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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01:11
크리스배리네 피트로 이 구역의 놀이터 대장을 꺾고 대장의 자리를 노리는 피트 미첼 씰 시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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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배리네 피트로 아무래도 톰이 이상한 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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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변화무쌍한 삶에 있어 너무도 무겁고 진부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그를 본 순간, 품고 있던 신념이 무색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 인생은 이 사람으로 가득 차겠구나. 




언젠가 톰이 시니어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읽었던 구절이야. 서재에서 동화책을 가져온다는 것이 함께 딸려온 모양이지. 그 일기장에는 아직 젊었던 시절의 시니어가 슈슈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열정적인 감상도 쓰여 있었어. 사실 그 감상이 이상한 건 아니지. 시니어는 여전히 슈슈를 볼 때면 세상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바라보듯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빛을 보내곤 하거든. 


어린 톰은 궁금했어. 한 사람에 온 마음을 빼앗기는 느낌은 어떤 걸까? 그런 건 역시 어른이 되어야 알 수 있겠지?
그리고 톰은 피트를 만났어. 


두근두근, 콩닥콩닥.
사랑이었어. 



아가들의 풋사랑은 늘 그렇듯 한때 취급 받는 법이야. 그런 의미로, 처음 톰에게서 좋아하는 아이 얘기를 들었을 때 시니어와 슈슈는 퍽 귀엽다고 생각했지. 아들이 조숙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벌써 사랑이라니! 부모의 입장에서 좋아한다는 그 애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쩌다 좋아하게 됐는지도 궁금했어. 그러면 톰은 애써 아닌 척 하더니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쑥스럽다는 듯 말하는 거야.


피트는 너무 귀여워요. 용감한 다람쥐 같아요.


하고.



그 귀여운 다람쥐가 톰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좋아하는 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던 두 눈동자가 요 며칠 풀이 죽어 있어. 처량하게 어깨를 늘어뜨리고 비맞은 고양이처럼 우울해하지. 시니어와 슈슈가 톰에게 물으니 톰이 이렇게 말했어. 피트가 절 피해요. 제가 싫어졌나봐요. 


톰은 정말 피트에게 잘해주었어. 잘해주는 데에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지. 피트를 떠올리면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거든. 피트를 감싸주고 안아주고 다정하게 웃어주는 건 톰에겐 너무도 숨쉬듯 당연한 일이었단 말야. 귀여운 피트, 예쁜 피트. 피트의 손을 잡아본 적도 있는데,그 손마저 톰의 손에 비하면 너무 작아서 절로 웃음이 나올 만큼 사랑스러웠던 기억도 나지.


그런데 피트가 어느날인가 톰을 피하기 시작했어.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이유를 몰라. 그냥 갑자기 자기가 이상해졌다고만 했대. 뭐가 어떻게 이상해진 건지도 몰라. 다른 애들하고는 곧잘 어울리면서 톰만 보면 도망가기 바쁘지. 톰은 이해할 수 없었어. 차라리 왜 그러는 지 이유라도 알면 좋을텐데. 


시니어와 슈슈는 울적해하는 톰을 토닥여주며 서로 시선을 마주했지. 아이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때 문득, 슈슈가 말했어.


토미. 우리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니? 


톰은 잠시 말이 없었어. 그러다 큰 소리로 한 번 훌쩍이곤 고개를 들었어. 회색 눈동자가 다시 반짝였지. 


…아니요. 제가 피트한테 물어볼래요. 


한참을 울적하게 있다보니 이젠 뭘 해야 할 지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게 또 한 뼘 자라난 아들을 바라보며 시니어와 슈슈는 빙그레 웃어보였어.





나, 도저히 토미를 못 보겠어.
왜?


한편 평화로운 놀이터에서 구스와 피트는 시소를 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 사실 이 문제를 처음 꺼낸 건 구스야. 애들이 구스의 등을 떠밀었거든. 요새 왜 톰과 피트 사이가 별로인 거야! 네가 알아 와! 하고 말야. 구스의 질문을 받은 피트는 뜻밖의 답을 꺼낸 채 파란 하늘을 등지고 올라갔어. 그의 표정은 시소를 타서 신난다기보단 n살의 근심으로 가득 젖어 있었지. 


있잖아. 토미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숨을 못 쉬겠어.
뭐어?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주사 맞으면 낫지 않을까?
아니야! 토미 앞이 아니면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꾀병인 줄 알면 어떡해.
웅? 그래? 그럼 톰 손 잡고 병원에 가면 되지!


통, 위로 올라갔던 구스가 내려가고, 다시 피트가 통, 하고 올라갔어. 


토미랑 손을 잡고 병원에 가?
그래! 그리구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되지! 톰 앞에 서면 숨을 못 쉬겠어요, 하고 말야.
와…. 진짜 똑똑하다. 구스. 그런데 토미 손 잡고 병원에 가다가 내가 숨 못 쉬고 쓰러지면 어떡해?
어…. 그러면 내가 톰을 데리고 갈게! 피트가 먼저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있으면 내가 톰을 데리고 짠 하고 들어오는 거야. 어때?
구스는 대단해!


뭔가 핀트가 묘하게 나간 대화 앞에서 두 아이는 만족스럽게 웃었어. 이걸 엄마랑 아빠한테 말해야겠다며 얼른 시소에서 뛰어 내리는 피트에게 구스가 외쳤지. 같이 가! 피트! 하고 말야. 구스는 피트가 자신의 멋진 계획을 설명하는 걸 옆에서 도와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막상 도넛 가게로 돌아와 멋진 계획을 설명하는데 피트 부모님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거야. 특히 피트네 아빠 표정이 볼 만 했지. 손에 쥐고 있는 도넛 반죽은 구스가 엉망으로 빚었던 찰흙처럼 망가지고 있었고 말야. 피트네 엄마는… 웃고 싶은 걸 참는 얼굴이야. 이상하지. 구스와 피트는 서로 마주 보며 의아해하는 동안 배리는 가볍게 웃으며 크리스에게 속삭였어. 자기야, 얘들 너무 귀엽지? / 귀엽기는, 덤앤더머구만. 크리스가 퉁명스럽게 답하며 망가진 도넛 반죽을 수복하는 사이 배리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말했어. 


얘들아? 우리가 이 멋진 계획을 실행하기 앞서서 한 가지. 피트의 병이 병이 아니면 어떡하지? 
병이 아니야?
어떻게 병이 아니예요?
있잖아. 너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을 못 쉴 수 있거든.


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지. 묘하게 충격을 받은 듯한 구스가 피트를 돌아보며 물었어.


피트. 톰이 많이 좋아? 나보다? 내가 널 더 많이 도와줬는데?
아니야! 구스도 참 많이 좋아해! 
우리 계속 친구지?
응! 우린 계속 친구야!


피트가 얼른 구스를 꼭 안았어. 충격에 휩싸인 구스를 달래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이제 배리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어깨를 떨고 있었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모양새를 보며 크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 내 새끼라지만 어려서 그런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 그 옆에 아기 거위까지 합쳐서 말야. 피트와 구스가 서로의 우정을 다지는 동안 문득 가게의 문이 열리고 씩씩하게 어린 꼬마가 들어왔어.


안녕하세요! 저는 피트 친구 톰….


톰은 채 말을 잇지 못했지. 피트와 구스가 부둥켜 안은 모습을 보고 말았거든. 톰의 눈이 동그래졌고, 피트의 눈도 동그래졌고, 구스의 눈도 동그래졌어. 피트가 얼른 구스를 밀쳐냈고, 구스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톰과 피트를 번갈아보았어. 피트? 톰이 이름을 부르자 피트의 얼굴이 다시 빨갛게 변했지. 가슴이 다시 두근두근하기 시작했어.물론 톰은 피트의 얼굴이 잘 익은 토마토가 되는 걸 실시간으로 보았어. 피트는 얼른 도망가려고 몸을 돌렸지. 그걸 가로막은 건 구스야. 


피트! 왜 그래?! 숨이 안 쉬어져?!
구스. 나 지금 나갈래!
어디 가! 톰이 왔는데!
구스. 나아! 나가야 돼에!
또 많이 아파? 톰이 너무너무 좋아서?!


여전히 눈치라곤 없는 구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어. 톰의 눈이 더욱 커졌고, 피트의 얼굴은 더욱 빨개졌고, 크리스의 미간 주름은 깊어졌으며, 배리는 웃음을 참다 못해 이젠 거의 울고 있었어. 


아이들 사이로 파란이 휩쓰는 오후의 일이었어.




...


본의 아니게 대리고백해주신 닉 브래드쇼 군(n세)
애기들아 빨리 사랑을 해라 ㅋㅋㅋㅋㅋ



#아이스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