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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3 05:26
아키토와 키쿠는 여러모로 달랐음. 단순히 1,2등을 다투는 라이벌이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음.
껄렁한 소악마에 반항적인 성격인 아키토랑 달리, 키쿠는 모범생에 잘생겼고 성격도 좋고 노력파였음.
규칙도 잘 준수해서 아키토랑 다르게 선생님들한테 항상 이쁨 받았음.
하지만 아키토처럼 경찰이 미치도록 좋아서 노력하는 건 아니었음.
경찰집안이여서 가족들 중에 경찰이 많았고 당연히 경찰이 되는 게 자연스러웠음.
친형도 공안에서 잘 나가는 엘리트였고, 여러모로 탄탄대로의 도련님이었음.
키쿠는 처음부터 아키토가 신기했음.
도도하고 건방진 놈이라고 동기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았던 아키토였지만
자기라면 그냥 좋게좋게 넘어갔을 일을 굳이 선생한테 따지고 드는 놈.
근데 들어보면 틀린 얘긴 안 하는 놈. 속으로 재밌는 놈이라고 생각했음.
아키토한테 웃으면서 "우리 룸메지? 잘 지내보자" 먼저 반갑게 인사한 건 키쿠였음.
아키토는 그런 키쿠의 손을 빤히 보다가, 금새 표정을 풀고 장난스럽게 씩 웃었음.
그 때부터 두 사람은 제일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 되었음.
키쿠와 아키토,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치열함이었음.
의외로 아키토는 엄청난 노력파로, 남들 자는 새벽에도 불 켜놓고 악바리 같이 공부하고 노력했음
키쿠도 노력하긴 했지만, 그건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였음.
만년 2등인 게 분하긴했지만, 아키토처럼 진짜 경찰일이 미친듯이 좋고 그런 건 아니었음
키쿠는 그런 아키토가 신기했음. 어차피 학교 졸업하면 경찰이 될텐데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했음
어느 날은 궁금해서 아키토에게 물어봤음. 그렇게 경찰일을 좋아하나? 어떻게 그렇게 뭔갈 좋아할 수 있지?
"너도 경찰일이 좋아서 들어왔을 거 아냐?" 평소엔 껄렁한 놈답지 않게 진지하게 답하는 아키토였음.
"뭐... 그거야 그렇지."
"뭐야. 시시하긴. 그리고... 꼭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나 공안이 되야겠다."
"뭐? 공안?"
공안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길이었음. 꿈을 말하는 아키토의 모습이 눈부셔보였음.
아키토한테는 그게 당연한 거였음. 뭔가를 좋아하면, 정말 전부를 걸고 좋아하는 거.
그런 아키토를 보면서 묘한 열등감을 느끼는 키쿠였음.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아니라. 한 대상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었음.
왜냐면 키쿠는 언제나 모범생이었지만, 뭔가를 진짜로 좋아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키쿠한테는 열정이 없었음.
연애도 마찬가지였음. 항상 고백을 받아봤지, 누군갈 좋아해본 적은 딱히 없었음.
키쿠 입장에서는 아키토가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 사람이 이즈미라곤 생각도 못했음.
항상 만날 때마다 으르렁거리는 아키토와 이즈미였으니까.
이즈미는 공안에서는 이미 전설이 된 사람으로, 학생들 사이에선 동경의 대상이었음.
아키토, 키쿠가 워낙 뛰어난 학생들이어서, 다른 선생들은 두 사람 말이라면 들어주고 편의도 봐주고 했음.
그런데 이즈미는 안 그랬음. 오히려 아키토, 키쿠에게 훨씬 더 냉정하고 엄격했음.
이즈미에게 매번 반항하는 아키토였지만, 눈은 항상 이즈미를 쫓고 있었음.
키쿠도 눈치가 빨라서 아키토가 이즈미를 엄청 신경쓰고 있단걸 눈치챘음.
'설마 인정받고 싶다는 게... 이즈미 교관이었나?'
아직까지는 아키토가 설마 이즈미를 좋아할 거라곤 생각도 못 하는 키쿠였음.
이때까지 키쿠에게 이즈미는 그저 존경하는 선배이자 교관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즈미는 다른 선생과는 좀 달랐음. 항상 선생님들이 1등으로 인정하던 건 아키토였음.
그런데 그런 아키토를 지나가는 개 보듯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음...
이즈미 교관이 아키토 대신 자기를 인정하면 어떨까? 아키토에 대한 열등감과 함께 묘한 승부욕이 올랐음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이즈미의 수업 날이었음. 운동장 달리기 경주를 수업시간에 하던 날이었음.
이상하게 그 날 따라 멀리서 바라보는 이즈미의 시선이 엄청나게 의식이 되는 키쿠였음.
그래서일까, 키쿠는 정말 전력을 다해 임했음
그리고 그날따라 페이스조절에 실패한 아키토가 처음으로 2등을 했던 거임
그 날의 1등은 키쿠였음. 처음으로 아키토를 앞질러서 뿌듯했던 키쿠였음.
그런데 이즈미가 키쿠에게 자신의 방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었음.
이즈미에게 불려가 이즈미 책상 앞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키쿠였음..
"제 이름은..."
"알고 있다. 키쿠노스케지? 성적이 우수하던데."
다 알고 있었구나. 항상 수업시간 외에는 무관심하고 눈길도 주지 않던 이즈미여서,
당황스러우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기쁜 키쿠였음.
"네."
"이번에는 1등이군? 항상 아키토가 1등, 네가 2등이었던 걸로 아는데..."
"그건 아키토가 뛰어난..."
겸손하게 말하는 키쿠에게, 이즈미가 날카롭게 다그쳤음.
"아니. 아니지.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평소엔 전력을 다하지 않았나?"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에 당황한 키쿠였음.
하지만 모범생답게, 다른 선생님에게 하던 대로, 미소 지으며 답했음.
"전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봐. 아키토 저 자식은. 건방진 놈이지만 힘을 남겨두진 않아. 저 녀석은 경찰일을 좋아해. 그래서 전력을 다하거든.
네가 평소에 달리기 하는 걸 보면 말야. 결승점에 들어오기 직전에 힘이 빠져. 치열함이 없는 거야."
"..."
"너 경찰이 되고 싶은 거 맞나?"
그 말에 처음으로 웃는 얼굴이 사라지고, 굳어버린 키쿠였음. 누구에게도 키쿠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음.
완벽한 모범생의 가면 아래 잘 숨겨왔다고 생각했음.
가족한테도, 친구한테도, 라이벌인 아키토한테도....
실은 뭔가를 깊이 좋아해본 적도, 가슴 찢기며 아파해본 적도, 그것 때문에 애태워본 적도 없다는 걸 말임.
심지어 경찰일조차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는 걸 말임.
그런데 그 날 키쿠는 이즈미한테 자기 밑바닥을 들켜버린 기분이었음.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기분이 아주 더러웠음
심지어 이즈미는 키쿠를 뒤흔들어 놓고는 바로 관심없다는 표정을 지었음.
"하긴 내 알바 아니지."
사람을 앞에 두고 책만 뒤적거리는 무관심한 얼굴을 보는데 화가 치솟았음.
모범생답게 선생님 말이라면 복종하던 평소의 키쿠노스케답지 않게, 날카로운 말이 나갔음.
"고작... 그런 말씀만 하시려고 부르신 겁니까?"
'망할 교관 같으니...' 속으로 욕하고 있는데 이즈미가 무심히 물었음.
"아키토는... 문제를 일으키진 않나? 룸메라고 하던데."
"아, 아뇨. 아키토는... 좋은 놈입니다."
"...그래. 알았다. 가봐."
자기를 불러놓고는 아키토 얘기를 묻는 이즈미를 보면서 처음으로 지끈거리는 감정을 느끼는 키쿠였음.
'이게 뭐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서, 키쿠는 '싫어하게 됐다'고 해석했음.
이전까진 존경하는 선배라고 생각했지만,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이즈미 선배'가 아닌 '이즈미 교관'은 왠지 싫다고 생각했음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아키토와 얘길 하다가 이즈미 욕을 꺼낸 키쿠였음.
"그 이즈미... 선배. 대단하지만 가끔 재수 없어. 너도 그 교관... 싫어하잖아?"
"그래? 난 사실 이즈미 교관 꽤 마음에 들어."
깜짝 놀란 키쿠가 몸을 벌떡 일으켰음.
"너... 이즈미 교관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볼 때마다 시비 걸잖아?"
"그거야. 짜증나기도 하지만, 일단 반응이 재밌기도 하고?"
"뭐어? 뭐야 그게..."
"게다가 은근히 서툰 부분이... 귀여워보인다고 할까?"
"뭐? 귀엽다고? 그 교관이?"
"가끔은?"
"말도 안 돼..."
아키토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키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덩치 크고 자기보다 나이도 7살이나 많고, 냉정하고 엄격한 이즈미 교관이 귀엽다니...
아키토의 말을 어이 없다는 듯 비웃으며 누웠지만,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음.
가슴 한 편엔 어딘가 일렁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 키쿠였음.
그리고 다음날, 복도에서 우연히 이즈미를 마주치게 되었음.
'싫어하게 됐다'고 생각하는지라, 빠르게 지나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즈미가 말을 걸어왔음.
"이봐. 키쿠노스케."
저도 모르게 인상이 확 찌푸려졌음.
'이상해. 저 남자 앞에선 자꾸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생각하며 뒤돌아보는 키쿠였음.
"왜... 부르셨습니까?"
"어제... 불러서 이 말 한다는 걸 깜빡했다."
"뭘..."
항상 학생들 앞에서는 냉정하기만 한 이즈미였음.
그런데 그 순간엔, 처음으로 웃으며 키쿠에게 말하는 것이었음.
"잘했어."
"!!!"
그 미소를 보는데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음.
그런 키쿠의 어깨를 이즈미가 툭툭 두드리더니, 복도 끝으로 사라졌음.
그런 이즈미의 뒷모습을 보며, 난생 처음 쿵쿵 뛰기 시작하는 심장으로,
멍하니 서 있기만 하는 키쿠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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