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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3 15:19
“큰일이야! 큰일 났어, 도피! 염라가, 아!”
간신히 별궁을 탈출한 슈거가 향한 곳은 도피의 침실이었다. 비밀통로를 통해 북궁 침실 침대 밑으로 올라온 슈거는 서두르면서 머리를 박기도 했다. 이때 도피는 침대 옆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슈거. 호들갑스럽게.”
손끝에서 뻗어나온 실들이 묵직한 침대를 가뿐하게 치웠다. 덕분에 기어나오는 수고를 던 슈거가 도피 앞으로 구르듯 뛰어왔다.
“염라가 로우한테 갔는데! 내 생각이 짧았어! 염라를 구해줘야 돼! 잘못하면 로우가 염라를 죽일지 몰라!”
“녀석이 제 발로 로우한테 갔다고?”
“어! 로우를 도와주고 싶대서 내가 거들어줬는데 그게 더 일을 망친 것 같아. 로우가……!”
이때쯤 도피는 책을 치우고 슈거의 앞에 검지를 펼쳐 함구토록 했다. 덕분에 발까지 구르며 흥분했던 슈거도 진정될 수 있었다. 그런 슈거를 향한 도피의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자리했다. 이는 좀체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걱정할 거 없다, 슈거. 로우는 자기가 뿌린 씨를 스스로 거두는 것뿐이니까. 내버려둬라.”
“그러다 염라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겠지.”
알파의 발정기를 얕본 게 실수였다. 로우가 조로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를 몰랐던 것 또한 그렇고. 장난감으로 변한 조로를 잃어버린 잠깐 동안 로우는 스스로 이성을 놔버릴만큼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걸 알았던 거다. 때문에 별궁에서 직접 로우를 대면한 뒤에야 심각성을 깨달은 슈거는 도피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거였다. 저러다 조로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로우도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하지만 여기서 겁에 질린 건 슈거 뿐이었다. 오래전 로시가 쓰던 낡고 해진 소파에서 일어난 도피가 그곳에 슈거를 앉히며 말했다.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도피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더불어 깊은 울림을 가진 음성은 듣는 이의 불안을 잠식시키는 힘이 있었다.
“로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슈거. 내가 길들인 녀석이 쉽게 죽을 것 같으냐? 그녀석은 내게 갚지 못할 빚이 있어. 그러니 절대 멋대로 죽지도, 자기 인생을 망치지도 못할 거다.”
슈거는 그러면 로우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도피의 말을 듣기만 했다. 과거 그녀 또한 어린 나이에 길거리에서 아사해 죽을 운명이었다. 로즈워드 통치 하에 제일 먼저 사지로 내몰린 건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슈거 역시 길거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다 굶어죽을 뻔하던 걸 거둬준 건 젊은 왕이었고. 때문에 슈거에게 도피는 가장 강인한 왕이자 안전한 성벽이며 또 평생 믿고 따를 은인이었다. 그가 하는 말이 진리이니 그의 명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을만큼. 이런 이유로 슈거는 제 안의 불안을 잠식시키며 도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피가 그런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실을 뻗어 분홍색 털코트를 집어드는 도피에 슈거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이 시기에 도피가 멀리 출타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마침 서쪽 제도에 해적기를 단 배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모처럼이니 다녀오마. 그러니 슈거 너도 걱정 말고 쉬어라.”
천야차의 치세 아래 외세의 침입은 드문 일이었다. 실로 즉위 초에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 무리를 무자비하게 도륙했던 일도 유명세를 탔으니. 그 덕인지 다른 나라에 비해 침입을 적게 받았건만 로우의 온건정치가 이어지면서 그새 천야차의 공포를 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몸소 일깨워주는 수밖에. 이를 뜻하던 말에 슈거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쯤이었다. 몸을 일으킨 도피가 방을 나선 것은. 이곳은 모든 게 로시가 살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에 혼자 남은 슈거가 방을 휘 둘러보다 창가로 눈을 돌린다.
오늘은 유난히 구름이 많은 밤이었다.
조로가 장난감으로 있을 때도 로우의 공격성은 슈거에게 집중됐었다. 슈거가 조로를 사람 모습으로 돌려놓은 뒤에는 대놓고 그를 끌어당기기도 했고. 덕분에 슈거가 비밀통로로 달아나는 건 들어올 때보다 수월했다. 우악스런 힘에 끌려 마주보고 앉게 된 조로는 그래서 잠시나마 로우가 정신을 차렸다고 오해했었다. 왼쪽 눈꺼풀을 아프도록 파고들던 녀석에 의안이 날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발정기에 한번 이성을 잃은 알파는 열이 다 가라앉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대형 포유류에나 쓰는 마취총을 쏘기도 한다고. 이 또한 강한 형질을 보유할수록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는 말을 조로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이 주제로 토론하게 된 건 내란군과의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였고. 마취총을 쏴도 효과가 미비했던 적장은 결국 이쪽도 많은 희생을 치뤄야 했으니 전쟁 중에 박힌 몇몇 알파에 대한 기억은 유독 조로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욱 로우를 놓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만.
“읏……!!”
뱃속이 화끈거리는 감각에 잠시 기절했던 조로의 정신이 돌아왔다. 물 샐 틈 하나 없이 맞붙은 고간 사이로 뼈가 벌어지는 듯한 감각이 꼬리뼈를 타고 오른다. 그의 납작했던 하복부는 이미 얕은 둔덕을 이룰만큼 뭔가 잔뜩 들어와 있었다. 중앙에서 유난히 뱃가죽을 당기는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의 훈련 덕분인지 배려없이 쳐들어오던 녀석을 가까스로 받아들이기는 했다. 꾸준했던 로우의 노력이 빛을 본 모양인지 젖어있던 여성기도 빠듯하나마 찢어지지는 않은 듯했고. 끝도 없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녀석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기는 했대도 말이다. 차가운 땅 위에서 찢어발기듯 하의만 벗겨진 채 로우를 받아들였던 조로는 몇번이나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아야 했다. 그만큼 녀석은 무식하게 컸고 행위 역시 폭력이나 진배없었다. 이후 계속된 행위란 금수만도 못한 것이어서 조로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아… 또……!’
별궁의 까마득한 창문너머로 햇빛이 비춰드는 게 보였다. 밤새 이뤄진 정사에 꽉 들어차 있던 뱃속은 더부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또다시 놈의 뿌리가 공처럼 부풀기 시작한 것 아닌가. 로우는 노팅, 즉 매듭이 이뤄지기까지 무척 긴 시간을 소요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박아대는 녀석에 조로는 첫 매듭이 시작될쯤 기절했었다. 무엇보다 매듭이 시작되려면 녀석의 것이 뿌리까지 전부 박혀야 했으니 받는 입장에서는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솔직히 놈의 것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힘들 터였다.
“아… 윽ㅡ! 아파……!”
고통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또 달랐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놈에 장기가 위로 밀리는 감각이 섬짓했다. 선단에 눌린 꼬리뼈에서부터 둔통이 올라옴은 당연했고 밤새 혹사당한 밑은 빠질 것처럼 아팠다. 이는 로우의 성기가 뿌리까지 모두 들어온 것만으로 조로가 감내해야 될 부담감이었다. 이말인즉 지난 관계에서는 성기를 끝까지 넣은 것도 아님을 뜻하며 지금껏 로우가 괜히 삽입에 신중했던 게 아님을 말한다. 덕분에 과거의 후안무치같은 소리를 해댄 자신을 반성해보는 조로라지만 오늘 일에 후회는 없었다. 설령 결과를 알았대도 조로는 로우에게 오는데 망설이지 않았으리라. 아니,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서둘러서 로우가 제 몸에 상처 내는 걸 막았을 텐데. 조로에게 굳이 후회라면 이런 것이었다.
“아직 멀었ㅡ! 헉! 허억!”
공처럼 부풀던 뿌리가 언제야 멈추나 싶던 조로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참던 그가 꽉 깨문 잇새로 겨우 소리를 낼 때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로우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 속에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네가 숨어 있겠지.’
무엇보다 조로를 괴롭게 하는 건 유리구슬처럼 무심한 눈동자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짐승과도 같은 본능 뒤에 숨어야 했을까. 알파의 발정기란 원래 그토록 괴로운 것일까. 그래서 로우가 아무도 상처 주지 않으려 스스로를 우리와도 같은 곳에 가둔걸까. 아는 게 없으니 추측만 난무할 뿐인 조로는 그래서 더 괴로웠다. 이녀석은 얼마나 다정하기에 괴로움은 전부 혼자 감당하려 드는 걸까 싶어서. 아플지언정 이런 상처로 무너질만큼 나약한 자신이 아닐진데 그조차 쓰지 않으려 하고 말이다. 이 지독히 자기희생적인 녀석이 조로는 이제 안쓰럽기만 했다.
“야, 로우 너 인마… 이건 순전히 내가 원한 거니까… 나중에 정신 들어도 충격받지 마라. 알았지? …괜히 또 어디 숨어들거나 너 혼자 힘들어하지 말라고……! 나 몸 하나는 튼튼하니까… 아야… 아ㅍ……! 이건 그냥 엄살이니까… 좀 더 네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고. 알았지?”
매듭이 완성되는 동안에는 당연하지만 움직임이 멎는다.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리던 시야에 제대로 말 한마디 못했던 조로가 이틈에 애써 말해보지만 통증에 찌푸려진 얼굴은 어쩔 수 없음이었다. 바닥에 몇시간을 방치된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뻣뻣하게 굳은 몸은 경련이 일듯했지만 그게 뭐 대수랴. 저놈 성격에 정신이 들고 나면 얼마나 자책할지 뻔해서 조로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니 조로는 두번째 매듭에 기절하지 않고 말을 전하려 안간힘을 썼다. 손끝이 하얘지도록 로우의 팔을 움켜쥐면서 당장에라도 넘어갈 듯한 정신을 다잡고 말을 내뱉으니 까만 유리알같은 시선이 진득히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조로는 로우가 차라리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제정신을 차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찢어질 듯 벌어진 아래를 조이니 짐승이 미간을 움찔했다.
“아ㅡ! 잠ㅡ 너무 깊……! 으윽!!”
오메가라서 다행이다. 비록 형질인자로는 형편없을지라도 덕분에 짐승이 착실히 반응해주니. 자극받기 무섭게 한팔로 등을 감싼 로우가 조로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체중에 눌리며 압박감이 심해지는 것에도 조로는 미약하게 움찔대는 게 전부였다. 사지를 움직일 힘조차 없었으므로. 물먹은 솜마냥 진이 빠져버린 몸은 극명한 형질편차의 영향이었다. 이로 인해 조로는 평소에도 로우와 성적인 교류가 깊어질수록 더 쉽게, 더 빨리 녹진해지고는 했다. 그런 마당에 발정기 중인 이와의 끈질긴 성교가 이어졌으니 체력이 진작 바닥나고도 남지 않겠나. 이는 로우에 의해 일으켜지면서도 조로가 축 늘어져있는 이유였다. 안 그래도 버거운 걸 스스로 압박하는 체위가 됐는데도 말이다. 스스로의 체중을 받칠 힘조차 없던 조로는 연신 올라오는 구역감을 참으며 로우에게 의지할 따름이었다. 그러는 동안 방출을 시작한 것은 뱃속을 홧홧하게 데울만큼 뜨겁게 넘쳐흘러서 조로는 까무라치기 직전이었다.
“하악……! 아… 아아…… 욱!”
다물리지 못한 입술 새로 타액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관계 도중 갑갑한 의복을 찢듯이 벗었던 로우의 맨어깨 위로 태액이 흘러내렸다. 진작 한계까지 들어찬 뱃속을 계속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사정액에 조로는 정말 토기가 올라올 정도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왈칵 쏟아낸 건 위액이 전부였는데 특유의 시큼한 냄새에 잠시 기절했던 조로의 정신이 돌아왔다.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흰색 면티와 복대가 찢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둔덕을 이룬 하복부의 불편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깐 의식이 없을 뿐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더 길었던 모양이다.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흩뿌려진 천조각을 멍하니 보던 조로는 로우가 제 둔부를 잡고 들어올릴 때서야 매듭이 풀렸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틈이 생긴 밑에서 크림같은 사정액이 뭉텅이로 떨어지는 감각에 조로가 반사적으로 힘을 줬을 때였다.
“읏…….”
몸이 들린다 싶더니 시야가 위로 올라갔다. 로우는 힘없이 늘어진 몸을 인형처럼 다뤘다. 그 덕에 찬 벽에 밀쳐져서 다리를 세워야 했던 조로가 휘청일 때 부어서 다물리지 않던 다리 사이로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벅지를 타고 내리는 묵직한 질감 또한 끝이 없어서 절로 이맛살을 찌푸린 조로였다. 그는 사정액이 뭉텅이로 흐르는 감각이 썩 좋지 못했다.
‘속이 울렁거려.’
고작 두 번 사정했을 뿐인데 많이도 쌌지 싶다. 뱃가죽 밑으로 성기가 반 이상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건만 그럼에도 뱃속이 부담스럽기만 했으니. 중간의 두드러진 기둥 모양만 내려갔을 뿐 둔덕처럼 솟은 아랫배는 여전했다. 동시에 힘없이 떨군 시야에 접붙은 가랑이 위로 적당히 풍성한 검은 터럭이 보였다. 배꼽 밑까지 연결된 배렛나루 역시. 제게 없는 것이 신선했던 조로가 이것을 만질 때면 로우는 정말 난처한 얼굴을 하고는 했었다. 그러면서도 조로의 손을 한번도 먼저 밀어낸 적은 없었으니 녀석은 이토록 순하고 마음 여린 사내였다. 그래서 조로는 로우의 고통을 나누고자 했다. 이녀석은 제 사람들을 보호하는 걸 사명이라 여기니까. 그 자신은 아무리 상처입고 다치더라도. 로우는 안전한 벽 너머에서 안타깝게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신경써주지 않았다. 상대가 어떤 과거를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던 조로에게 로우는 제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에 집착하는 듯했으니까. 이를 위해서라면 여타 감정들은 거침없이 묵살하는 게 로우였다. 그로 인해 자신은 몇번을 다치고 스러진다 할지라도. 녀석은 그런 사람이었다.
“윽ㅡ!”
벽에 세워진 조로의 두 다리가 로우의 손에 의해 들렸다. 그와 함께 선단만 남겨두고 빠진 성기가 안으로 쑥 들어온다. 쉬지 않고 계속된 마찰에 여린 내벽이 안으로 밀리는 감각이 명치를 조이게 만들었다. 절로 힘이 들어가던 복부는 체력적 한계를 뜻하는 본능적인 행위였다. 그럴수록 짐승의 행위는 더욱 강압적이게 됐다지만.
“잠… 그만ㅡ! 헉! 잠깐, 읍……!”
허공에 들린 몸이 또다시 흔들린다. 의지할 데 하나 없던 손이 허공을 헤매다 로우의 어깨를 끌어안을 때였다. 역시 잔뜩 깨물고 빨려서 부어터진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놈이 있었다. 힘에 밀린 뒤통수가 벽에 부딪혀 얼얼함이 느껴지지만 그보다 입술 새로 들어온 녀석에 숨이 막히는 게 먼저였다. 입 안을 틀어막은 녀석이 멋대로 휘젓는 것에 목젖이 찔리기도 수차례였다. 그로 인한 구역감으로 목이 일렁이건만 짐승은 조금의 쉴 틈도주지 않았다. 한껏 벌려진 다리 사이로는 퍽퍽 쳐올리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퍼졌으니. 그때마다 눈앞이 번쩍였던 조로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놈의 팔에 붙들려 허공에 뜬 다리가 달달 떨리며 움찔대길 수차례, 하도 반복된 상황에 쥐가 나기 직전의 당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붓다 못해 살이 짓무르기까지 한 여성기는 로우가 주는 자극에 멋대로 조여물며 옴직대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이렇듯 녀석이 주는 쾌감이란 곧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조로가 지금 유일하게 의지할 곳은 하나였으니 그는 결국 로우에게 매달리기를 선택했다. 돌아오는 건 흥분한 짐승의 더욱 격해진 허리짓이었다지만. 살 부딪히는 소리가 소름끼칠만큼 격렬한 와중에 흉포한 놈이 찔러들어올 때면 조로는 헛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오메가라고 알파의 성기가 뭉갤 때마다 고통 사이로 올라오는 쾌감에는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비록 그것만으로 지금의 행위가 기분 좋을 수는 없어도 그가 영향 받는만큼 로우에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일 테다. 이것으로 조로는 지금을 견딜 가치는 충분하다 여겼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랑스런 얼굴로 미소 짓는 로우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조로에게는 지금의 고통도 다디단 시간일 뿐이었다.
또 빼앗겼다. 잃어버려선 안 될 소중한 것을. 해일처럼 밀어닥친 분노와 공허, 지독한 자기 혐오 속에서 로우는 살기 위해 짐승에 몸을 내맡겼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슬픔과 분노에 짓눌린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 전에.
그는 결국 라미는 물론 코라씨를 살리지 못했으니 도피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이었다. 여기서 도피는 로우의 부채감을 알면서도 절대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 대신 그 빚을 평생 떠안고 살아가라지 않았나. 숨이 다하는 날까지 로시가 나고 자란 이 나라를 지키면서. 이것 때문에 로우는 도피의 허락 없이 죽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로시를 대신해 살라 했으니 로우는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이 삶에 아무 의지나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그는 의무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아…… 조로……!”
정신이 돌아온 건 만 삼일째 밤이었다. 처음에 로우는 발정기가 끝난 줄 알았다. 그렇다기에는 잔열이 남은 데 반해 몸이 편하고 머리가 맑다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이 전의 발정기는 늘 금단현상과도 같은 두통과 온몸에 걸친 극심한 근육통이 따라왔건만. 더불어 자해하는 습성이 있던 로우의 몸이 유독 만신창이가 됐음은 당연했으니 이로 인해 도피가 중간에 그를 막은 적만 여러번이었다. 때문에 지금껏 로우의 발정기에 도피가 왕의 대지를 벗어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피치못한 일정이라도 잡히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러니 왜 이번에는 왜 이지경이 되도록 도피가 나타나지 않았던 걸까 싶었다. 도피라면 충분히 조로를 구하고도 남았음인데! 로우가 혼란스러운 기억을 더듬어가며 제가 왜, 무엇 때문에 짐승에게 주도권을 넘겼는지를 찾을 때였다. 찬바닥에 엉망으로 쓰러져 있던 조로는 마치 죽은 것만 같았다. 입을 비롯한 온몸은 정액투성이였고 잇자국과 손에 의한 멍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이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의 흔적이지 않던가. 더불어 이에 찢긴 살갗은 마른 핏자국마저 선연하니 로우는 제 상태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 제 한쪽 손목에 조로의 것이었을 흰색 천조각이 감겨진 것을 봤을 때는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고.
“조로…… 조로야…….”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연신 조로를 부른다. 굵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와중에도 끊어질듯 미약하게 조로를 불러대던 로우다. 동시에 룸을 펼치던 손끝은 얼마나 형편 없이 덜덜 떨렸던가. 역설적이게도 그의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몸 속에 남은 잔열감은 발정기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님을 뜻하지만 그럼에도 이토록 힘이 넘칠 수는 없음이다. 이는 오히려 건강한 육신이 불안정한 정신을 다잡아주는 역할을 할 정도였으니 귀곡을 불러들인 로우는 조로의 상태부터 체크했다. 그런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이 연신 흘러내리지만 로우의 행동은 차분히 이어졌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다. 전신 타박상에 깨물리고 쓸린 잔상처가 많기는 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는 며칠을 혹사당한 하부였다. 그에 로우는 온갖 체액으로 엉망이 된 침구의 시트부터 새것으로 바꿨다. 기절한 조로를 안아들고 옮기는 동안에도 다리 사이에서는 식어버린 사정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한 로우가 눈을 한차례 꾹 감았다 떴다. 이어 조로를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에는 집무실에 놓인 전보벌레를 불러들였다.
“나다, 베포.”
“대장??!”
“쉿, 조용히 해라. 부탁할 게 있어 연락했어. 내가 말하는 걸 문 앞에 두고 가줬으면 해.”
로우가 벌써 제정신으로 연락할 리 없음을 잘 알던 베포의 목청은 컸다. 조로가 깰까 의식한 로우의 단도리에 베포는 금새 기가 죽었으니 이후 조곤조곤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베포는 아무 설명이 없음에도 불평 한마디 않고 로우의 명을 따랐다. 충실한 부하는 로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것들을 문앞에 두고 사라졌으니, 길고 큰 손으로 눈물 범벅이던 얼굴을 쓸어내린 로우 역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조로를 치료함에 있어 필요한 건 이성이었으니까.
약 삼일간의 기억이 로우는 희미했다. 어쩌면 방어기제에서 온 해리성 기억상실인지 모른다. 로우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본능에 잠식당하기 직전 상황이었다. 괴롭기는 해도 조로를 생각하면 견딜만했던 발정기 중에 돌연 그가 사라졌다. 이후 드문드문한 기억 사이로 슈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야, 슈거! 그러니까 진정하고, 히익?!’
지금은 반쯤 찌그러진 채 닫혀있는 비밀통로 입구를 보면서 로우는 추측할 수 있었다. 저곳을 통해 슈거와 조로가 왔다는 걸, 그로 인해 자신이 잠시나마 조로를 잃었다는 것을. 로우가 단 하나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 순간의 깊은 절망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천길 낭떠러지로 밀린 심정을 뭐라 해야 할까. 그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영겁과도 같은 시간을 추락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끝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차라리 죽음을 반기고픈 괴로움을 조로는 알까. 이제 로우는 조로가 형질인자라는 이유도 댈 수 없었다. 그를 향한 마음에는 더이상 조로가 무엇이라도 상관없음이다. 중요한 건 조로뿐이라는 거였다.
“날 이렇게까지 받아주면 어떡하냐, 너는…….”
로우는 치료가 끝나고 상처투성이 몸을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중얼거렸다. 그 뒤에는 소매가 긴 원피스 형태의 잠옷을 입혀주면서 행여 추울까 두툼한 이불을 덮어주기도 했다. 그러는 자신은 방 옆에 자리한 욕실에서 급히 찬물을 끼얹고 돌아온 게 다였음에도. 차마 조로 옆에 누울 수도 없던 로우는 그 옆에 앉아 의식 없는 조로의 손을 잡을 뿐이었다. 늘 저보다 따뜻했던 손이 찬 것에 또다시 로우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든다. 눈물 어린 한숨이 길어지는 밤이었다.
한조각
간신히 별궁을 탈출한 슈거가 향한 곳은 도피의 침실이었다. 비밀통로를 통해 북궁 침실 침대 밑으로 올라온 슈거는 서두르면서 머리를 박기도 했다. 이때 도피는 침대 옆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슈거. 호들갑스럽게.”
손끝에서 뻗어나온 실들이 묵직한 침대를 가뿐하게 치웠다. 덕분에 기어나오는 수고를 던 슈거가 도피 앞으로 구르듯 뛰어왔다.
“염라가 로우한테 갔는데! 내 생각이 짧았어! 염라를 구해줘야 돼! 잘못하면 로우가 염라를 죽일지 몰라!”
“녀석이 제 발로 로우한테 갔다고?”
“어! 로우를 도와주고 싶대서 내가 거들어줬는데 그게 더 일을 망친 것 같아. 로우가……!”
이때쯤 도피는 책을 치우고 슈거의 앞에 검지를 펼쳐 함구토록 했다. 덕분에 발까지 구르며 흥분했던 슈거도 진정될 수 있었다. 그런 슈거를 향한 도피의 얼굴에는 다정한 미소가 자리했다. 이는 좀체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걱정할 거 없다, 슈거. 로우는 자기가 뿌린 씨를 스스로 거두는 것뿐이니까. 내버려둬라.”
“그러다 염라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겠지.”
알파의 발정기를 얕본 게 실수였다. 로우가 조로에게 얼마나 의지하는지를 몰랐던 것 또한 그렇고. 장난감으로 변한 조로를 잃어버린 잠깐 동안 로우는 스스로 이성을 놔버릴만큼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걸 알았던 거다. 때문에 별궁에서 직접 로우를 대면한 뒤에야 심각성을 깨달은 슈거는 도피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 거였다. 저러다 조로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로우도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하지만 여기서 겁에 질린 건 슈거 뿐이었다. 오래전 로시가 쓰던 낡고 해진 소파에서 일어난 도피가 그곳에 슈거를 앉히며 말했다.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도피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더불어 깊은 울림을 가진 음성은 듣는 이의 불안을 잠식시키는 힘이 있었다.
“로우라면 걱정할 것 없다, 슈거. 내가 길들인 녀석이 쉽게 죽을 것 같으냐? 그녀석은 내게 갚지 못할 빚이 있어. 그러니 절대 멋대로 죽지도, 자기 인생을 망치지도 못할 거다.”
슈거는 그러면 로우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만 도피의 말을 듣기만 했다. 과거 그녀 또한 어린 나이에 길거리에서 아사해 죽을 운명이었다. 로즈워드 통치 하에 제일 먼저 사지로 내몰린 건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슈거 역시 길거리에서 나고 자란 아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다 굶어죽을 뻔하던 걸 거둬준 건 젊은 왕이었고. 때문에 슈거에게 도피는 가장 강인한 왕이자 안전한 성벽이며 또 평생 믿고 따를 은인이었다. 그가 하는 말이 진리이니 그의 명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을만큼. 이런 이유로 슈거는 제 안의 불안을 잠식시키며 도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피가 그런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
실을 뻗어 분홍색 털코트를 집어드는 도피에 슈거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이 시기에 도피가 멀리 출타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마침 서쪽 제도에 해적기를 단 배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모처럼이니 다녀오마. 그러니 슈거 너도 걱정 말고 쉬어라.”
천야차의 치세 아래 외세의 침입은 드문 일이었다. 실로 즉위 초에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 무리를 무자비하게 도륙했던 일도 유명세를 탔으니. 그 덕인지 다른 나라에 비해 침입을 적게 받았건만 로우의 온건정치가 이어지면서 그새 천야차의 공포를 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 직접 나서서 몸소 일깨워주는 수밖에. 이를 뜻하던 말에 슈거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일쯤이었다. 몸을 일으킨 도피가 방을 나선 것은. 이곳은 모든 게 로시가 살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에 혼자 남은 슈거가 방을 휘 둘러보다 창가로 눈을 돌린다.
오늘은 유난히 구름이 많은 밤이었다.
조로가 장난감으로 있을 때도 로우의 공격성은 슈거에게 집중됐었다. 슈거가 조로를 사람 모습으로 돌려놓은 뒤에는 대놓고 그를 끌어당기기도 했고. 덕분에 슈거가 비밀통로로 달아나는 건 들어올 때보다 수월했다. 우악스런 힘에 끌려 마주보고 앉게 된 조로는 그래서 잠시나마 로우가 정신을 차렸다고 오해했었다. 왼쪽 눈꺼풀을 아프도록 파고들던 녀석에 의안이 날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발정기에 한번 이성을 잃은 알파는 열이 다 가라앉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대형 포유류에나 쓰는 마취총을 쏘기도 한다고. 이 또한 강한 형질을 보유할수록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는 말을 조로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이 주제로 토론하게 된 건 내란군과의 전쟁이 한참이던 시기였고. 마취총을 쏴도 효과가 미비했던 적장은 결국 이쪽도 많은 희생을 치뤄야 했으니 전쟁 중에 박힌 몇몇 알파에 대한 기억은 유독 조로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욱 로우를 놓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만.
“읏……!!”
뱃속이 화끈거리는 감각에 잠시 기절했던 조로의 정신이 돌아왔다. 물 샐 틈 하나 없이 맞붙은 고간 사이로 뼈가 벌어지는 듯한 감각이 꼬리뼈를 타고 오른다. 그의 납작했던 하복부는 이미 얕은 둔덕을 이룰만큼 뭔가 잔뜩 들어와 있었다. 중앙에서 유난히 뱃가죽을 당기는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의 훈련 덕분인지 배려없이 쳐들어오던 녀석을 가까스로 받아들이기는 했다. 꾸준했던 로우의 노력이 빛을 본 모양인지 젖어있던 여성기도 빠듯하나마 찢어지지는 않은 듯했고. 끝도 없이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녀석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기는 했대도 말이다. 차가운 땅 위에서 찢어발기듯 하의만 벗겨진 채 로우를 받아들였던 조로는 몇번이나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참아야 했다. 그만큼 녀석은 무식하게 컸고 행위 역시 폭력이나 진배없었다. 이후 계속된 행위란 금수만도 못한 것이어서 조로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아아… 또……!’
별궁의 까마득한 창문너머로 햇빛이 비춰드는 게 보였다. 밤새 이뤄진 정사에 꽉 들어차 있던 뱃속은 더부룩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또다시 놈의 뿌리가 공처럼 부풀기 시작한 것 아닌가. 로우는 노팅, 즉 매듭이 이뤄지기까지 무척 긴 시간을 소요했다.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박아대는 녀석에 조로는 첫 매듭이 시작될쯤 기절했었다. 무엇보다 매듭이 시작되려면 녀석의 것이 뿌리까지 전부 박혀야 했으니 받는 입장에서는 보통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솔직히 놈의 것은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힘들 터였다.
“아… 윽ㅡ! 아파……!”
고통에는 이골이 났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또 달랐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놈에 장기가 위로 밀리는 감각이 섬짓했다. 선단에 눌린 꼬리뼈에서부터 둔통이 올라옴은 당연했고 밤새 혹사당한 밑은 빠질 것처럼 아팠다. 이는 로우의 성기가 뿌리까지 모두 들어온 것만으로 조로가 감내해야 될 부담감이었다. 이말인즉 지난 관계에서는 성기를 끝까지 넣은 것도 아님을 뜻하며 지금껏 로우가 괜히 삽입에 신중했던 게 아님을 말한다. 덕분에 과거의 후안무치같은 소리를 해댄 자신을 반성해보는 조로라지만 오늘 일에 후회는 없었다. 설령 결과를 알았대도 조로는 로우에게 오는데 망설이지 않았으리라. 아니, 이럴 줄 알았다면 더 서둘러서 로우가 제 몸에 상처 내는 걸 막았을 텐데. 조로에게 굳이 후회라면 이런 것이었다.
“아직 멀었ㅡ! 헉! 허억!”
공처럼 부풀던 뿌리가 언제야 멈추나 싶던 조로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참던 그가 꽉 깨문 잇새로 겨우 소리를 낼 때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로우의 눈동자는 깊은 심연 속에 있었다.
‘저기 어딘가에 네가 숨어 있겠지.’
무엇보다 조로를 괴롭게 하는 건 유리구슬처럼 무심한 눈동자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기에 짐승과도 같은 본능 뒤에 숨어야 했을까. 알파의 발정기란 원래 그토록 괴로운 것일까. 그래서 로우가 아무도 상처 주지 않으려 스스로를 우리와도 같은 곳에 가둔걸까. 아는 게 없으니 추측만 난무할 뿐인 조로는 그래서 더 괴로웠다. 이녀석은 얼마나 다정하기에 괴로움은 전부 혼자 감당하려 드는 걸까 싶어서. 아플지언정 이런 상처로 무너질만큼 나약한 자신이 아닐진데 그조차 쓰지 않으려 하고 말이다. 이 지독히 자기희생적인 녀석이 조로는 이제 안쓰럽기만 했다.
“야, 로우 너 인마… 이건 순전히 내가 원한 거니까… 나중에 정신 들어도 충격받지 마라. 알았지? …괜히 또 어디 숨어들거나 너 혼자 힘들어하지 말라고……! 나 몸 하나는 튼튼하니까… 아야… 아ㅍ……! 이건 그냥 엄살이니까… 좀 더 네 마음대로 날뛰어도 괜찮다고. 알았지?”
매듭이 완성되는 동안에는 당연하지만 움직임이 멎는다.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리던 시야에 제대로 말 한마디 못했던 조로가 이틈에 애써 말해보지만 통증에 찌푸려진 얼굴은 어쩔 수 없음이었다. 바닥에 몇시간을 방치된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뻣뻣하게 굳은 몸은 경련이 일듯했지만 그게 뭐 대수랴. 저놈 성격에 정신이 들고 나면 얼마나 자책할지 뻔해서 조로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니 조로는 두번째 매듭에 기절하지 않고 말을 전하려 안간힘을 썼다. 손끝이 하얘지도록 로우의 팔을 움켜쥐면서 당장에라도 넘어갈 듯한 정신을 다잡고 말을 내뱉으니 까만 유리알같은 시선이 진득히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여기서 조로는 로우가 차라리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 제정신을 차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찢어질 듯 벌어진 아래를 조이니 짐승이 미간을 움찔했다.
“아ㅡ! 잠ㅡ 너무 깊……! 으윽!!”
오메가라서 다행이다. 비록 형질인자로는 형편없을지라도 덕분에 짐승이 착실히 반응해주니. 자극받기 무섭게 한팔로 등을 감싼 로우가 조로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체중에 눌리며 압박감이 심해지는 것에도 조로는 미약하게 움찔대는 게 전부였다. 사지를 움직일 힘조차 없었으므로. 물먹은 솜마냥 진이 빠져버린 몸은 극명한 형질편차의 영향이었다. 이로 인해 조로는 평소에도 로우와 성적인 교류가 깊어질수록 더 쉽게, 더 빨리 녹진해지고는 했다. 그런 마당에 발정기 중인 이와의 끈질긴 성교가 이어졌으니 체력이 진작 바닥나고도 남지 않겠나. 이는 로우에 의해 일으켜지면서도 조로가 축 늘어져있는 이유였다. 안 그래도 버거운 걸 스스로 압박하는 체위가 됐는데도 말이다. 스스로의 체중을 받칠 힘조차 없던 조로는 연신 올라오는 구역감을 참으며 로우에게 의지할 따름이었다. 그러는 동안 방출을 시작한 것은 뱃속을 홧홧하게 데울만큼 뜨겁게 넘쳐흘러서 조로는 까무라치기 직전이었다.
“하악……! 아… 아아…… 욱!”
다물리지 못한 입술 새로 타액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관계 도중 갑갑한 의복을 찢듯이 벗었던 로우의 맨어깨 위로 태액이 흘러내렸다. 진작 한계까지 들어찬 뱃속을 계속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사정액에 조로는 정말 토기가 올라올 정도였다. 행인지 불행인지 왈칵 쏟아낸 건 위액이 전부였는데 특유의 시큼한 냄새에 잠시 기절했던 조로의 정신이 돌아왔다. 유일하게 걸치고 있던 흰색 면티와 복대가 찢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둔덕을 이룬 하복부의 불편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잠깐 의식이 없을 뿐이라 여겼는데 생각보다 더 길었던 모양이다.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흩뿌려진 천조각을 멍하니 보던 조로는 로우가 제 둔부를 잡고 들어올릴 때서야 매듭이 풀렸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틈이 생긴 밑에서 크림같은 사정액이 뭉텅이로 떨어지는 감각에 조로가 반사적으로 힘을 줬을 때였다.
“읏…….”
몸이 들린다 싶더니 시야가 위로 올라갔다. 로우는 힘없이 늘어진 몸을 인형처럼 다뤘다. 그 덕에 찬 벽에 밀쳐져서 다리를 세워야 했던 조로가 휘청일 때 부어서 다물리지 않던 다리 사이로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벅지를 타고 내리는 묵직한 질감 또한 끝이 없어서 절로 이맛살을 찌푸린 조로였다. 그는 사정액이 뭉텅이로 흐르는 감각이 썩 좋지 못했다.
‘속이 울렁거려.’
고작 두 번 사정했을 뿐인데 많이도 쌌지 싶다. 뱃가죽 밑으로 성기가 반 이상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건만 그럼에도 뱃속이 부담스럽기만 했으니. 중간의 두드러진 기둥 모양만 내려갔을 뿐 둔덕처럼 솟은 아랫배는 여전했다. 동시에 힘없이 떨군 시야에 접붙은 가랑이 위로 적당히 풍성한 검은 터럭이 보였다. 배꼽 밑까지 연결된 배렛나루 역시. 제게 없는 것이 신선했던 조로가 이것을 만질 때면 로우는 정말 난처한 얼굴을 하고는 했었다. 그러면서도 조로의 손을 한번도 먼저 밀어낸 적은 없었으니 녀석은 이토록 순하고 마음 여린 사내였다. 그래서 조로는 로우의 고통을 나누고자 했다. 이녀석은 제 사람들을 보호하는 걸 사명이라 여기니까. 그 자신은 아무리 상처입고 다치더라도. 로우는 안전한 벽 너머에서 안타깝게 지켜봐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신경써주지 않았다. 상대가 어떤 과거를 살아왔는지 알지 못하던 조로에게 로우는 제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것에 집착하는 듯했으니까. 이를 위해서라면 여타 감정들은 거침없이 묵살하는 게 로우였다. 그로 인해 자신은 몇번을 다치고 스러진다 할지라도. 녀석은 그런 사람이었다.
“윽ㅡ!”
벽에 세워진 조로의 두 다리가 로우의 손에 의해 들렸다. 그와 함께 선단만 남겨두고 빠진 성기가 안으로 쑥 들어온다. 쉬지 않고 계속된 마찰에 여린 내벽이 안으로 밀리는 감각이 명치를 조이게 만들었다. 절로 힘이 들어가던 복부는 체력적 한계를 뜻하는 본능적인 행위였다. 그럴수록 짐승의 행위는 더욱 강압적이게 됐다지만.
“잠… 그만ㅡ! 헉! 잠깐, 읍……!”
허공에 들린 몸이 또다시 흔들린다. 의지할 데 하나 없던 손이 허공을 헤매다 로우의 어깨를 끌어안을 때였다. 역시 잔뜩 깨물고 빨려서 부어터진 입술을 비집고 들어오는 놈이 있었다. 힘에 밀린 뒤통수가 벽에 부딪혀 얼얼함이 느껴지지만 그보다 입술 새로 들어온 녀석에 숨이 막히는 게 먼저였다. 입 안을 틀어막은 녀석이 멋대로 휘젓는 것에 목젖이 찔리기도 수차례였다. 그로 인한 구역감으로 목이 일렁이건만 짐승은 조금의 쉴 틈도주지 않았다. 한껏 벌려진 다리 사이로는 퍽퍽 쳐올리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려퍼졌으니. 그때마다 눈앞이 번쩍였던 조로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놈의 팔에 붙들려 허공에 뜬 다리가 달달 떨리며 움찔대길 수차례, 하도 반복된 상황에 쥐가 나기 직전의 당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붓다 못해 살이 짓무르기까지 한 여성기는 로우가 주는 자극에 멋대로 조여물며 옴직대는 것조차 고통이었고. 이렇듯 녀석이 주는 쾌감이란 곧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조로가 지금 유일하게 의지할 곳은 하나였으니 그는 결국 로우에게 매달리기를 선택했다. 돌아오는 건 흥분한 짐승의 더욱 격해진 허리짓이었다지만. 살 부딪히는 소리가 소름끼칠만큼 격렬한 와중에 흉포한 놈이 찔러들어올 때면 조로는 헛구역질이 났다. 그래도 오메가라고 알파의 성기가 뭉갤 때마다 고통 사이로 올라오는 쾌감에는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비록 그것만으로 지금의 행위가 기분 좋을 수는 없어도 그가 영향 받는만큼 로우에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일 테다. 이것으로 조로는 지금을 견딜 가치는 충분하다 여겼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사랑스런 얼굴로 미소 짓는 로우를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조로에게는 지금의 고통도 다디단 시간일 뿐이었다.
또 빼앗겼다. 잃어버려선 안 될 소중한 것을. 해일처럼 밀어닥친 분노와 공허, 지독한 자기 혐오 속에서 로우는 살기 위해 짐승에 몸을 내맡겼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슬픔과 분노에 짓눌린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 전에.
그는 결국 라미는 물론 코라씨를 살리지 못했으니 도피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이었다. 여기서 도피는 로우의 부채감을 알면서도 절대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 대신 그 빚을 평생 떠안고 살아가라지 않았나. 숨이 다하는 날까지 로시가 나고 자란 이 나라를 지키면서. 이것 때문에 로우는 도피의 허락 없이 죽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로시를 대신해 살라 했으니 로우는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이 삶에 아무 의지나 의미가 없다 할지라도 그는 의무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아…… 조로……!”
정신이 돌아온 건 만 삼일째 밤이었다. 처음에 로우는 발정기가 끝난 줄 알았다. 그렇다기에는 잔열이 남은 데 반해 몸이 편하고 머리가 맑다는 게 이상하기는 했다. 이 전의 발정기는 늘 금단현상과도 같은 두통과 온몸에 걸친 극심한 근육통이 따라왔건만. 더불어 자해하는 습성이 있던 로우의 몸이 유독 만신창이가 됐음은 당연했으니 이로 인해 도피가 중간에 그를 막은 적만 여러번이었다. 때문에 지금껏 로우의 발정기에 도피가 왕의 대지를 벗어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피치못한 일정이라도 잡히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러니 왜 이번에는 왜 이지경이 되도록 도피가 나타나지 않았던 걸까 싶었다. 도피라면 충분히 조로를 구하고도 남았음인데! 로우가 혼란스러운 기억을 더듬어가며 제가 왜, 무엇 때문에 짐승에게 주도권을 넘겼는지를 찾을 때였다. 찬바닥에 엉망으로 쓰러져 있던 조로는 마치 죽은 것만 같았다. 입을 비롯한 온몸은 정액투성이였고 잇자국과 손에 의한 멍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이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의 흔적이지 않던가. 더불어 이에 찢긴 살갗은 마른 핏자국마저 선연하니 로우는 제 상태도 파악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다 제 한쪽 손목에 조로의 것이었을 흰색 천조각이 감겨진 것을 봤을 때는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고.
“조로…… 조로야…….”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연신 조로를 부른다. 굵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와중에도 끊어질듯 미약하게 조로를 불러대던 로우다. 동시에 룸을 펼치던 손끝은 얼마나 형편 없이 덜덜 떨렸던가. 역설적이게도 그의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몸 속에 남은 잔열감은 발정기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님을 뜻하지만 그럼에도 이토록 힘이 넘칠 수는 없음이다. 이는 오히려 건강한 육신이 불안정한 정신을 다잡아주는 역할을 할 정도였으니 귀곡을 불러들인 로우는 조로의 상태부터 체크했다. 그런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이 연신 흘러내리지만 로우의 행동은 차분히 이어졌다.
다행히 부러진 곳은 없다. 전신 타박상에 깨물리고 쓸린 잔상처가 많기는 해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는 며칠을 혹사당한 하부였다. 그에 로우는 온갖 체액으로 엉망이 된 침구의 시트부터 새것으로 바꿨다. 기절한 조로를 안아들고 옮기는 동안에도 다리 사이에서는 식어버린 사정액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한 로우가 눈을 한차례 꾹 감았다 떴다. 이어 조로를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뒤에는 집무실에 놓인 전보벌레를 불러들였다.
“나다, 베포.”
“대장??!”
“쉿, 조용히 해라. 부탁할 게 있어 연락했어. 내가 말하는 걸 문 앞에 두고 가줬으면 해.”
로우가 벌써 제정신으로 연락할 리 없음을 잘 알던 베포의 목청은 컸다. 조로가 깰까 의식한 로우의 단도리에 베포는 금새 기가 죽었으니 이후 조곤조곤한 속삭임이 이어졌다. 베포는 아무 설명이 없음에도 불평 한마디 않고 로우의 명을 따랐다. 충실한 부하는 로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것들을 문앞에 두고 사라졌으니, 길고 큰 손으로 눈물 범벅이던 얼굴을 쓸어내린 로우 역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조로를 치료함에 있어 필요한 건 이성이었으니까.
약 삼일간의 기억이 로우는 희미했다. 어쩌면 방어기제에서 온 해리성 기억상실인지 모른다. 로우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본능에 잠식당하기 직전 상황이었다. 괴롭기는 해도 조로를 생각하면 견딜만했던 발정기 중에 돌연 그가 사라졌다. 이후 드문드문한 기억 사이로 슈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야, 슈거! 그러니까 진정하고, 히익?!’
지금은 반쯤 찌그러진 채 닫혀있는 비밀통로 입구를 보면서 로우는 추측할 수 있었다. 저곳을 통해 슈거와 조로가 왔다는 걸, 그로 인해 자신이 잠시나마 조로를 잃었다는 것을. 로우가 단 하나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 순간의 깊은 절망이었다. 부지불식간에 천길 낭떠러지로 밀린 심정을 뭐라 해야 할까. 그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서 영겁과도 같은 시간을 추락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끝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차라리 죽음을 반기고픈 괴로움을 조로는 알까. 이제 로우는 조로가 형질인자라는 이유도 댈 수 없었다. 그를 향한 마음에는 더이상 조로가 무엇이라도 상관없음이다. 중요한 건 조로뿐이라는 거였다.
“날 이렇게까지 받아주면 어떡하냐, 너는…….”
로우는 치료가 끝나고 상처투성이 몸을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중얼거렸다. 그 뒤에는 소매가 긴 원피스 형태의 잠옷을 입혀주면서 행여 추울까 두툼한 이불을 덮어주기도 했다. 그러는 자신은 방 옆에 자리한 욕실에서 급히 찬물을 끼얹고 돌아온 게 다였음에도. 차마 조로 옆에 누울 수도 없던 로우는 그 옆에 앉아 의식 없는 조로의 손을 잡을 뿐이었다. 늘 저보다 따뜻했던 손이 찬 것에 또다시 로우의 눈가가 촉촉히 젖어든다. 눈물 어린 한숨이 길어지는 밤이었다.
한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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