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989026
view 8234
2024.04.14 21:54
오배송된 소포처럼 나리타 쿄지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벽에 기댄 채 무릎을 당기고 그 사이 고개를 묻은 채 앉아 있어서, 당장은 그인 줄 몰랐다. 만취한 어느 가장이 대문을 헷갈렸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엔 흔해지는 착각이다. 그러나 이 동네는 무슨 보호 구역처럼 20대 자취생만 가득하기 때문에 살짝 이상하기도 했는데ㅡ계단 밟는 소리에 머리를 든 그가 한 손을 올렸다. 줄 맨 인형처럼 실없이 흔든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 줄이 내 손에 묶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야쿠자는 병원도 못 가고 처량하네요.”
혀 밑으로 체온계를 밀어넣자 39도였다. 앞자리가 바뀔 듯 말 듯 깜박거린다. 그나마 칼을 맞거나 뼈가 부러진 상황은 아니라 기뻤고, 동시에 그런 터무니없는 비교군으로부터 기쁨을 추출해야 하는 신세라 슬펐다. 200만 엔짜리 시계를 차지만 몸을 못 가눌 만큼 아플 때는 갈 곳이 없는 모순이 그의 삶이었다.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의 올바른 도덕을 취해 비난하기엔 그의 살에 인각한 내 이름이 너무 따가웠다.
내 이불에 누운 그가 한 팔로 이마를 덮은 채 갈라지는 목으로 웃었다. 그즈음 유행하는 독감은 인후부터 초토화시키로 악명이 높았다. 구두는 아무렇게나 내 운동화 옆으로 치워두고 정장은 겉옷만 벗겨 옆에 개어놓았다. 눈을 가린 손목의 단추는 풀려 있고 흰 소매 밑으로 갈맷빛 잉어 비늘과 내 이름이 어른거렸다.
거실의 전등을 끄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면서 물었다. “근데 왜 하필 나지?” 어차피 한 칸짜리 방이라 부엌에서 거실로 부르든 곁에 앉아 중얼거리든 큰 차이가 없었다. “쿄지 씨 친구 없어요?”
“사토미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 놈한테 가.”
그건 말보다는 말의 껍질이다. 거기 휘둘리는 기분만큼 멍청한 것도 없다. “자랑이다.”
“뭐 해?”
냉장실의 호박색 불빛 속에서 뺨이 천천히 식었다. “댁한테 뭐 먹일지 고민하잖아.”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드물어 재고가 빈약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었다. 찬장 쪽의 사정을 되짚어도 비슷해서, 참치 통조림이 개중 제일 호화로웠다. 따지고 보면 생활의 반을 잘라 저금통에 넣느라 이렇게 되었으니 그의 책임도 어지간했다.
뚜껑에 그의 이름을 적은 건 어쩌면 불필요한 짓이었음을 뒤늦게 자각했다. 이름은 질량 없는 것들 중에서 가장 무겁다. 횡단보도 앞에서 녹색 불을 기다릴 때 그가 오른팔을 왼팔보다 낮게 미끄러뜨리고 서 있으면 나는 그가 좋아하는ㅡ좋아하던 노래의 긴 전주를 상기한다.
“사토미가 밥 해 준다고?”
“아픈 사람 굶기면 지옥 끌려가요.”
“거기 너무 더웠는데.”
“아직 헛소리할 기력도 있어?”
“됐어. 내가 쳐들어온 건데 거기까지 고생하지 마.”
“이미 물 올렸는데. 그리고 그냥 죽이니까 미리 감동하진 말고요.”
그가 다시 웃었다. 내가 울면 그는 늘 웃지만 그렇다고 명제의 역까지 성립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나는 차츰 데워지는 냄비를 바라봤다. 중고로 얻어온 물건은 낡아서 흠집투성이 곡면에 사물의 형태만 겨우 비쳤다.
“집에 쌀이랑 달걀이랑 참치밖에 없어서 좀 가난한 맛인데 괜찮나?”
“나야 괜찮지. 근데 사토미 집에서 밥 잘 못 먹니?”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안경이 증기에 흐려졌다. 잘 익은 200만 엔짜리 시계, 학생 식당의 진주색 식판과 비스듬히 뜯긴 메론빵 봉지, 좁고 곧은 틈으로 서리서리 들어가는 동전들 그리고 그 아래의 이름이 한 개의 장면으로 떠오른다.
“못 먹는 건 아니고 안 먹는 거예요. 학교 다니고 아르바이트 하면 거기서 다 때우니까.” 그건 거짓말이 아니지만, 그가 되묻기 전에 대화의 초점을 옮겨야 했다. “쿄지 씨는 평소에 뭐 먹고 사는데요?”
“이거 내 걱정이야, 야쿠자 생태 조사야?”
“후자.”
“글쎄, 개체차가 있지. 일단 난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목소리에 마침표가 없었다. 더 말을 시키지 않고 나는 죽을 그릇에 덜어 소금을 친 다음 물잔과 함께 쟁반에 받쳐 가져가서 그를 깨웠다. 보조가 조금 필요했지만 우선은 착실히 일어났는데, 자꾸 휘청거리기에 내 팔을 울타리마냥 등에 대어줬다. 식은땀을 흘려서 피부에 밀착된 셔츠 아래로 큼직한 두루미가 적나라했다. 손을 넓게 펴서 그 위로 덮었다. 시계를 망가뜨리면 시간이 멈춘다고 믿는 사람처럼.
격차는 끔찍하다. 그와 내가 살아온 궤적은 전공서와 그림책만큼이나 다르고 간격을 메우는 일은 불가능하기 이전에 부도덕해 차마 나 스스로도 설득하지 못했다. 겁이 났다. 물감으로 장식한 육체도 마약 중독자의 관자놀이를 가격하는 깨끗한 동선도 무섭지 않았지만, 그런 것들에 무감해지는 내 자화상은 명백한 공포였다. 요컨대 그는 평범한 어른의 반댓말. 나리타 쿄지가 선택한 길은 내가 모르는 세계이고 마땅한 이정표의 역방향이기에, 언젠가 그에게도 밝혔던 바를 지키려면 나는 그를 진작 내 삶에서 적출했어야 됐다.
그러나 애초에 그건 어째서 작별이 아니라 적출이지. 까마득한 어른이고 나와는 별개의 살갗으로 분리된 타인인 그가, 왜 심장 옆의 뼈처럼 느껴질까. 내 이름이 자기 몸의 일부가 될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겨우 균형을 잡은 그의 손에 숟가락을 밀어넣었다가 도로 빼앗았다. 죽을 반 숟갈씩 떠서 입 안에 넣어주면 그는 피하지 않지만 얼핏 굳는다. 생경해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무력해진 채 남의 손길을 받는 일은ㅡ마흔을 넘긴 야쿠자가 아니더라도ㅡ현대인 누구에게나 어색하겠지만, 그는 그야말로 외계의 뭔가와 조우한 사람의 낯을 했다. 내가 그를 등 뒤에서 껴안아도 그런 표정은 짓지 않으리라. 그 당혹이 어떤 종류의 체념으로 전락하기 직전의 짧은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먹을 만해요?”
잘 뜨이지 않는 듯한 눈을 살짝 깜박이고 그가 입꼬리를 당겼다. 느린 작업을 몇 번 반복해 그릇을 비웠다. 의식인지 무의식인지 그가 옆이마를 내 어깨에 떨어뜨리자 접촉면으로 미지근히 열이 옮았다.
그는 나를 찾지 않아도 됐다. 그래도 왔다. 나는 그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식기를 개수대에 쏟고 돌아오자 그는 이미 혼절과 수면의 혼합물에 잠겼다. 남은 전등을 마저 끄고 나도 그의 옆에 누웠다. 마주 보는 구도로 몸을 돌렸다. 창 밖으로 도시의 불빛은 희미하고 그의 얼굴은 아무 가면도 없는 한 인간의 초상. 이불 밖으로 손이 드러나 있다. 오른손이었다. 나는 마디가 견고한 그의 약지에 내 검지를 엮어 본다.
어쩌면 이렇게 살 수도 있는데.
“나랑 같이….”
그 말을 내가 정말로 읊었는지 설단에 묶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때 나는 누구보다도 몽상가였다. 그러나 정작 잠들어 있던 쪽은 잠꼬대처럼, 손가락을 당기면서,
사토미는 목소리가 너무 작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만큼 가까워야 겨우 들린다니까.”
폭력단 배제조례로 제한되는 것 중에 병원 진료도 있다길래,,
쿄사토
가라오케가자
파미레스가자
[Code: 76b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