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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21:16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3

* 2편: https://hygall.com/594244407

* 챌린저스, 패트릭아트 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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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로셸은 뉴욕주의 웨스트 체스터 카운티에 있음. 아름다운 해안선, 많은 공원들. 대학교도 세 개(뉴로셸 칼리지, 아이오나 칼리지, 몬로 칼리지)나 있음. 이 지역의 유급률은 2%밖에 되지 않으며 전국은 물론 뉴욕주의 평균보다 훨씬 낮음. 이곳에 있는 공립학교 중 다수(이를테면 뉴로셸 하이스쿨, 대니얼 웹스터 마그넷 스쿨, 아이삭 영 미들스쿨 등)는 뉴욕주 교육부가 지정하는 우수학교(National Blue Ribbon School of Excellence)에 뽑혔음. 학군이 좋은 교육도시임. 
 

게다가 맨해튼까지 자동차로 삼십 분 거리인지라 직장인들에게도 베드타운으로 인기가 있음. 덕분에 90만 달러대의 고급 주택 거래도 빈번하지만, 뉴로셸 외곽을 지나가는 철도의 소음과 분진으로 주거 환경이 썩 좋지 못한 주택은 15만~23만 달러였음.


앞서 많다고 언급한 공원은 이 도시에 서른 다섯 개 정도 있음. 그 중 파이브 아일랜드 파크와 허드슨 파크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며, 테니스 코트도 서른 여덟 개나 있음. 개인 보트를 보관할 수 있는 대형 정박장도 있음. 


게다가 이곳에는 옛날부터 화가 및 작가 등 예술가들이 많이 살았음. 그들은 여전히 이 도시에 살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마련해 지역 커뮤니티에 도움을 주곤 했음.


이곳은 원래 시와노이 인디언들의 거주지였음. 이들은 롱아일랜드 해협의 풍부한 물고기를 주식으로 삼았음. 1688년에 위그노(프랑스 신교도)들이 이곳에 도착했고, 프랑스의 항구 도시(La Rochelle)를 생각하며 뉴로셸이라는 이름을 붙였음. 위그노들은 수로를 이용하여 뉴욕까지 자신들이 기른 농작물을 팔았음. 


나중에는 증기선이 뉴욕과 뉴로셸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갈 만큼 번성했음. 19세기에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차분한 분위기로 'Queen City of the Sound'라는 별명을 얻으며 여름철 리조트로 인기를 끌었음. 20세기 초에는 롱아일랜드 해협에 카지노가 생겨서 유명인사들이 많이 오가는 도시가 되었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항상 인기가 있었던 도시였다는 소리임.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는, 아이를 키우기 적합한, 은퇴 후 노년 생활까지 감안했을 때도 괜찮은 도시. 


특히 뉴로셸은 패트릭에게도 의미가 많은 도시였음. 이곳에서 아트와 뉴로셸 챌린저 결승전을 하기도 했거니와... 


"오랜만이네. 오늘은 틴더를 켤 마음이 없었나봐?"


자신의 대모인 아넬라가 있는 도시였거든. 아넬라는 바리스타로 작은 개인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음. 


위세가 대단한 가문의 후계자인 패트릭 즈바이크의 대모가 평범한 동네 카페의 사장님이라고? 어째서? 바로 패트릭의 어머니 때문임. 패트릭의 어머니와 아넬라는 이탈리아에 살고 있었음. 그들은 소꿉친구였음. 이탈리아로 여름 휴가를 보내러 온 패트릭의 아버지가 패트릭의 어머니에게 한눈에 반했음. 패트릭의 아버지에게는 다른 가문의 정략혼 상대가 있었으나 집안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약혼을 파기한 후, 이탈리아 북부에 살던 마을 소녀와 결혼했음. 


문제는 아넬라도 패트릭의 아버지만큼이나 패트릭의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것이었음. 패트릭의 어머니는 패트릭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음. 원래 몸이 약했던 분이었음. 대모인 아넬라가 패트릭을 전부 키우다시피 했음. 


패트릭의 아버지는 패트릭의 어머니가 산후열로 죽은 후에 패트릭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음. 패트릭이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임. 그때 아넬라가 없었으면 패트릭은 방임되었을 거임. 


패트릭의 아버지는 끝내 재혼하지 않았고, 아넬라가 패트릭을 도맡아 길렀으며, 소년이 된 패트릭은 기숙학교에 입학했음. 패트릭이 테니스에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아넬라가 패트릭의 아버지에게 조언했기 때문임. 


기숙학교에서 방학할 때마다 패트릭은 아버지가 계신 본가ㅡ영국ㅡ에 가기보다 아넬라가 살고 있는 뉴욕주, 뉴로셸에 갔음(패트릭이 기숙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넬라도 영국에서 떠났거든). 아버지에게는 '방학 동안 아넬라와 함께 있을게요'라고 전화로 통보했지. 


패트릭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탐탁찮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음. 어린아이라도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호의와 적의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음. 패트릭은 아넬라의 카페(이 카페는 아넬라가 자신의 먼 친척에게서 물려받았음)에서 지내는 게 좋았음. 이 도시의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지. 일층은 카페였고 이층은 주택이었음. 원래는 이층 주택이었으나 일층을 가게로 개조했음. 


어머니를 일찍 여읜 패트릭이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한 아이로 자란 건 아넬라 덕분이었음. 아넬라는 패트릭의 고민을 사소한 것부터 심각한 것까지 진지하게 듣고 상담해줬거든: 기숙학교에서 룸메이트로 만난 '아트 도널드슨'에 대한 고민까지도.


어느 날, 여름방학을 맞이한 패트릭이 아넬라의 카페에 들어와 짐도 풀지 않은 채로 대뜸 말했음.


'아트 도널드슨이 좋아요. 아트를 사랑해요. 하지만 아트는...'


아넬라는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패트릭, 곧 US 주니어 오픈에 참가할 소년을 바라보았음. 패트릭은 눈물을 후둑후둑 떨어트리고 있었음. 아넬라는 패트릭을 안고 다독였음. 


아넬라는 패트릭에게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늘어놓았음. ㅡ잘 들으렴. 이 이야기는 한 번만 할 테니까. 나는 네 어머니, 소피아를 사랑했단다. 네가 아트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지만 소피아는 네 아버지를 사랑했어. 네 아버지도 소피아를 사랑했으니 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소피아가 나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며 대모가 되어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웃는 낯으로 흔쾌히 수락했어. 하지만 나는, 패트릭, 언제나 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단다.


항상. 칼로 목을 그어서 죽이고 싶었고, 소피아가 죽은 그 빌어먹을 성에 불을 질러 죽이고 싶었고, 성과 인접한 바닷가 절벽에서 밀어 죽이고 싶었어.


패트릭은 그 말에 울음을 멈추고 자신을 안은 아넬라를 바라보았음. 아넬라는 패트릭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엄지로 훔쳐주었음. ㅡ그렇지만 그런 짓을 해버리면 천국에서 소피아를 볼 수 없겠지. 소피아는 분명히 천국에 있을 테니까, 나도 천국에 가야만 해. 그래서 네 아버지를 죽이는 대신 너를 길렀단다. 어쩌면 소피아는 알았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대모'라는 자격을 내게 주고 떠난 거야. 나에게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지. 


아넬라는 패트릭에게 마저 말했음. 


'패트릭,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죄가 아니란다. 하지만 그걸 명분으로 나쁜 짓을 해버리면 죄가 되지. 잘 생각하고 처신하길 바란다. 너는 소피아를 닮아 영특한 아이니까 할 수 있겠지? 지혜로운 소피아도 앞날을 내다보는 말을 종종 하곤 했단다. 마치 패트릭, 너처럼 말이다.'


패트릭은 머리를 끄덕였음. 그래서 패트릭은 아트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기 전까지 숨기기로 결심했음.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서 아트에게 막무가내로 고백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당황한 아트가 떠날 게 뻔했음. 자신을 멀리한 아트가 만일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친구를 죽여버릴 것 같았음. 아넬라는 대모라는 걸 소피아에게 받기라도 했지만, 자신은 받은 게 아무것도 없으니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충동을 자제할 수 없을 터. 


"경기 봤어. 잘 치던데?"
"아트에게는 졌는걸요."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법이야."


아넬라는 패트릭에게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건넸음. 8월 초답게 저녁 여섯 시가 지났어도 밖이 훤했음. 레모네이드를 마신 패트릭이 바 테이블에 턱을 괴었음. 


"......제 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실 겁니다."
"흠.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이네. 언제쯤?"
"한 달 내로 교통사고가 날 거에요. 방탄유리로 된 볼보 럭셔리 세단을 타고 다니더라도 주유소 탱크로리가 옆에서 들이박으면 방탄유리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네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으니 자식이라고는 너뿐이잖아?"
"예전부터 제 사촌이 가업을 이을 준비를 했어요. 덕분에 제가 테니스를 계속 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아넬라는 패트릭에게 초코칩이 큼지막하게 박힌 쿠키와 치즈 조각케이크를 건네주었음. 쿠키를 한입에 집어삼켜 우물거리던 패트릭이 말을 덧붙였음.


"...그 차에는 제 사촌도 같이 타고 있어요."
"사촌에게 전화해서 알려주는 게 어떻니?"
"그렇잖아도 전화해놨어요. 하지만 걔는 취직 대신 테니스를 선택한 주제에 271위밖에 못하는 루저의 잠꼬대라고 깔보면 깔보지, 제 말을 믿지 않을 걸요."


포크로 접시 위의 치즈 케이크를 쿡쿡 찌른 패트릭이 한숨을 쉬었음. 


"결국 즈바이크 가문에 '취직'하게 되겠구나. 안타깝지만 테니스는 내려놔야 하겠네."
"네. 사실... 그럴 것 같았어요. 조만간 선수 생활이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빈번하게 들었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랬구나."
"어쨌든 아트와 경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타시에게 코치해달라고 했던 부탁은 취소해야 하겠지만... 음, 역시, 아쉽네요."


아넬라는 그날처럼 패트릭의 등에 손을 얹고 토닥여주었음. 치즈 케이크 위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음. 


"그럼, 아쉽지. 아쉽고 말고. 누구에게든 유년기의 끝은 있는 법이란다. 무엇이든 끝나는 건 슬프지. 그래도 너는 서른 초반까지 그 꿈에서 살 수 있었으니 이 아넬라 '멍청이' 토르텔리보다 행운이라 생각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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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의 머릿속에 아트와 했던 모든 것들이 영화처럼 재생되었음. 그 푸르렀던 시절, 찬란한 젊음,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꿈, 그리고 짜릿했던 첫사랑. 
 

"아트에게 작별 인사는 하고 왔니?"


패트릭은 아넬라가 건네준 카페 냅킨으로 눈물을 슥슥 닦았음. 


"...US 오픈이 끝나면 하려고요."
"US 오픈? 예전에 그 주니어 경기에서 아트와 함께 우승했지?"
"맞아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아넬라는 패트릭에게 새로 치즈 케이크를 꺼내줬음. 패트릭이 한숨을 쉬었음. 


"아넬라, 지난번부터 말했잖아요. 아넬라가 만든 치즈 케이크는 너무 진해요. 치즈 '케이크'가 아니라 치즈 '그리시니Grissini' 같다고요." 


(*그리시니: 긴 막대 모양으로 수분 함량이 적어 딱딱하고 단단한 이탈리아 빵. 담백하고 짭조롬한 맛을 가지고 있음.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와인과 함께 가볍게 먹음)


아넬라는 패트릭의 불평이 들리지도 않는지 패트릭에게 강요했음. 


"편식하면 나쁜 아이란다."
"제 나이가 벌써 서른... 아, 알았어요. 먹을게요. 먹으면 되잖아요."


패트릭은 비장한 표정으로 포크를 꽉 쥐었음. ㅡ대신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실래요, 아넬라?


*


US 오픈은 아트 도널드슨이 참가한다는 소식으로 연일 화제였음. 드디어 아트 도널드슨이 US 오픈까지 제패할 수 있을 것인가! 테니스 업계에 몸담은 이들과 테니스 선수, 선수의 팬들은 하나같이 아트 도널드슨을 입에 올렸음. 매스컴에서는 뉴로셸 챌린저 결승전에서 대단히 멋진 승부를 펼쳤다며 아트 도널드슨의 기량이 전성기로 돌아왔다고 떠들었음.


아트 도널드슨의 첫 경기는 아트의 승리로 끝났음. 경기 중간에 약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긴 했으나, 금세 본인의 페이스대로 침착함을 되찾았음. 사람들은 아트가 그간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한 성과가 나타난 거라고 짐작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음. 관객석에 아넬라가 앉아있는 걸 아트가 발견했기 때문임.


아트는 아넬라를 알고 있었음. 기숙학교 시절, 서로의 가정에 대해 말하다가 패트릭이 자신의 대모라며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거든. 자상하지만 엄격할 때는 엄격한 대모라고 말했었음. 


사진으로만 봤던 그 아넬라가 관객석에 앉아 있었음. 하지만 패트릭은 보이지 않았음. 패트릭이 자신을 대신하여 아넬라를 보낸 까닭은 응원하기 위해서겠지. 패트릭 본인이 아트를 응원하러 올 수는 없었음. 왜냐고? 만일 저 관객석에 아넬라가 아니라 패트릭이 앉아있었다면, 아트는...


'ㅡ기분 좋지? 그래, 그래. 키스해줄까? 입 벌려. 그렇지, 잘 하네. 조금만 더 허리를 들어봐.'


타시의 말대로 단순해질 수 없었을 테니까. 이 경기에, 지금 현재에 충실하기보다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 여념이 없었을 테니까. 


패트릭과 처음으로 몸을 섞은 경험은 너무나도 강렬했음. 사춘기를 겪는 소년처럼 느닷없이 패트릭과 호텔에서 보냈던 밤이, 그 쾌감이 생생하게 떠올랐음. 불쑥불쑥 떠오르는 기억을 멈출 수 없었음. 이제 갓 성적인 자극에 눈을 뜬 어린애도 아닌데, 패트릭과의 첫 경험은 뇌리에 끈질기고 지독하게 남았음.


경기가 끝난 직후 아넬라는 아트를 쳐다보았음. 살며시 미소 지은 아넬라는 관객들 틈에 섞여 퇴장했음. 경기장에서 나와서 대기실로 내려간 아트는 패트릭에게 문자를 보냈음. 


[이겼어.]
[잘했어, 아트.]


잠시 머뭇거리던 아트가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자판을 하나씩 하나씩 눌렀음.


[결승전에는 아넬라 말고 네가 와줬으면 해.]
[아니, 안 갈 거야. 내가 가면 내 얼굴 보느라 공도 못 칠 텐데?]
[허세는.]
[US 오픈에서 우승하면 갈게. 꼭 타시의 소원을 들어줘.]


그리고 나의 마지막 부탁도. 라고 적으려다가 만 패트릭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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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의 가정사는 자의로 설정함. 


* 타싸 올린 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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