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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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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계 아닌 궁중물



후일담
 
 
강징은 불단앞에 앉아서 제 죄를 참회하고 속죄하다가 상궁이 들어와 고하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음. 공주가 갑자기 열이 펄펄 끓고 토사곽란이 심하단 이야기였지. 강징이 사색이 된 얼굴로 잠시 뭔갈 고민하는듯 하더니 태의를 부르기 전에 양심전으로 가서 폐하를 뫼시고 오라고 명함. 상궁이 그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강징이 급한 걸음으로 공주가 있는 곳으로 갔어. 유모가 자지러지게 우는 공주를 안아서 달래다가 강징을 보고 급히 인사를 올림. 강징이 유모에게서 공주를 건네받아 이마를 짚어보니 이마가 불에 덴듯이 뜨거웠음. 잔뜩 울상인채로 숨이 넘어갈듯이 우는 공주를 안아서 달랬어. 공주의 옷을 모조리 벗겨서 열을 내리게 하는 좋을것 같단 말을 듣고는 아이를 요람에 눕혔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옷을 손수 벗기고 유모가 건네준 미지근한 물에 적신 영견으로 몸을 닦아서 열을 내리려고 함. 공주가 많이 아픈지 보채며 울자 강징이 눈물이 그득 괴인 눈으로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어. 잠시후에 공주가 지쳐서 잠이 든것을 눈으로 확인하곤 아이를 품에 안곤 자장가를 부름. 그때 문이 열리고 망기가 들어와서 유모를 나가게 하고 말없이 강징의 어깨를 끌어안았어. 강징이 그제야 꾹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아잠 우리 아기가, 공주가 잘못되면 어찌 하냐고 말을 하는데 망기가 우리 아기라는 말에 흠칫했다가 공주는 괜찮을거라고 안심을 시킴.
 




강징은 승건궁의 서쪽에 있는 전각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망기가 들어오는걸 보고 불안한 표정으로 공주는? 태의가 뭐라고 했냐고 물었음. 망기로부터 이맘때 아이들이 하는 흔한 병치레란 말을 듣고나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쉼. 강징은 내내 긴장을 한 까닭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다가 망기가 재빠르게 부축하자 거칠게 밀침. 그리곤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무정한 것 같으니! 아이가 아픈데 뭐가 그리 좋아서 웃고 있는게야! 아이가 어찌되든 상관이 없느냐? 이제 아이의 존재가 쓸모가 없어진것이냐고 소리를 버럭 지름. 망기가 그 말에 대꾸를 하지 않다가 강징을 와락 끌어안고 다시 한번 말을 해달라고 아이처럼 졸랐어. 강징이 무엇을? 하고 물으니 망기가 우리 아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번만 더 그리 말해달라고 하는 말을 듣고 눈앞이 캄킴해짐. 강징이 울컥 치미는 화를 겨우 삼키고 그 말이 그리도 좋았느냐? 하찮은 말 한마디에 아이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사라질만큼 좋으냐고 물었어. 아이가 아프지 않니. 네가 아비라면 응당 아이 걱정부터 해야지. 우리 아잠은 언제쯤이면 철이 들꼬. 네 나이가 이립이 넘은게 맞느냐? 하는 짓은 영락없는 어린애인데 말을 늘어놓다가 한숨을 쉬었음. 그리고는 아이를 둘이나 키우는 기분이라며 못마땅한듯 혀를 차고 망기를 떼어냄. 그리고는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물러가라며 밖으로 나와버림.



강징은 침전으로 와 배가 고픈지 칭얼거리는 공주를 안고서 둥개둥개 어르다가 유모가 가져온 미음을 후후 불어서 식힌 다음 천천히 떠먹였어. 공주에게 미음을 먹이고 등을 두드려 트름을 시키고 태의가 처방한 탕약까지 떠먹이니 진이 다 빠짐. 또 열이 오르기라도 할까 아이를 요람에 눕혀놓고 차가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가만히 지켜보았음. 그때 문이 열리고 망기가 들어와선 말없이 옆자리에 앉더니 강징의 어깨에 슬그머니 머리를 기대었음. 강징이 그런 망기를 힐끔 쳐다보곤 힘이 빠진 목소리로 어릴적 너도 종종 이렇게 갑자기 열이 오르곤 했단다. 그럴때마다 내 애간장이 남아나질 않았지. 생떼같이 귀한 자식을 열병을 잃기라도 할까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노심초사했었다. 혹 내가 친어미가 아니라 너를 돌보는데 소홀해서 그런건 아닐까. 폐하께서 이번 일로 나를 책망하면 어쩌나. 폐하의 책망을 받아도 좋으니 네가 얼른 나았으면 했어. 아잠 넌 이 어미의 심정이 어떤지 죽었다 깨도 모를게야. 난 네가 원하는걸 줄수가 없단다. 너도 알잖니. 그러니 다른 여인과 사이에서 후사를 보거라. 여인이 싫으면 이 어미처럼 아이를 낳을수 있는 사내라도...강징은 망기가 듣기 싫다는듯 입을 맞춰와서 말을 채 잇지 못했어. 망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가만히 입맞춤을 받고 있는게 의아해서 몸을 떼내고 살펴보는데 강징이 하늘이 무너진듯한 표정으로 울고 있어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음. 강징이 하염없이 울면서 손을 내밀어 망기의 뺨을 쓰다듬고는 이 어미가 너의 결핍을 채워주지 못해서 그런게지? 그래서 네가 이런 그릇된 애정을 품은게야. 그렇지? 네가 아직 진심으로 연모하는 이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것이니 너무 자책할 필요없다. 이 어미가 귀태비에게 일러 네 비빈으로 들일 이들을 물색하게 하마. 강징의 말에 망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강징을 노려보았어. 황후와 후궁들이 가엾다고 할때는 언제고 어떻게 내게 또 후궁을 들이라는 말을 하실수가 있습니다. 마음대로 하세요. 후궁? 몇명이고 원하는대로 들이시란 말입니다. 당신처럼 황제의 시침 한번 들지 못하고 청백지신으로 살다가 의지할 친자식 하나 없는 미망인으로 늙어 죽게하고 싶으시거든 그리 하세요. 강징은 모진말만 남기고 나가버리는 망기를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눈을 감음.





그로부터 며칠후에 사윤은 양모의 거처인 수강궁에 문안인사차 갔다가 공주가 요람에 누워 오수에 든것을 보고 요람에 기대어서 누이가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봄. 아가 모친은 잘 계시니? 모친은 여전히 아름다우시지? 넌 모친이랑 함께 있으니 좋겠구나. 이 오라비처럼 나자마자 모친이랑 떨어져서 지내지 않아서 다행이다. 너도 모친의 정을 모르고 자라면 어찌하나 했는데 너는 양친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자랄걸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단다. 아가 난 네가 조금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 네가 나처럼 말도 늦되어서 나를 숙부가 아니라 오라버니라고 불렀으면 싶어. 너 그거 아니? 이 오라버니는 부친을 형님이라 부르며 자랐다는걸. 모친은 태후마마하고 불렀는데 넌 어머니하고 부를수가 있겠구나. 사윤은 잠든 공주에게 신세한탄을 하듯 말을 건네다가 뒤에서 누가 어깨를 짚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남. 귀태비가 사색이 된 얼굴로 사윤의 팔을 붙잡고 아윤 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그치듯 물었음. 사윤이 당황해서 공주에게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고 얼버무리려다가 귀태비가 네 모친이 태후인걸 알고 있었냐는 말에 멈칫함. 사윤이 되려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시냐고 묻는데 귀태비가 그 말에 몹시 어지러운듯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나한상으로 가서 앉았음. 사윤이 궁녀를 불러서 차를 내오게 하고 모두를 물린 다음에 귀태비의 손을 붙잡고는 어머니도 제 생모와 생부가 누군지 알고 계셨냐고 재차 물었어. 귀태비가 음울한 낯빛으로 사윤을 쳐다보다가 무거운 입을 열었음.




사윤은 수강궁을 나오다가 마침 수강궁으로 오던 황제의 행차를 맞닥뜨림. 망기가 사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어가에서 내리는데 사윤이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며 품에 안겨드니 무척 당황스러워 함. 태감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나서야 사윤이 겨우 울음을 그쳤음. 망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사윤이 말을 더듬으며 모친을 궁에서 내보내달라고 하겠지. 그 말에 눈치가 빠른 태감이 재빠르게 자리를 비켰음. 망기가 굳은 얼굴로 일단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며 사윤일 수강궁안으로 데리고 감. 망기는 서모인 귀태비에게 인사를 올릴 겨를도 없이 궁인들을 모두 물리고 사윤일 우선 자리에 앉힘. 사윤이 훌쩍이다가 귀태비에게 들은 말들을 꺼내는데 그 말을 들은 망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음. 망기가 겨우 표정을 갈무리하고 사윤에게 네가 이리 울면 짐이 가슴이 찢기는것만 같으니 울지 말라고 안아달램. 그리고는 조만간 모친을 만나게 해줄테니 당분간은 바깥 출입을 하지 말고 왕부에만 있으라고 만하곤 태감을 불러 왕야를 모시고 나가라고 함. 망기는 그 길로 귀태비를 찾아가서 어찌 사윤에게 그런 말씀을 하였냐며 따져물음. 귀태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지금 이 사람을 책망하는거냐며 눈을 치켜떴음. 황제가 양모를 겁간하지만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가 한숨을 쉬곤 지금이라도 궁밖으로 내보내서 여생만큼은 편히 살게 해달라고 말함. 망기가 그 말에 마마만큼은 제 마음을 이해해주실줄 알았다고 하는데 귀태비가 답답한듯 이 사람이 황제의 마음을 이해한들 뭐가 달라진답니까. 그이의 성정을 어찌 그리도 모르십니까? 수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선황을 연모하는 마음을 버리진 못할겁니다. 황제의 곁에 억지로 붙들어놓고 설령 몇번이고 아이를 더 낳게 해도 지금과 똑같을거란 말이니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귀태비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용포의 소매를 걷고 팔에 남은 상흔을 쓰다듬으며 말했음. 이렇게 자해를 할 정도로 그이에 대한 애정과 죄책감이 크단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제 그만 놓아버리세요. 그대를 위해서라도 그만 하셔야 합니다. 망기가 누이같은 귀태비의 말에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돌아섰음.




강징은 공주가 옹알이를 하는것을 보고 기특해하며 헝겊 인형을 흔들며 놀아주었어. 불혹이 다된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려니 심신이 무척 고되기는 했지만 아이의 존재 자체가 큰 기쁨이었지. 강징은 언제 아팠냐는듯 씻은듯이 나은 공주를 안고 나가서 화단에 심은 꽃들을 보여주며 속삭였음. 우리 아가 조금만 천천히 자라거라. 이 어미랑 오래오래 함께 하려면 천천히 자라야 해. 아가 너를 보내고 이 어미가 어찌 살까? 우리 예쁜 공주. 강징이 제 품에 안겨 방싯방싯 웃는 공주의 뺨을 간질이며 그리 말하는데 언제 온건지 귀태비가 공주가 장성해서 하가할때까지 키우면 될것 아니냐며 말도 못하는 어린것에게 쓸데없는 소릴한다며 핀잔을 주었어. 강징이 귀태비를 본체만체하며 공주를 안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귀태비가 사윤이 모든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걸 듣고 걸음을 멈춤. 강징이 굳은 표정으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하기도 전에 귀태비가 다가와서 사윤이 제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고 작년에 오라버니와 황상이 자녕궁에서 다투는 것을 보고 사실을 알았다고 제게 털어놓았다고 말했음. 강징이 그 말에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작년의 일을 떠올리다가 반쯤 정신이 나가 불당에서 개처럼 흘레붙어 몸을 섞은것을 기억하곤 다리에 힘이 풀려 공주를 안은채로 뒤로 넘어짐. 귀태비가 놀라서 공주부터 살피는데 공주가 놀란건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함. 강징이 공주를 안은 귀태비의 팔을 붙잡고 사윤에게 아니라고 했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네가 오해한것이다 그리 말했느냐? 사윤이 생모를 궁금해하거든 생모는 비천한 신분의 궁녀라고 하기로 했잖느냐. 승건궁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던 신분이 낮은 궁녀였는데 춘정에 동한 폐하의 하룻밤 상대로 회임을 한것이라고 그리 말하기로 입을 맞추지 않았냐고 함. 귀태비가 한숨을 쉬며 죽은 노상궁이 사윤에게 사실을 다 말해주었다고 이야기함. 강징은 황상도 사윤이 사실을 아는것을 알고 있단 귀태비의 말에 미친 사람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귀를 막으며 거짓말하고 소리를 지름.



그 시각 망기는 양심전에 있는 서재에서 선대 황제인 청형제가 남긴 친필 유언을 다시 읽는 중이었음. 세상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비밀 유언장이었지. 선대 황제가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붕어하기전에 망기에게만 몰래 남긴 유언장이었어. 유언장에는 황제의 유고시 지체없이 황귀비 강씨의 개가를 명한다는 이야기와 그 상대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적혀 있었음. 강징이 자진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 이미 궁밖에서 다른 사내와 혼인하여 아이들을 여럿 낳고 명문세가의 다른 이들처럼 화목한 가정을 꾸렸을거야. 망기는 부친에게서 이 유언장을 받을때만 해도 강징이 행복해지는 것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기에 국상이 끝나면 부친이 정해준 상대에게 개가를 시키려고 했었거든. 선대 황제의 시신이 안치된 영전에서 비수로 목을 찔러 자진을 하려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말이야. 그게 강징을 평생토록 궁안에 제 곁에 묶어둘 이유가 된거겠지. 그리고 죽어도 씻을수 없는 대죄이고 패륜임을 알면서도 저를 키워준 양모를 범해 기어코 아이를 가지게 만든 이유였음. 강징은 실제로 황제가 죽은 이후 살아갈 이유를 잃었고 점점 죽어가고 있었어. 언젠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테고 그 죽음을 결코 용납할수가 없었음. 그래서 망기는 대죄인 패륜을 범해가며 저 자신을 영원히 꺼지지 않을 생지옥의 화마로 내던진거였음. 아이가 생긴다면 죽지 못할거란 것을 알았으니까. 망기는 강징이 아이를 지우지 못한 이유를 알고 있었음. 제 아이여서가 아니라 선대황제의 자손이기에 지우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야. 망기는 유언장을 자개함에 넣으려다가 위장택의 자 위무선이라는 문구를 보고 씁쓸하게 웃었음. 이제는 강징이 살아갈 의지를 보인다고 해도 절대 놓아주지 않을거야. 만고에 둘도 없는 패륜아로 수천년동안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영영 제 품에서 놓아주지 않기로 다짐을 했음. 그리고 제 부친이 강징에게 주지 못했던 유이를 다 줄 생각이었지. 남씨와 강씨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에게 황위를 주는것과 모의 천하인 황후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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