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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31 11:27
사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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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또 전개 막히는 줄 알고 무서웠어... 어쨌든 룡백 와꾸로 극복하고 돌아옴! 늘어지는 글 읽어주는 만년비들 항상 ㄱㅅㄱ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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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가 션웨이의 집에서 지낸 것도 벌써 며칠째였다. 백기의 크지도 않은 가방 속에서 들락날락하던 옷가지며, 칫솔같은 잡동사니들이 션웨이의 집 곳곳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션웨이 역시 집 안에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의 인기척에 익숙해져갔다.

강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션웨이는 온갖 음식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또 지웠다. 음식을 꼭 먹을 필요는 없다던 그였지만 션웨이가 해준 음식은 언제나 맛있게 먹는 백기였다. 처음에는 음식에 별 기대가 없는 듯하다가도 맛이 있을 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션웨이의 손맛에 감탄하는 백기의 반응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간질거리고 벌렁거렸다.

"안녕 형 오랜만이야."

생각에 잠긴 채로 사무실 문을 열던 션웨이가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낯선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야존 너..."

"오랜만에 보는 건데 반갑지 않아?"

야존은 와서 안기라는 듯 두 팔을 내밀었지만 션웨이는 다가가지 않았다. 야존은 상처받은 것처럼 표정을 구겼지만 곧 상관없다는 듯 션웨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션웨이를 제 품에 안았다.

"난 형이 너무 보고 싶었어."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거 아냐?"

오랜만에 안아보는 제 형제의 체온이 반가워 야존을 못이기는 척 끌어안았던 션웨이가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나타나지 말랬잖아. 사라지라며. 난 말 잘듣는 동생이니까 형이 원하는 걸 들어줬을 뿐이야."

당당한 야존의 말에 션웨이가 야존을 밀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식으로 비꼬지마. 사람을 해치는 건 나쁜일이야. 부모님은 이제 돌아가셨고, 너도 벌써 30이 넘었어.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가야할 곳으로 가야지."

"가야할 곳?"

야존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있을 곳은 형 옆이야.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고."

"야존아...내가 다 미안해. 형이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두 손으로 야존의 어깨를 붙잡은 션웨이의 눈이 촉촉해졌다. 야존은 차마 션웨이의 슬픈 표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션웨이의 손을 떼어냈다.

"됐어. 그런 얘기하러 온 거 아니야."

야존은 입고 있던 하얀 정장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 괜히 옷을 툭툭 치며 다시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내가 형네 집에 선물을 준비했어."

션웨이의 목 뒤가 서늘해졌다. 백기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야존은 션웨이가 야존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을 못견뎌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주변의 지인들이 다치기 시작한 뒤 야존에게 제발 돌아가라며 소리친 후에도 야존이 모습을 드러내지만 않을 뿐 션웨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야존이 곁에서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개인적인 친분은 누구와도 쌓지 않았던 션웨이었다.

"백기씨를 다치게 한 건 아니겠지?"

두 눈을 번뜩이는 션웨이의 앞에서 저도 모르게 움찔한 야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능글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마, 그랬다간 형이 날 미워할텐데. 그냥 형 소원을 들어줬지."

"내 소원?"

"형은 그 영물이 가야할 곳으로 가기를 바랐잖아. 나한테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집념을 내려놓고 편안해지라고."

션웨이의 집에서도 백기는 가끔 앓는 소리를 내며 뒤척이곤 했다. 그 날처럼 지독한 악몽은 아니었지만 백기는 꿈 속에서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영물에게 필요한 건 밥이 아니라 잠이라해놓고서는 그렇게 아프게 앓는 모습을 보면서 션웨이가 다짐하듯 되뇌였던 말을 들은 듯했다. 그 말을 들었다면 션웨이가 백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제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속삭이면서도 백기가 정말 사라져버릴까 무서워하고 있던 것을 봤을텐데도.

"무슨 짓을 한거야?"

"그 영물 의사가 쓰던 향을 좀 빌렸어. 본인도 필요한 것 같은데 자기한테는 안쓰길래. 지금쯤 깊은 잠에 빠져 제 집념 속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겠지."

"너..."

"집념을 내려놓으면 형이 바라는대로 좋은 곳에 갈테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에 션웨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백기가 없는 공허한 집에 홀로 남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에 큰 구멍이 나는 것 같았다.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몸을 잘게 떠는 션웨이를 지켜보던 야존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형이 원한다면 그 자식을 보내지 않아도 좋아."

"뭐?"

"내가 향을 좀 손봤거든. 꿈 속에서 옛 인연을 만나게 해줬으니 그 자 스스로는 깨지 않을거야. 그럼 형의 곁에 그 자도 계속 남아있겠지."

션웨이의 두 눈이 흔들렸다. 션웨이는 백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영물이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마치 제가 경험한 것같은 지나치게 해박했던 역사적 지식들을 통해 백기가 몇 백년 동안이나 영물로 있어왔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강산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는 동안 이 세상을 떠날 수 없게 만든 강한 집념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백기는 션웨이와 같이 지내면서, 돈이든 예술이든 지식이든, 그 어떤 것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야존이 잡을 틈도 없이 션웨이는 뒤를 돌아 사무실을 나왔다. 결국 백기의 집념은 쿤이 그랬고, 야존이 그런 것처럼 제가 모르는 그 옛날의 '누군가'를 향해있을 거였다. 그게 부모인지, 형제인지 혹은 자식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백기에게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로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벌컥 제 집 문을 열어젖힌 션웨이를 가장 먼저 마중한 건 야존이었다.

"우리 형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지 몰랐는데..."

야존이 어디서 찾았는지 백기의 검정 우산을 집어들고 션웨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을 따갑게 했고, 숨은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션웨이는 그 무엇보다도 빨리 백기를 만나고 싶었다.

"비켜."

션웨이는 우산을 치우고 한 걸음 앞으로 가려 했지만 야존은 느긋한 미소를 띄운 채 다시 션웨이의 앞을 막아섰다.

"걱정마. 형을 막을 생각은 없으니까. 저 자가 형 대신 다른 사람을 선택해도, 아니면 형의 뜻대로 사라져줘도 나에겐 좋은 일인걸. 어느쪽이든 형에겐 다시 나만 남을 거니까."

이를 악무는 션웨이를 바라보며 야존이 빙긋 웃었다.

"저 자의 꿈 속으로 들어가려면 잠을 자야 하는데 그렇게 흥분해서야 잠이 오겠어? 어쩔 수 없이 착한 동생인 내가 또 형을 도와줘야겠네. 대신 맨입으로 그럴 수는 없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고민스럽다는 듯 손끝으로 제 턱을 두드리던 야존이 시험하듯 션웨이를 쳐다봤다.

"도와달라고 말해봐. 내가 필요하다고."

야존을 한 대 치고 싶은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쥔 션웨이의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분노하는 션웨이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무서웠지만 야존은 제 형이 정말로 저를 해하지는 않을 것을 알았기에 느긋하게 션웨이의 답을 기다렸다.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션웨이가 몸의 긴장을 풀고 천천히 말했다.

"내가 전에 말했지. 네 도움은 필요 없다고. 넌 이미 죽었어 야존. 이제 아이도 아니지. 투정은 그만 부리고 네가 가야할 곳으로 가."

눈에 힘을 준 야존의 눈가가 붉어졌다. 야존은 션웨이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션웨이는 야존이 상처받았다는 걸 알았지만 물러서는 대신 야존의 몸을 밀어내고 소파에 누워있는 백기를 향해 다가갔다.

"이거나 가져가. 꿈 속에서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으면."

검은 우산이 날라와 션웨이의 발 근처에 떨어졌다. 션웨이가 우산을 집어 들고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야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고맙다."

허공을 향해 나지막히 한 마디를 남긴 션웨이는 소파에 누워있는 백기를 조금 더 옆으로 옮기고 비좁은 옆자리에 억지로 몸을 뉘였다. 머리 맡에서는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특이한 냄새의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역시 돼지고기 볶음으로 해야겠어요. 백기씨가 좋아하는 매콤한 맛으로."

평소와 다르게 희미한 미소를 띈 채 평온하게 잠든 백기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져, 션웨이는 백기의 얼굴에 손을 얹고 그의 입가를 살며시 문질렀다. 비좁은 소파 탓에 백기를 껴앉듯 누운 션웨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룡백 만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