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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12:23
꼭 보지 않아도 되는 1 - https://hygall.com/58481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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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스케랑 히데아키가 서로의 구원이자 서로의 감옥인게 bgsd

2.

"네, 30분 내로 출발하겠습니다."

웃음까지는 바란 적도 없었다. 둘에게는 사치였기에. 그래도 간간히 주고 받던 잔잔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진 건 울리는 쿄스케의 전화 때문이었다. 용건만 간단히 전하는 통화는 이번에도 길지 않았고, 쿄스케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이 시키는 말에 "예", 상대방에게 반하는 말이라면 "아니오". 이번에도 언제나처럼 답은 이미 정해진, 간단한 대화의 흐름이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런 류의 통화가 어째서인지 쿄스케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통화 내용을 알려준 것도 아닌데, 맞은 편에 앉아 있던 히데아키는 쿄스케를 짧게 쳐다봤다가 이내 의자에서 살포시 먼저 일어났다. 아주 간단한 이런 몸짓 마저 조심스러운 갓 스물이된 아이의 행동이 쿄스케의 짜증을 배가 시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앞에 놓인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밥만큼 몽글한 분위기가 삽시간에 누가 재라도 뿌린 듯 망쳐져 버린 것 같았다.

"앉아서 더 먹어."
"..."
"아가."
"..."
"밥. 더 먹으라고."

제게 잘 구워진 생선의 뼈를 발라 살을 건네주느라, 정작 자신은 채 몇술 뜨지도 못한 밥을 버릴까 말까 한 손에 랩을 들고 고민하는 뒤통수에 대고 쿄스케는 낮게 말했다. 엄한 상대에게 으르렁대고 있는 우습기 짝이 없는 꼴이었지만, 요 근래 알 수 없는, 정의 내리기 힘든 이유의 화가 잘 삭혀지지 않는 자신이었다. 

쿄스케의 말에 고민을 하던 히데아키는 들고 있던 랩을 내려놓고 싱크대 안에 미련 없이 밥그릇을 넣어버렸다. 아깝기는 해도, 지금 나가면 분명 새벽에 집에 돌아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 밥을 다시 데워먹는다면 조금 전 깨져버린 평화로운 시간이 다시 생각나, 다시 이 시간으로 잠시나마 돌아와야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은 히데아키였다.  

"...준비해야죠."

집에 들어왔을 때랑은 확연히 어두워진 표정과, 가게 앞에서와는 다르게 높낮이가 전혀 없는 목소리에 쿄스케는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부러질 정도로 세게 쥐었다가 놓았다. 바로 이어 상당히 신경질적이게 의자를 밀어 일어나는 소리가 이어졌지만 히데아키는 딱히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제게 화난 것이 아닌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최근의 쿄스케는 어째서인지 히데아키를 찾는 큰 형님의 전화만 받고 나면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 같았고, 히데아키는 사실 쿄스케도 인지 못하고 있을 그런 쿄스케의 "반항심"이 싫지는 않았다. 적어도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히데아키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큰 형님의 호출에 나갈 준비를 하던 쿄스케는 '가루베'로서의 외형에서 불편한 피어싱부터 빼버렸다. 이 마저도 성질이 나서 그런지 잘 안 빠지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히데아키가 그러다 다친다며 아주 섬세한 손길로 금방 빼주었다. 붓기 때문에 피어싱이 있던 귀에서 열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쿄스케만큼은 알고 있었다. 

망쳐진 밥상의 분위기는 큰 형님이 부른 클럽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도 비슷했다. 운전하는 쿄스케 옆에는 얌전히 앉아 습관처럼 또 주먹을 쥐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히데아키가 있었다. 아까 이미 본 덕에 히데아키가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된 쿄스케는 급격히 상승하던 짜증이 아주 조금은 수그러드는 느낌이었다. 유치하게도.

"...예쁘다."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였지만, 히데아키의 목소리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리는 쿄스케는 힐끔 히데아키를 쳐다봤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느라, 동그랗고 귀여운 뒷통수가 저를 반겼다. 집에서도 차 안에서도 도통 하얀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조금은 미운 마음까지 들었다. 쿄스케는 또다시 성질이 났다. 저를 봐주지 않는 뒷통수가 향한 곳을 바라보니 그나마 둘 사이의 어색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서인지 하늘에서는 눈이 날리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 조금은 굵어진 눈발이 창에 부딪혀 볼품없이 부서졌다. 그럼에도 히데아키는 창 밖을 내다보며 그 아쉬운 모습이라도 눈에 담는듯 했다. 

큰 형님이 맞춰 오라는 시간까지는 20분 정도가 남아있었다. 지금 속도를 늦춘다면 10분 정도 늦을게 분명했지만, 쿄스케는 엑셀에서 이미 발을 살짝 올려 떼고 있었다. 늦었다고 지랄하면 까짓것, 큰 형님이랑 작은 형님한테 돌아가면서 야구 빠따로 몇 대 맞으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히데아키에게 내리는 눈을 다만 10분이라도 더 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냥 더 큰 쿄스케였다. 괜히 어색한 마음이 들어 샛노랗게 탈색된 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쿄스케는 으르렁거렸다. 이 헤어스타일은 정말 제 스타일이 아니었다. 뻑하면 온 몸이 간지러운건 분명 이 머리 때문이리라.

"앞에 봐."
"네."

제 말에 바로 몸을 돌리는 히데아키를 곁눈질한 쿄스케는 저를 빤히 보는 동그란 눈과 마주치자 또 간지러웠다. 그래서 참지 않고 머리를 또 벅벅 긁으며 성질을 냈다.

"뒷통수 보고 있기 짜증나서 그래."
"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아까보다 조금 더 천천히 달리는 차에 히데아키는 왜인지 기분이 좋아져 아주 작게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 소리에 쿄스케는 아까보다 짜증이 조금은 더 내려갔다. 히데아키는 참 신기한 놈이었다.
목숨줄이 위태위태하다는 이유로 '가루베'와 '이누이'로 잠깐 다른 동네로 빠져나와 있는 지금도 이렇게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을 보면, 이누이든 히데아키든, 혹은 나중에 또 다른 이름이 될지라도,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 놈은 참 신기한 놈인게 분명했다. 


쿄스케와 히데아키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정도였겠다. 온 몸에 훈장처럼 늘어나는 문신만큼, 조직 내에서 서열이 세번째로 올라간 스물다섯의 쿄스케가 열다섯의 히데아키를 만난 것은.

예쁜 것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큰 형님이, 빚 청산하러 간 집에서 딱히 있는 것도 없어서 그나마 "가져왔다"는게 히데아키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없는 것을 보니 '안 예뻐서 담궜나보다'라고 생각하고만 쿄스케였다. 저와는 다르게 뼈대 자체가 가느다란 것인지, 고생이란 모르고 컸을 곱상한 뽀얀 하얀 얼굴과는 다르게 히데아키의 몸은 볼품 없이 마르고 가늘기만 했다. 마른 정도가 아니라 뼈 위에 가죽을 대충 붙여놓을 것 마냥, 성장기의 남자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손목에 손이라는게 겨우 붙어있는 정도였기에, 이때까지만 해도 쿄스케는 히데아키가 허옇다는 생각만했지 솔직히 딱히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저와 생각이 비슷해서 안고 싶은 마음은 따로 없었는지 큰 형님도 딱히 히데아키에게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놈의 수집병 버릇 어디 못 주고, 그야말로 예쁜 걸 집어온 것 뿐이었다. 그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은 채, 그냥 공허한 텅빈 눈으로 바닥이나 쳐다보고 있는 히데아키는 거의 죽은 것 같아 보였다. 아무도 저를 건드릴 생각이 없는데 오히려 눈빛이 살기는 커녕 죽어있는게 쿄스케의 흥미를 자극했다. 보통은 건드리기 때문에 살아있던 불꽃이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인데, 이 꼬맹이는 뭔데 벌써 불꽃이 꺼진 것인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동글동근한 눈과 어떻게든 시선을 맞춰보려고 고개까지 쭉 빼고 있던 쿄스케는 제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마땅히 쓰임이 없는 아이는 골치였고, 조금 더러운 생각을 가진 조직원들은 큰 형님이 안 드시니 자기네들끼리라도 돌려 먹자는 질 낮은 농담을 주고 받을 때, 쿄스케가 다들 들으라는 듯이 물었다. 딱히 궁금하진 않았으나 충동적이었다.

"몇 살."
"...열다섯이요."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조직원들도 더 키운 다음에 먹어야지 먹을 것도 없겠다고 낄낄거리기 시작했고, 그나마 곱상한 외모에 관심을 보이던 작은 형님도 혀를 찼다. 

"공부는."
"네?"
"좀 하냐고."

다시 한번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여기 있는 어느 누구보다 이 꼬맹이의 가방끈이 길 것은 분명했다.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말이다. 아직은 어려 제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기에 쑥스러운 것인지, 어떻게 대답해야 제가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는 것인지,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고민인 것인지 계속해서 입술만 달싹거리는 히데아키에 조직원들은 흥미를 잃어 딴짓을 시작했지만 쿄스케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코 앞까지 다가가 푹 박힌 고개와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아 올려다 보며 장난스럽게 말하기까지 했다.

"아가. 나를 올려다 보게 만드는 사람이 흔치는 않은데."
"잘 해요! 아니, 그... 못하지는 않는데...그게..."

위협적이라 생각했는지 저와 눈이 마주치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치더니, 막상 또 자신이 없는지 웅얼웅얼거리며 제가 한 말을 정정하기 시작했다. 그 꼴이 조금은 귀엽다고 느낀 쿄스케는 아까 처음 봤을 때보단 흥미가 더 생기기 시작했다. 

"산수는."
"수학보다는...문학을..."
"아니. 산수. 덧셈 뺄셈 나누기 곱하기. 할 줄 알아?"

제 말이 이해가 잘 안되었는지 감았던 눈이 떠지며 마주친 눈동자에서 쿄스케는 발끝부터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함이 올라왔다. 내도록 죽어있던 눈에서, 아주 찰나이지만 짜증을 동반한 생기가 돌자, 맑아지는 눈동자가 제 평생 살며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것이 분명했다. 저만이 이 눈을 평생 보고 소유하고 싶을 정도의 깊이가 있는 맑음에 당장이라도 혀를 내어 맛을 보고 싶은 기이한 충동까지 올랐다. 달고, 시원하고 깨끗한 그런 맛일 것 같아 쿄스케는 제 질문에 여전히 의아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히데아키에게 품에서 명함을 꺼내어 한 장 건넸다.

"내일부터 이 사무실에서 산수 좀 해."
"산수요?"
"어."
"어떤..."
"이 아저씨가 돈 계산할게 좀 많아. 아가."

그날부터 그렇게. 아무도 몰랐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히데아키는 쿄스케에 의해, 그의 것이 벌써 되어가고 있었다.

그랬기에 누가 되었건, 온전히 제 것인 유일한 존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는 것은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쿄스케는, 서른이 된 지금에서야 슬슬 피부로 느끼며 이유 모를 짜증이 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아직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아카 쿄스케히데아키 
히데아키가 손을 꼼지락거리는 이유는 1화에 있조... 뭘 보고 싶은 건지 나도 몰라, 내용 산으로 가지만 읽어줘서 고맙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