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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6 21:53
전편 길이가 어중간해서 다음편 바로 가져옴
그동안 함께 즐겨준 만년비들 ㅋㅁㅋ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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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웨이!"

션웨이는 창문 밖에서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내려다봤다. 봄이 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새싹이 돋기 시작해 초록빛을 띄기 시작한 땅을 밟고 선 백기가 손에 든 도시락통을 높게 들어올렸다.

"소풍 안가실래요?"

주변에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저를 쳐다보는 시선은 느껴지지 않는다는듯 밝게 웃는 백기의 얼굴 앞에서 션웨이도 피식 웃어버렸다. 차마 백기처럼 소리치지는 못하겠던 션웨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자자 제가 미리 수소문해봤는데 이 근처에 괜찮은 언덕이 하나 있더라고요? 오늘 날씨도 좋은데 저희도 바람 좀 쐬자고 왔어요."

건물 입구에 션웨이가 나타나자마자 팔이 닿을 듯 션웨이의 옆에 다가선 백기가 말했다. 연한 푸른빛의 하늘에는 하얀색 뭉게구름이 느린 속도로 떠다니고 있었다. 백기의 말처럼 날씨가 참 좋았다.

"룡성대학 근처 언덕이라면...여기서 거리가 좀 되는데."

"그래서 준비했죠. 짜잔!"

최근 캠퍼스 내에서 흔하게 보던 전기 킥보드를 가리키며 백기가 자랑하듯 소리쳤다. 학생들이 타고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궁금하기는 했었지만 좀처럼 결제를 할 수가 없어서 타보지 못한 것이었다.

"저런 것도 탈 줄 알아요?"

"한 번도 타본적은 없지만 뭐 얼마나 어렵겠어요?"

킥보드 손잡이에 걸려있던 햄스터 캐릭터가 크게 그려진 헬멧을 다짜고짜 션웨이의 머리 위에 얹은 백기가 이내 제 머리에도 색만 다른 헬멧을 쓰고 션웨이를 재촉했다.

"교수님이니까 특별히 파란색은 양보하는 거예요. 아리 이자식은 헬멧을 가져오랬더니 어디서 이런 걸 가져와서... 창피하니까 빨리 출발하죠."

분홍색 헬멧을 쓴 백기가 투덜거렸다. 잠시 오물거리는 붉은 입술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션웨이가 백기의 재촉에 못이겨 백기에게서 눈을 떼고 전기 킥보드에 발을 올렸다.


"아니, 전자기기는 하나같이 못다루시는 줄 알았는데 이건 되게 잘타시네요."

앞서가던 션웨이가 킥보드를 세우자 그 옆에 나란히 킥보드를 세우고 헬멧을 벗으며 백기가 말했다.

"운전은 원래 잘합니다. 그리고 이건 컴퓨터처럼 기능이 복잡하지도 않고요."

"그래도요!"

평소에 전자기기들이랑 친한적이 없던 션웨이여서 특별히 준비한 전기 킥보드를 앞장서서 타고 가던 백기는 점자블록 위를 달리며 덜컹거린다거나, 턱에 막혀 가던 길을 몇 번이나 멈추다가 결국 션웨이에게 선두를 양보한 터였다. 그에 반해 션웨이는 어찌나 막힘없이 주행을 하던지 차가 적은 길을 골라 차도로 달리는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백기는 제가 더 즐겨버린 것 같아 민망해지려 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처음 백기가 찾아온 장소가 아니라 션웨이가 더 좋은 곳이 있다며 추천한 곳으로 피크닉 장소가 바뀌면서 앞장선 션웨이가 말했다. 백기는 션웨이가 가리키는대로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따라 걸었다. 정식 산책로에서 벗어난 길을 거침없이 걸어가던 션웨이는 가끔 백기가 잘 쫓아오는 지 확인하듯 뒤를 돌아보았다. 둘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간질거려 서로를 향해 웃어보였다.

"와!"

션웨이가 안내한 곳은 백기가 찾아봤던 곳과는 비교할 수 없게 좋은 곳이었다. 커다란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은 못이 있었다. 아직은 잎이 무성하지 않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햇볕이 비쳐 수면이 반짝였다.

"아니, 이런 곳이 왜 산책로와 이어져 있지 않은 거죠?"

백기가 탄성을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션웨이는 매고 있던 돗자리를 펴고 백기가 준비한 도시락을 하나씩 펼쳤다.

"이걸 다 백기씨가 준비한 겁니까?"

당근꽃으로 장식한 볶음밥과, 파프리카, 고기, 양배추 등을 야무지게 품은 스프링롤, 얇은 튀김옷을 입은 고기튀김, 고소한 향이 입에 침을 고이게 만드는 야채무침 등... 션웨이가 놀란 눈으로 묻는 말에 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잘 먹고 봐야죠."

가져온 보온병의 뚜껑을 열어 국물까지 야무지게 따라 준 백기가 건배하듯 국물이 담긴 제 컵을 내밀었다. 션웨이도 그에 화답해 제 컵을 백기의 것에 살짝 부딪혔다.

"잘먹겠습니다."

간간이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과, 수면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매화 꽃잎들, 맛있는 음식. 백기와 션웨이는 연신 웃으며 먹고 또 이야기를 나눴다.

"교수님 이런 곳 또 아시면 저한테도 알려주시죠? 여기는 어떻게 발견하신 겁니까?"

"백기씨가 원한다면 언제든지요."

한껏 풀린 모습으로 나무 줄기에 몸을 기댄 백기가 션웨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미소지으며 대답한 션웨이가 기름이 묻어 반짝이는 백기의 입술에 충동적으로 손을 가져갔다. 션웨이의 굵은 엄지가 백기의 입술을 쓸었고, 백기는 입술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스르르 눈을 감았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오똑한 콧날, 볼록한 입술...백기의 얼굴을 눈으로 쫒던 션웨이가 백기의 입술이 제 입술과 닿으려는 찰나 눈을 감았다.

마땅히 제 입술에 느껴져야 할 온기 대신 빈 공간을 스친 션웨이가 균형을 잃고 휘청이며 눈을 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눈을 감고 있는 백기의 몸은 그 뒤의 나무 줄기가 보일 정도로 투명해져 있었다. 흠짓 놀란 션웨이가 황급히 몸을 떼고 멀찍히 물러났다. 눈을 천천히 뜬 백기가 멀리 떨어져 앉은 션웨이를 의아하다는 듯 보다가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백기는 눈을 감았던 것을 변명이라도 하듯 횡설수설 말을 내뱉으며 션웨이의 시선을 피했다. 제 몸이 투명해진 것은 모른 채로 션웨이가 무슨 오해라도 할까봐 두려운 듯 잔뜩 당황한 모습이었지만 션웨이는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였다. 물에서 튀어나오듯 솟구친 손가락 굵기의 물줄기가 션웨이의 손목을 휘어감더니 물 속으로 끌어당겼다.

"션웨이!"

귓가에 비명같은 백기의 목소리가 꽂힌 것을 마지막으로 션웨이는 준비없이 차가운 물 속에 잠겼다. 무의식적으로 들이마신 숨에 물이 코로 들어왔고, 터져나간 기침만큼 모자란 숨이 또 물을 삼켰다. 발을 걷어차고 손을 흔들었지만 션웨이는 좀처럼 수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션웨이는 단단한 손이 제 허리를 감싸안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갑자기 트인 숨을 양껏 들이마셨다.

"션웨이 정신차려요."

눈을 뜬 션웨이는 그제서야 제가 땅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곧 션웨이의 시야에 머리 끝에서 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백기가 들어왔다. 션웨이는 쉴 새없이 젖은 기침을 하면서도 백기에게 닿기 위에 손을 뻗었다. 백기는 제 두손으로 션웨이가 내민 손을 감싸쥐고 열기를 나누려는 듯 주물렀다.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제 손을 붙잡은 살결도, 그의 체온도 모두 느껴졌다. 션웨이는 고개를 꺾어 파도에 밀려오듯 물 언저리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션웨이의 시선을 따라간 백기가 몸을 조금 움직여 션웨이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션웨이는 똑똑히 보았다. 엎어져있던 여자의 등에 꽃혀있던 것은 사극에나 나올법한 긴 검이었다.

"안되겠어요. 병원으로 가요."

션웨이는 저를 업는 백기의 목덜미에 얌전히 고개를 묻었다. 백기의 목에서는 흙냄새와 물비린내가 났고, 머리에서 떨어진 물이 션웨이의 볼 위로 미끄러져 턱에서 목으로 흘러내렸다. 상쾌했던 바람은 온통 젖은 션웨이의 등을 차게 식혔고, 몸에 달라붙은 젖은 옷은 백기가 움직일 때마다 불쾌하게 피부를 자극했다.

백기는 제 목을 감싸안는 션웨이의 몸짓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낯선 숲길에서 길이라도 잃을까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백기는 알지 못했다.

제 몸에 닿는 백기의 열기를 느끼며 션웨이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룡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