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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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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걸린 두 번째 초상화를 보자마자 황제는 깨달았어. 아, 나는 어쩌면 영원히 이 짐을 덜어내지 못 하겠구나.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린 사당을 들어가는 순간 꿈인걸 깨달았어. 하지만 꿈인걸 안다고 해서 마음대로 깰 수도 없을 뿐더러 철렁 내려앉은 심장은 그다지 다를바가 없어. 머리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걸 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당시의 심정은 어제일인양 생생하기만 할 뿐이야.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목숨에 비하면 다리를 저는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이겠어. 저보다 아직 한참 어린 황후가 어쩌면 평생 다리를 절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저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은 황후가 또 이상한 생각을 하면 어떡하지. 모자란 황후라고 스스로를 여기면 어떡하지. 뒷배로 세러신을 업고 있으니 행여나 무슨 말이 나와도 세러신이 막아줄테지만 그것과 별개로 황제는 황후가 상처를 조금이라도 받는게 싫었어. 싫다기보다는 두려웠지. 이미 저 때문에 많이 상처를 받은 사람이 또,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쪼그라들면 어떡하지.



이젠 자신이 슬프거나 두려운 것보다도 황후가 상처받을게 더 두려워. 스스로를 모자란다 깎아내고 저와 저울질 하며 작아질까봐. 재활 훈련도 그래. 그냥 황후가 다시 잘 걷고 싶어서 그런거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지는 않았을거야. 그런데 원자가 걸을 때 자기가 못 걸으면 어떡하냐니, 그게 왜. 뭐가 어때서. 혹시 남의 이목을 염려해서 그런걸까. 아니면 혼절한 한 달 동안 새 황후를 뽑아야 한다 말이 나돌았던걸 듣기라도 했을까. 궁인들 입단속을 철저히 시켜서 알지 못 할텐데. 저번에 저 혼자 폐하를 독점할 생각은 아니었다는둥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은 전적이 있어 이번엔 더더욱 입단속을 꼼꼼히 했단 말이야. 사실 그마저도 아주 조금씪 얘기가 나온걸 제가 미리 알아채고는 아직 황후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그 무슨 망말이냐며 일소해버렸기 때문에 더 말이 나오지는 않았어. 그리고 마침 황후가 다행스럽게도 눈을 떠주었고. 
 
그래서 살아돌아오면 아무런 걱정도 없고, 있던 걱정도 다 사라질줄 알았어. 손 끝에 닿는 서늘한 온도의 초상화는 당연하게도 아무말이 없었어. 아무말이 없는 잔인한 초상화 같으니라구. 꿈에서라도 얼굴을 안 보여주는 황후 때문에 안달이 나기도 했지. 가끔 얼굴을 보긴 했어도 피칠갑을 한 채인 상태로 봤으니 그닥 도움이 되지는 않았고. 
황제는 되풀이되는 악몽 속에서 익숙한듯이 사당을 찾았어. 여기에 두번째 초상화를 걸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꿈이라도 가슴이 철렁해. 꿈인걸 알면서도 선뜩한 소름이 온 몸을 내달려.  거기다 하필 사당에 걸린 제이크의 초상화는 제 생일 선물이랍시고 선물한 그 초상화야. 그걸 이런식으로 쓰이게 될거라고는 몰랐지. 제이크는 자신이 선물한 초상화가 사당에 걸릴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이미 초상화를 선물로 받았을 때부터 불안했어. 혹시나 황후가 제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로 선물로 줬을까봐. 아니나 다를까 정확히 예상한 그런 의미로 선물한게 맞았고. 어지간히도 내게 믿음이 없나보다, 그리고 내가 어지간히도 믿음을 주지 못 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지. 하긴 믿음을 준 적도 별로 없는것 같아. 첫날부터 총애는 기대하지 말라고 그랬고, 그 이후에는 황후의 은근한 연심을 알고도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그저 제 할 도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거야. 남부에서 자라 추위를 많이 탈 황후를 생각해서 황후전에 화로와 탕파를 넉넉하게 배정하라는 것과 털옷 및 솜옷이 부족하지 않게 하라는 정도였지. 애정을 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어린 나이에 입궁한 황후를 모른척 할 수도 없었어. 톰을 똑닮은 얼굴이잖아. 

그저 닮은 얼굴이라 신경쓰였던건줄 알았는데 이젠 악몽에 등장하는 그런 대상이 되버렸어. 분명 살아있는데도 말을 걸 수 없는 현실의 황후와, 꿈에서마저 저를 외면하고 말이 없는 초상화속의 황후. 둘 중 어느쪽이 낫다고 우열을 가르기가 힘들었지. 꿈 속에서는 이미 초상화가 되어버린 황후가 저를 반겼고 현실의 황후는 기약없는 잠에 빠져든채로 눈을 뜰 줄 몰랐어. 오늘은, 오늘은 일어날까. 내일은. 내일은 일어나줄까? 모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기약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만 가던 날. 드디어 황후가 눈을 뜬거야. 눈만 뜨면 더이상 바랄게 없다 생각했던 순진한 착각을 했었지.




반복되는 악몽은 더 이상 황제에게 낯선게 아니었어. 한때는 한 몸처럼 익숙한 존재이기도 했지. 새벽에 살그마니 잠든 황후의 이마를 쓸어본다든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달빛같은 머리카락을 만져본다든가 하는건 더 새로울 것도 없는 버릇이야. 달빛에 녹아들것만 같은 머리카락이 사락거리며 손가락 틈을 빠져나가는게 아쉬워. 

스스로 괜찮다 되내여도 덜덜 떨리는 손은 멈추지 않아. 황제도 자신이 이상하다는건 알고 있어. 머리가 있으면 당연히 자각할 수 밖에 없지. 잠든 황후가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집착적으로 확인하는건 전에 없던 버릇이거든. 약에 취해 일찍 잠든 황후의 침전을 찾아와 멀거니 굽어보는 것도 마찬가지고. 온기가 느껴지는 뺨에 입을 맞추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잠든 황후의 얼굴을 바라보곤 했지. 
피칠갑이 된 침의을 입은 황후가 피웅덩이 속으로 잠겨들어가는 모습이나, 늘 꾸던 꿈에서처럼 새로운 봉분 앞에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거나 아니면 사당에 걸린 두 개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통곡하거나. 악몽은 자주 찾아왔지만 늘 비슷했고, 그래서 이젠 감흥이 없다못해 무뎌질 지경이었지. 



약이 독해서 저녁을 먹고 나면 금세 잠이 몰려오는지 얘기를 하다가도 가물가물한 눈을 애써 바로 뜨려는게 귀엽고 애틋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탓이야. 그러고보면 어느순간부터 황후는 계속 아프기만 했어. 여름날에는 호수에 빠져 한동안 호되게 앓았고, 배가 불러옴에 따라 주변에서 거는 기대가 많았는지 중압감 때문인지 종종 앓기도 했고. 최근에는 한 달이나 혼수상태로 보냈잖아. 
재잘거리며 오늘은 무슨 훈련을 했다, 어디까지 걸어갔다더라 말을 하는 입술만 동동 떠보이고. 앓느라 쪽 빠졌던 볼살이 활짝 웃을때면 보기 좋게 차올라서 웃을 때면 봉긋 올라오는 광대와 뺨을 볼 때마다 세상 애틋하다고 사랑스럽다가도 심란해.      

오래도록 이 얼굴을 쭉 보고 싶은데,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는 바람에 황후의 잠을 깨워버리면 안 되잖아. 더 나아가서 악몽을 꾼다는걸 알게 되면 걱정을 할게 뻔했고. 안 그래도 몸이 쇠약한데다가 다리 때문에 신경을 쓸게 많은 황후에게 더 이상의 짐은 지우고 싶지 않았어.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건 다 제쳐두고 다리에만 신경을 써도 모자란데 저에게까지 신경을 쓰게하고 싶지 않았지. 괜히 이상한 죄책감이라도 가지면 어떡해. 
 














궁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연습은 당연히 쉽지 않았어. 다리가 멀쩡해도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를 낳으면서 다리 신경을 다친 황후에게는 더 힘든 일이었지. 발을 딛기만 하면 찌르르 하고 종아리를 타고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통증은 참기 어려웠지만 황후는 이 악물고 재활에 매진했어. 그 사람 곁에서 같이 걷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노력한거야. 황제의 곁에서 당당하고 싶었거든. 태자의 어미가 절름발이라는 소린 듣고 싶지 않아서. 


원래도 아이를 낳으면 뼈가 약해진는 법인데, 거기다 한 달을 자리보존 하고 누운 바람에 더욱 더 약해져있을걸 감안해 황제는 황후가 제대로 아이를 안게 하지도 못 했어. 유모가 들고 있으면 아이를 볼 수 있게는 했어도, 본인이 직접 안고 어화둥둥 하는건 못 참았어. 그렇게 아이가 보고 싶으면 내가 직접 안아서 보여주겠다며 정무 시간에 귀한 시간을 잠깐 빼어 황후전으로 걸음 하기도 했지. 유난이다 소리가 나올까봐 황후는 팔딱거리며 그럴것 없다고 손사레를 쳤지만 황제를 누가 막겠어? 그것도 지난 한 달 동안 눈이 돌아간 황제의 사랑을 말이야.
혹시나 무리하다가 더 크게 탈이 나는건 아닐까, 이러다가 다치면 더 크게 다치는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하루종일 불안에 떨었어. 정작 황후 본인은 오랜만에 운동한다는 느낌이라며 열심히 재활 했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또 재활 하는걸 막을수도 없어. 황후가 불편한건 싫으니까. 



사실 황후라고 고통을 참아가며 재활 훈련을 한다는게 마냥 좋지만은 않아. 당연하지. 자고 일어났더니 한 달이나 지났대. 그런데 다리 신경이 다쳐서 잘 못 걸을거대. 지금은 비록 잘 따르지만 얼굴도 못 본 아이는 한 달이나 자라서 처음엔 얼굴도 못 알아보는 일까지 발생했지. 저보다 유모의 얼굴을 더 많이 봤을 아이는 낯선지 울어대기만 했고. 마음대로 되는거라고 하나도 없었지.
황후가 재활에 매진하는 이유는, 물론 황제에게 말했듯이 원자가 걸음마 할 때 같이 걷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어. 황제가 저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길 바라서였지. 더 나아가서는 동정하지 않길 바랐고. 황제의 다정한 갈색 눈동자에 비치는게 오롯한 애정이 아니라 동정과 죄책감이 섞여있다면 견디지 못 할 것 같아. 안 그래도 저에게 미안해하는게 많은데 거기에 아이를 낳다가 다리가 다쳤다고 하니 더욱 미안해했지. 그렇게 안 미안해도 되는데.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굳이 따지자면 불안한 느낌을 무시한 제 탓이었지. 

욱씬거리는 통증을 무시하고 궁인들의 도움을 받아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지. 황후라고 아픈게 좋아서 하는게 아니야. 하루 빨리 이 다리가 나아서 두 발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걸을 수 있어야 황제의 시름을 덜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되도록이면 보이고 싶지 않았어. 물론 황제의 명령으로 태의가 제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러 오기 때문에 완전히 숨기기는 어려웠지만. 황제도 재활 훈련을 도와주겠다 했지만 황후는 한사코 거절했어. 다 나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거든.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걸 알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러고 싶잖아.













황후가 깨어난지 한 달이 지났어. 그 말은 원자가 태어난지 두 달이 됐다는 소리지. 그 한 달 사이 부지런히 황후의 얼굴을 익힌 원자는 금세 방긋방긋 웃으며 황후를 반기게 되었어. 아무리 황후라고 해도 일정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양육을 유모가 맡아서 하기 때문에, 황후는 하루중 정해진 시간에 유모를 불러다가 원자를 볼 수 있었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쌓여있던 편지의 절반 이상을 읽게 됐다는 소리도 돼. 문제는 황후가 눈을 뜨지 못 한 한달동안 새로이 써내려간 편지도 있었거든. 그러니 딱 새로 읽은만큼 또 그만큼의 편지가 쌓였다는 소리야. 황후가 일어난 일로부터 며칠간은 황제도 정신이 없어서 자신이 새로 편지를 썼다는건 까맣게 잊어버렸지. 한켠에 놓인 편지더미가 존재함을 태감이 넌지시 일러준 덕분에 편지의 존재를 깨달았고. 잊었던 사실을 깨달은 황제는 냉큼 모여있는 편지를 들고 황후에게 갔지. 그대가 잠든 동안에 이만큼이나 편지를 썼다고 자랑스레 모아서 말이야. 





눈을 뜬 이후 황제는 매일 저를 찾아왔어. 오늘밤도 예외는 아니었지. 쑤시고 저릿저릿한 다리는 그나마 겨울 끝무렵이라 덜 쑤시는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야. 오늘도 손수 탕파를 데워온 황제가 이불 속으로 탕파를 넣어주며 오늘은 좀 어떠냐고 물어보지. 그나지 나아진건 없는데, 혹시나 재활이 더디다 생각하는걸까? 이젠 황제가 그런 의도로 묻는게 아닌걸 알면서도 쭈그러든 황후는 별 수 없이 그런 생각만 들어. 궁인들에게 하도 귀가 따갑게 들어서 이젠 외울 지경이 된 지난 한달 동안의 황제 모습을 떠올리면 그럴리가 없는데 말이야. 탕파 때문에 후끈후끈하다못해 이젠 좀 땀이 날 지경인 하체 때문에 황후는 살그마니 이불을 걷어 내리고 이불 속에 파묻힌 손을 꺼내들어. 호들갑을 떨며 황제가 만류하지만 글쎄, 이젠 겨울 끝물이라 그다지 춥지도 않거든. 거기다 황제의 명령으로 황후전 처소 전체가 한겨울보다 더 활활 타오르도록 땔감을 때우고 있는데다가 탕파까지 더해지니 잠이 안 올 수가 없어. 거기다 먹고 있는 약까지 더해지면 졸음이 솔솔 몰려온단 말이야. 

이러다 또 어젯밤처럼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까무룩 잠들까봐 걱정이야. 황제는 얼른 누우라고 성화였지만 안 그래도 졸린데 지금 누웠다간 아예 잠들라고 고사를 지내는 셈이라 어떻게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지. 그런 자신이 좀 웃겼나봐. 황제가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려. 꼭 잠이 안 들려고 떼를 쓰던 사촌 아우를 보는것 같다나. 그렇게 한참을 우는듯 웃던 황제가 태감을 시켜서 상자를 들고 오게 해. 하긴 아까 올 때 언뜻 무언가를 들고 있는것 같긴 했어.

상자만을 곱게 놓고 태감이 다시 물러나자 황후는 황제에게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지. 하지만 대답은 않고 직접 보라며 빙그레 웃기만 해. 무엇이 들었기에 황제가 저렇게 눈을 반짝이며 기대할까. 분명 제가 좋아할거라 예상하며 가져온것 같은데. 황제를 대상으로는 참람한 생각인걸 알면서도 커다란 개가 간식을 기대하는 눈빛이라 웃음이 터지려는걸 간신히 입술을 앙다물어 참아. 황후도 이제 그런 이유로 자신이 웃는다 한들 황제가 화를 내지 않을거라는걸 알면서도 그래도. 감히 황제를 개에 비유하다니 안될 말이지, 암.



가벼우면서도 제법 부피가 있는 상자의 뚜껑을 여니 흰색 종이를 곱게 네번 접은 종이가 한가득해. 언뜻 대충 세어봐도 수십개는 되어 보이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 있지만 함부러 내뱉기 어려워. 괜한 말을 내뱉어 황제에게 부담을 지우기도 싫고. 그리고 혹시나, 기대했다가 아니면 실망할까봐. 실망한다는 표현 자체가 좀 우습긴 하지만. 이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가장 위에 것을 읽어보라네. 별 수 없이 가장 위의 편지를 꺼내 펼쳤지. 익숙한 종이의 익숙한 필체야. 백단향을 입힌 종이는 제 생일날 이후로 매일 매일 받았던거야. 그래, 이게 있었지. 정신이 없어서 며칠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나봐. 반가운 마음에 얼른 펼쳐보는데, 이전의 편지들과 다른 점이 있어. 편지를 쓴 날짜가 쓰여있었다는 점이지. 이 날짜는....날짜를 확인한 황후의 표정이 변했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채 황제를 바라봤지. 


선황후의 기일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혼절해서 한 달간의 잠에 빠져든 날이야.






황제는 난감했어. 이럴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날짜를 확인하자마자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눈물을 퐁퐁 흘리기 시작했으니까. 아이구 저런. 내용은 읽지도 않아놓고 벌써 울면 어떡하지. 사실 황제도 그다지 제 정신으로 쓴 편지는 아니야. 당장 모레가 고비라는 선고를 받은 참이라 정신이 홀라당 나가버렸거든. 어릴 때부터 저를 보필해온 태감이 제가 안 좋은 생각을 할까봐 황후마마께서 쾌차하시면 읽으셔야 할 편지가 많이 있어야겠다고 말 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랬을지 몰라. 눈물이 앞을 가려서 편지가 군데군데 먹에 번진데다가 젖은 부분이 마르면서 울었거든. 사실 편지를 가져다 줄 때 다시 필사할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 군데 군데 번져서 읽어보기도 힘든데다가 좀....너무 뻔해보이잖아.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울었다 으스대는것 같기도 하고. 물론 황후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알긴 하는데, 혹시나 그래도 마음 아파하면 어떡하지 싶어. 

그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날짜보고 눈물을 퐁퐁 터뜨리더니 편지가 왜 이렇게 번졌냐며 우는거야. 사실 중간중간 울음 때문에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대충 요약해보면 그랬지. 제 눈물에 편지가 또 번질까봐 제대로 울지도 못 하면서, 편지는 또 놓기 싫어서 품에 소중히 끌어안고는 놔주지도 않아. 편지가 어디 도망가는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럴 때 보면 또 황후가 저보다 한참 어리다는걸 깨닫게 돼. 낯선 황궁에 들어와서 제 눈길 한 번 받아보려고 희망도 끝도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왔잖아. 그러고보면 저보다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다 싶어. 비록 눈물이 저보다는 많은것 같지만.



거의 통곡을 할 기세라 황제는 우선 황후가 들고있는 편지를 빼앗아 들었어. 물론 제대로 안 됐지만. 황후가 편지를 놓지 않으려고 했거든. 손에 꼭 움켜쥔채 품에 가두고 안 내어주려고 하니 별 수 있나. 황제는 그냥 그 상태로 황후를 끌어안는 수 밖에. 이전에는 배가 불러 꽉 끌어안지 못 했지만 지금은 얼마든지 끌어안을 수 있으니까. 그랬더니 상자를 보고 싶다고 손을 파닥거리기에, 다시 상자를 안겨주었지. 무릎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다른 편지를 꺼내 확인하는데 그 날짜들이야 뭐, 황제 본인이 썼으니 가장 잘 알거야. 기일을 기점으로 해서 매일매일 써나갔던 편지를 날짜순대로 정리했으니 보나마나 그 다음날이겠지. 황후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그 밑의 편지를 꺼내 확인하고, 또 밑의 편지를 꺼내 확인하는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가, 또 눈물을 퐁퐁 쏟아내기 시작해. 아이구 저런. 

일어나서 다시 제 편지를 읽을 황후를, 그리고 읽어줄 날을 고대하면서 쓴 건 맞아. 그거라도 안 하면 정말 미쳤을테니까. 갈 곳 잃은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튀는걸 그나마 막아준거야. 지나고보면 태감이 현명했던거지. 그래도 이건 너무 좀, 예상 외인데. 황후가 여느때처럼 녹음에 가득 물막을 만들어내며 울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통곡을 할 줄은 몰랐단말이야. 훌쩍거리며 이걸 그 날부터 쓰셨냐고, 이걸 왜 쓰셨냐고 웅얼거리지. 

황후의 말은 자신이 혼절해서 사경을 헤매는데 편지나 쓰고 있었냐는 뜻이 아니야. 못 깨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으면서 왜 그랬냐는 뜻이지. 이것참...그렇게 입단속을 했는데 또, 엉뚱한 말이 귀에 들어가버렸나봐.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다며 죽음을 청했던 태의가 스스로 황후에게 그러한 사실을 밝혔을리는 없고.  뭐가 됐든 이제 황제는 황후 눈물에서 어떤 의미로든 눈물이 떨어지는게 싫은 지경에 이르러서, 설령 제 편지에 감동을 받아 우는거라해도 이제 달갑지 않아. 서러워서 우는게 아니라는걸 아는데도 마음이 찢어져. 울라고 쓴게 아닌데 이렇게 울잖아. 손가락으로 도저히 훔쳐낼 양의 눈물이 아니라 결국 손수건으로 젖은 뺨을 훔쳐내다가, 그래도 마음이 저려서 결국 끌어안고 말아. 




사실 황후라고 또 이렇게 엉엉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건 아니야. 그럴려고 한건 아닌데 어느순간부터 계속 우는 모습만 보여주는것 같아. 생일 때도 백개의 연등과 편지를 보고 울었고, 황제와 함께 선황후의 사당에 갔을 때도 울었고. 별 것 아닌 일에 저 혼자 감정이 북받쳐서 울기도 했고. 자신이 혼절한 사이에 매일매일 어떤 심정으로 썼을까 싶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매일 꾸준히 편지를 썼을거 아냐. 자신이라면 그랬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까 저절로 고개가 저어져. 정신이 홀라당 나가버려서 매일 황제 손을 붙들고 울었을것 같은데.

한 달전에도 매일 밤 황제가 편지를 읽어주었어. 부드럽게 울리는 황제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기억이 나. 그런데 오늘, 고되고 힘든 재활 훈련을 마친 끝에 단비같은 황제의 편지에 눈물이 터져나오는건 뭐, 어쩔 수 없는일이었나. 비슷한 얼굴의 사람이 연이어 같은 이유로 잘못될 뻔 했으니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을까 싶어. 거기다 하필 똑같이 선황후의 기일날에. 황제가 어찌나 호들갑을 떨어대던지, 회임을 했을 때보다 더 해. 유난이다 소리를 들을까봐 노심초사 했지만 황궁 분위기는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고 있더라고. 말이 나올까 싶어 눈치를 보며 눈을 굴리고 있자니 궁인들이 재잘대며 한데 입을 모아 말하곤 했지. 원래 웃전이 잘못되면 아랫것들까지 다 목이 날아가는게 보통인데, 폐하께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시지 않았다고, 폐하의 은덕이라고 말이야. 그리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저를 찾아왔대. 듣지 못 할걸 알면서도 제 손을 잡고 말을 걸고, 머리를 쓰다듬었대. 



꿈에서는 아기 여우를 쫒아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러고 보니 꿈에 황제가 나왔던 적은 없었지. 현실의 황제는 그동안 저를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을텐데 말이야. 일부러 한 달이나 누워있으려고 한건 아니었지만, 어쨋든 황제에게 크나큰 심려를 끼친것도 사실이야. 황제가 저처럼 한 달을 누워지내게 됐다면 저도 마찬가지였을거고. 저라면 매일 편지를 쓸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 아까 언뜻 읽어본 편지들은 봄이 오면 산책을 같이 가자, 뱃놀이를 가자, 화전을 해먹고 싶다, 작년처럼 향낭을 만들어달라, 여름이면 정자에서 황후의 다리를 베고 누워 금 타는걸 듣고 싶다 같은 가벼운 소원들이 적혀 있었지. 늘 읽어주던 편지와 비슷한 내용이야. 저가 눈을 뜨면 하고 싶었던걸 꾹꾹 눌러 담아 썼을 생각을 하니, 멎어가던 눈물이 다시 금세 차올라. 부옇게 변한 시야에 황제를 보고 싶어 눈을 깜빡이면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황제가 아까운듯이, 하지만 익숙하게 손으로 훔쳐내지. 

내 황후가 이리 많이 울 줄 알았다면 차라리 주지 말 것을. 안타까운지 혀를 차면서도 애정이 담뿍 담긴 목소리에 황후는 그만 체신도 다 잊어버리고 황제의 품에 안겨버리지. 예전엔 마냥 저를 어리게 보는 것 같이 어르고 달래던 것도 이젠 마냥 좋아. 저 밑바닥에 애정이 깔려있다는걸 알거든.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는 따뜻한 손길이 얼마나 그리웠나몰라. 한 달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사실 체감으로는 며칠전이 분명한데 이상하지. 느낌은 막상 또 굉장히 오랜만인것 같단 말이야. 우는걸 숨기려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더니 황제가 애가 탔는지 고개 좀 들어보라며, 얼굴 좀 보자고 살살 달래지. 원래 울지 말라고 하면 더 울고 싶어지는 법이잖아. 괜히 더 눈물이 나는것 같아. 결국 손에 쥔 편지가 구깃구깃해질 때에서야 황후는 눈물을 그칠 수 있었어.





그렇게 힘든 재활 훈련을 마친 황후에게 오랜만의 편지는 황후에게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일과가 되었지. 다만 한가지, 그 편지들에 원자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다는걸 황후는 눈치채지 못 했지만.







루스터행맨
 
2024.02.20 21: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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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내 센세ㅠㅠㅠㅠㅠ루황제 시점으로 보니까 착잡하긴 하다...악몽도 그렇고 황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지 알 것 같아...황후 본인도 그걸 느끼고 재활에 힘쓰는 것 보니까 마음이 따땃해지는데 편지들에 원자 언급 없는 건 마음 아프네ㅠㅠㅠㅠ소중한 아기 여우 정말 힘냈는데 아직 마음을 못 내준걸까ㅠㅠㅠㅠㅠ
[Code: 6699]
2024.02.20 21: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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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못 일어나는 동안 편지 쓰던 황제 심정 어땠을까ㅠㅠㅠㅠ 보자마자 눈물나는거 당연하다ㅠㅠㅠㅠㅠ물만두 힘든데 황제 위해서 재활 열심히 하는 것도 대단하고 잠오는데 참는 것도 귀여움ㅠ 황제는 악몽까지 꾸고 제정신이 아니겠지만 원자 언급 없는거 소름ㅠ 눈치 못채서 다행인건지 제이크가 더 괜찮아지고 셋이 보내는 시간이 생기면 아기여우도 사랑해주겠지ㅠㅠㅠ
[Code: e400]
2024.02.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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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ㅜㅜㅠㅠㅠㅜㅜ
[Code: fd2e]
2024.02.2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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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어나더 주세요...
[Code: fd2e]
2024.02.2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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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 심정이 어땠는지 너무 절절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파ㅠㅠㅠㅠㅠㅠㅠ 아 근데 저거 좀 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으려나... 황후는 눈을 떴는데 어째 황제는 계속 힘들어 보인다 불안해 쫄깃해 진짜 어떻게 하냐 미치겠네 벌써 어나더가 보고 싶어서 붕붕이 주거욧ㅠㅠㅠㅠㅠㅠ
[Code: 2f9e]
2024.02.2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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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 트라우마 생겨서 악몽 계속 꾸는거 너무 짠하다… 그래도 황후가 편지 읽어서 다행이다 했는데 마지막..!

그렇게 힘든 재활 훈련을 마친 황후에게 오랜만의 편지는 황후에게 하루 중 가장 달콤한 일과가 되었지. 다만 한가지, 그 편지들에 원자에 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다는걸 황후는 눈치채지 못 했지만.

으악으악 불안해ㅠㅠㅠㅠㅠㅠㅠ아기여우 사랑만 줘라 셋이서 행복해야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7b31]
2024.02.2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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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황후는 정신과 육체가 나아가는데 황제는 마음이 자꾸 병들고 있잖아ㅠㅠ 어쩔ㅠ
[Code: 11d3]
2024.02.2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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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존나 눈물 줄줄줄 흐르는 중이야 센세 나 진짜 센세 무순 읽기 너무 힘들어(너무좋아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시발 나붕 옷소매 다 젖었어 거의 빨래야 이정도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황후 앞날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편지를 썼다니 진짜 자칫 잘못해서 잘못됐으면 편지랑 남겨졌을 루황제 생각나서 존나 마음아프고 그렇게되지 않아서 존나 다행이고 그걸 생각하고 통곡하는 물만두도 존나 안쓰러워ㅠㅠㅠㅠㅠㅠㅠ 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발 행복하게 해주세요ㅠㅜㅜㅠㅜㅜㅜ 원자는 하 근데 원자... 황후 깨어난 후에는 좀 루황제가 원자 들여다봤을까..? 황후는 유모 불러서 자주 보는 것 같은데 루황제 마음은 아직도 문드러져있는 것 같음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55b]
2024.02.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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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센세가 오늘도 와주셨어.. 오늘도 행복해..
[Code: 36e1]
2024.02.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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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 악몽꾸는 루스터 넘 괴로울것같아서 안쓰럽다ㅠ 제이크는 그러려고 그런게 아닌데 막상 루황제한테는 제이크가 건낸 초상화가 너무 충격적이었나봐 하필이면 악몽에서도 사당에 나란히 놓이는 내용으로 나와서ㅠㅠㅠㅠㅠㅠ 결국은 황후가 또다시 제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함이 병증이 돼서 돌아온건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멈춰질 수 있을까 아득하다ㅠ 새로 쓴 편지들 받고 루황제의 마음과 간절함이 사무치는 제이크도 너무ㅠㅠㅠㅠㅠㅠ 짠하고ㅠㅠㅠㅠㅠ 통곡하는 그 마음도 사랑스럽기도 하고 복합적이네.. 그 모습을 보는 루황제는 또 얼마나 애가 탔을지ㅠㅠㅠㅠㅠㅠ 하 센세 언제나 그렇듯 센세는 문학을 하시네오ㅠ 진짜 너무 행복해 센세가 있어줘서ㅠㅠㅠㅠ 고마워ㅠㅠㅠㅠ
[Code: 9c63]
2024.02.2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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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왜이거 지금봄 미쳤다
[Code: 3165]
2024.02.2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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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다리면 센세의 어나더가 와서 난 행복해... 근데 제이크랑 루황제는 각자 나름의 이유로 아파해서 마음 아프다 루행 행복해져... ㅠㅠㅠㅠ 그래도 제이크는 점점 성장해나가는거 같은데 반대로 루스터 어쩌냐.. ㅠㅠㅠㅠ
[Code: 3165]
2024.02.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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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다리면서 복습했어... 다시 읽어도 슬프고 눈물나는데 둘 다 이해가고... ㅠㅠㅠㅠ 아기여우도 행맨도 루황제도 사랑만 받았으면..
[Code: 5607]
2024.02.2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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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 트라우마도 이겨내고 제이크도 건강하게 걷고 아기여우도 모두에게 사랑받고 해야되니까 오백나더까지 가보자고 센세
[Code: 64ae]
2024.02.2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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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다리고있어 루행 서로 애타는 마음이 나와 같을까.......
[Code: 350e]
2024.02.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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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가 아기여우 관련해서 눈치챌까 조마조마하다 너무 상처받을 것 같기도하고 의연하게 루가 힘드셔서 그런거라고 잘 넘길것같기도하고.. 너무 궁금하니까 이자리에서 기다릴게 센세
[Code: 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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