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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4 16:53
그리스 영웅 테세우스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를 제거한 것임
이 사건은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인 크레타의 미노아 왕국에서 일어났음
(사진은 실제 미노아의 크노소스 궁전 유적)
미노아의 미노스 왕은 아내와 포세이돈의 소의 사생아인 반인반수의 미노타우로스를 차마 죽이지 못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궁 라비린토스에 가둬놓고 인간을 제물로 급식하며 사육하고 있었음
그러다 3차 인신 공양을 앞두고 크레타 백성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불세출의 영웅 테세우스가 나타나 미궁 안에 들어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후 무사히 탈출까지 성공함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이라면서 어떻게 빠져나왔냐고?
그것은 어떤 은인이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풀면서 들어갔다가 그대로 되짚어 나오면 된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임
테세우스는 크레타가 아닌 머나먼 아테네 출신의 외지인이었음. 그렇다면 그 은인은 누구기에 외지인인 테세우스에게 실타래의 비밀을 알려주었을까?
그 은인은 바로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 공주로, 테세우스를 사랑하게 되어 저 미궁의 비밀을 풀어 알려줬던 거임
이 일화로 아리아드네는 아직도 그리스 신화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여성으로 여겨짐. 신 중에는 아테나가, 인간 중에는 아리아드네가 꼽히는 거임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자신을 위해 부왕과 왕국을 배반하는 만큼, 둘이 함께 아테네 왕국으로 떠나자고 약속을 하였음
그리고 일이 성사된 후 정말로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를 성공적으로 탈출함
아테네로 가는 머나먼 여정 중, 테세우스의 일행은 낙소스 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됨
그리고 다음 날. 아리아드네는 눈을 떴는데, 테세우스와 배가 모두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됨
크레타의 귀한 왕녀로 살아온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를 도와 조국을 배반했건만, 졸지에 머나먼 낙소스 섬에 홀로 버려지게 된 거임
낙소스가 비록 무인도는 아니고 번성한 곳이지만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
테세우스가 저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대표적인 전승에 따르면 낙소스의 주신인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한테 반하여 테세우스의 꿈에 나타나서 아리아드네를 두고 가라 했기 때문이라고 함 (그림은 아리아드네에게 반하는 디오니소스)
하지만 그리스 신화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을 신화적 요소로 메꾸는 경향이 있다는 걸 감안할 때 내 생각에는 그냥 전승하는 사람들도 테세우스의 만행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됐던 것 같음 ㅋㅋㅋㅋㅋ 하도 이해가 안 되니까 '디오니소스가 버리고 가래서 버렸겠거니' 이렇게 생각을 한 거지
나는 테세우스가 저렇게 행동한 이유가 일세의 영웅인 자신의 업적 미노타우로스 살해가 사실은 아리아드네라는 한 여인의 조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자존심 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음. 그 사실을 아리아드네가 사방에 떠벌리지 않는다 해도 결국 자신이 기억하고 있고, 아리아드네가 곁에 있는 이상은 그걸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인 거지
그런데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간 것 자체도 엄청난 만행이지만 그보다 더한 만행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는 버리고 가면서 아리아드네의 여동생인 페드라 공주는 아테네까지 데리고 가서 혼인했다는 거임
애초에 페드라를 배에 태운 걸 아리아드네가 알았는지조차 의문인데... 아예 나중에 페드라를 데려왔다는 얘기도 있기는 함. 하지만 어떤 경우든 테세우스가 자신과 언약한 아리아드네는 버리고 페드라를 취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음
페드라는 일반적으로 무척 매혹적인 미인으로 회자됨 (후대 창작의 영향도 있지만)
여기까지만 들으면 테세우스가 흔한 힘만 세고 머리는 나쁜 영웅으로 여겨졌을 듯싶지만 사실 테세우스는 오히려 현명함의 상징으로 불렸음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조력을 받은 것도 일종의 지능적 수완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테세우스는 아테네 왕국을 오랜 세월 다스리며 성군으로 이름을 날림
지금까지도 테세우스는 용맹하고 현명한 데다 미모까지 갖춘 영웅으로 알려져 있음
결국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간 일로 딱히 명성도 잃지 않고, 죽는 날까지 직접적으로는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았음
하지만 업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지 ㅋㅋㅋ 아무 잘못도 안 해도 비극 당하는 사람 천지인 그리스 신화에서 저런 짓을 해놓고 무사히 넘어가면 섭섭하잖아?
테세우스는 페드라 공주를 아내 삼았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아내가 있었는데, 바로 아마조네스의 왕인 히폴리테였음 (위의 그림)
히폴리테는 테세우스와의 사이에서 히폴리토스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히폴리토스는 참 특이한 왕자임. 왕자인데 성애에 관심이 없다못해 아르테미스를 섬기면서 평생 순결하게 살겠다고 서약을 함
그리고 어느 날, 테세우스의 아내가 된 페드라는 저 히폴리토스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자신이 히폴리토스의 서모인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이끌려 버림
결국 페드라는 히폴리토스를 유혹하기에 이름
그러나 아르테미스를 섬기는 히폴리토스가 새엄마인 페드라의 유혹을 받아줄 리 없었음. 결국 히폴리토스는 페드라를 거부함
거절당한 페드라는 수치심을 느낌과 동시에 히폴리토스가 저 사실을 테세우스에게 고하면 자신은 끝장이라는 생각을 함.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히폴리토스를 무고하기로 결심함
페드라는 테세우스에게 히폴리토스가 자신을 겁간하려 했다고 고했고, 황당하게도 당대의 현왕이라는 테세우스는 페드라의 그 말을 믿었음
결국 테세우스는 아들인 히폴리토스에게 역정을 내며 그를 아테네 왕국에서 추방하는데...
이 부분을 보면 사실 테세우스는 히폴리토스 왕자를 상당히 아꼈던 것 같음. 페드라의 고변을 아예 안 믿었으면 몰라도 믿었는데 그냥 추방? 이 정도면 아들을 꽤 총애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음. 다만 그렇게 아낀 만큼 배신당했다고 생각했을 때 더 충격이 컸겠지. 하지만 그 큰 충격도 뒤에 일어난 일에 비하면 일도 아니었으니...
대체 무슨 일이냐고?
이 이야기를 이번주 고전 올나 <페드라>에서 본다!
토요일 밤 9시 곥 올나 많이 많이 보러 오세요
파이드라=페드라 설화의 20세기판 각색!
그리스를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리스에서 그리스 배우를 여주로 촬영한 영화!
그리스 고전 비극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영화
영화는 신화와 다르게 전개되고 금지된 사랑의 매혹에 더 집중함
하지만 결말은 신화와 유사함. 그렇기에 신화의 결말을 알고 그 강렬한 장면을 실사로 보고 싶다면 더더욱 와야 됨! 그 장면에서 바흐의 토타카와 푸가 오르간 곡이 나오는데 진짜 끝내준다
38살 새엄마와 25살 새아들(?)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기회!
영화 속 페드라 (멜리나 메르쿠리, 훗날 이 영화 감독 줄스 다신의 아내가 됨)
영화 속 히폴리토스 (앤서니 퍼킨스, 싸이코 주인공 맞음)
영화 속 테세우스 (라프 발로네)
테세우스와 히폴리토스
아니 아무리 그리스라지만 아들한테 저렇게 키스를... 저렇게 아꼈던 아들이 자기 아내와...
이 파이드라 설화는 고대부터 수많은 버전으로 전승되었으며 후대 타국에서까지 비극 문학의 소재로 쓰임
이 글에 나온 내용도 여러 버전이 섞여 있음
첨언하자면 이 영화에 아리아드네는 안 나옴
그럼 신화 속 아리아드네는 어떻게 됐을까
어차피 신화는 역사가 아니기에 행간에서 창작자의 의도를 유추하는 수밖에 없음
일반적인 전승에서는 아리아드네가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어 신이 되었다고 전해짐
이걸 은유로 보고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저게 아리아드네가 디오니소스 신전의 사제가 되었다는 뜻 같음
사제는 당대 여성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위기에 그리스 최고의 선진 지역이었던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가 사제가 된다는 것은 개연성이 있어 보임
낙소스의 디오니소스 신전
그리고 무엇보다 300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저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을 볼 때 그건 아리아드네가 누군가한테 저 얘기를 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낙소스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지고 인망을 얻으며 살았다는 뜻으로 보임
그 결과 테세우스의 만행은 무려 30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곥 올나 영업글에서까지 욕을 먹는 지경에 이르렀음
하지만 어차피 이 이야기는 (아마도) 픽션임
테세우스를 장작 삼아 곥 올나 불판이 타오르길 바라며...
자유영업 안소니퍼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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