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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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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황제의 취미 중 하나는 황후 몰래 어린 여우를 길들이는 거였어. 사실상 훈련은 담당 관리가 다 하는 것이고 황제는 짬을 내어 제 얼굴을 익히게 하고 제 향을 익숙하게 만드는거였지. 관리가 황후가 가까이 두는 물건들을 가져와서 맡게 하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종종 하나씩 가져가곤 했어. 그 말을 듣자마자 혼인식날 준 봉잠이 떠올랐지. 그만큼 가까이 두고 많이 만진 물건이 없을테니 가져가면 효과는 만점일텐데, 가져가는게 문제야. 달라고 하면 왜 달라고 묻을거 아냐. 마땅한 구실이 없으니 이건 안 되겠고. 특별히 물건에 따로 애착이 없는 황후를 생각하면 이럴 때 좀 곤란해. 제가 선물한 인형도 밤마다 끼고 자니 향이 잔뜩 베었을테지만 그렇게 큰 물건이 눈에 안 띄면 또 이상하잖아. 궁인들에게 빨래를 한다고 둘러대라고 해놓고 가져오는 방법도 있지만 이왕이면 좀 작아서 어린 여우가 쉽게 향을 맡을 수 있으면서도 망가져도 괜찮을법한 그런 물건이 없을까?

그리 생각해보니 없겠지. 황후가 쓰는 물건중에 망가져도 괜찮을법한 물건이 어딨겠냔 말이야. 여인이 아니라 화려한 장신구도 하지 않고 반지나 목걸이도 많이 하지 않으니 곤란해. 그렇다고 자주 하는 향낭을 가져다주면 후각에 예민한 여우가 고생일테고. 한참을 고민하던 황제가 묘수를 떠올려. 옳거니. 옷을 주면 어떨까 싶어. 옷이야 뭐 하도 많으니 하나쯤 없어진다 한들 티는 안 날거야.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옷은 안 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별로 안 좋아하는 옷은 향이 안 베어있을테니까. 옷을 가져다 줬더니 신나게 입으로 가져가서는 물어뜯는게 다시 가져다주지는 못 할것 같아. 다시 지으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많이 좋아하는 옷이었으면 어떡하지 싶어. 궁인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황후가 좋아하는 옷들 중에서 적당히 좋아하는걸 내오라고 해서 가져온거란말이야. 되도록이면 망가지지 않게 잘 훈련시키라고 해야겠어. 











황후는 요즘따라 자꾸 제 물건이 하나씩 어딘가 사라지는것 같다는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어. 뭔가 한동안 안 보인다 싶으면 어느샌가 다시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와있고, 어느샌가 사라져있는지도 몰랐던게 은근슬쩍 돌아와있단 말이야. 차라리 안보이는 곳에 뒀으면 없어진줄도 몰랐을텐데 여보란듯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서. 물건들이 발이 달린것도 아닐텐데 말이야. 그렇다고 증거도 없이 아랫것들을 의심하기도 싫고. 제 처소에 그런 궁인들이 있는것 같지도 않았어. 벌써 탐을 낼거면 벌써 사달이 났어야지 이제와서 이런다고? 거기다 물건이 아예 사라지면 차라리 그런 의심을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야. 다시 돌아오는 것들도 있거든. 뭘 했는지 대체로 좀 표면이 긁히고 상한것 같아 보이기는 해.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희미하게 편백나무 향이 베어있다는거야.


이상한 일이지. 황제가 뭐가 아쉬워서 제 물건을 가져가겠어? 얼마든지 원한다면 모든걸 얻을 수 있는데. 아마 자신이 착각한것 같아. 황제가 그럴리가 없지다 생각하면서도,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서 어느날은 넌지시 이렇게 말해볼거야. 제 주변에 좀도둑이 있는것 같다고. 그랬더니 황제의 낯빛이 단박에 험악해지며 팔걸이를 탕, 하고 내려쳐. 감히 누가! 저번에는 혀를 빼내어다 쇠꼬챙이에 꿰어버리겠다더니 이번에는 손목을 자르겠대. 이렇게까지 살벌한 얼굴을 한 황제를 본 적이 없어. 사당의 문턱을 멋대로 밟았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야. 

힐끔힐끔 눈동자를 굴리며 황제의 얼굴을 살폈어. 찔려서 혹시 저렇게 과잉반응을 하는걸까?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어. 뭐가 없어졌냐고 물으시니 솔직하게 대답할거야. 다 없어진건 아니고 없어졌다 돌아온 것도 있고, 아직 자신이 발견하지 못 한게 있을수도 있지만 옷가지 몇 개와 반지 두어개 정도라고 답해. 공통점은 반지와 옷 모두 직접 황제가 하사했다는 점이야. 둘 다 녹색계열이고 제 눈색과 잘 어울린다며 궁인들이 하도 재잘거리는 바람에 기억하고 있던거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힐끔 황제의 표정을 살피는데, 하얗게 질렸다 붉어졌다 난리도 아니야. 도둑을 잡아달라 말도 안 했는데 도둑을 꼭 잡아줄테니 걱정말고 기다리라고 말하는거야. 



새초롬하게 변한 황후의 눈길이 황제에게 닿아. 모두 폐하께서 직접 하사하신거라 특별히 아끼던거였는데 사라져서 몹시 기분이 상하고, 하사품을 잃어버려 송구하다고 말하니 이번에는 안색이 허옇게 질려가지.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걸로 주겠다는걸 황후는 일부러 거절했어. 이리 말씀드리고 보니 꼭 물욕에 눈이 먼 것 같아 송구하고, 하사품을 감히 잃어버렸으니 죄를 청한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벌떡 일어난 황제가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하는 양을 보니 뭔가 있는게 틀림없고. 그런데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으시네.                                                                  

치죄하시지 않으실겁니까? 그리 무르니 펄쩍펄쩍 뛰며 고개를 내젓지. 도둑이 나쁜거지 황후는 잘못이 없다면서 말이야. 그래도 물건 관리를 소홀히 한 제 잘못도 있다고 말하자 갑자기 덥썩 껴안아. 그리 아끼고 좋아할줄 알았으면 더 여러개를 하사할걸 그랬다면서 풀죽은 목소리가 이어지지. 배가 불러 한동안 꽉 껴안지 못 한게 한이 되었는지 발바닥이 달랑 들릴 정도로 꽉 끌어안고는 둥기둥기 어르지. 어지간히 당황을 했는지 편백나무 향이 퐁퐁 샘솟아. 이쯤하면 된 것 같아. 뭘 또 꾸미고 계신게지. 저번 생일때도 그랬어. 부쩍 늦게 제 침전을 방문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아예 오시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불안함은 없을거야. 기다리면 또 생일날처럼 무언가 깜짝 선물을 해주시겠거니. 황후는 모른척 황제를 껴안오는 마지막으로 연타를 날려. 어깨에 턱을 괸채 죄송하다고 웅얼거리면 어깨가 움찔한걸 모르는척 하느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는건, 황제에게 비밀이야.











솔직히 옷이며 장신구며 황후가 가진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눈치챘단 말이야? 황후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어. 안 그래도 풍년 기원행사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거기다가 황후가 뜬금없이 폭탄을 떨어뜨린거야. 아니 그 많은 물건들 중에 없어진걸 알았다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황제가 궁인들에게 옷을 내오라고 한게 실수였어. 황제의 질문이 애초에 좀 잘못 된 것도 없잖아있어. 황후가 잘 안 입는 옷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는데 궁인들이 황후가 너무 아끼다못해 가끔씩 입곤 하던 옷을 가지고 나온거야. 궁인들은 어쨋든 상전이 상대적으로 덜 입는 옷을 가지고 나왔을 뿐이고. 황후가 미주알고주알 하며 이건 너무 아까워서 못 입겠다 말을 하질 않았으니 벌어진 일이지. 황제딴엔 새것마냥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반지를 보니 상대적으로 덜 마모가 됐고, 덜 끼고 다니나 보다 하면서 냅다 반지를 보관함에서 가져간거야. 제 손으로 반지를 가져갔으니 황후의 질문에 얼마나 놀랐겠어.
행사 준비하랴 여우 훈련 시키는데 짬을 내서 얼굴 비추랴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황제는 안 그래도 정신이 없어. 당연히 황후가 제 어리숙한 거짓말을 눈치챘다고는 생각지도 못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무언가 준비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채 오늘도 여우를 보러가.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 그냥 여우야, 라고 불렀더니 루디라는 이름에 반응하지 않다가 드디어 반응을 하기 시작했거든. 훈련장을 향해 가는 황제의 발걸음이 유달리 가벼웠지.











드디어 풍년기원 행사 당일이야. 작년보다 훨씬 튼튼하고 형깊이도 높아서 황후가 빠질 염려가 없도록 큰 배를 준비했어. 행여라도 이번엔는 황후가 또 호숫가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철저히 준비했어. 오죽하면 황후가 저번 풍년 기원행사는 간략하게 한 편이었냐고 물었을 정도지. 저번엔 정말 작은 나룻배였다면 이번엔 사공이 여섯명은 타는 제법 커다란 배였거든. 
원래는 작고 단촐한 배로 노를 저어 가는게 관례였지만 작년에 그런 일이 있는데다가 황후의 다리가 완전히 낫지도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지. 커다란 배를 황제 혼자 노를 저어서 가기에는 무리라 사공을 몇 명 붙였고. 얼마전에 호숫가에 흐드러지게 핀 등나무를 보러가기 위해 호숫가에 다녀오기도 했으면서 그렇게 좋을까. 배 타는걸 이리 좋아하는줄 알았으면 진즉 좀 다녀올걸 싶다가도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를 낳기 전에는 위험할까봐 데려갈 생각도 못 했었다 싶어. 아이를 낳고 나서는 한동안 다리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 했고 그리고 그 전에는,



잘 몰랐었지. 호숫가를 보는걸 이리 좋아한다는걸 말이야.


서늘해진 뒷덜미를 괜히 매만지며 황후를 바라봐. 황제는 한 눈에 황후가 한 봉잠을 알아봤어. 손때가 묻어 많이 닳은 그 봉잠 말이야. 그걸 줍느라 호숫가에 빠졌다가 크게 앓고 정말 위험할 뻔 했지. 그래서 넓은 소맷자락에서 봉잠을 하나 더 꺼냈지. 혼례식에서 썼던 것도 이미 충분히 화려하고 예쁜거긴 해. 원래 혼례식에서 가장 화려한 봉잠을 준비하는거라 이미 충분히 화려한데, 그보다 더 한 것을 준비하려니 꽤나 고생했지. 시간도 얼마 없어서 아랫사람을 닦달하고 닦달해내서 겨우 만들어냈어. 원래도 이미 보석이 군데군데 박혀 화려했던 혼례식 때의 봉잠보다 더 화려하니 얼마나 화려하겠어. 받아든 황후의 눈이 댕그라니 커져서는 어쩐 일로 이런걸 다 주시냐 물어. 왠일이기는, 그놈의 봉잠 안 보려고 그러지. 

하지만 그렇게 끔찍이 여기는 봉잠을 보기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그보다 더 화려하고 누가봐도 정성이 더 들어간, 비록 황제는 손가락 까닥 안 하고 입으로 명령만 내렸지만, 봉잠을 새로 선물하면 그걸 더 잘 하고 다니지 않을까 얄팍한 생각에서 나온 수야. 손수 머리에 봉잠을 찔러넣어주며 잘 어울린다 말하면 복숭아마냥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하사품이 그렇게나 많은데 또 주시냐고 입술을 삐죽거려. 하지만 줘도 줘도 모자란것 같은걸 어떡해. 황후의 눈동자 색깔과 보석 색깔을 맞추라고 했더니 전부 다 녹색계열의 보석들로만 이루어져있어.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서 눈이 부실 지경인데도 부끄러워 새초롬하니 내리깐 눈동자가 먼저 보이다니 큰일이야. 이 아름다움을 진즉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몰랐던 세월이 야속할지경이야. 










배가 호숫가 한가운데에 도착하자 잠시 멈춰. 본래는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라 보통은 그냥 풍년만 기원하지만 때론 바라는게 있으면 빌기도 해눈을 감고 가만히 기도해.그래서 황제는 황후의 생일때와 똑같은 소원을 빌었지. 거기에 조금 추가하자면 황후의 안녕 정도? 지나고보니 좀 소박했나 싶지만 뭐 어때. 애초에 많은걸 바라지도 않았어. 황후의 건강, 그게 제일 중요했지. 
짧고 단촐한 바람이었기에 황제의 기도는 금방 끝났어. 실눈을 뜨고 옆을 바라보면 뭐가 그리도 바라는게 많은지 아직도 눈을 감은채였어. 심지어는 작게 입술이 달싹이고 있었지. 뭘 그리 바라는게 많은지 가만히 눈을 감은채 달싹이는 입술이 귀엽기도 하고. 제딴엔 신중히 기도하고 있을테니 방해하기가 어려워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봐.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가까이 가서 바라보고 있었는는데 눈을 뜨자 마주치니 놀랐나봐. 무슨 소원을 그리 단촐하게 비셨기에 그리 일찍 끝나냐고 작게 투덜거리지. 길게 빌어봐야 뭣 하나, 안 들어줄지도 모르는데. 그냥 생일날에 빌었던 소원 그대로 빌고 황후의 다리가 낫게 해달라 빌었지. 하지만 원래 소원은 말하는게 아니잖아? 비밀이라고 말하니 한층 뾰로통해진 얼굴이야. 저는, 저는....입을 몇 번 삐죽이더니 소원을 말하면 안 된다는걸 떠올렸는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 어찌나 고개를 세차게 돌렸는지 봉잠에 달린 기다란 장식이 저들끼리 부딪혀 짤랑이는 소리를 내. 그만 웃음을 참지 못 한 황제가 속삭여. 


그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시간이 참 빠르다 싶어. 떨어뜨린 봉잠을 줍고자 호수에 빠졌던게 벌써 작년이라니. 제 다리를 생각해서 그런건지 황제는 행사 전부터 자신이 참석하는걸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는듯 했어. 굳이 올 거 없다고 했다가, 황후가 몸이 좋지 않으면 참석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넌지시 말했다가. 보나마나 뻔했어. 자기가 또 그 배에 탔다가 빠져서 호되게 앓지 않을까 걱정하는거야. 정작 그 때 앓느라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를 잘 모르는 황후는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는거지. 다정하고 황후에 대해서만큼은 특별히 더 세심한 황제는 그 때 황궁이 얼마나 발칵 뒤집어졌는지, 그 때 내가 얼마나 노심초사를 했는지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어. 말해봤자 황후의 성격상 자책할게 뻔한데 말해 뭐해.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고 사죄나 하고 처소에 처박히기나 할걸. 그러니 그냥 내가 걱정되서 그런다고 말 하는 수 밖에.

황후도 황제가 모든걸 자신에게 말 하지 않은걸 알아. 하지만 꿈에서도 호수가 나왔고, 이래저래 호수에 별 감정이 없는 황후로써는 꼭 풍년 기원 행사에 참석하고 싶은 이유가 하나 있어. 바로 작년에 거기서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거든. 뭐 딱히 거기에 엄청나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많은걸 바라지도 않았어. 그저 그냥 그 사람이 조금 더 저를 좋아해주기를 바랐을뿐이야. 흔히들 태자를 낳게 해달라거나 폐하의 애정이 오로지 저에게만 오기를 바란다던데 황후는 그러지도 않았거든. 물론 황후도 거기서 소원을 빌어서 이렇게 됐다고는 생각 안 해. 회임했다 하니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다가 마음이 기울어졌을수도 있고, 아니면 꾸준한 저의 노력이 통했을수도 있고, 연민과 동정이 연심으로 바뀌었을수도 있고. 




봉잠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일년 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라. 애정의 깊이와 이런걸 믿는건 무관하다는건 알아. 꼭 믿어야지만 절박한건 아니라는건 알아. 하지만 그 말이 작년엔 왜 그렇게 아프게 들렸는지. 이젠 다 나은 흉터지만 그 때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마찬가지로 괜히 그 때가 생각난 황제가 뭘 그리도 많이 빌고 있느냐고 묻지. 황후는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며 황제를 바라봐. 황제의 건강도 빌고, 알버트의 건강도 빌고, 가능하다면 제 다리도 좀 낫게 해달라고 빌고. 이 나라의 안녕과 번영도 좀 빌고. 너무 욕심이 많다고 들어주지 않을까봐 아끼고 아껴서 빌고 있는데. 이왕이면 우리 셋이서 오래오래, 멀어지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소원 하니 괜히 또 작년 제 생일날이 떠올라. 새카만 하늘을 온통 수놓았던 연등들 및 그 밑에 달려있던 작은 소원 조각들. 황제가 바랐던건 자신과 아이와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어. 자신 또한 그다지 다르지 않아. 세부적인 사항이 좀 다르긴 하겠지만. 뭘 비셨기에 그리 금방 끝났나 하고 물으니 샐쭉 웃으며 안 가르쳐주겠대. 비밀이라는거야. 하지만 그래도 이젠 알아. 말은 안 하셔도 저와 비슷한걸 바라셨겠거니. 소원은 원래 말하면 안 된다잖아. 

항상 이 사람 앞에서 의젓해지고 싶은데 항상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것 같아. 한참 어린 나이 때문에 늘 나를 어리게만 보시는게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이젠 예전만큼 안달내거나 하진 않아. 황제가 얼마나 불안했으면 이렇게 커다란 배를 띄웠을까 싶어. 듣자하니 풍년기원 행사에서 이렇게 큰 배를 띄운건 처음이래.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황제 또한 작디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는 겸허한 태도를 나타내기 위해 작은 배를 이용하는데 저 때문에 이렇게 난리를 피운게 아닌가 싶고. 좀 민망해져서 괜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꼼질거리고 있으니 황제가 그 손을 가만히 잡아채. 다리가 아픈거라 생각했나봐. 휘둥그레 눈을 뜬 황제가 무릎을 굽혀 살펴. 그리고는 아프면 돌아가자고 하는거야. 배가 이제 겨우 호수의 절반 조금 겨우 넘게 건넜는데 배를 돌릴 수도 없는데 무슨 소리야.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픈게 전혀 아니거든. 괜찮다고 말해도 영 믿지 않는 눈치야. 그래서 가볍게 주먹으로 콩콩 무릎을 치니 거의 까무라치면서 알았으니 그러지 말래. 그러고는 냅다 제 손을 빼앗아들고는 알았으니 그러지 말라고 거의 사정을 해. 선황후의 사당 문턱을 넘었을 때 서늘한 얼굴은 이제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전전긍긍할만큼 걱정했던 풍년 기원 행사는 무사히 끝났어. 이제 남은건 하루 빨리 아기 여우를 잘 훈련시켜서 깜짝 선물을 하는거지. 하지만 어린 여우의 훈련은 마음처럼 잘 되질 않아. 자주 얼굴을 보니 아기 여우가 반가웠는지 달려와서는 온 몸으로 부딪혀대곤 했거든. 반가운거야 뭐 그렇다고 치겠는데 황후에게도 그러면 안 되잖아. 다리가 불편한데 혹시 중심을 잃고 넘어질수도 있고. 지금이야 어려서 괜찮다지만 더 커서도 이러면 아무래도 안 되겠지. 씁- 혀를 차고 등을 쓰다듬으면 그래도 좀 얌전해지는데 그래도 좋다고 주둥이를 들이대고 꼬리를 흔들며 반겨. 여우는 개와 달라서 좀 까칠하고 제멋대로라고 들었는데. 얼굴도 별로 내비춘적 없는데 왜 이렇게 저를 반가워할까 몰라. 훈련시키는 관리가 민망해진 표정을 지으며 황제를 반겼어. 정작 먹이를 주고 훈련을 시키고 재우는건 자신인데 폐하를 너무 잘 따른다하니 괜히 또 기분이 좋고. 

훈련을 해야하니 일단 이름을 지어주긴 했는데 나중에 황후가 다시 이름을 바꾸면 헷갈리지 않을까? 임시로 루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혹시나 황후가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지. 나중에도 말 잘 들을거지? 목 밑을 긁어주면 작게 하품을 하며 더 해달라는듯이 머리르 들이밀고 길지도 않은 꼬리를 살랑이는게 제법 귀여웠지. 이대로 이름이 루디라고 굳혀져도 상관없지만, 만약에 황후가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면 어떡하지. 좀 예시라도 들어서 물어볼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나중에 루디라는 제 부름에 달려오지 않으면 왠지 서운해질것 같기도 해. 얼른 자라서 황후가 루디를 귀여워하는걸 보고 싶은데. 동물들의 어린 개체들은 금방 자라고는 하니까. 이제 제법 어엿한 여우 티라도 내듯이 털색깔이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단 말이야. 귀도 제법 쫑긋 크게 서는것 같고. 다리 부분에 회색에 가까웠던 털들도 이제 새카맣게 변하기 시작했지. 민들레 솜털 같았던 털들도 이제 제법 진짜 여우처럼 자라나기 시작했고. 고롱고롱 코까지 골며 제 품에 잠든 여우가 귀여워 한껏 껴안자 좋다는듯이 더 품속으로 파고들어. 새벽녁 끌어안으면 제 품을 파고드는 황후랑 똑닮은것 같아. 얼른 이 여우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데, 이 조그만 애를 받아들고 귀여워할 얼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안달이나. 얼마나 좋아하려나.







루스터행맨

 
2024.03.14 00: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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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루황제 진짜 서윗하다 이와중에 아끼는 물건이라 손 덜탔는데 모르고 냅다 가져간 거 너무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ㅋ아기여우 보고 황후가 좋아해주면 좋겠다ㅠㅠㅠㅠㅠㅠ
[Code: 839a]
2024.03.14 00: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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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 왜 이렇게 웃기고 귀엽지ㅋㅋㅋㅋㅋ황후 물건 슬쩍 가져갔다가 되돌려 놓는 거 들켰잖아! 황후는 모른척 해주겠지만 그래도 뭔가 서프라이즈 준비중인 거 다 알게됐네ㅋㅋㅋㅋ올해 풍년 기원 행사는 평화롭게 잘 흘러가서 다행이다ㅠㅠㅠㅠ작년 일 곱씹어 볼 기회도 되고 두 사람 사이도 돈독해졌어!!
[Code: d26e]
2024.03.14 00:4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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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여우 이름 루디라고 지었네ㅋㅋㅋㅋㅋ잘 길들여져서 황제 잘 따르는 거 귀엽고 보기 좋다...막상 황제는 황후가 여우 이름 바꾸고 싶어하면 어쩌나 생각도 하고 귀여워 해주는 거 얼른 보고 싶어하기도 하고ㅋㅋㅋㅋ
[Code: d26e]
2024.03.14 00: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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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안 끝났으면 좋겠다 너무 행복해 아기여우가 황제 좋아하는 것도 너무 귀엽고 도둑 이야기에 제발 저린 황제도 귀엽고 그런 황제 떠보면서 놀리는 황후도 귀여워!!!!
[Code: 3437]
2024.03.14 03: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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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너무 사랑해 정말로 센세 덕분에 오늘을 버텼어 센세가 있어서 행복해 센세의 루행을 사랑해
[Code: fd6d]
2024.03.14 07: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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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ㅐ센ㅅㅔㄷㅏ!!!!!!
[Code: b8fa]
2024.03.14 09: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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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닮아가는거같아서 너무 귀엽고 좋닼ㅋㅋㅋㅋㅋㅋ황제ㅋㅋㅋ나름 머리써서 적당히 좋아하는거같은 옷가지나 반지가져오라고 한건데 하필이면 하사받은거 아깝다고 고이 모셔둔 물건들만 가져와서 황후가 대번에 알아채는거 너무 웃기고 귀엽닼ㅋㅋㅋㅋㅋㅋㅋ 여우 선물로 받으면 어떤 반응일지 넘 궁금하궄ㅋㅋㅋㅇ
[Code: 0db5]
2024.03.14 09: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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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 이름은 루디구나ㅠㅠㅠㅠ 알버트랑 루디 합쳐져서 더 완벽한 여우아기들이 됐네ㅠㅠㅠㅠㅠㅠ 정말 완벽한 서사임.. 루디가 아니었어도 상관없지만 루디라고 하니까 정말 황제 황후를 도왔던 아기여우가 찾아온거같음ㅋㅋ 덕분에 황제와 황후 둘의 소원 다 이뤄질거같다ㅠㅠㅠㅜ 센세가 찾아와줘서 오늘도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됐음.. ㅎㅏ센세너무사랑해
[Code: 0db5]
2024.03.14 10: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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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시발 다귀여워 슬쩍 했다가 호다닥 갖다두는 황제도 귀엽고 그거 떠보는 황후도 귀엽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황후 이제 황제 사랑에 의심이 없어서 힝잉 우는 척도 하는 게 기특해 죽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556]
2024.03.17 00: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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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이거왜지금봄.... 제이크 완전 기특물만두된거 뿌듯해라 죽을고비를 넘기고온 물만두라는점에서 눈물나지만 그래서 루스터 눈에도 더 애틋할듯
[Code: 88b6]
2024.03.17 00: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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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 뭐만하면 몰래 더 뭐해주고싶어하는거 귀여움... 근데 이제 무순을 루행시점으로봐서 그렇지 남들한테는 혀뽑아버리겠다 손목자르겠다하는 황제인... 이점마저도 좋음
[Code: 88b6]
2024.03.19 20: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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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우리 물만두랑 루황제 다음 이야기 기다리고 있을게
[Code: dee5]
2024.03.21 15: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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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많이 바쁜거지 꼭 돌아올거지?ㅠㅠ
[Code: 49ac]
2024.03.22 15:4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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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다리고 있을게
[Code: cf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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