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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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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계 아닌 궁중물
후일담
강징은 심란한 마음에 석반때 반주 삼아서 술을 마시고 침상에 웅크리고 누웠다가 선잠에 듬. 누군가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설핏 잠에서 깼는데 아징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폐하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너른 가슴에 얼굴을 묻었어. 취기로 인해 열이 오른 얼굴을 서늘한 품에 부비다가 꼭 묻고 싶은것이 있어서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어. 폐하 거짓이라도 좋으니 신첩에게 은애한다고 말씀을 해주세요. 신첩을 은애하시나요? 라고 물었음. 강징은 사내로부터 진심으로 은애한다는 말을 듣고 흡족한듯 환하게 웃다가 이내 눈을 감았어. 망기는 제 품에서 잠이 든 강징의 뺨을 쓰다듬다가 긴 한숨을 쉬곤 침상에 제대로 눕혔음. 앞으로도 이렇게 수백번 진심을 담아서 은애한다는 말을 해도 똑같겠지. 아무리 애를 써도 제 진심이 전해지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강징을 향한 연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음. 망기는 강징이 웅얼거리며 폐하하고 부르는 것을 듣고 말없이 옆자리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함. 다음날 이른 새벽에 승건궁을 떠나면서 궁인들에게 자신이 다녀간것을 상재에게 함구하라고 이름.
강징은 배가 고픈지 칭얼거리는 공주를 유모에게 맡기고 깨어질듯한 머리를 붙잡고 앓는 소리를 냈어. 간밤에 술을 마시지 말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함. 잠시후에 상궁이 대령한 숙취 해소에 좋은 탕약을 마시고는 한숨을 쉼.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문득 웬 사내의 품에 안겨있었던게 떠오르겠지.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궁인들에게 간밤에 폐하께서 다녀가셨냐고 묻는데 이구동성으로 폐하께서 오지 않으셨다고 대답함. 강징은 선대황제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 꿈을 꾸었나 싶어서 몹시 침울해짐. 살아생전 은애한다는 말 한마디 해준적 없는 사내를 십수년간 그리워하는 저 자신이 한심스러우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음. 강징은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공주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어. 공주가 하루가 다르게 크다보니 지금까지 만들어준 옷이 전부 작아졌거든. 수방의 궁녀들이 만든 옷들보단 솜씨가 별로일테지만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히고 싶은 마음이었지. 강징은 공주의 옷을 만들다가 남은 비단으로 귀태비에게 줄 영견을 만드는데 상궁이 폐하께 영견을 만들어드리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냄. 강징은 그 말에 폐하께 드릴만한 솜씨가 아니라고 말하고는 수를 놓던 영견을 접어서 한쪽에 밀쳐놓음.
강징은 공주의 옷과 영견을 자개함에 넣으려다가 비단에 싸져있던 사내 아이의 옷을 보고 눈물이 왈칵 터졌어. 그건 강징이 망기를 위해 처음으로 만들었던 옷이었는데 작아져서 못입게 된 옷을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했었거든. 진귀한 보석과도 맞바꿀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담긴것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오랫동안 간직했었음. 강징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망기를 무척이나 애틋하게 생각했는데 은애하는 낭군의 아이여서 그런것도 있지만 망기의 성장 배경에 대한 측은지심을 느꼈기 때문이었어. 양친은 물론이고 하나뿐인 형제와도 떨어져서 유모와 태감의 손에 자란 가여운 아이. 황궁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적응하기 어려워하다가 몇달이 지나서야 겨우 저를 어머니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함. 매사에 주눅이 들어보이는 아이를 볼때마다 안타까웠고 또 안쓰러운 마음에 생모만큼은 아니어도 다시는 애정에 굶주리지 않게 하자고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하며 품에 끼고 키웠었지. 그때 그렇게 넘치는 애정을 준 대가로 모든것을 잃어버릴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넘치는 애정을 주며 진심으로 대했을까. 강징은 낡아서 볼품이 없는 옷을 품안 가득 끌어안으며 한참을 서럽게 울었음. 겨우 울음을 그치고 나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옷을 가위로 자르려다가 가위를 내려놓고 서툰 솜씨로 놓은게 역력한 수복강녕이라는 자수를 매만짐. 한참후에야 땅이 꺼져라 기나긴 한숨을 쉬다가 상궁에게 비단을 가지고 오라 이르곤 토끼와 대나무 자수를 놓는법을 가르쳐달라고 이름.
그 시각 사윤은 제례 참석차 황궁에 입궁했다가 숙부 남계인과 수년동안 타국에서 체류하고 있던 맏형 남희신을 발견하고 달려가 희신의 품에 냅다 안김. 희신이 웃으며 아윤 그동안 잘있었느냐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남계인이 일국의 친왕이 채신머리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을 한다며 못마땅한듯 혀를 참. 그러면서도 요녀석 네 형만 보이고 숙부는 안보이느냐며 섭섭해하는데 사윤이 웃으며 남계인의 손을 붙잡으며 사실 숙부님이 제일 먼저 보였다며 해맑게 웃음. 남계인은 허허 녀석 이제 지학인데도 이리 어리광이냐고 타박은 하지만 사윤이 귀여워서 어쩔줄을 모르는 눈치였어. 희신이 폐하께 인사를 올렸느냐고 물었는데 사윤이 무심결에 부황께는 입궁을 하자마자 찾아뵙고 문안 인사를 올렸다고 대답함. 남계인이 부황이라는 말에 당연히 선대 황제의 이야기인줄 알고 사윤은 쳐다보며 기특한것 네가 아직 철이 없는 어린 아이인줄로만 알았는데 궁에 들어오자마자 선황의 영전에 배알을 하였구나 하고 몹시 기특하게 여김. 사윤이 그 말에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히는데 그걸 보고 또 오해를 하겠지. 남계인이 네가 이리 장성한 모습을 황형이 보셨어아 하는데 하고 매우 안타깝게 여기더니 눈시울이 붉어짐. 희신이 남계인에게 부황께서 하늘에서 아윤을 지켜보고 계실거라고 말을 하고 사윤의 손을 잡고 토닥였음.
망기는 제례를 지내고 양심전에서 숙부 남계인과 형인 희신과 함께 차를 마셨는데 차가 무슨 맛인지 느낄 겨를이 없었음. 어젯밤의 일로 마음이 심란하기도 하고 강징의 달라진 태도가 의아하고 불안스럽기만 했거든. 신경이 온통 승건궁에 있을 강징에게 가 있어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음. 남계인이 폐하의 연치가 적지 않으신데 슬하에 공주밖에 없으니 참으로 걱정이라고 말을 하고 희신 역시 후사가 없는게 걱정이라는 식으로 말을 꺼남. 망기가 굳은 얼굴로 자신이 덕이 없어서 자식이 없는거라고 대강 얼버무리려는데 남계인이 대뜸 후궁을 더 들이는게 어떻겠냐고 말함. 망기가 이미 후궁들이 적지 않은데 후궁을 또 들일 필요는 없다고 하는데 남계인이 조심스럽게 공주의 생모인 상재의 나이가 많아 그에게서 자식을 더 보는건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냐고 말을 꺼냄. 망기가 뭐라고 말을 하려던 때에 태감이 귀태비가 들었다고 알리고 귀태비가 양심전 안으로 들어옴. 남희신이 서모인 귀태비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고 남계인과 귀태비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세발자국 뒤에 서 있던 유모의 품에 안긴 공주가 자세가 불편했는지 칭얼거림. 망기가 공주를 보고 반색을 하며 유모로부터 아이를 받아서 품에 안고 어르자 남계인이 공주가 폐하를 많이 닮았다며 무척 어여뻐함. 그런때 희신이 공주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눈이랑 코가 태후와 비슷하다고 말을 꺼내는게 아니겠음. 그 말을 들은 망기가 당황해서 흠칫하고 귀태비가 어색하게 웃으며 공주는 태후의 당질녀이기도 하니 닮은게 이상하진 않지요하고 무마함. 귀태비가 자리에 앉아 제 운환에 꽂혀있던 머리 장식을 빼내서 그걸 흔드며 공주와 놀아주기 시작함. 망기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희신이 꺼낸 말에 안색이 어두워짐. 희신이 곧 있으면 태후의 첫번째 기일인데 이제 슬슬 제례에 대한 논의를 해야지 않겠냐는 말을 했거든. 태후는 다른 이들에게 죽은 사람이었고 매년마다 기일이 돌아오고 그때마다 그를 추모하고 명복을 빌어야 한다는것을 잠시 잊고 있었을거야. 망기가 자신이 직접 황릉과 종묘에 가서 제를 올리겠다고 말을 하는데 공주가 갑자기 크게 울음을 터뜨림. 울음소리에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리자 귀태비가 자신이 비녀에 달린 장식을 흔들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공주가 그걸 보고 언짢아진 모양이라고 말을 함. 귀태비가 영견을 꺼내서 공주의 눈물을 닦아주고 궁녀에게 비녀를 주으라고 이름. 마침 근처에 앉아있던 희신이 궁녀 대신 비녀를 줍고는 비녀를 자세히 살피더니 부황이 태후의 탄일때 주신 비녀가 아니냐며 이것을 귀태비가 가지고 계셨냐고 물음. 귀태비가 태후께서 이 사람에게 남기신거라며 택왕의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라고 칭찬하면서도 내심 불편한 내색을 함. 남계인이 뭔가 이상한걸 느꼈는지 이만 물러가보겠다고 말하고 희신까지 챙겨서 나감.
강징은 망기에게 줄 영견에 자수를 놓고 있다가 밖에서 쿵쿵거리는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남. 상궁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다고 나가는데 강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밖으로 따라나갔음. 아니나 다를까. 망기가 제대로 몸을 못가눌만큼 만취한 채로 승건궁의 궁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비틀거리며 마당을 걷는중이었어. 태감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해서 다급하게 부축하려는데 망기가 그 손길을 매섭게 뿌리치곤 아징하고 강징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옴. 강징이 궁인들을 모두 물리고 망기를 부축해서 침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어. 망기를 의자에 앉히고 침상에 비단금침을 까는데 팔목을 붙잡히고 돌려세워짐. 강징이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해서 폐하라고 부르는 대신에 아잠하고 애칭을 부름. 망기가 그 말에 허탈하게 웃더니 갑자기 강징을 침상위에 쓰러뜨리고는 그 위에 올라탔어. 강징이 그런 망기를 밀치려다가 자포자기하고 가만히 있자 거친 손놀림으로 강징이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벗김. 강징이 무표정으로 몸을 맡기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지 정사 내내 어깻죽지를 깨물고 몸 구석구석을 이로 짓씹어서 엉망으로 만듬. 망기가 체내에 사정을 하고 몹시 지친듯 곧바로 쓰러져 잠드는데 그런 망기를 쳐다보는 강징의 표정이 싸늘하겠지.
그 다음날 새벽 망기는 평소처럼 일어나서 제 옆에서 자고 있는 강징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음. 강징에게 계수를 덮어주려고 하다가 벗은 몸이 엉망인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람. 그때 강징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의를 걸치는데 망기가 따라 일어나며 변명과 사죄를 동시에 하려고 입을 열려고 함. 강징이 그런 망기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고는 망기를 노려보았어. 진심으로 연모하느니 그런 말도 안되는 밀어를 속삭일때 믿지도 않았지만 연모하는 이를 겁탈하는게 군왕이 할짓이더냐. 시정잡배가 아니고서야 기루에서 몸을 파는 창기에게도 이리 대하지 않을터인데 너는 내가 그리도 우스우냐! 입이 있으면 말해보거라! 내가 고분고분하게 구니 이제 네 마음껏 농락해도 될성 싶든? 어찌 내게 또 이래! 강징이 분기탱천해서 소리를 지르자 망기가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려고 하는데 강징이 그런 망기를 떠밀어서 넘어뜨림. 강징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폐하 보십시오. 목숨이 두개가 아니고서야 만승지존인 황제의 빰을 치는 후궁이 어딨습니까! 말씀해보세요! 황제가 첩실에게 불과한 후궁에게 무릎을 꿇는것이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달라지는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 말도 안되는 장난질 따위는 그만하세요. 폐하께서 원하시는게 이 요사스러운 몸뚱이라면 욕정이 치밀때 언제든지 찾아오셔서 마음껏 품으세요. 그것까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강징이 그리 말하자 망기가 만음하고 강징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려는데 강징이 하늘이 두쪽나도 폐하께 마음을 주는 일은 없을거라고 단호하게 뿌리침.
망기강징 망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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