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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7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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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아기여우가 황제에게로 이끈걸 기억해. 태명을 아기여우로 한 탓일까. 무의식중에 저를 닮은 아이가 태어날거라고 생각했나봐. 갈색 곱슬머리에 발그스름한 뺨은 저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누가봐도 황제를 쏙 빼닮았지. 그게 싫은건 아니야. 하지만 근 몇 달을 내내 아기 여우라고 불러서 그런가 이상하게도 괴리감이 들어서 말이야. 비록 여우가 세러신의 문장이기는 하지만.
황제가 하도 손목 약해진다고 들지 말라고 난리를 쳐서 할 수 없이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살폈지. 꿈에서는 제 두 손바닥을 겨우 넘는 작은 아기여우였는데. 황제에겐 여우보다는....늑대가 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태명을 잘못 지었나? 아기 늑대로 할 걸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래도 황실의 후계자인데 여우는 좀 그랬을지도. 

한 달을 못 본 사이 이미 쑥 자라서 그런가, 분명 아홉달을 배 속에 품고 있었는데 조금 낯설기도 해. 꿈에서 내도록 봤던 작은 아기여우와 괴리감이 있어서 그런걸까? 갈색머리랑 갈색눈은 좀...비슷한것 같기도 하고. 그 조그맣던 여우가 꿈 속에서 저를 호수에서 이끌어내려고, 그리고 황제가 있는 곳으로 이끌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몰라. 자신이 멈추면 그  조그만 주둥이로 제 옷자락을 물어 끌거나, 쌀알같은 발톱으로 가슴팍을 긁어대거나, 아니면 그 조그만 이빨로 제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앙앙 물어대곤 했지. 그러고보면 실제로 알버트를 만나기까지는 참 힘들었던것 같아. 




알버트가 태어난 지 백일이 된 지금, 완연한 봄을 맞았지. 날씨가 풀린지가 언제고 매화가 지다못해 이젠 벚꽃이 필 때야. 황제가 써준 편지에 봄이 되면 호숫가에 가서 뱃놀이를 하러가자는 말이 있었지. 조심스레 권유해보니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았고, 호숫가는 안 그래도 바람이 차고 거세게 부는데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떡하냐고 울상이야. 세상에, 이 정도면 병인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알버트와 함께 타고 싶었지만 아직 너무 어리기도 하고, 다리도 여전히 불편해. 얼른 제 두 손으로 안아보고 싶은은데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몸으로는 어림도 없지. 얼른 훈련이나 열심히 해서 두 다리로 서는 수 밖에.


걷는걸 도와주겠다며 황제가 제 팔을 어깨에 걸고 한 손으로 허리를 붙든채 걷고 있자면 자꾸 황제의 손이 의식되서 걸을 때마다 삐그덕 거리거든. 그런데 또 그걸 제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워. 별 생각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제 허리와 어깨를 감싸는 따뜻한 손이 다정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시간을 내어서 저를 도와주는게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괜히 더 빨리 나아야 할 것 같고. 이렇게 황제가 친히 훈련을 도와주는데 차도가 없으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괜찮다고, 혼자서도 충분하고 궁인들이 옆에서 부축해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도 듣질 않았지. 
 
평생 이 다리가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황후는 황제와 아이를 떠올렸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 꼭 제 팔로 안아주고 싶었어. 그리고 황제도. 평생 의자에 앉아서만 황제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잖아. 그러한 마음들이 좋은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한편으론 조급해지기도 했어. 늙은 태의는 의식을 차리고 회복하신것만으로도 천운이라며 칭찬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급한걸 어떡해. 저보다 더 절망적인 얼굴로 제 허벅다리 위에 얼굴을 묻은채 울음을 참던 황제가 떠올라. 끝내 참지 못 하고 오열했지. 잘못한것도 없는데 미안하다며 움직이지 않는 쪽의 다리를 붙들고 한참을, 그렇게.
 













황제는 제 다리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데 괜히 신경이 쓰여. 어제까지만 해도 잘 움직이던 다리가 긴장을 해서 그런지 잘 움직이지 않아서 아쉬워. 배에 올라타는게 쉽지 않긴 했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배에 오르고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진이 빠져. 괜히 저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한것 같기도 하고, 고집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봄에 뱃놀이를 하고 싶다고 한건 이렇게 되기 전, 한참 전에 했던 말이었을 뿐인데 황제가 그걸 기억하고 편지로 쓴거야. 그것도 자신이 혼절한 한 달 사이에 말이야. 봄이 되어 날씨가 풀리고 황후가 좋아하는 벚꽃이 피면 가자는 내용이었지. 다리가 이렇게 된 걸 알고 나서는 불가능할거라 아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아예 제가 탄 가마를 통째로 배에 싣도록 명령을 해버린거야.


황제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배에 올라타. 파란 호수를 가르지르고 나가는동안, 오랜만에 맞이하는 상쾌한 바람과 눈에 띄게 온화해진 바람이 두 사람을 맞이하지. 굳이 황제의 호숫가 나들이 제안에 반대를 하지 않은 것은, 정작 자신보다 황제에게 필요해보였기 때문이야. 최근 여간해서는 제 곁을 떠나려하지 않는 황제가 오히려 더 불안해. 큰 일을 너무 연달아 겪어서 그런걸까?  에둘러 괜찮으시냐 물어보긴 했지만 여전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야. 황제의 건강은 곧 권위와 연결되곤 하니까.

호숫가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이 왠지 쓸쓸해보여. 본 적 없이 지치고 낡아보였지. 혹시 내가 저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최근엔 계속 심려만 끼친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 해.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이미 겪어본 똑같은 두려움에 대한 경계로 인해 더 그래보였지. 누구보다도 잘 알거야. 왜냐하면 이미 한 번 모두 겪었던 것들이니까. 그래서 그런걸까? 이전에는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강인해보이던 황제가 이제는 예전만큼 강해보이지 않아. 단단하고 굳건해보이던 거대한 산에 균열이 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크고 거대해보이던 산이 한 순간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을까.

 



의자에 앉아 가만히 호수바람을 쐬던 황후는 작게 황제를 불렀어. 작은 제 목소리에도 황제는 금방 뒤돌아보지. 금세 걱정스러운 눈을 하며 춥냐, 어디가 아프냐, 돌아갈까, 다양한 질문을 던져. 어느샌가부터 저는 황제에게 근심어린 존재가 된 것 같아. 도움이 되어도 모자랄판에 근심걱정의 근원지라니, 참. 누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닌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나봐. 그늘진 얼굴은 보기 싫고, 수심이 깊어보이면 뭐라도 들어주고 싶은 이 마음은 어쩔 수 없나봐. 호수바람이 차갑다며 호들갑을 떠는 황제의 손을 잡고 가만히 묻고 싶었지. 정말로 괜찮은거냐고. 

이 넓은 황궁에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당신 뿐이고,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한데다가 지금은 더 없이 행복한데, 과연 당신은 그러할까 싶어서. 지난 한 달 동안 황제가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건 궁인들이 재잘거려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야. 황궁에는 황제의 손길을 기다리는 수많은 꽃들이 있을텐데. 자연히 마음이 묵직해지지. 다리까지 이렇게 되고 나서는 더더욱 그래.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아. 그 때는 그저 기약도 없이 언젠가 저에게로 마음이 기울지 않을까, 혹시나 저에게 한 번이라도 눈길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뿐이었거든. 총애를 바라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해. 그저 황제의 취향이 이렇다더라 하는 말을 언뜻 듣고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 정도 뿐이었지. 






선황후와 닮은 이 얼굴이 황제에게 더 상처가 되었을까? 모르겠어. 몇 번이고 물었고 이미 몇 번이고 똑같이 반복된 대답을 들은 마당에 또다시 물을 수 없어서, 그저 다시 폐하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음하다고 말했지. 완연한 봄까지는 아니었어도 날씨가 따뜻해진지 오래인데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황제가 여전히 다정한 갈색 눈에 흘러넘치는 다정과 애정만이 가득해. 더 이상 이 다정한 갈색눈에 두려움이나 공포는 없었으면 좋겠는데. 일부러는 아니지만 어쨋든 한 달간 혼절한 바람에 이 사람이 이렇게 겁이 많아졌다는게 마음에 걸리고, 안쓰럽고.

딱히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를 안겨주면 어색해서 어찌할바를 모르는걸 보니 자신이 없을 때 거의 안지 않았나봐. 하긴, 황제는 원래 직접 아이를 돌보지 않으니까. 아마 저가 깨어있었다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거야. 기껏 황제가 찾아오면 잠깐 안겨줘봤다가 유모가 다지 데려갔을걸. 그러니 그가 아이를 안아드는데 서툴다해도 그다지 이상할 일은 아니야. 한달 내내 제 곁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을거고. 궁인들이 그렇게 말했잖아. 
괜히 오랜만의 외출인데 심기를 거스를 필요는 없기도 하고, 또 정말로 이렇게 멀리 나와보는건 오랜만이라서 기분이 좋은건 사실이야. 호숫가가 원래 이렇게 멀지는 않았는데 다리가 불편해지고 나니 새삼 익숙한 길인데도 불구하고 참 멀어보여. 오늘 이 외출도 사실 황제가 명령을 한거라 가능했던거야. 그냥 자신이 호수에 가고 싶다고 했다면 어림도 없었을걸. 태의가 거품을 물고 안 된다고 펄떡펄떡 난리를 쳤을텐데 황제가 가겠다 한거니 말을 못 붙여서 그렇지.


괜한 잡음은 만들고 싶지 않아 가만히 의자에 앉은채 가만히 황제의 손을 잡아. 따뜻하다못해 좀 뜨겁고 두툼한 손이 제 손을 감싸안아. 눈을 떴을 때, 황제의 향과 제 손을 잡고 있던 따스한 손의 감각이 가장 먼저 느껴졌어. 항상 잡아보고 싶고, 잡기 두려웠던 손인데 이젠 손을 잡으면 눈을 마주치고 빙긋 마주웃어오지. 이 얼굴이 보고 싶었나봐. 그래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나봐. 여태까지 오래 기다려왔으니 조금 더 기다리는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황제가 예전의 황제로 돌아와주기만 한다면 말이야.












황제는 의식적으로 황후가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어. 혼절한 날도 마찬가지고. 사실 정확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는 표현이 옳겠지. 왜,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당시 기억이 날아간다고들 하잖아. 황제라고 알버트를 일부러 미워하려고 한 건 아니야. 당시에 온 마음의 정신이 몽땅 황후에게로 가버려서 여유가 없었다고 해야할까. 정신을 차리고보니 이미 멀어졌지. 사당 사건 이후 3개월동안 황후를 사적으로 찾지 않았을 때처럼. 이미 멀어진데다가 황후를 아프게 한 원인이라는 생각에 그다지 애정이 가지 않은것도 사실이야. 그나마 황후라도 쏙 뺴닮았으면 좋았을텐데 그것도 아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만을 빼다박은 외모에 실망한 것도 한 몫했고. 

황후가 안아보라고 했을 때가 사실 처음으로 알버트를 안아본거야. 황후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아 황후를 닮지 않았다는것만 인식했고, 황후가 깨어나자 그제서야 자세히 얼굴을 살펴본 날이지. 그러니 제대로 되먹은 아비라고 하긴 힘들어. 황제도 자신이 그간 무심했다는걸 알아. 아이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도. 한 달동안 이름을 주지 않은 것도 황후를 정말 사랑했다면 세러신 가문을 생각해서 그러면 안 됐고,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고 힘을 실어줬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 후계자에게 공고히 힘을 실어줘야 세러신의 힘을 등에 업고 무탈하게 태자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도. 원자를 정말 황후의 유산이라 생각했다면 그랬어야 했다는 것도 잘 알지.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서. 


안아드는게 어색했고, 그간 냉대했던게 마음에 걸리는데다가 순진무구한 아이와 눈을 마주치니 어쩐지 자신이 크게 잘못한 기분이 들었지. 잘못한게 맞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어. 꿈에 나타났던 조그만 여우가 사실 알버트의 현신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더 그랬지. 꿈에서는 세상 소중하게 안아들었던 아이를 현실에서는 외면했지. 하마터면 제이크 세러신의 유산이 되었을지도 모를 그 아이를.














황후는 자신이 잠들면 슬그머니 황제가 일어나는걸 알아. 일어나서 아예 처소를 떠나는건 아니고, 살짝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달 밝은 창가쪽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도 있고. 슬그머니 떠진 눈은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쫒다가 금세 감겨. 약에 취해 이른 저녁부터 까무룩 잠들다보면 새벽에 꺨 때가 있어. 그럴 때 악몽에 허덕이는 목소리가 들리거든. 더 이상 "톰"이 아닌 "제이크"라는 이름이 황제의 입에서 나오는걸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저 때문에 새로운 악몽이 추가된걸 슬퍼해야 하나. 제가 안다는걸 이 사람이 알면 더 숨기지 않으려나.


식은땀으로 끙끙 앓는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저에게 황제게 했던 것처럼 가만히 손을 잡아 쥐어. 궁인들이 말해줬거든. 자신이 혼절한 사이에도 계속해서 손을 잡고 말을 걸어줬다고. 듣지도 못 할텐데 말이야. 그러니 저도 똑같이 해주고 싶은거야. 나는 여기있다고, 그러니 안심하고 잠들라고. 수건을 찾으려다가 새벽이라 그런지 다리가 저려서 그냥 손바닥으로 쓸어봐. 찌푸려졌던 미간을 엄지 끝으로 살살 쓸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아. 혹여나 이름을 부르면 아예 잠을 깨버릴까봐, 쓸어낸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봐. 아이를 가진 뒤로 잠이 늘어 늘 황제보다 잠이 먼저 드는 바람에 이래본적이 없는데, 새벽에 깨어났을 때나 부릴 수 있는 호사인가봐.


많은걸 바라지 않아. 제 생일날 황제가 쥐어준 연등과 그 밑에 달린 종이에 쓰인 것. 딱 그 정도만 원해. 많은건 바라지도 않아. 아기여우와 황후와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던 황제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 제 바람은 그 정도 뿐이야.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이 사람이 이젠 더 이상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 그랬으면 더 이상 바랄게 없겠다고 생각해. 저로 인해 엄청난 행복을 찾지는 못 하더라도 악몽이 되지 않기를. 언제나 위안이 되어주었던 따뜻한 손을 붙잡고 눈물로 젖은 눈꼬리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춰. 더 이상 이 사람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아기 여우가 나오는 꿈은 그 날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꾼 적이 없어. 제이크가 혼절한 날 말이야. 그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어리기는 하지만, 한 눈에 보기에도 여우는 제법 자라있었어. 흙색깔이나 다름없었던 보송보송한 솜털이 제법 밝은 황토색으로 바뀌었거든. 본래의 털 색인 주황색에 가까워졌다고 봐야겠지. 그 때는 귀도 겨우 펴져있어서 모양도 제대로 못 잡은 상태더니 이제 제법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지. 앞발과 뒷발도 제법 새까만 색이 올라와서 여우라는게 티가 나. 물론 여전히 황제의 눈에는 솜뭉치나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발바닥에도 살이 제법 차올라 앙상하게 발톱이 드러났던 저번 꿈과 달리 이젠 제법 발톱이 숨겨졌고. 현실의 알버트는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기만 한데, 여우는 왜 친근한지 모르겠어. 어차피 진짜 여우도 아니고, 이게 정말로 알버트일거라고는 생각 안 해. 하지만 직감이라는게 있잖아? 

황제는 무릎을 꿇은채 여우와 눈을 맞추고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기분 좋은듯 작게 울음소리를 내며 더 해달라는듯 머리를 들이미는게 꼭 애교를 부리는것 같지. 처음보는 여우치고 친근감을 가감없이 드러내지. 모습으로만 따지자면 분명 처음보는 여우인데, 어쩐지 황후가 혼절하던 날 꾼 꿈에서 본 여우가 자란것만 같아. 속는셈 치고 알버트라 불러보니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어. 모른척 아기 여우야, 그렇게 부르면 안아달라는듯이 두 앞발을 들고 무릎에 기대지. 어떻게 할까, 모른척 무시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제 다리 위로 기어오르려고 작은 쌀알같은 발톱을 세워서 바둥거리는게 안쓰러워서 그만 안아버렸어. 언제 저를 봤다고 그렇게 반가워하는지. 작은 혀가 뺨을 간지럽히는데도 불쾌하기는커녕 마냥 귀엽기만 해. 




그러고보면 이 조그만 여우가 저를 황후에게로 이끌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톰의 무덤 앞에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몰라. 결국 무릎을 굽힌 황제가 여우를 안아들고 품에 감싸안아. 뭐, 아기를 안느거랑 크게 다를건 없네. 그러고보니 알버트를 이렇게 안아줬던가. 아, 혹시 내가 동물을 안듯이 안아서 그 애가 불편해했던게 아닐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보니 어떻게 안으라는 소리를 못 들었던것 같기도 하고....하긴 감히 저에게 누가 훈수를 두겠어. 팔을 굽혀 엉덩이를 받치고 가슴팍에 기대게 하니 어찌저찌 얹혀져는 있는데, 뭔가 불편한가봐. 그런데 뭘 알아야 제대로 안아주지. 그리고 얘도 말을 해야 알아들을거고. 낑낑 울며 자꾸 품을 파고드는데 미안하지만 먹을 것도 없고. 혹시 추우려나 싶어 등을 쓰다듬어주면 졸린지 눈을 스르륵 감아. 차라리 잘됐다 싶은데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

돌아보면 황후가 다가오고 있어. 두 발로 멀쩡하게 걷는 황후가 여우를 쓰다듬어. 귀여워라. 너무 귀엽지 않아요?  예뻐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황후가 귀엽다 말을 해야하는데 입이 안 떨어져. 말이 안 나오는게 아니라 정말로 입술이 딱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아. 황제는 당황했지. 악몽을 아무리 많이 꾸었어도 이런적은 없었거든. 제가 답이없자 황후는 실망한 기색이지. 
귀엽지 않냐고? 귀엽기도 했지만...안쓰러웠지. 톰의 기일날 꾼 꿈에서, 오죽했으면 톰의 무덤을 떠나 아기 여우를 따라갔겠어? 제 두 손바닥을 겨우 넘는 솜털뭉치가 눈밭 위를 쫑쫑거리며 걸어가는데, 꿈인걸 알면서도 안쓰러워서 따라간거야. 무시해버리면 그만일 일이었지만 어째선지 그러고 싶지 않았고. 결국 저를 황후에게 이끈 것도 이 아기 여우였으니까.




설령 꿈이라 해도 이젠 황후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건 참을 수 없어. 어쩌면 병인가봐. 제 앞에서만 운 것도 벌써 여러번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싶은거야. 자신이 찾지 않았던 삼개월동안 얼마나 눈물로 지샜을지를 생각하면 더 그래. 자신이 잘못했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테니 조금만 덜 미워해달라는 부탁을 했을때는 더 그랬지. 차라리 말을 직접 해줬으면 좋았으련만, 그것도 하지 못 하고 잠들었다 생각한 저에게 한탄하듯 늘어놓았던 내용이 고작 저런거라서. 차라리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냉대를 하시냐고 말 했으면 좋았을텐데, 황후의 성정상 불가능했고.  

이래저래 저에게 수많은 상처를 받았을 황후가 설령 꿈에서라도 시무룩해지는 꼴을 견딜 수 없는 황제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기로 해. 말이 안 나오니 행동으로라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이제 제법 자란, 하지만 여전히 솜뭉치에 불과한 여우를 품에 안아들었어. 불편했던 모양인지 바둥거리는데 하긴 평생 뭘 안아봤어야지. 어차피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여우, 그깟거 무시해도 아무 상관없는데 왜 그렇게 눈에 밟히나 몰라. 죄책감을 자극하는 작은 생명체가 껄끄럽기도 해. 하지만 그렇다고 꿈에서까지 무시하고 싶진 않아서.




그 순간, 갑자기 허공에서 난데없이 연등이 떠오르기 시작해. 꿈 속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리 이상할건 없는데, 난데없이 아기 여우를 끌어안고 있는 상황에서 연등이 떠오르다니. 그것도 자신이 제이크에게 넘겨줬던 단 하나의 연등과 똑같은 연등이 수십, 수백개가. 밝은 대낮이었던 하늘은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그 때와 똑같이 흑청색으로 물들기 시작해. 별빛 하나 없이 검은 하늘에 수백개의 연등이 두둥실 떠오르는거야. 일곱가지 색을 다채롭게 섞어 황후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던 하나의 연등과 꼭 같은 그 연등이. 새카만 하늘을 가득 매우는 연등을 보는 순간 머리가 멍해져. 그 때 자신이 써내려갔던 소원이 떠올랐기 때문이야.



아기여우와 황후와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길지도 않은 문장에 욕심을 담아 꾹꾹 욱여넣었더랬지. 꿈이라 그런가봐. 황후는 두 다리가 멀쩡하게 걷고, 아기 여우는 저와 황후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는게. 모든게 바라던대로. 제이크의 생일날 자신이 써내려간 소원의 편지가 달린, 특별히 제작된 단 하나의 연등을 내밀며 바랐던 것들이야. 그리고 새삼스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아. 이미 자신은 적어도 그 소원의 반쯤은 이루었다는걸. 그 소원이 이루어졌는데도 감히 배가 불러서 알아차리지 못 했나봐. 멍한 상태로 황후를 바라보니 어느새 황후가 아기 여우를 품에 안은채 얼굴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어. 루- 불러달라고 해도 부끄러워하며 여간해선 들려주지 않는 애칭으로 부르기까지 해. 동시에 깨닫지.



제이크를 잃을뻔했다는 사실에 매몰되어 현실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루스터행맨

2024.02.27 04: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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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내센세랑 동접!!!!!!!!!! 안자길 잘했다
[Code: 2cde]
2024.02.27 05: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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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ㅠㅜㅜㅜㅜㅜㅜㅜ
[Code: 5869]
2024.02.27 05:33
ㅇㅇ
모바일
ㅠㅠㅠㅠㅠㅠㅠ루황제 이제 현실 돌아보고 알버트랑 황후랑 행복하기를ㅠ. ㅠㅠㅠㅠㅠㅠ
[Code: 9d21]
2024.02.27 07: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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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 입갤!!!! 선설리선설리
[Code: efdd]
2024.02.27 08:52
ㅇㅇ
모바일
ㅠㅠ루황제가 드디어 현실을 돌아보려 용기를 내는구나ㅠㅠㅠㅠㅠ 그래 아기여우가 비록 제이크를 닮지는 않았지만 황제황후를 위해 꿈에서 그렇게 발이 닳도록 고군분투했는데ㅠㅠㅠ 무탈하게 태자가 되기위해서는 황제가 힘을 실어줘야한다는것도 생각치도 못하고 잊고있었는데 그렇네.. 유일한 적장자인데 아비한테 손길 한 번 받지못하니 주변의 평판도 그렇고ㅠ 인정 못 받는다들 했겠어ㅠㅠㅠ 루황제 이제 황후와 아기여우를 위해 악몽도 극복해보고 현실속에서 더 열심히 애정도 쏟아줘요 잘하잖아 다정한거ㅠㅠㅠㅠㅠㅠㅠ
[Code: cee4]
2024.02.27 08: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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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센세가 성실수인이라 붕키 너무 행복해 매번 센세덕에 하루를 사는 힘을 얻어감.. 고마워 센세 사랑해ㅠㅠㅠㅠㅠ
[Code: cee4]
2024.02.27 08: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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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센세 오심
[Code: 07c8]
2024.02.27 10: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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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셋이서 행복하자ㅠㅠㅠㅠㅠㅠ고난과 역경은 이제 구마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387]
2024.02.27 09: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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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 걱정과 슬픔에 황후 외에는 관심 두지 않고 있었는데 뒤늦게나마 현실 돌아볼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야ㅠㅠㅠㅠㅠ아기여우와 황후 그리고 자신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연등에 띄워 빌었으니까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ㅠㅠㅠㅠㅠ
[Code: a31f]
2024.02.27 09: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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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일어나니까 센세가 와있잖아 센세가 혐생의 한줄기 빛이야...
[Code: 57ec]
2024.02.27 09: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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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행 서로 어찌나 생각하는지 그 마음에 내가 다 목이 메임 이렇게나 서로 아끼고 애틋한데 하필이면 길이 쉽지 않아서 고생하는게 눈물나면서도 너무 재밌어... 루행 먼길을 돌아서 행복해져라
[Code: 57ec]
2024.02.27 09: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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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가 루황제보면서 생각하는 것들이 너무 기특하면서도... ㅠㅠ 아직 어린데... ㅠㅠ 그래도 제이크는 지금 그 상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루스터는 행복한지 아닌지 살피는 것도 뭔가 ㅠㅠ 루스터도 이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거야 오늘 꿈에서 깨달았으니까.... 그래도 제이크도 이제 루스터가 다른게 아니고 겁이 많아 그렇다는 걸 아니까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것처럼 계속 기다리겠다고하는게 제이크ㅠㅠ 내내 기다림이엇는데 또ㅠㅠ 싶으면서도 루스터 이제 깨달았으니 더 기다릴필요 없어서 다행같기도 ㅠㅠ 사실 루스터가 애초에 제이크를 밀어내려한 것도 톰 일때문에 겁이 많아져서니까... 안쓰러움 단단해보이지만 사실 트라우마가 항상 함께해와서ㅠㅠ 몰라 둘이 이제 행복해지기만해라ㅠㅠ
[Code: 57ec]
2024.02.27 12: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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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 읽고 머리가 띵하다 존나 명작
[Code: 4b8e]
2024.02.27 12: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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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이제 악몽 그만 꾸고 제이크랑 아기여우랑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행히 둘다 옆에 있잖아ㅠㅠㅠㅠ 소원이 꼭꼭 이뤄지길
[Code: 55bc]
2024.02.27 17:5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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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줄 읽고 머리가 띵하다 존나 명작222222 나도 잊고 있었음
[Code: 8909]
2024.02.27 18: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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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 막줄 입틀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걸 스스로 깨달았다는 데에서 더더욱...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나도 그러고 있었는데 어떻게 안 그래요ㅠㅠㅠㅠㅠ
[Code: bcb7]
2024.02.28 08:1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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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가 저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는게 존나 벅차오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황후가 일어나 조금씩 건강 찾아가니까 마음속 깊게 묻고 외면하던 현실을 마주한 것 같네ㅠㅠㅠㅠㅠ 근데 그 과정에 황후를 울리고싶지 않은 거랑 황후와 함께나눈 예쁜 추억이 있는게 너무 좋아ㅜㅠㅠㅠㅠㅠㅠㅠㅜㅜㅜㅠㅠ 루황제 스스로 깨달았지만 결국 또 황후가 없었으면 깨닫지 못한다니 진짜 큰일났다 루황제... 황후랑 아기여우랑 펑생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Code: 48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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