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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3 23:33
사반장과 벤자민 이외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나비는 경찰이던 시절에 일주일 정도 실종됐던 전적이 있었음


벤자민은 실종됐다가 돌아온 나비를 이렇게 기억함
어젯밤 경찰서에서 당직을 서고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하려고 하는 모습 같았다고
즉, 다소 피로해보이긴 하지만 일상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뜻이었음



나비도 실종 당시의 일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함 하지만 가끔씩 약을 먹거나 아편을 피우면 그 부작용으로 꿈을 꾸는데, 그 속에서 자신은 늘 작은 쪽방에 갇혀 있고 눈앞에는 살짝 긴 뒷머리를 묶은 채 검은색 자켓, 아마도 연미복이려나 싶은 옷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음 남자는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음 나비 자신은 그의 침대에 손이 묶인 채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울려퍼지는 허밍을 듣고 있었음 그러다가 그가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는 순간 항상 꿈은 거기서 끝이 났지




오늘도 나비는 똑같은 꿈속 장면에서 깨어났음 그 뒷모습을 어디에서 봤던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불현듯 뇌리에 익숙한 남자가 스쳐지나갔음 어제 자신이 꽃을 주워주면서 봤던 뒷모습이 바로 그 꿈속의 남자와 겹쳐졌음
그러더니 한 번도 꾼 적 없었던, 이어지는 장면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음



나비를 뒤돌아보는 얼굴은 아주 아름다웠음
높은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콧날과 광대뼈, 그리고 살짝 마른 뺨에 날렵한 턱선이 절묘했는데 거기에 더해 희고 매끈해 보이는 피부가 검은 눈썹과 풍성하고 짙은 속눈썹, 얇지만 선이 또렷하고 붉은 입술과 대비를 이루며 그가 짓는 차분한 표정과 잘 어우러졌음

나비는 처음 보는 그의 얼굴에 홀려 눈을 뗄 수 없었는데 그 역시 나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점차 가까워져 왔음
너무 가까워져서 시야가 흐려졌을 때, 그의 붉은 입술은 나비의 것과 겹쳐졌음 나비는 그에게 시선도, 호흡도 빼앗긴 채 그가 맞닿은 부분에 온 신경이 쏠렸음 나비의 목덜미에는 그의 손가락이 닿았고 가슴과 배, 하체에서도 그의 무게가 느껴졌음 나비는 맨 살갗을 모두 드러내고 있었는데 손목이 묶여 있어 몸을 가릴 수가 없었음
나비의 입안을 맛보던 남자는 입술을 떼어내고,

뤄페이.. 나의 신부..

라고 중얼거렸지 나비는 그 순간 온몸에 저릿하게 소름이 돋았음

너, 너는 누구야

나비는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서도 자책했음 경찰씩이나 되어서 이런 상황에 이런 멍청한 말이나 하다니


남자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다시 입을 맞춰왔음
그리고는 나비의 가슴을, 허리를 매만지다가 허벅지를 움켜쥐었음

예뻐.. 예뻐 당신, 좋아, 예뻐

혼자서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남자는 나비의 몸을 뒤집더니, 자신의 몸을 겹쳤음 그리고는 나비의 몸 속으로 남자의 것이 밀려들어왔음


엄청난 고통과 함께 그대로 나비는 정신을 잃었음






나비는 거기까지 떠올리고는 경악했음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음 진정시키기 위해 약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지만 약을 먹으면 또 이 기억을 꿈으로 체험하게 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음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자기 머릿속에서 조합되기 시작한 퍼즐조각들이었지


..어째서 어제 본 축의 뒷모습이, 그인거지?



축은 말을 못했으니 제 이름을 부를 수 있을 리가 없었음
하지만 부정하고 싶어도, 나비의 머릿속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떠올랐음


나비 자신은, 한 번도 축의 맨 얼굴을 본 적이 없었고, 그의 방도 방문한 적이 없었으므로,
기억 속의 그가 축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편: https://hygall.com/587430804

생각나서 약간 이어봄..




릷 룡백 축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