양이인 건 변함 없었지.


“귀는 만지지 마.”
“응, 미안.”
“응. 더 쓰다듬어줘.”




마에다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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