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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30 17:24
보고싶다~7


무작정 집을 떠나 먼 시골까지 내려왔다. 처음에는 1, 2주씩 소도시에 머물렀는데 여행이 길어질수록 컨디션 문제인지 몸이 갈수록 피곤해졌다. 속도 안좋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생리까지 계속 건너뛰자 결국 다른 도시로 넘어가려다 급히 병원을 찾아갔다.

"-임신 8주차시네요. 몸상태가 별로 안좋으신데 아직 임신 초기여서 위험하기 때문에 신경 잘 써주셔야 해요."

"⋯⋯네? 이, 임신이요?"

병원을 나선 손에는 처방전이 들려있었다. 약국에서 영양제와 약을 받아 숙소에 앉아있자니 혼란스러웠다. 임신?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집에서 도망나오기 전날이었다. 그동안 몇번 피임을 빼먹었을때도 아무 문제 없었는데 왜 하필⋯!
임신중절을 하려면 언제까지 와야한다는 말과 홀로 아이를 낳을 경우 도움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말이 웅웅- 머릿속을 울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를 지우는 게 맞았다. 그와 결혼생활을 이어나갈 수도 없고, 나중에 부모님께 돌아간다 하더라도 아이가 있는채로 가는 것과 없이 가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날 테니까.

그런데⋯ 자꾸만 욕심이 났다. 한때 아이가 생기길 간절히 바라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와 닮은 아이가 생긴다면 얼마나 귀여울지 그와 나 중 누구를 더 닮을지를 상상했었으니까.

일주일정도 계속 고민하며 인터넷이 임신에 관한 것에 대해 계속 검색해보다 문득 메세지함에 들어가봤다. 
집을 떠나고 계속 문자와 전화가 와 도저히 휴대폰을 쓸 수가 없었다. 차마 전화를 받거나 그 문자내용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 것만 채운 이혼서류가 그에게 도착했다는 걸 확인한 후 그에게 이 결혼을 그만두고 싶다고, 남은 짐은 버려도 되니 찾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새로 바꾼 번호는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텅 비어있는 메세지함을 보자 괜히 스스로 선택한 결과임에도 괜시리 외로움이 밀려왔다.

아이쯤은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그에게 말하지 않고 그냥 허니 비의 아이로 키우면 되지 않을까.

결국 다음에 병원을 다녀온 내 손에는 싱글맘을 위한 책자가 손에 들려있었다.

뭣도 모르고 호기롭게 임신을 유지하기로 결심하자 그때부터 아이가 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너무 많이.
입덧이라고 해봤자 뭐 대단할까 했는데 음식은 커녕 물도 제대로 못 마셨다. 평소엔 입에 잘 대지도 않던 새콤한 과일만 먹고 물도 레몬을 띄워야 겨우 마실 수 있었다.

게다가 못 먹는 것도 못 먹는 건데, 때 아닌 밤중에 갑자기 이상하게 뱅상이 해준 음식이 먹고 싶어질 때면 더 서러워졌다. 제 아빠가 해준 음식 언제 먹어봤다고 그걸 먹고 싶어하는 건지. 억지로 이를 닦아 식욕을 참고 잠을 청하는 날도 한달이 넘어가자 차즘 줄어들었다. 

아이를 가진 채 다른 곳으로 계속 이동할 수 없어 결국 장기숙소를 잡고 정기검진을 다니기 시작했다. 부부가 같이 오는 모습을 볼 때면 뱅상이 떠올랐지만 애초에 그와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로 키우기 시작한 이상 감수해야하는 부분이었기에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성별 궁금하세요?"

"어⋯알 수 있어요?"

"네, 확인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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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네요
. 누구를 닮았을까. 아이의 성별을 듣고 집에 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는 그 질문만 가득했다. 내심 그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어린시절 사진을 본 적 있었는데, 아이가 크면 그 때와 비슷하려나. 괜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할 때였다.

"⋯니! 허니 비!"

"아, 피에르!"

이곳에 머물게 됐을 때, 가장 큰 걱정은 연고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지내나 하는 것이었다. 임신 초기에 이리 저리 움직이기도 어려워 그저 이웃이 보일때면 간간이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피에르와는 전에 한참 입덧 때문에 길에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을때 도움받은 걸 계기로 친해지게 됐다. 그는 딱히 묻지 않았지만 아무리 봐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모양새로 보이는지 때때로 퇴근 후 집에 와 반찬을 주기도 하며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줬다. 

"병원 갔다와요?"

"네, 딸이래요! 아기도 건강하다고 하고⋯"

얘기할 곳이 없다 생기자 그동안 못한 한풀이라도 하듯 그와 만날 때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아기 성별이 주제였다. 

"그래요? 다음에 아기 신발이라도 사가야겠네요."

"엑, 아녜요, 이미 충분히 도움 많이 받았는데요. 밥은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내가 살게요!"

피에르와 이야기할 때면 마음이 편해져 그에게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가 되어달라,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알았다며 나중에 모른체나 하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낼 때면 그가 없는 생활에도 많이 익숙해졌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해지고는 했다.



* 1년 후



지금이야 아이를 낳았으니 편히 얘기하지만 임신 막바지가 되어갈수록 너무 힘들었다. 마을에서 지내는 것은 점점 익숙해져도 도무지 임신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입덧이 괜찮아지니 시도 때도 없이 몸이 붓고, 아기가 자라면서 커진 배에 속이 불편해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것이지만 태동과 같은 아기의 성장의 기쁨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건 때때로 뱅상의 빈자리를 실감케했다. 피에르와 그의 가족들이 먼저 아기 얘기를 궁금해하며 물어와 얘기 하긴 했지만, 그들이 정말 가족은 아니기에 하고픈 말의 10분의 1은 커녕 100분의 1이나 말할까 말까였다.

그것은 아이를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통잠을 자지 않아 한두시간 마다 깨는 아기에, 젖몸살이 도는데 마사지는 커녕 건드리기만 해도 엉엉 눈물이 날 아픔까지. 어느 것 하나 누구에게 편히 이야기하기 좋은 것들은 아니라 그때마다 병원과 시터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부-"

"아구, 깼어요?"

잠에서 깬 아기를 품에 안아 자장가를 불러주며 얼렀다.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안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기를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분명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온전히 나를 사랑해줄 내 편이 되어줄 아기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기에.

첫 딸은 아빠를 닮는다던데-하는 얘기에 괜히 그래도 딸인데 절 닮지 않겠어요? 라고 답한게 무색하게 아이는 뱅상을 쏙 빼닮았다. 내가 사랑했던 아몬드 모양의 푸른 눈과 곧게 선 콧대, 얇은 입술까지. 머리가 검다는 것 외에는 도대체가 저가 낳았다는 걸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아기를 낳고 처음 품에 안았을때는 까만 머리를 한 핏덩이가 제 아이구나 싶어 울었는데, 그 아기가 그새 자라 제 아비의 얼굴을 쏙 빼닮은 걸 깨닫고는 어느날 밤에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 다 잊은 줄로만 알았던 그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닮아. 저를 보며 방싯방싯 웃는 아기를 볼 때면 자꾸만 그가 떠올라 괴로웠다. 

배가 고파 깨어난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품에 안아 거실을 거닐었다. 끄윽- 가볍게 트림한 아기를 안고 등을 토닥여주는데 억지로 머리 한켠에 제쳐둔 뱅상, 그가 떠올랐다. 그는 지금 잘 지내고 있을지, 포이터 씨와는 잘 됐을지. 떠올려봤자 답을 알 수도 없고, 알아도 내가 이제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고개를 휘휘 저어 생각을 멀리 던져버리곤 아기에게도 밥을 먹였겠다, 나갈 채비를 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동안은 외출을 삼갔다. 시터가 오더라도 마냥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기도 힘들어 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제 손에서 키우느라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살았던 건지. 당연하게도 놀러나가는 건 한동안 꿈도 못 꿨기에 나갈 준비만 하는데도 즐거웠다. 물론 아이만 집에 둘 수 없기에 아이와 함께 가는 자동차 극장이지만, 오히려 피에르도 있고 자동차 극장이어서 남들 시선은 덜 신경써도 되니 좋았다.



띵동-


"피에르?"

그가 벌써 데리러 왔나 싶어 불러보지만 답이 없었다. 인터폰 너머로도 보이는 사람이 없는게 이상해 문 근처로 가 인기척이 있나 살펴봤다.


똑똑똑-


이번엔 노크 소리. 피에르는 아닌 것 같고 누군지 알 수 없어 잠금쇠로 문을 한 번 더 잠그는 순간,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니 렌지."




자꾸 늦어지네ㅠㅠ 노잼인데 매번 읽어줘서 코맙!
피에르는 🚔피에르일 수도 🐄피에르일 수도

뱅상너붕붕
스완너붕붕
추락의 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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