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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21:31

남망기는 운심 그룹 강징은 연화 그룹
연화그룹은 지방세력이라 규모가 운심그룹보다는 다소 작았지만 그래도 뼈대있는 가문임 그래서 강징이 대학생일때 이미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도련님 남망기와 약혼하는 그런거 보고싶다




***


강징은 남자랑 결혼하기 싫었음.
음인이긴 해도 남자 말고 누님처럼 다정한 여성 양인이 좋았던 강징...
게다가 냉정해 보이는 남씨 둘째는 첫인상부터 나빴음.
높디 높은 어른들만 모인 무거운 자리라고는 하나 언젠가 신부가 될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을 주지 않던 남망기라는 남자.
운몽에서 살다가 언젠가의 정략혼을 위해 억지로 수도의 대학으로 와야 했던 것도, 사람이 너무 많은 도시도 강징은 죄다 맘에 들지 않았음.
하지만 운심 그룹의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운몽으로 되돌아가서 살 수 있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셈이었지.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는 자리에서 주눅이 든 채 정신없이 약혼한 후
별안간 강징은 걸핏하면 사교회에 불려다니는 처지가 됐음.
지금까지는 재벌의 아들이라도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차자라 그런지 꽤 자유로운 생활이었지만 더이상 맘대로 쏘다니지 못하게 됐고, 그것이 또한 큰 불만이 됨.


강징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 편을 보는 시선이 적어지자 볼을 부풀리며 이맛살을 찌푸렸음.
강제로 소집된 자리는 대부분 운심 그룹과 관련되어 있었음.
오늘은 고소 그룹의 별장에서 전회장의 생신 축연이 열려서, 강징은 온가족과 함께 무려 세시간이나 걸려서 차를 타고 와야 했음.
그까지는 다소 피크닉같은 느낌이었지만, 겨우 차를 벗어나나 싶자 의자에 앉은 채로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됐음.
다른 사람들은 제법 자유롭게 움직이며 맛있는 케이크도 가져다 먹고 친한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고 하는데.
전회장이라든가 현회장이라든가 회장의 후계자 등등, 핵심적인 인물들만 모인 자리 끄트머리에 끼어 앉은 강징에게는 불알친구인 위무선도 다가오지 못할 분위기였음.
금방 구해 주러 오겠다더니, 거짓말쟁이.
강징은 속으로 애먼 위무선을 욕하며 입술을 삐죽거렸음.
자리에 앉은 뒤 1시간이 넘도록 외면하고 있던 왼편을 향해 고개를 슬쩍 돌리자, 저보다 더 답답해 보이는 정자세로 앉은 남망기가 눈에 들어옴.
조금씩 훔쳐보아도 전연 이 편을 보지 않길래 나중에는 대놓고 쳐다봤지만 그래도 그는 조금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거였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보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도 안함. 그냥 바른 자세로 앉아서 목상이라도 된 것마냥 1시간이 넘도록 마냥 앉아만 있는 거였음.
---혹시 나에 대한 불만을 저런 식으로 표시하는 건가?
강징이 의심을 할 정도로,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음.
첫만남을 포함하여 몇 번 다른 자리에서 만났을 때도, 남망기는 언제나 강징의 곁에 앉으면서도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음.
강징은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음. 위무선이 가까이 와 주면 용기를 내서 이 자리를 벗어날 시도를 해 볼텐데. 연화 그룹 사람들은 아예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주위를 둘러봐도 아는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음.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리던 강징은 그만 울화가 터지고 말았음.
아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자리에 앉아 있는데! 
강징은 다시 고개를 살짝 돌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정면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 남망기에게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음.
정략혼이라고 저렇게까지 싫은 티를 낼 건 없잖아? 누군 좋아서 여기 있는 줄 아냐고?
강징은 이미 남망기가 저를 싫어한다고 단정한 상태였음.
본래 짜증 잘 내는 저에게 쉽게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는데, 마음에도 없이 하게 된 결혼상대를 좋아할 이유가 있을 리 없음.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강징은 감옥같은 자리에서 놓여날 수 있었음.
아니, 사실은 주변에 앉았던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없는 용기를 짜내어 슬그머니 나와버린 것이지만.
그때까지도 남망기란 약혼자는 줄기차게 앞만 보고 앉아 있는 것을 곁눈으로 확인하며 강징은 얼른 밖으로 나가 인적이 드물어보이는 숲 쪽으로 이동했음.


과연 국내에서도 굴지의 기업에 속한 별장은 매우 넓었음. 
연회장을 벗어난 정원으로 가니까 사람이 없었음.
강징은 겨우 한숨을 돌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거닐기 시작했음.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오니까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음.
숲 쪽으로 면한 듯한 벽을 따라 걷다가 보니 나무로 된 문이 보였음.
강징은 별 생각 없이 문을 밀었는데, 잠겨 있지 않은지 그냥 밀리는 거임.
고개를 내밀고 보니, 문의 바깥은 바로 숲이었고 문으로부터 이어지는 산길이 보였음.
잠시 망설이던 강징은 사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저 편을 흘긋 본 다음 훌쩍 밖으로 나갔음. 
그리고는 좁은 등산로 같은 길을 어울리지 않는 정장 차림으로 걸어올라가기 시작함.



목적도 없이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흠칫한 강징이 폰을 꺼내 보니 위무선이었음. 
필요할 땐 안 오더니! 괜히 신경질이 난 강징은 통화를 거절한 후 아예 전원을 꺼버렸음. 
정면에서 산바람이 불어오는데 뭔지모를 청량한 향기를 가득 품고 있어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음.
이대로 계속 걸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이라도 좋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멀어질 순 없는 노릇이었지.
어느 순간 마지못한 듯 발걸음을 멈춘 강징은 비로소 뒤를 돌아보았음. 
그런데 주변이 좀 어두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어. 깊은 산 속은 생각보다 해가 빨리 저물었던 거임. 
강징은 서둘러 내려가기 시작했음. 
그런데 계속 오르던 길이란 건 어느 정도 사람이 걸었던 흔적이 있었던 것뿐이지 확실하게 닦아 놓은 길이 아니었고, 수시로 꼬불꼬불 이쪽 저쪽으로 휘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길인지, 아니면 그냥 나무가 듬성듬성해서 지나갈 수 있는 것뿐인지 긴가민가한 느낌이었음. 그래서 올라왔던 대로 내려가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함.
잠시 헤메는 동안 주위는 한층 더 어두워진 것 같았고, 이제는 겁이 나기 시작했음. 머릿속에서 산에서 조난당한 사람의 이야기라던가, 멧돼지와 마주친 사건 따위가 떠오르며 서두르다가 주르륵 미끌어진 다음에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음.
그래도 경사를 따라 부지런히 아래로 내려가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잘 가늠되지 않았는데, 문득 사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강징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지.
그런데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를 들어보니, 사람들은 강징의 이름을 외쳐 부르고 있겠지.
강징은 목숨을 건진 것처럼 반갑던 것도 아주 잠시였고, 깜짝 놀라 멈춰버리고 말았음. 그러고 보니 아직 폰이 꺼진 채였다는 걸 깨달음.
순식간에 조금 전까지의 생물학적인 이유와는 다른 사회적인 이유로 인한 근심이 덮쳐오는데, 그것은 목숨을 보존하고 싶던 때와도 별다르지 않은 중압감으로 강징을 짓눌렀음. 
무려 운심그룹 전회장의 생신 축연이라는 거대한 자리에서 온통 시끄러워질 만큼의 사고를 쳤으니. 
혹시 정략혼이 무산되는 건 아닐까? 회사간 협약 같은 거에 영향을 미친다던가?...
장난꾸러기 위무선에게 말려들어 같이 야단맞은 적은 있어도 혼자서는 어떤 반항도 해 본 적 없는 강징은 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불러제끼는 야단법석에 기겁을 함. 
생각없이 뛰쳐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어린애처럼 겁이 나서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치겠지. 
그 때 와작 하고 낙엽 밟히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 왔으니 새가슴이 되어있던 강징은 흐악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음.
“아......”
이내 소리의 정체를 깨달은 강징은 안심과 싫은 감정이 반씩 섞인 떨떠름한 소리가 흘러나왔음.
뜻밖에도 회색의 윤기나는 야회복을 입은 남망기가 마른 나무를 짚으며 나타났음.
강징은 냉한 눈빛이 저를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오자 놀라서 주저앉은 채로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음.
그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몸을 굽히며 손을 내밀자, 순간 쫄아서 얻어맞는 게 아닌가 싶었던 강징이 움츠러들며 손을 들어올렸음. 
하지만 남망기는 강징이 들어올린 손을 잡더니 가볍게 끌어서 일으켜세웠음. 그리고는 말없이 손을 잡은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함.
강징은 무척 거북했지만 주눅이 들어서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얌전히 끌려갔음.
아마 윗사람들의 압박에 몸소 찾으러 왔던 거겠지, 생각한 강징은 그가 직접 산을 올랐을 정도면 저 아래에서 소리치고 있는 사람들도 다 귀한 손님인게 아닌가 불안해 죽을 것 같았음.
강징의 짐작은 틀리지 않아서 내려가다가 마주친 사람들 중에는 별장의 고용인 외에도 잘 빼입은 남자들이 다수 섞여 있었음. 
사람들은 강징을 찾아낸 걸 알고 웃으며 다친 데는 없냐고 묻기도 하며 상냥하게 굴었지만 강징은 민망해서 죽을 것만 같았음.
물론 부리나케 달려온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고 분통이 터지게도 사고뭉치의 화신인 위무선에게까지 핀잔을 들었음. 
한편으로 운심 그룹 쪽 사람들은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두둔해줬지만, 양쪽이 다 불편한 강징은 천고의 죄인이 된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젖먹던 힘을 다해 인내할 뿐이었음.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망기가 제일 먼저 달려가서 찾아냈군요.”
화사한 분위기의 운심 그룹 후계자, 즉 약혼자의 형님인 남희신이 농담하듯 말하자 사람들이 웃으며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음.
그 말에 강징은 무척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남망기가 얄미워도 감히 눈총을 줄 수가 없었음.
그래서 바닥만 보는 채,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그에게 잡혀 얼얼해진 손목을 주무르며 마냥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