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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6 12:17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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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둬!"

어느새인가 방에서 나온 영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백기가 화들짝 놀라 션웨이의 목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났다. 어디서 그럴 기운이 난 건지 모르게 영직은 그대로 달려와 백기와 션웨이 사이를 막아섰다.

"무슨 짓이야?"

"이건...그러니까..."

저를 곧게 응시하는 맑은 눈 앞에서 백기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기가 차마 영직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못난 모습은 보이고 싶지않았다고 생각하며 자괴감이 든 백기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백기의 앞에 선 영직은 부드러운 손길로 백기의 얼굴을 들어올리고 괜찮다는 듯 빙긋 웃었다. 마치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에 백기의 눈빛이 흔들렸다.

"괜찮아. 이제 그만 날 놔줘도 돼."

영직이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것처럼 느껴져서, 백기가 다급히 영직의 팔을 붙잡았다.

"아...아냐... 약속했잖아..."

백기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영직이 점점 얕아지는 숨을 몰아쉬며 미약한 목소리로 했던 마지막 말을.

'다음 생이 있다면...꼭 날 찾아와...'

영직을 지켜주지는 못했지만 저 마지막 약속만은 지켜주고 싶었다. 아니 지켜야했다.

"네 마지막 명까지 저버릴 수는 없어."

필사적인 백기의 말에 영직이 슬픈 표정으로 백기의 오른쪽 눈을 쓸어내렸다. 영직의 손길을 따라 껍데기가 벗겨지듯 일반사람과 똑같던 눈이 생기를 잃고 흐려졌다. 그런 백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영직의 큰 눈이 붉어지며 촉촉해졌다.

"이기적인 날 만나서 정말 고생이 많았어. 네가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내가 약속을 지킬차례야."

영직이 백기의 오른눈에 입을 맞추자 길었던 백기의 머리가 점점 짧아지고, 걸치고 있던 장포는 평소 백기가 입던 니트로 변했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영직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며 반딧불처럼 초록빛으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건 내 계획이랑 다른데..."

작게 중얼거리던 야존은 손을 한 번 튕기더니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션교수님?"

사라지는 영직을 보고 당황하던 백기의 눈에 영직의 몸에 가려져있던 션웨이가 들어왔다. 초록빛에 뒤덮인 션웨이의 목에서 백기의 붉은 손자국이 스르르 사라졌고, 이내 초록빛이 션웨이의 몸에 흡수되듯 서서히 잦아들었다. 션웨이의 몸이 크게 휘청이더니 큰 충격을 받은 듯 크게 떴던 눈이 스르르 감기며 쓰러졌다.

"션웨이!"

션웨이의 몸이 바닥에 닿기 전 백기가 그를 붙잡아 끌어 안았지만 션웨이는 몸을 축 늘어뜨린채 좀처럼 눈을 뜨지 못했다.




"션웨이! 정신이 좀 들어요?"

걱정가득한 목소리에 션웨이는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백기씨?"

눈을 뜬 션웨이에게 익숙한 방의 모습이 보였다. 션웨이의 갈라진 목소리에 한 팔로 션웨이의 상체를 일으킨 백기가 다른 손으로 물컵을 들어 션웨이의 입에 가져갔다. 미지근한 물이 목을 적시자 정신이 조금 들어서 션웨이가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무슨..."

션웨이는 제 팔에 꽃혀있는 링겔 주사를 바라보며 당황해 물었다.

"기억 안나요?"

물컵을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션웨이가 다시 누울 수 있게 도와준 백기가 션웨이의 반응을 살피듯 조심스레 물었다. 션웨이는 백기의 질문을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수업을 끝내고...야존을 만났는데..."

잠든 백기의 곁에 누웠던 것과 그의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이 두서없이 머리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기도가 좁아지는 느낌에 목을 부여잡은 션웨이가 사레가 걸린 것처럼 기침했다. 놀란 백기가 션웨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주며 등을 토닥였다.

"진정해요.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았다. 션웨이는 제 등을 토닥이는 백기의 팔을 붙잡고 말을 하기 위해 기침을 삼키려 애썼다.

"백기씨... 백기씨는...!"

백기의 집념이었을 영직이 사라졌다. 션웨이는 눈 앞에서 금방이라도 백기가 빛처럼 흩어질까봐 겁이 났다. 션웨이의 호흡이 점점 빨라졌다.

"나 여기 있어요. 션교수님이 괜찮다고 할 때까지 옆에 있을께요."

션웨이의 불안을 알아차린 백기가 션웨이의 몸을 그대로 품에 안았다. 물 속에 던저진 동아줄을 잡듯 백기의 옷을 꽉 붙잡은 션웨이의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백기는 그런 션웨이를 더 단단히 안아 달랬다. 한참 후 백기는 조용해진 션웨이를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어느새 션웨이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잠든 션웨이의 이불을 덮어주고 션웨이의 볼을 쓸어내리던 백기의 손끝이 아지랑이처럼 투명하게 일렁였다. 백기가 눈을 찌뿌리며 손을 털자 다시 사람의 손처럼 단단해진 손끝이 션웨이의 눈 끝에 매달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닦아냈다.

"죽은 자는 산 사람의 곁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창피하게 됐네. 당신의 곁을 어떻게 떠나야할지 모르겠거든."

제 꿈을 함께 꾸느라 먹지 않아 잔뜩 야윈 션웨이의 턱선을 문지르며 백기는 다짐했다. 션웨이의 볼에 살이 올라 다시 뽀얗고 건강한 모습을 볼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버텨보자고. 작별인사는 그 때까지만 조금 미뤄두는 거라고.

백기는 제 영혼에 션웨이를 새기듯 하염없이 잠든 션웨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손끝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룡백 만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