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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0 16:48

고증? 없음

대감집 아씨 모시는 호위무사 명헌이
출신은 한미하지만 차분하고 우직한 성품에 언제나 묵묵히 제 할일 하는 모습을 주인집에서 좋게봐주고 아낌
그집 하나뿐인 고명딸 호위도 어릴 때부터 맡김
주인 부부를 닮아 사람 잘 믿고 성품이 고운 애기씨는 어릴때부터 명헌을 제 아랫것이 아닌 믿을 수 있는 친척 오빠정도로 여기고 따랐음
명헌이 제 진짜 오빠가 아닌 걸 안 날, 어린 애기씨 두 눈에 눈물 그렁그렁한 걸 달래주느라 명헌이 꽤 고생한 적있음
아무튼 그렇게 잘 지냈는데

문제는 그 애기씨가 다 커서 시집갈 때 일어남
결혼식 다 마치고 신방까지 가서 앉아있다가 자기 결혼 못하겠다고 눈물 펑펑 쏟는 애기씨
몸종들도 붙어가지고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애쓰는데 명헌이 뚜벅뚜벅 걸어와서 애기씨 번쩍들어다 담장너머있던 현철한테 들려줌
몸종들 다 ? 이러고 있는데 일단 친정가서 좀 쉬고 다시 생각해보자면서 달래니까 애기씨 그제서야 눈물 멈추고 고개 끄덕임
졸지에 인간 가마가 된 신현철 한숨 푹쉬고 애기씨 들쳐업은채로 집으로 뚜벅뚜벅 돌아감

근데 애기씨 달랜건 좋은데 이제 뒷수습을 어떻게 하냐고
일단 명헌이 친 사고니까 자기가 수습하겠다고 사람들을 물림
엉망이 된 신방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는데 누가 요란하게 신방으로 들어오다 우당탕 쳐서 호롱불 넘어뜨림 신랑인가 싶어서 말거려는데 상대가 다가오지도 않고 저쪽에 가만히 있음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명헌 더듬더듬 호롱불 쪽으로 가는데 어둠속의 상대가 후다닥 막아서더니 손목을 턱 잡고

- 자, 잠깐만 이렇게 있으면 어떠겠소? 그러니까,
- ...용
- 용?

괴상한 대답에 상대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 명헌은 단숨에 상대를 제압함
푹신한 비단 이불위로 상대가 으억. 하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 사이 불을 켠 명헌이 촛대를 들이대는데

- ...?

뭔 매끈하게 잘생긴 어린 청년이 식은땀 뻘뻘 흘리면서 어쩔줄 모르다 저를 보고 눈을 댕그랗게 뜸

- ...저승사자?

음산한 표정으로 낯을 구기고 있는 명헌에 대한 감상이라면 적절했음. 그도 그럴게 눈 앞에 있는 녀석이 아까 그 신랑이 아니었으니까.

- 누구지용. 

명헌의 낮은 목소리에 흠칫 놀란 청년이 입술을 삐죽대더니 울컥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옷을 정리하고 일어남

- 그, 쪽이야 말로 누구시오? 신방이라고 들었는데 왜,
- ...
- ...혹시 진짜 신부?
- 겠나용
- 그렇죠? 휴우! 다행이오. 사실 저희 형이, 그러니까 신랑이 도망갔어요.

명헌은 맥이 탁 풀려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음. 자신을 정우성이라고 밝힌 이집 둘째 아들(추정)은 긴장이 풀렸는지 제 옆에 붙어앉으며 재잘재잘 말을 늘어놓기 시작함 

사실형은원래결혼하기싫다고했는데요왜냐하면검을진짜좋아하거든요저도검쓰는건어디가서못지않은데사실조금만더있으면형도따라잡을거거든요그런데이번에형이산으로수련하러가고싶다고했는데부모님은반대하시죠당연히마침혼담이들어와서이참에형도집에묶어두려고했는데갑자기도망을친거에요저도모르게저도산갈거면데려가달라고했는데진짜너무하죠형이몽구한테뇌물까지주고아몽구는우리집강아지이름이에요

명헌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우성을 봄. 저 밑도끝도없는 생기와 보송한 솜털을 보니 몸만 컸지 어린티가 확 났음. 제 부모님이 왜 도망친 형 대신 저를 신방에 밀어넣었는지도 모르는 눈치임. 이러면 차라리 얘기가 쉽겠는데. 마른세수를 몇번한 명헌은 벌떡 일어남. 

- 어디 가세요?
- …밖에. 내일 날 밝으면 기별을 넣겠소…용. 
- 날이 밝으면 가시지, 어디 계시게요?!

우성이 벌쩍 일어나서 허둥지둥 명헌의 옷깃을 잡음

- 그러지 말고 여기 같이 계세요. 
- 신방에서 그럴 순 없지용. 
- 어, 어차피 신랑신부 대신인데 괜찮지 않나요?!

우성은 아예 두손으로 명헌을 부여잡고 어쩔줄 모름
명헌은 얘가 왜이러냐는 표정으로 저보다 살짝 높은 얼굴을 바라봄. 이마가 시원시원하고 코끝이 뾰족하니 새삼 잘생기긴 했는데, 이 얼굴이면 애기씨가 좋아할수도 있겠네용… 아무튼 그건 그거고. 명헌은 호위무사답게 방 밖에서 밤을 새울 생각으로 발을 떼었는데

- 안돼요!!

이놈의 정우성이 무슨 생각인지 명헌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이불위로 끌어당김. 그 짧은 순간에도 호위무사답게 방향을 틀어 제가 먼저 안전하게 착지한 명헌은 제 가슴팍위에 기어올라온 우성을 황당하게 바라봄
두툼한 가슴 위에 볼을 붙인 우성은 아무말이나 내뱉기 시작함

- 저, 저희는 신방에 있으니까 그, 그 의무를 다해야 하댔어요 아니면 삼신할미가 노한다구…
- 난 남잔데 삼신할미가 왜 노하지용.
- …! 그건…

입술을 달싹거리는 우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파래졌다 난리가 났음
아무리봐도 뭘 모르고 들어온 것 같은데… 눈만 꿈뻑거리던 명헌은 입을 엶

- 해봐용. 그럼
- 에?
- 해보라고. 의문지 뭔지용.  

그러자 홍시보다 새빨개진 우성이 명헌에게 천천히 얼굴을 내림. 가까이 다가오자 긴장으로 떨리는 숨결이 지척에서 부서지는 게 느껴짐. 꼬옥 감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그렇게 간신히 닿은곳이 겨우

쪽. 

얇은 입술 끝이 말랑한 명헌의 입술위로 닿음. 정 가운데도 아니고 입꼬리쯤. 워낙 입술이 두툼하니 거기도 입술위긴 하지만 
짧은 입맞춤을 마친 우성이 눈을 떠 명헌을 바라봄. 마치 확인 받으려는 듯 여러번 깜빡이는 모습이 퍽 사랑스러웠지만, 명헌은 참지 못하고 푸하. 웃음을 터뜨림

명헌의 시큰둥하던 눈이 반달같이 휘어지고 묵묵하던 입매가 부드럽게 풀리는 걸 바라보며 우성은 그저 멍해졌음. 입맞춤도 견디기 어려운 자극인데 웃는 모습까지 보니 머리속에 장터 폭죽보다 요란한 축포가 팡팡 울리는 것 같아서
명헌이 한참 더 배워야겠네용. 하며 저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킨 것도 모르다가 뒤늦게 퍼뜩 깨닫고,

- 이름, 이름 알려주세요! 

우성이 그렇게 외쳤을 때 명헌은 이미 방을 벗어나 어둠속에 몸을 숨긴 후였음

- 반했다고 말도 못 했는데...

우성이 울상으로 중얼거렸지만 그런다고 이미 떠난 명헌이 돌아오지는 않았음



아무튼 그 뒤로 명헌이네 애기씨와 정씨네 첫째아들 사이 혼례는 가문간에 잘 해결되었으나
정씨가문 둘째 아들이 명헌이랑 혼인시켜 달라고 사주단자 들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다시 발칵 뒤집어지면 좋겠다

우성명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