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86239782
view 3550
2024.03.02 00:53
26 https://hygall.com/586018158





tumblr_ad71d614388019f17bbf84fd2be66797_e13fca76_.gif
ezgif-2-c6fd576e19 (2).gif






황제가 말없이 아침에 제 처소를 나가는건 더 이상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야. 예전엔 좀 깨워주고 가시지, 입을 삐죽이며 조금이라도 더 황제 얼굴을 보고 싶어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 의미에서 그런다는걸 황후도 알아. 법도대로라면 황제보다 먼저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돕고 아침도 같이 들어야하겠지만 어느샌가부터 황제는 그런 과정일랑 생략해버렸지. 아침에 잠든 황후 보기도 바빴거든. 
회임을 하고 나서부터 부쩍 잠이 느는 바람에 더 그랬고. 회임한 뒤로 살짝 살이 오른 뺨이 베개에 눌린걸 보면 찐빵 같기도 하고. 찐빵을 닮아 귀엽다고 한게 화근이 되버릴 줄은 그 당시엔 몰랐지만.



언젠가 찐빵 같다고 했더니 어린 황후가 잔뜩 볼이 불어터져서는 호두턱을 만든적이 있었지. 하얗고 말랑한게 귀여워서 찐빵 같다고 했을 뿐인데, 며칠 뒤에는 황후전의 궁인 하나가 사색이 되서 달려왔어. 마마께서 저녁을 들지 않으시고 잠에 드시니 폐하께서 좀 말려달라는거야. 아니 회임한 사람이 2인분을 먹어도 모자랄판에 곡기를 끊는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요 며칠 바빠 저녁을 함께 못 했더니 그 사이 사달이 벌어졌던 모양이야. 산모가 저녁을 굶다니 이게 무슨 말이냐고, 없던 입덧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어딘가 아픈 곳이라도 있는 곳이 있냐고 물어봤지만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만 내저었고. 태의를 불러올까 숙수를 불러올까 호들갑을 떨고 나서야 한참 뒤에 황후가 입을 열었어. 얼굴이 부을까봐 그랬대. 얼굴이 붓는다고? 산모가 얼굴이 부을수도 있지. 얼굴만 붓나, 손도 발도 다 붓는데. 그걸 저녁을 굶는다고 덜 붓는것도 아니고 설령 덜 붓는다고 해도 산모가 굶는다니 말이 되나. 


좀 붓는다고 어떠냐 그렇게 말했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호두턱을 만들더니 누가 그렇게 말했대. 내 당장 이 놈의 혀를 뽑아다가 쇠꼬챙이에 꿰어야겠다고 그랬더니 묘한 표정이 되지. 그러실 수가 없을거라는 말에 황제는 눈이 이제 튀어나오는듯해. 감히 황후에게 그딴 망말을 지껄였는데 못 할게 무어냐고, 대체 누구냐고 물었지. 설마 황실의 웃어른들인가 싶어 물어보면 눈초리가 새초롬하게 변해. 황후가 이러는 적은 매우 드문 일이라 황제는 얼떨떨해. 그 대상을 말 하고 싶지만 말 할 수 없는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말이 돼? 갸우뚱하는데 폐하께서 그러시기는 아주 어려울거라는 대답에 더 신경이 곤두서지. 아니 그래서 도대체 누군데?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의 황후 대신 이번엔 좀 더 만만한 대상을 찾아. 바로 황후전의 궁인들이었지.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물었어. 황송하다는듯이 궁인은 황후와 황제를 번갈아 살피며 눈치를 봤지. 원래 제 소속은 황후전이고, 그러니 제 직속상관은 황후지만 그 곁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건 황제잖아. 어떻게 감히 황제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겠어? 거기다 제 주인인 황후는 그런걸 가지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걸 아니까. 눈치를 보던 궁인이 결국 실토했지. 

정녕 내가 그랬단 말이냐? 몇 번이나 되물어도 궁인의 대답은 한결 같았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냐며 황망한 얼굴을 한 황제의 눈치를 보다가 물러가라는 황후의 손짓에 황급히 뒷걸음질쳐 달아났지. 사랑싸움에 고개를 들이밀는건 피곤한 일이거든. 
황제가 겨울에 별식으로 찐빵을 즐겨 먹는다는걸 황후가 몰랐을 때의 이야기야. 딱히 숨기려고 한건 아니고,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게 또 자주 찾지는 않으니 잘 몰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거기다 황후가 이제 막 입궁했을 때가 겨울이었으니 알리가 만무했고. 제 딴엔 하얗고 말랑하고 보드라운게 꼭 황후를 닮았다 생각해서 무심결에 흘린 모양이야. 거기다 자신이 찐빵을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걸 좋아하는 사람에 빗댄 처참한 결과였지. 

어쨋든, 이런 일도 있었다는거야. 다 옛날일이 되었지만. 그러니 황제가 황후를 깨우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기다려주는게 이상할 일은 아니라는거지. 아이를 낳은데다가 한동안 앓느라 볼살이 쪽 빠져버린게 참 아쉬운데, 어린 황후 귀엔 그닥 곱게 안 들렸나봐. 황제가 황후 손을 잡고 한참을 쩔쩔매며 사과한 일이 온 황궁에 퍼졌더랬지. 





하지만 어제 그런 일이 있었잖아. 일어나면 휑한 옆자리가 이젠 익숙하지만  황제가 그렇게 숨죽여 오열하는건 처음 봤단 말이야. 문제는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거야. 분명 마주 보고 누웠던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입을 맞추고, 그리고. 어땠더라?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는지 기억이 안 나. 잠들기 전에 제 귓가에 무어라고 속삭였는데 뭐였을까. 한참을 골몰한 끝에 번뜩 머리를 스친 단어가 있었지. 


꿈. 조막만한 여우.


단편적인 단어였지만 분명 그 두가지 단어는 기억나. 가슴이 두근거려. 애써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또 혹시 모르잖아? 저처럼 꿈에 아기 여우가 나왔을지 누가 알아. 태명이 아기 여우다 보니 저처럼 무의식중에 꿈에 나타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왠지 심장이 두근거려. 혹시 알버트를 닮은 아기 여우가 나왔으려나? 설레는 동시에 조금은 기대가 돼. 꼭 저와 비슷한 꿈을 꾸지 않았어도 상관없어. 황제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으니까 나쁜 얘기는 아닐거야. 궁금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또 상관 없었어. 어차피 저녁에 황제가 찾아올걸 아니까. 













오늘따라 녹음을 닮은 눈이 더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듯해. 완연한 봄이 계절이 되어서일까? 어쩐지 오늘의 황후의 얼굴엔 장난기가 서려있는것 같아. 설렘과 장난으로 가득찬 녹음이 반짝거려. 어제 그렇게 펑펑 울었던게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서 아침에 서둘러 떠나는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어. 황후 옆에 누워서 하염없이 뒹굴거리며 일어나고 싶지 않다가도 아무래도 좀, 어제 너무 체신머리 없이 울었다 싶어서. 든든한 지아비의 모습은 아무래도 아니었지.

눈을 마주치면 이상하게 또 눈물이 날까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어. 앓느라 쪽 빠졌던 볼살도 조금 차올랐고, 본인이 말한대로 재활훈련이 제법 잘 되어가고 있는지 제법 혈색도 많이 되찾은것 같아. 늘 처소에 갇혀있다시피 해서 병약한 기색이 낯빛에서 지워질 새가 없었는데 봄이 되고 나서 날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제법 다리가 잘 움직여지는 모양인지. 그 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화원까지 걸어갔다 왔다며 재잘대던게 떠올라. 오늘은 또 어디까지 나갔다 오려나. 탕약에 졸린 눈을 꿈뻑이면서도 재잘대던게 떠올라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 

늘 저보다 한참이나 어리다 생각했는데 언제 이렇게 의연해졌을까. 입궁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언제 이렇게 성장했을까. 저보다 한참이나 어리다는걸 알면서도 어제는 그 품에 엎어져 울었고, 황후는 놀랍도록 담담하게 저를 위로해주었지. 울지말란 흔한 소리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저를 위로해주었어. 그저 등을 쓸고 가끔씩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황후는 눈부시게 성장했어. 기대고 싶을정도로 말이야. 그래도 사랑스러운건 변함이 없어. 떠나기가 아쉬워 깨끗한 이마에 입을 맞추고, 어제 욕심을 부린걸 되새기며 떨어지지 않는 발검을을 겨우 떼냈었지.


  

정무를 마치고 황후전에 들리니 황후전의 궁인이 말하길, 저가 오기를 한참을 기다렸다는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여간해선 기별을 하지 않는 성정인걸 알기에 다급해질 수 밖에 없어. 체통은 진즉에 내던져버린 황제가 거의 날듯이 뛰어서 황후에게 다가가. 겉으로 봐선 아무일도 없어보이는데 어쩐지 평소보다 더 눈이 반짝반짝 하고. 착각인가 싶지만 광대와 뺨이 봉긋 솟아올라있으니 그다지 착각이라고 볼 수도 없어. 손을 잡으며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황제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지.


조막만한 여우 이야기를 들려주시어요.


못 듣고 잠들어버린줄 알았더니.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려서 혼몽한 정신으로 들어서 잊어버린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었나봐. 사실 조금 성급하게 불쑥 그 이야기를 꺼낸것 같기도 해. 솔직히 웃기잖아. 꿈에서 아기 여우가 나타나서 저를 황후에게 이끌었다는게. 거기다 그냥 걷기만 했나몰라, 산도 타고 흙바닥도 걷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어. 몸을 단련하기는 했어도 기본적으로 평생을 말과 가마 말고는 타 본적이 없는데, 제 발로 그렇게 오래 걸어보기는 처음이었지. 그렇게 작은 여우가 무슨 체력이 있어 저를 그 먼 곳까지 안내했겠냐 싶으면서도 지치지 않는지 자신이 주저앉을 때면 귀신같이 돌아와서는 손가락 끝을 앙앙 물어댔고. 옷자락도 깨물고 때론 품을 구하듯 가슴팍에 매달려 앙살을 부리기도 했지. 겨울과 가을, 그리고 여름을 지나 봄까지 오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싶어. 하지만 벌써 그 꿈은 몇 달전의 얘기고, 새삼스레 꿈을 더듬자니 부분 부분 날아가기도 했고. 


어제는 결심을 다지고 얘기를 꺼낸거지만 오늘은 아니야. 그래서 좀 멋쩍기도 해. 어제는 엉엉 우느라 감정적이 되어버려서 그 말이 불쑥 튀어나왔나봐. 하루종일 이 이야기를 들으려고 기다렸을 어린 황후를 생각하면 또 어쩐지 마음이 찡해져. 부러 다른 이야기로 돌리려 오늘을 무얼 했었나 물었더니 방긋 웃으며 조막만한 여우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아무것도 못 했대. 입꼬리는 예쁘게 호선을 그리고 있고. 내 어린 황후가 언제 이렇게 앙큼해졌담. 살짝 어이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럼에도 귀여워보이는건 콩깍지의 산물인가봐. 그게 그렇게 궁금했었나. 어지간하면 이렇게 떼를 안 쓰는데. 

손을 잡고 입을 맞추며 그렇게 궁금했었나 물으니 궁금했대. 별거 아닌 꿈 이야기가 그리 궁금했을까. 제가 생각해도 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라 입을 열기가 멋쩍어. 괜히 시간을 끌어보고자 뒷통수를 벅벅 긁는데, 그래도 여전히 황후의 눈은 반짝거리기만 해. 늘 의젓하고 의연한 모습만 보이려던 황후가 이렇게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는 적이 없던지라 황제도 이젠 두 손을 두 발을 다 들어버렸지. 이렇게 천진난만한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라서.




이야기는 몇 달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악몽이 시작된 날이었지. 선황후의 기일날이자 황후가 혼절하고 눈을 뜨지 않은 날로.








아니나다를까. 꿈을 꾼 날을 말하자마자 황후는 대번에 낯색이 바뀌어. 안 들어도 괜찮다고, 괜한 것을 물었다고 말이야. 어차피 황후는 한달동안 혼절해 있다가 일어난 쪽이라 시간의 흐름이 끊긴 적이 없으니 황후의 걱정은 그 자신을 향한게 아니라 저를 향한 것이고. 표정이 괜한걸 물었다 싶었는지 안절부절못한 표정이 되어 제 손을 꾹 말아쥐며 입술을 못 살게 굴지. 그러면 황제는 가만히 황후의 손을 말아쥐어. 긴장으로 차가워진, 저보다 한참 작은 손을. 뭘 그리 잘못한것도 없는데 손 끝까지 하얗게 질린 손가락이 안타까워. 그나마 제 손이 따뜻한게 다행이지. 엄지로 살살 매만지다가 살짝 그러쥐곤 후- 입김을 내뱉어. 그럼 이제 좀 긴장이 풀렸는지 다정한 염려가 가득한 녹음이 저를 향하자 가슴이 벅차올라. 
사실 그럴건 없는데. 괜히 입을 섣불리 놀려 저의 아픈 곳을 건드렸나 생각했나봐. 조막만한 여우 이야기가 듣고 싶다면서?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저으며 울상을 짓지. 여간해선 저에게 실수를 하는 법이 없는지라 저도 당황했나봐. 하지만 이건 황후가 듣고 싶어서 억지로 말을 하는게 아니야. 원래는 어제 마저 했어야 했는데 그만 황후가 잠드는 바람에 미처 끝내지 못 했던거라.




꿈을 간략하게 말했어. 꿈의 내용이 길었기 때문에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고. 제 두 손바닥을 겨우 넘는 조막만한 여우가 톰의 무덤 앞을 떠나려 하지 않는 저를 이끌어 주었다는게 주된 내용이었어. 계절을 거슬러 올라가는동안 산길, 숲 속, 눈밭을 헤치며 걷느라 지쳐 널브러질 때면 그 조막만한 애가 저를 어떻게든 이끌어주었다고. 지쳐 쓰러져있으면 지치지 말라고 울기도 하고, 손가락 끝을 앙앙 물기도 하고, 뺨을 낼름 핥기도 하고. 때론 춥다는듯이 제 품을 파고들기도 하고. 그 작은 체구로 무슨 힘이 그렇게 나는지 저 멀리서 폴짝폴짝 잘도 뛰어가는데, 아무리 걸어도 이 길이 끝나지 않을것 같아 잠시 멈추어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시 돌아와서는 옷자락을 물고 놔주지를 않아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를 따라갔더니 울고 있는 황후가 나왔다고 말이야.                                                                                                                                                         


그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한참 뒤에, 그러니까 얼마전에 또 그 여우가 꿈에 나온 이야기도 들려주었지. 그 사이 제법 자랐는지서 이젠 주황색 털도 조금 보이고, 네다리에 확연히 검은색 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말이야. 알버트라 불러주니 폴짝폴짝 뛰며 그 여우가 참 좋아했다고도 말했지. 꿈 속에서 황후가 그 여우를 참 귀여워하고 예뻐했고. 귀도 간신히 펴졌던 첫번째 꿈과 달리 두번째 꿈에서는 제법 귀가 쫑긋하게 서고, 민들레홀씨 같았던 때에서 조금 벗어나 사실 지금도 여전히 솜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좀 여우같은 구색을 갖추게 된 여우를 안아주었다고 말이야. 

꿈에서 어쩐일인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난감하던 그 때에, 거짓말처럼 환하던 하늘이 어둡게 물들기 시작하고 수없이 많은 연등이 떠올랐을 때엔 깜짝 놀랐고. 그 연등은 다름아닌 황후의 생일 때 날린 백개의 연등 중에서도 특별히 제작했던 그 연등이었다고. 하늘을 수없이 많이 수놓은 연등, 그리고 그 연등에 매달린 편지를 보고서나서야 뒤통수가 얼얼해졌고, 다시금 깨달았다고. 아기여우와 황후와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고 싶다는 그 소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진데 멍청한 자신이 지나친 슬픔에 매몰되어 현실을 잊고 있었노라고. 과거에 매몰되어 있느라 현재를 돌보지 않아서 미안하고, 또...여태까지 제 곁을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해보니 두 번이나 그랬어. 톰의 상실에 매몰되어 제이크를 보지 않으려고 했고, 제이크를 잃을뻔했다는 사실에 알버트를 보지 않으려고 했고. 지아비로서도 실격이고 아비로서도 실격이야. 실망한다해도 이게 다 업보겠거니 생각했는데 어제의 황후는 그런 기색도 없이 그저 부드럽게 저를 달래주었지.





말을 마치니 약간 멍한 표정의 황후가 눈을 말없이 깜빡이고 있어. 이래서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표정은 마치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것 같아 겸연쩍어진 황제는 말없이 황후를 끌어안아. 어찌보면 약간 놀란것처럼 보이기도 해. 하긴 평소에 이런 얘기를 전혀 한 적이 없으니까.꿈은 꿈일뿐이라 치부하고 싶은데도 어쩐지 자꾸 마음에 걸리는거야. 그럴리가 없다 생각하면서도 계속 그 여우가 알버트였을까? 곱씹게 돼. 알버트라 부르니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던게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눈을 감은채 꿈 속의 여우를 덧그려보는데, 어느새 저를 끌어안았던 손이 스르륵 풀려. 

품에서 황후를 놓아주니 황후의 눈이 글썽글썽해. 이제 어떤 연유로든 이 녹음에 물기가 어리는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데. 안타까운 마음에 엄지로 눈물을 훔쳐내는데, 다시 와락 안겨. 목즈음에 입술을 묻은채 웅얼거려서 잘 알아듣지는 못 했지만. 말랑한 입술이 움직일때마다 간지럽고, 옷깃이 젖어감에 따라 애가 타. 또 뭐 때문에 눈물이 났을까. 제 얘기 중에 어떤 부분이 그렇게 심금을 건드렸을까. 웅얼거리는듯한 음성 중에 몇 개만 간신히 알아들었을 뿐이야. 나도, 꿈에, 여우가....









훌쩍이며 말을 다 마친 황후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지. 어째 잘 참는다 했더니. 어제는 의연하고 의젓하게 저를 달래더니 어제 몫의 눈물까지 터졌나봐. 결국 그 꿈은 서로에게 가는 길이었던 모양이야. 황후는 처음 입궁했던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 다시 겨울이 됐고 자신은 계절을 역행했고. 자신은 계절을 역행해 겨울 가을 여름 봄,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한거야. 자신은 톰의 무덤을 떠나 톰의 사당으로 돌아왔고, 황후는 호수를 떠나 마찬가지로 톰의 사당에 도착했고. 

사당이 두 사람의 관계에 변곡점이 된 건 사실이야. 그래서 두 사람 꿈에 다 나왔으려나? 황제는 생각했지. 하필 사당 앞에서 서로를 만난 것도 그래. 황제는 울고 있는 황후를 발견했고, 황후는 심란한 표정의 황제를 발견했지. 서로 꿈인걸 알고 있으며서도 한 번도 상대방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적 없다가, 상대를 보고 나서야 현실을 떠올렸다는 것도 똑같고. 작은 아기 여우가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서로를 현실로 이끌어줬나봐. 먼저 황후를 깨웠다가 저를 깨웠다가, 다시 잠든 황후를 깨웠다가.

어제와는 완전히 반대가 된 두 사람은 평소처럼 황제가 황후를 위로했어. 가만히 등을 토닥토닥이면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이어지지. 훌쩍이며 한다는 말이, 여우가 꿈에 나타나 저를 깨워줬고 그게 알버트인것 같다니 말만 늘어놓으면 너무 황당무계하고 얼토당토 않는 말이라 말하기가 꺼려졌다는거야. 믿지도 않으실것 같고, 웅얼거리며 불분명한 발음으로 어깨에 기대서 훌쩍였지. 하긴 원자를 알뜰살뜰 보살피기만 했어도 황후가 그런 겁은 내지 않았을텐데. 가뜩이나 원자에 대한 태도가 묘하게 냉랭한데 그런 얘길 했어봐. 괜히 원자를 예뻐해달라고 비춰질까봐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는건 충분히 황후의 평소 성정이라면 나올만한 행동이고. 결국 이 모든게 현실을 내팽개친 자신의 업보 아니겠어. 





한참을 그렇게 내뱉고 나니 긴장이 풀렸는지 아니면 어제와 오늘 이틀 연달아 감정 소모가 심해서 그런건지, 꿈벅 꿈벅 눈꺼풀이 감기는 속도가 느려져. 이만 잠들까 싶어 얼굴을 마주보면 갑자기 불쑥 입술이 튀어나와. 입술을 쭉 내미는건 입맞춤을 해달라는 뜻이고, 옷깃을 잡아 당기는건 재촉이야. 잠들기 전에 얼른 해달란 소리지. 또 어제처럼 자제 못 하고 선을 넘을까봐 망설이는데 어느새 말캉한 입술이 다가와 꾹 누르지. 아랫입술을 머금고 살짝 빨아당기다가 마지막에 앙, 깨물고 떨어지는게 나름 황후의 애교랄까. 좀 무리해서 재활훈련을 한다 싶으면 황제의 표정이 엄해지곤 했거든. 훈련을 하는건 좋지만 너무 급히 서두르면 될 것도 안 되는 법이고, 또 그러다가 더 다치면 어떡해. 그날 하루의 일과를 전해들은 황제가 황후전으로 달려가 절부절못하는 모양새로 미간을 찡그리고 있으면 황후가 눈동자를 양 옆으로 도르륵 굴리다가 저러곤 했어. 나름 황제의 화를 풀어준답시고 하는건데,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황제도 잔망스러운 황후의 행동에 그만 말을 잃어버리지.

손 잡는 것도 망설이던게 엊그제 같은데 먼저 입맞춤도 하게 되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싶어. 입궁한지 그리 오래 됐다고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어리지도 않아. 언제 이렇게 성장했나 싶어 약간 벅차오르는데, 안달이 났는지 황후가 다시 입맞춤을 조르지. 옅은 흉터로 남은 턱 끝에 한 번, 뺨에 한 번. 수줍음이 많은 황후는 직접 입술에 맞추지는 못 해. 그저 물막이 맺힌 반질한 눈동자를 물끄러미 빛낼 뿐이야. 그럼 뭐 별 수 있나. 황제는 기꺼이 입맞춤을 갈구하는 입술을 홀라당 삼키는 수 밖에.






일정한 시각이 되면 귀신같이 잠이 몰려오는지 꾸벅 꾸벅 조는 황후야. 오랜 시간의 대화 끝에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어제처럼 꾸역 꾸역 하품을 참아. 엉덩이를 받치고 두 손으로 안아들자 흰 발이 달랑거려. 추위도 많이 타면서 솜을 누빈 두툼한 양말을 신겨 놓으면 또 정작 덥다고 벗어대는건 무슨 습관인가 몰라. 잠이 들었는지 힘이 빠진 몸을 추슬러 안으면 잠결에도 온기를 느꼈는지 온기를 찾아 품에 파고들지. 조심스레 침상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침상 아래쪽에 앉아 아픈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해. 이불 속에 손을 넣은채 주무르려니 보이지 않아서 생각만큼 제대로 잘 되지는 않지만. 따뜻한 이불 속에 노곤노곤하게 파묻힌채 다리를 문질러지니 시원한지 입꼬리가 슬몃 올라가. 좋은 꿈이라도 꾸려나? 아니면 오늘 아기 여우에 대해 얘기 했으니 또 그에 관한 꿈을 꾸려나. 이번엔 그 꿈에 저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조심스레 입을 맞춰. 부디 이제는 기분 좋은 꿈만 꾸기를 바라며.



잠든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리고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대신이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지만 이왕 두 사람 꿈에 나오기도 하고 낯설지 않으니 선물을 하나 해볼까 해. 그러고보니 이 넓은 황궁이 적적해보기이도 하고. 알버트가 태어나긴 했다지만 태자로 책봉되면 동궁으로 내보내야 할테니 곧 또 쓸쓸해질거고. 생각해볼 수록 나쁜 선택 같지는 않아. 선물을 받고 빵긋 올라올 광대가 눈에 선해. 많이 좋아하면 좋을텐데.









루스터행맨
 
2024.03.02 01:40
ㅇㅇ
모바일
우왓 여우 선물...+!!!
[Code: cf2b]
2024.03.02 02:18
ㅇㅇ
모바일
여우선물~~~???? 하 진짜 할 거 다 해놓고 키스 부끄러워하고 애 낳아놓고 인형선물하고 진짜 귀여워죽겠다.... 이러다가 다시 배 맞대면 얼마나 부끄러워 하려나 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
[Code: ca5e]
2024.03.02 02:56
ㅇㅇ
모바일
센세오셧다?!!! 여우선물이라니ㅜㅜㅜㅠ
[Code: ee1e]
2024.03.02 06:01
ㅇㅇ
모바일
여우 선물 가즈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 이제 힘든 시간 이야기도 나누고 찐부부다 찐부부ㅠㅠㅠㅠㅠ
[Code: 8256]
2024.03.02 08:08
ㅇㅇ
모바일
애까지 낳아놓고 부끄러워 하는 거 봨ㅋㅋㅋㅋ귀엽다 귀여워
[Code: 0690]
2024.03.02 08:38
ㅇㅇ
모바일
내ㅠㅠㅠ센ㅠㅠㅠㅠ세ㅠㅠㅠㅠㅠㅠ
[Code: 3d9e]
2024.03.02 13:55
ㅇㅇ
모바일
갸아아악 여우데려오려나봐ㅠㅠㅠㅠㅠㅠㅠㅠ 찐ㅋㅋㅋㅋㅋ빵ㅋㅋㅋㅋㅋ진짜 너무 귀여워 귀염터딤 진심... 뽀얗고 오동통 말랑한게 찐빵이랑 똑 닮았는데 찐빵이라고 말도 못하겠네ㅠㅠㅠㅠㅠ 귀엽다고 직설적으로 말해줘야되나봐ㅋㅋㅋㅋㅋㅋㅋ 사랑스럽다고 빗대서 말한건데 살쪘다고 하는줄 알았나보네ㅠㅠㅠㅠㄱㅇㅇㅠㅠㅠㅠ 오늘 진짜 황제황후 둘 다 따숩고 귀엽고 달달하다 입맞춤 보채는 황후가 쑥스러워하는거도 ㄱㅇㅇ..선물받고나면 황후가 얼마나 좋아할지 내가 다 기대되고 뿌듯함ㅠㅠㅠㅠ
[Code: 1e7d]
2024.03.02 09:38
ㅇㅇ
모바일
선물은 이게 선물이야 꼬박꼬박 어나더 가져오는 센세..
[Code: 139c]
2024.03.02 09:39
ㅇㅇ
모바일
아니 임신했을때 찐빵일화 미친거아니야? 새초롬하게 쳐다봤을 제이크너무귀여움 이렇게 깜찍한 일화가 있다니 루스터 어떻게 버틴거냐 찐빵처럼 냅다 입에 넣어버리고싶은데;;
[Code: 139c]
2024.03.02 09:40
ㅇㅇ
모바일
그리고 여우 꿈 얘기하면서 제이크 우는거ㅠㅠ 이젠 서로 다 마음에 얹힌거 없이 다독여줬으니까 홀가분하다 울 거 이제 다 울었다ㅠㅠㅠㅠ
[Code: 139c]
2024.03.02 09:42
ㅇㅇ
모바일
마지막에 애교부리는 제이크....... 그냥 내가 다 벅참.....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워도 되는거임.......
[Code: 139c]
2024.03.02 14:06
ㅇㅇ
모바일
찐빵같다고 말한 거에 황후 혼자 충격 받아서 굶은 거 귀여운데 안쓰러워ㅋㅋㅋㅋ이제는 그게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알겠지만! 그리고 꿈 속의 아기여우가 얼마나 힘냈는지 이제 두 사람 다 알게 되었네ㅠㅠㅠㅠ선물 뭘까 궁금하다!!
[Code: 4364]
2024.03.02 18:44
ㅇㅇ
모바일
아니 황후가 애교도 부리고 진짜 감격ㅠㅠㅠㅋㅋㅋㅋ꿈에서 나온 여우 진짜 소중해 알버트 같기도 하고 정말 큰일했다 아기여우ㅠㅠㅠ
[Code: e0a1]
2024.03.02 21:22
ㅇㅇ
모바일
다시 귀엽고 달달하다 이게 순애부부물 되는거지 이제 존맛
[Code: 9630]
2024.03.02 21:22
ㅇㅇ
모바일
단짠단짠 밸런스 완벽한 무순이야 센세
[Code: 9630]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