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ㅈㅈㅇ
ㅇㅁㅈㅇ
빻음ㅈㅇ
걍 다 ㅈㅇ..............
서로가 만나 세계가 완성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우리의 세계는 폐허뿐이다.
*
상엽은 생각했다.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나약한 조국을. 한 줌 잿가루같은 가문을. 가족을. 손을 쥐면 틈새로 새어 나오고, 손을 펴면 바람에 흩어질 한낱 가여운 것들. 상엽은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을 모아 만들어진 존재였다.
“마마. 폐하께서 연화궁(連和宮)으로 오시라 전언하셨습니다.”
상엽은 시녀의 말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시녀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더니 곧 자신의 몸을 물렸다. 방문이 굳게 닫히고, 빛이라고는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전부인 곳에서, 상엽은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욱신거리는 발의 통증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 탓이었다.
칭칭 동여매진 자신의 두 발. 참담한 모양새에 그만큼이나 가슴이 무너진 것도 벌써 한 달째였다. 이미 장성해 굳은살이 박인 성인 남성의 발을, 빳빳한 무명천으로 수십 번이나 감아 맨 것은 그 의도가 명백했기에 잔인한 처사였다. 상엽은 아려오는 자신의 발을 차마 바닥에도 대지 못해 자신의 침대에 오도카니 앉아만 있었다.
「어여쁘구나.」
사람도, 짐승도 아닌 무언가로 보는 그 무기질적인 시선. 새파랗게 시린 눈을 가진 사내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했다.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바다를 머금은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훑을 때면 꼭, 고래 배 속에 먹히는 기분이 들었다. 생경한 감각. 외떨어진 궁의 한켠에서 자신은 결국, 인간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인형. 그래, 이것은 인형이다. 상엽은 스스로가 오래 방치되어 관절마저 굳어버린 목각인형 같단 생각을 했다.
이제 이곳에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이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만이 남았다. 상엽은 그렇게 철저히 고립되어갔다.
*
“스티븐은?”
“왕세자 저하께선…,”
“왕세자?”
“…송구합니다. 황비 저하께선 오늘도 영락궁(影落宮)에서 두문불출하십니다.”
“오찬은 영락궁으로 들여라. 연화궁의 문은 굳게 잠가 두고.”
돌아오는 답변에 그제야 만족스러운 낯을 한 간디는 시녀들이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하기가 무섭게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조용히 뒤따르던 시녀장은 간디의 손짓 한 번에 자신과 주변 시종들의 몸을 숨겼다. 황제의 뒤를 따르는 이가 없는 것은 그만큼이나 그의 권력이 견고하기만 하단 의미였다. 역대 황제 중 가장 포악하고 천성이 잔인한 그는 아비와 어미, 제 형제자매들과 황궁에 기거하던 이들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고 황위를 찬탈한 이였다. 피로 적셔진 길을 지나, 수많은 이들의 욕망이 자리했을 황좌에 앉은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왕관을 썼다. 그의 나이, 십칠 세 때의 일이었다.
피로 새겨진 역사서가 채 마르지 못했으니, 그의 발걸음을 막아서는 이 또한 채워지지 못했음이라. 그는 여느 폭군과 다를 바 없이 광포했다. 형형한 푸른 눈빛 아래에 자리한 이들은, 그의 이해하지 못할 명령에도 군말 없이 따를 뿐이었다.
변방의 약소국을 짓밟고, 그 나라의 둘째 왕세자를 데려와 황비의 직책을 내리고, 황궁 내에서는 ‘그’를 ‘그녀’라고 지칭하게끔 한, 폭군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조차도.
*
상엽은 오전의 분주했던 준비에도 결국 발끝에서부터 오르는 열에 지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통증을 줄여준다는 탕약을 마셨으나 뼈마디가 부서져 제대로 붙지 못하고 동여맨 발에선 진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와 고약한 냄새를 풍기니, 상엽으로선 깨어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역이었다. 스스로 걸을 수도, 심지어 자신의 발에 묶인 천을 풀어내고 씻어낼 수도 없는 처지를 한탄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상엽은 차라리 이대로 고통과 열에 못이겨 끝내 숨을 거두기만을 바랐다. 불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열에 잠식되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말라비틀어진 물고기처럼 그렇게 초라하게 죽길 바랐다.
그것 또한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고.
“스티븐.”
낯선 이름을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면,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를 것 없이 번듯하고 잘생긴 이목구비가 보였다. 상엽은 이제 익숙해져 버린 그 낯에 눈을 다시금 질끈 감았다.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은 상엽의 마음을 알아줄 생각 따윈 없는 사내, 간디는 열 오른 상엽의 이마며 뺨을 쓰다듬다가 이내 힘없이 처진 그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창가로 다가선다. 영락궁. 이름에 걸맞게 스산한 기운이 가득 차 사시사철 어두컴컴한 냉궁임에도 기이할 만큼 커다란 통창을 달아둔 곳이었다. 마치 창밖을 지나는 모든 이가 냉궁에 갇힌 이를 구경하고, 조롱하길 바라는 것처럼.
이내 간디는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엽을 그 통창의 난간에 앉히고 상엽의 발을 조심히 들어 올려 자신의 손으로 쓸었다. 그 손길이 퍽 다정했다. 상엽은 그런 그의 모습이, 언제나 자신을 괴롭게 함을 알았다.
간디는 그새 진물에 엉망이 된 무명천을 풀어냈다. 그러나 상엽은 해방감을 느끼기는커녕 욱신거리는 통증이 더욱 심해져 와 끙끙 앓는 소리만을 냈다. 풀린 천 아래에서 드러난 발의 모양새는 뒤틀린 채 붉고 푸른 꽃을 피워내 보기가 역했다.
“흐, 으….”
“꽃신을 가져왔는데. 그대의 발에 참으로 잘 어울릴 듯하여.”
고통에 희게 질린 손끝이 자신의 옷자락을 꾹 쥐는 가녀린 모양새를 보면서도, 간디는 그저 무던히 말을 꺼냈다. 상엽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 없이 새어 나오는 방울진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곱게 차린 옷자락을 적셨다.
“어찌하여 제게 이러십니까.”
끊어질 듯 작게 읊조린 상엽의 목소리는 본인의 성정만큼이나 유약해 보였다. 퍽 애닲기도 했다. 간디는 그런 상엽의 참담한 읊조림에도 그림 같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지. 상엽은 간디의 대답에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만 싶어졌다. 그러나 곧 이을 고통을 알기에 제 허벅지와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쥘 뿐이었다.
“으, ㅇ, 아악…!”
안쓰러울 만큼 창틀에 기대어 고통을 감내하는 상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간디는 신중하고 꼼꼼하게 새로운 무명천으로 상엽의 발을 감쌌다. 그것은 아픈 이의 상처를 치료하는 손길도 아니었고, 상대를 배려하는 이의 다정함도 아니었다. 간디의 행위는 그저, 자신의 욕구와 소유욕을 드러내는, 오로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뒤틀리고 새끼발가락이 부러져 퉁퉁 부어오른 것을 알면서도, 천을 동여매 그 형태를 억지로 눌러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들고 온 화려한 꽃신을 그 위에 신겨주었다. 그러나 그가 직접 고른 신의 크기가 보통 여인의 발보다 작은 것이었기에, 천을 동여맨 상엽의 발에는 당연하게 채 절반이 들어가지 못했다. 간디는 일부러 실망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대를 위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거부해서야 쓰나. 그 말에 담긴 뜻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고통 속에도 수치심이 밀려와 상엽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이 신을 신을 수 있게 되기 전까지, 그대는 밖을 나서기가 민망하겠군.”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겠어.
저주 같은 명령을 내린 간디의 입술이, 상엽의 발등에 닿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누군가 했던 말이 상엽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여인의 발등에 입 맞추는 사내는 낭만적이겠지만, 사내의 발을 여인의 발처럼 만들기 위해 부수고 묶어 그 위에 입 맞추는 황제는 그저 잔혹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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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하는 뜨요가 보고싶었을 뿐인데....
디상 간디상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