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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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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쳐진 하인의 자리에 서서 제 아버지를 노려보는 노부는 자신의 오메가를 지키려는 알파의 눈빛과 같았어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은 제 오메가를 건드린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
“네 몸종이 한 짓을 벌주고 있는데 웬 소란이냐.”
“제 몸종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마치다를 보호하듯 서있는 아들 녀석을 보고 그는 기가 찰 노릇이었어 대체 저 오메가가 어떻게 매정하기 그지없던 아들 녀석을 구워삶았길래 저리 화를 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
“너도 눈이 있으면 보거라 네 어머니께 들어온 귀한 머리핀이 저애에게 있지 않느냐.”
“하, 아버지 이건 제가 케이타에게 준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분명 용인하실 겁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노부에 가주님은 당황했어 부인께서 저런 열성 오메가에게 왜 그런 관용을 베푼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냐. 네 어머니가 그걸 왜 용인해.”
“아버지 어머니께 듣지 못하셨습니까? 제가 케이타를 반려로 들이고 싶다 한걸요.”
그 말을 듣고 제일 놀란건 마치다였어
구원자처럼 등장한 도련님에 겨우 숨통이 트여서 그를 방패막 삼아 숨듯이 있던 마치다는 자신을 반려로 들이고 싶다는 말에 한순간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튀어나왔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고 거둬달라 해야 하는데 그런데 마치다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기겁을 했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좋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도련님의 반려라니 맹세코 바라본 적 없었지만 듣기만 해도 벅차올라 눈물이 날것 같았지
한편 가주님은 뒷골이 당겨왔어
제 아들놈이 당당하게 지어미의 선물을 몸종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뭐?
“반려? 네놈이 미친 게냐. 저딴 열성 오메가를 반려로 들이겠다니?!”
“예 그럼 미친 걸로 하지요. 애당초 제 생일 연회 때 들어온 선물입니다. 어머니 앞으로 왔다 한들 처분은 저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래도 이 녀석이!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아들의 눈빛엔 장난기라곤 없이 진지했어 그래서 더 문제였지
기어코 저 열성 오메가를 반려로 들일 작정인 걸까
한때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하기엔 노부는
스즈키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어 가문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그런 결심은 하지 말았어야 했지
가주님은 제 아들이 실망스러웠어
“그렇게 그 오메가가 좋거든 집안이랑 연을 끊고 나가 살거라! 꼴도 보기 싫다!”
“그런다고 제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아십니까?”
울컥 치미는 화에 버럭 소리를 내지른 노부를 진정시킨 건 옷깃을 조심스레 잡아오는 마치다의 손이었지
큰소리가 오가는 상황에 겁이 나 덜덜 떨고 있으면서, 다다미로 향해있는 시선도 떼지 못하는 주제에 아버지께 그럼 안된다며 고개를 젓는 마치다를 보자 노부는 겨우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지
당장이라도 사달을 낼 것 같던 도련님은 고작 몸종의 손짓에 화를 가라앉혔어 그렇다고 제 뜻을 물리진 않았지만 말이야
“하, 끝까지 반대하신다면 아버지 말씀처럼 나가 살 테니 그리 아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케이타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마치다를 챙겨 데리고 나가는 노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주님은 머리가 아파졌어
누굴 닮아 저리 고집불통일까
마치 폭풍이 몰아친 듯 어수선한 본채에서 그는 문득 제 부인이 보고 싶어졌지
—
“흐윽.. 도련님..”
“왜 그래? 많이 아파?”
등에 맞은 매가 아파 울먹이나 싶어 당장 마치다의 옷을 벗기려던 노부는 그런 게 아니라며 제 손을 잡아오는 손길에 우뚝 멈추었지
“저 때문에 도련님이 끅, 쫓겨 나시면 어떡해요? 지금이라도 가주님께 잘못했다고 하세요..”
“하아, 케이 나 봐.”
왜 우나 했더니 또 혼자서 땅굴을 파고 있는 마치다에 노부는 한숨이 절로 나왔어 어쩌겠어 내가 이런 오메가를 사랑한 탓이지
“내 옆에 있기 싫어?”
“..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너 하나는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
마치다는 단호한 도련님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서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지 늘 일에 허덕이느라 서로 말이 거의 없던 부모님의 얼굴. 그러다 결국 저를 팔아버리던 날 따위가 생각났어
만약에 도련님이 집에서 쫓겨 나시면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겁이 났지만 그렇더라도 둘만 있는 좁은 집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며 살수 있다면 마치다는 왠지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았지
“... 사실 도련님이 저를 반려로 맞고 싶다고 한 게 너무 좋아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잘했어. 본채에서 네가 싫다고 했으면 너 지금 여기에 두발로 못 서있어.”
무서운 말을 태연하게도 내뱉는 도련님에 등줄기로 소름이 오소소 돋은 마치다가 답싹 품속으로 파고들자
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어 농담하지 마셔요. 작게 툴툴거리는 마치다를 안아든 그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향했지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거든
매번 이런저런 일로 상처를 달고 다니는 마치다 덕분에 연고를 발라주는 것엔 도가 튼 그였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좋진 않았어 특히나 제가 만든 상처가 아닌 남에게 얻어맞은 상처는 볼수록 화가 났지
노예시장에서 마치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저 오메가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데려와서 제 곁에 만 두면 저절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마치다는 늘 제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이곳저곳으로 불려가 울고 있는 걸까 어릴 때부터 뭐든 제가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 있었고 제 뜻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던 노부에겐 변수 덩어리인 마치다가 이해되질 않았어 그러면서도 더 손에 꽉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았지
어떻게 하면 케이 네가 더 이상 울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노부는 제가 약을 바르는 동안 마찬가지로 말이 없는 마치다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작게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뒤늦게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놀란 그가 케이의 돌려 앉혔더니 얼굴이 온통 젖어 있지 뭐야
“케이? 왜 울어? 약 바르니까 갑자기 아파서 그래?”
“... 아, 아무것도 끅.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데 왜 울어? 바른대로 말해.”
비로소 둘만 남겨진 공간이라 그런 건지 긴장이 풀린 마치다는 본채에서의 일을 곱씹다 뒤늦게 도련님이 주신 머리핀이 원래는 마님께 온 선물이란 사실이 떠올랐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지
어찌 됐건 도련님이 주신 선물이니 기쁘면서도 그렇지만..
“... 왜 마님께 들어온 선물을 제게 주신 거예요? 저는... 저는... 도련님을 위해 직접 고른 선물을 드린 건데.. 도련님은...”
왜 저를 위해 고른 선물이 아닌 남이 마님께 드린 선물을 제게 주신 건가요?
복잡한 제 심정을 털어놓자 도련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어 고작 몸종 주제에 너무 많은 걸 바래서 그런 걸까? 귀한 선물이니 그런 걸 따지는 건 예의가 아닌 건지도 몰라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제가 한말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뒤늦게 후회가 밀려와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 했는데 도련님이 한발 빨랐지
“나도 뭔가 답례를 해주고 싶었어. 당장 뭐라도 너에게 선물해서 너는 내 것이라는 걸 티 내고 싶었는데 마침 귀한 게 들어와서 그래서 그런 거야. 기분 나빴니?”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마치다는 잠시 뜸 들이다 입을 열었어
“그래도.. 서운해요.”
서운했구나 그럼 내가 새로운 걸 줄 테니 그 꽃 머리핀은 다시 돌려달라 해도 마치다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어 그래도 도련님이 주신 첫 선물이니 의미가 있대 자신에겐 이미 소중한 물건이 되어버렸다고 하길래 노부도 결국 수긍하고 말았지
“다음엔 꼭 내가 직접 골라서 선물해 줄게. 미안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마치다를 바라보며 노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저의 철없는 행동 하나 때문에 괜히 마치다를 고생시킨 것 같아 입안이 썼지
내가 정말 미안해 케이.
조용히 속삭이며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추자 마치다는 얌전히 눈을 감고 노부의 사과를 받아주었어
그렇게 가주님과 도련님의 다툼 아닌 다툼으로 아랫것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져 나갈 때쯤 드디어 마님께서 돌아오셨어
그런 마님을 제일 오매불망 기다린 건 당연 가주님이셨는데 버선발로 뛰어가 마중을 나간 보람도 없이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제 남편을 바라보았지
“... 당신은 제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군요. 제가 그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잖아요.”
“.. 그렇지만 부인. 그 애는 열성 오메가 잖소. 게다가 노부의 몸종 노릇이나 하던 애를 어떻게 반려로 들인답니까.”
“... 아, 제 교육보다도 고작 출신성분을 따지시는 게 더 중요하단 거군요. ”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부인.
결국 가주님은 한발 물러나고 말았지
노부 역시 위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어
“이번 일은 네 아버지가 잘못하긴 했지만 노부 너도 잘한 건 없어.”
“.. 네 어머니 알고 있습니다.”
“네 사람을 지키고 싶으면 너부터 누구도 건들지 못할 만큼의 힘을 키우렴.”
네 반려는 네 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잖니? 단호한 어머니의 말씀에 노부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지 어머니 말이 맞아 케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아버지를 저지해 주시긴 하셨지만 결국 종친들 앞에서 케이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건 오로지 제 몫이었지
이번처럼 케이를 억울하게 울리지 않으려면 저는 힘을 키워야 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님께 불려간 건 마치다였는데
“예쁘구나.”
“... 네?”
“잘 어울려. 제주인을 찾아갔으니 신경 쓰지 말렴.”
머리핀 때문에 꾸지람을 들을까 싶어 잔뜩 얼어있던 마치다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마님에 한시름 덜을 수 있었지 다만 다음주부터는 다도를 가르쳐 주신다기에 다시 긴장해서 굳어버리고 말았지만 마님께 혼이 나지 않은 건 마치다가 유일했어
마님은 만능 해결사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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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쳐진 하인의 자리에 서서 제 아버지를 노려보는 노부는 자신의 오메가를 지키려는 알파의 눈빛과 같았어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은 제 오메가를 건드린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
“네 몸종이 한 짓을 벌주고 있는데 웬 소란이냐.”
“제 몸종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마치다를 보호하듯 서있는 아들 녀석을 보고 그는 기가 찰 노릇이었어 대체 저 오메가가 어떻게 매정하기 그지없던 아들 녀석을 구워삶았길래 저리 화를 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
“너도 눈이 있으면 보거라 네 어머니께 들어온 귀한 머리핀이 저애에게 있지 않느냐.”
“하, 아버지 이건 제가 케이타에게 준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도 분명 용인하실 겁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노부에 가주님은 당황했어 부인께서 저런 열성 오메가에게 왜 그런 관용을 베푼다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냐. 네 어머니가 그걸 왜 용인해.”
“아버지 어머니께 듣지 못하셨습니까? 제가 케이타를 반려로 들이고 싶다 한걸요.”
그 말을 듣고 제일 놀란건 마치다였어
구원자처럼 등장한 도련님에 겨우 숨통이 트여서 그를 방패막 삼아 숨듯이 있던 마치다는 자신을 반려로 들이고 싶다는 말에 한순간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딸꾹질이 튀어나왔지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고 거둬달라 해야 하는데 그런데 마치다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기겁을 했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좋아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도련님의 반려라니 맹세코 바라본 적 없었지만 듣기만 해도 벅차올라 눈물이 날것 같았지
한편 가주님은 뒷골이 당겨왔어
제 아들놈이 당당하게 지어미의 선물을 몸종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뭐?
“반려? 네놈이 미친 게냐. 저딴 열성 오메가를 반려로 들이겠다니?!”
“예 그럼 미친 걸로 하지요. 애당초 제 생일 연회 때 들어온 선물입니다. 어머니 앞으로 왔다 한들 처분은 저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
그래도 이 녀석이!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아들의 눈빛엔 장난기라곤 없이 진지했어 그래서 더 문제였지
기어코 저 열성 오메가를 반려로 들일 작정인 걸까
한때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치부하기엔 노부는
스즈키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였어 가문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그런 결심은 하지 말았어야 했지
가주님은 제 아들이 실망스러웠어
“그렇게 그 오메가가 좋거든 집안이랑 연을 끊고 나가 살거라! 꼴도 보기 싫다!”
“그런다고 제가 겁이라도 먹을 줄 아십니까?”
울컥 치미는 화에 버럭 소리를 내지른 노부를 진정시킨 건 옷깃을 조심스레 잡아오는 마치다의 손이었지
큰소리가 오가는 상황에 겁이 나 덜덜 떨고 있으면서, 다다미로 향해있는 시선도 떼지 못하는 주제에 아버지께 그럼 안된다며 고개를 젓는 마치다를 보자 노부는 겨우 이성을 붙잡을 수 있었지
당장이라도 사달을 낼 것 같던 도련님은 고작 몸종의 손짓에 화를 가라앉혔어 그렇다고 제 뜻을 물리진 않았지만 말이야
“하, 끝까지 반대하신다면 아버지 말씀처럼 나가 살 테니 그리 아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케이타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마치다를 챙겨 데리고 나가는 노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주님은 머리가 아파졌어
누굴 닮아 저리 고집불통일까
마치 폭풍이 몰아친 듯 어수선한 본채에서 그는 문득 제 부인이 보고 싶어졌지
—
“흐윽.. 도련님..”
“왜 그래? 많이 아파?”
등에 맞은 매가 아파 울먹이나 싶어 당장 마치다의 옷을 벗기려던 노부는 그런 게 아니라며 제 손을 잡아오는 손길에 우뚝 멈추었지
“저 때문에 도련님이 끅, 쫓겨 나시면 어떡해요? 지금이라도 가주님께 잘못했다고 하세요..”
“하아, 케이 나 봐.”
왜 우나 했더니 또 혼자서 땅굴을 파고 있는 마치다에 노부는 한숨이 절로 나왔어 어쩌겠어 내가 이런 오메가를 사랑한 탓이지
“내 옆에 있기 싫어?”
“..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너 하나는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
마치다는 단호한 도련님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서 순간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지 늘 일에 허덕이느라 서로 말이 거의 없던 부모님의 얼굴. 그러다 결국 저를 팔아버리던 날 따위가 생각났어
만약에 도련님이 집에서 쫓겨 나시면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겁이 났지만 그렇더라도 둘만 있는 좁은 집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며 살수 있다면 마치다는 왠지 그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았지
“... 사실 도련님이 저를 반려로 맞고 싶다고 한 게 너무 좋아서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잘했어. 본채에서 네가 싫다고 했으면 너 지금 여기에 두발로 못 서있어.”
무서운 말을 태연하게도 내뱉는 도련님에 등줄기로 소름이 오소소 돋은 마치다가 답싹 품속으로 파고들자
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어 농담하지 마셔요. 작게 툴툴거리는 마치다를 안아든 그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향했지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거든
매번 이런저런 일로 상처를 달고 다니는 마치다 덕분에 연고를 발라주는 것엔 도가 튼 그였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좋진 않았어 특히나 제가 만든 상처가 아닌 남에게 얻어맞은 상처는 볼수록 화가 났지
노예시장에서 마치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저 오메가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데려와서 제 곁에 만 두면 저절로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마치다는 늘 제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이곳저곳으로 불려가 울고 있는 걸까 어릴 때부터 뭐든 제가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 있었고 제 뜻대로 되지 않은 적이 없던 노부에겐 변수 덩어리인 마치다가 이해되질 않았어 그러면서도 더 손에 꽉 움켜쥐고 놓고 싶지 않았지
어떻게 하면 케이 네가 더 이상 울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노부는 제가 약을 바르는 동안 마찬가지로 말이 없는 마치다가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작게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뒤늦게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놀란 그가 케이의 돌려 앉혔더니 얼굴이 온통 젖어 있지 뭐야
“케이? 왜 울어? 약 바르니까 갑자기 아파서 그래?”
“... 아, 아무것도 끅.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데 왜 울어? 바른대로 말해.”
비로소 둘만 남겨진 공간이라 그런 건지 긴장이 풀린 마치다는 본채에서의 일을 곱씹다 뒤늦게 도련님이 주신 머리핀이 원래는 마님께 온 선물이란 사실이 떠올랐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지
어찌 됐건 도련님이 주신 선물이니 기쁘면서도 그렇지만..
“... 왜 마님께 들어온 선물을 제게 주신 거예요? 저는... 저는... 도련님을 위해 직접 고른 선물을 드린 건데.. 도련님은...”
왜 저를 위해 고른 선물이 아닌 남이 마님께 드린 선물을 제게 주신 건가요?
복잡한 제 심정을 털어놓자 도련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어 고작 몸종 주제에 너무 많은 걸 바래서 그런 걸까? 귀한 선물이니 그런 걸 따지는 건 예의가 아닌 건지도 몰라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제가 한말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뒤늦게 후회가 밀려와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 했는데 도련님이 한발 빨랐지
“나도 뭔가 답례를 해주고 싶었어. 당장 뭐라도 너에게 선물해서 너는 내 것이라는 걸 티 내고 싶었는데 마침 귀한 게 들어와서 그래서 그런 거야. 기분 나빴니?”
도리도리 고개를 저은 마치다는 잠시 뜸 들이다 입을 열었어
“그래도.. 서운해요.”
서운했구나 그럼 내가 새로운 걸 줄 테니 그 꽃 머리핀은 다시 돌려달라 해도 마치다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어 그래도 도련님이 주신 첫 선물이니 의미가 있대 자신에겐 이미 소중한 물건이 되어버렸다고 하길래 노부도 결국 수긍하고 말았지
“다음엔 꼭 내가 직접 골라서 선물해 줄게. 미안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는 마치다를 바라보며 노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 저의 철없는 행동 하나 때문에 괜히 마치다를 고생시킨 것 같아 입안이 썼지
내가 정말 미안해 케이.
조용히 속삭이며 눈꺼풀 위로 입을 맞추자 마치다는 얌전히 눈을 감고 노부의 사과를 받아주었어
그렇게 가주님과 도련님의 다툼 아닌 다툼으로 아랫것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져 나갈 때쯤 드디어 마님께서 돌아오셨어
그런 마님을 제일 오매불망 기다린 건 당연 가주님이셨는데 버선발로 뛰어가 마중을 나간 보람도 없이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제 남편을 바라보았지
“... 당신은 제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군요. 제가 그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잖아요.”
“.. 그렇지만 부인. 그 애는 열성 오메가 잖소. 게다가 노부의 몸종 노릇이나 하던 애를 어떻게 반려로 들인답니까.”
“... 아, 제 교육보다도 고작 출신성분을 따지시는 게 더 중요하단 거군요. ”
그런 뜻이 아니잖습니까 부인.
결국 가주님은 한발 물러나고 말았지
노부 역시 위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어
“이번 일은 네 아버지가 잘못하긴 했지만 노부 너도 잘한 건 없어.”
“.. 네 어머니 알고 있습니다.”
“네 사람을 지키고 싶으면 너부터 누구도 건들지 못할 만큼의 힘을 키우렴.”
네 반려는 네 힘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잖니? 단호한 어머니의 말씀에 노부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지 어머니 말이 맞아 케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고 아버지를 저지해 주시긴 하셨지만 결국 종친들 앞에서 케이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건 오로지 제 몫이었지
이번처럼 케이를 억울하게 울리지 않으려면 저는 힘을 키워야 했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님께 불려간 건 마치다였는데
“예쁘구나.”
“... 네?”
“잘 어울려. 제주인을 찾아갔으니 신경 쓰지 말렴.”
머리핀 때문에 꾸지람을 들을까 싶어 잔뜩 얼어있던 마치다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마님에 한시름 덜을 수 있었지 다만 다음주부터는 다도를 가르쳐 주신다기에 다시 긴장해서 굳어버리고 말았지만 마님께 혼이 나지 않은 건 마치다가 유일했어
마님은 만능 해결사
노부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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