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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9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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뱉어 놓은 말이 있으니 물릴 수도 없다.

공준의 고삐를 풀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과거의 자신을 탓하며 넋이 나간 얼굴로 허리를 짚은 주자서가 끙끙대며 신음을 흘렸어. 어린 놈이 어찌나 눈에 불을 켜고 밀어 붙이던지…목이 다 쉬어버릴 만큼 격렬했던 지난 밤을 떠올리자 눈앞이 아찔해진 주자서가 역시 제 주둥이가 원흉이라며 이번엔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약속한 건 자신이였으니...누굴 탓하겠어. 밀려드는 자괴감에 마른 세수를 한 주자서가 노오란 햇살이 들어오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어. 그와 이 방에서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몇번이나 보았는데...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대체 며칠동안 이 짓을 한 거야? 침대 옆 협탁에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은 주자서가 화면을 켜 오늘 날짜를 확인하곤 경악을 금치 못했어. ...말도 안 돼...내가 그놈이랑 나흘동안 이러고 있었단 말야? 허. 기가 찬 듯 입을 떠억 벌린 주자서가 이불을 들춰 울긋불긋해진 제 나신을 심각하게 스캔하기 시작했지. 병적으로 집요하게 제 흔적을 남겨놓으며 밤새도록 저를 물고 빤 공준 때문에 멀쩡한 살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어. 미친놈...로온보다 더 한 놈이 태어나버렸어. 질린 얼굴로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르던 주자서는 순간 지나치게 뽀송한 제 피부에 고개를 갸웃거렸어. 밥 먹고 잠깐 눈을 붙이는 시간을 제외하곤 방에 틀어박혀 몇날 며칠을 공준과 침대에서 구른 탓에 온 몸이 찝찝할 법도 할텐데 이렇게 말끔한 걸 보면... 저가 지쳐 잠든 사이 녀석이 제 몸을 닦아준 것이 틀림없었어. 병주고 약주는 거야 뭐야...끝까지 모질지 못한 다정한 남자를 떠올린 주자서가 쓰게 웃었지. 저택 어딘가에 있을 그의 심퉁맞은 얼굴이 괜시리 보고 싶어진 주자서는 바닥에 떨어진 가운을 주워 입고 침대기둥을 잡아 한번에 몸을 일으켰어.


"악...!"


하지만 몸을 일으키자 마자 허리를 관통하는 엄청난 통증에 다시 침대로 쓰러져버린 주자서는 지난 밤 제 애원에도 불구하고 허리짓을 계속하며 사정없이 몰아붙이던 그가 떠올라 어금니를 까드득 깨물었지. 젠장. 다정은 개뿔...역시 배은망덕한 놈이였어..



“무리하지 말라고 지랄할 땐 언제고…의사라는 놈이 환자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순간 눈앞이 노래진 주자서가 이마에 한쪽 손등을 올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어. 후... 천살이나 더 먹은 내가 참자... 심호흡을 하고 다시금 몸을 일으킨 주자서는 부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문 앞에 도착했지. 금으로 도색된 고급스러운 문고리를 돌려 잡아당긴 그는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주변을 살피다 마침 침실이 있는 3층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직원을 발견하곤 팔을 뻗어 손짓했어.


"도련님...?"


주자서의 부름에 신속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온 직원이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자 주자서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작게 속삭였지.


"'그'...는 어디에 있지?"

"그...라하심은..."

"준이...그러니까...그...내 주치의 양반 말일세."


주자서의 부가 설명에 직원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풀고 금세 답을 내놓았어.


"아! 공선생님 말씀이시군요! 지금 부엌에 계십니다."

"...부엌?"


예상치 못한 답변에 주자서가 반문하자 온화한 얼굴로 미소지은 직원이 친절하게 답했지.


"도련님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시는 듯 했습니다."

"나를 위해?"

"아...그 공선생님께서 도련님이 며칠동안 무리를 하셨으니 몸보신을 하셔야 한다고..."


그 말에 얼굴이 붉어진 주자서가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을 하자 직원이 다급히 물을 건넸어.


"도련님! 괜찮으세요? 지금 바로 공선생님을 모셔 올까요?

"아...아니야...고맙네. 그럼...계속 일 보시게."


네...도련님. 하며 걱정스런 얼굴을 한 직원을 지나쳐 다시 방으로 돌아온 주자서는 방문을 쾅 하고 닫고는 주르륵 미끄러져 카펫 바닥에 주저앉았어.


"아...젠장."

쪽팔려...


빨갛게 열이 오른 얼굴을 하얀 손으로 덮어 가린 주자서가 힘이 풀린 다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였지. 이 자식 도대체 저택 직원들한테 뭐라고 지껄이고 다닌 거야...? 오랜 세월 장가네 집안에서 큰 어른으로서 근엄한 모습만을 보이던 주자서는 제 직원들에게 대놓고 그렇고 그런 얘기를 한 공준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해졌어.


"하...이 자식을 대체 어떻게 조지지..."


머리가 헝클어지도록 머리칼을 잡아뜯으며 한참을 골머리를 앓던 주자서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착잡함을 얼굴에 드리울 즈음 갑자기 문이 벌컥 하고 열렸지.


"억...!"


이에 앞으로 몸이 쏠려 우스꽝스런 자세로 카펫 바닥에 엎어진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자 황당한 얼굴의 공준이 한손에 트레이를 들고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어.


"...뭐 하십니까?


젠장...오늘따라 여러 번 흑역사를 갱신한 듯한 주자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곤 아무렇지 않은 듯 몸을 일으키곤 무릎을 털었지. 아무래도 뒤늦게 사주에 망신살이 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뭐하기는. 수련 중이였지."

"수련이요...?"

"그래. 수련."



한층 더 황당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공준의 시선을 피한 주자서가 양팔을 크게 벌렸다 모으며 목을 돌렸어.


"그게 수련입니까?"

"자네는 잘 모르나 본데 난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 수련을 했어..."

"어제는 그런 거 못본 거 같은데..."

"그, 그건 준이 너 때문에...!"


순간 울컥한 주자서가 큰 소리를 치며 말하다 다급히 입을 다물었지. 그러자 짖궂은 표정을 한 공준이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물었어.


"제가 뭘요?"


이에 당황한 주자서가 말문이 막힌 듯 붉어진 얼굴로 입을 뻐끔뻐끔 거리다 이내 씩씩대며 그에게서 등을 돌리곤 침대로 향했지. 망할 자식...하고 궁시렁대는 주자서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던 공준이 피식 웃더니 테이블에 트레이를 올려놨어. 나이도 많은 양반이 부끄럼이 왜 이렇게 많아...귀엽기는.


"이리와서 식사해요."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씩씩대던 주자서는 그의 말을 못들은 체 하며 그의 부름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지. 제 말을 무시하며 이불 속에서 꿈틀거리는 남자를 지켜보던 공준은 한숨을 포옥 내쉬곤 그의 곁으로 다가갔어.


"또 뭐가 문제인데요."

"...문제없어. 그냥 지금은 혼자 내버려뒀으면 좋겠군."

"그렇겐 안되겠는데요?"


그 말과 함께 주자서의 얼굴을 가린 이불을 시원하게 걷은 공준이 당황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 보는 그의 콧잔등을 검지 손가락으로 장난스레 건드렸다 뗐지. 약속했잖아요...나 밀어내지 않기로.


그쵸?


하고 몸을 숙여 주자서의 뺨에 키스한 공준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그를 품에 안아 들었어.


"뭐...뭐하는...!"

"힘 그만 빼고 나랑 밥 먹자구요."

"안먹어! 배 안고프다고 이자식아!"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초딩도 아니고 거 되게 떽떽 거리시네요. 하며 주자서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 공준이 쿠션이 폭신한 의자에 주자서를 앉히고는 이불을 의자에 묶었지.


"야...이게 뭐하는 짓이야..."

"밥 먹자구요."

"아, 아니 이러면 내가 팔을 어떻게 움직이냐."


목 아래로 이불과 의자 사이에 완전히 갇혀버린 주자서가 황당한 얼굴로 공준을 쳐다봤어. ...기가 차네 진짜...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요리를 접시에 덜던 공준이 자신도 주자서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지.


"내가 먹여줄게요."

"...뭐?"


그 말에 잠시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 벙쪄있던 주자서가 잠시 후 정신이 돌아온 듯 바...방금 뭐라고 했냐...? 하며 반문하기 무섭게 그의 입안으로 따끈한 무언가가 쑤욱 들어왔어.


"먹여주겠다구요. 내가, 당신한테."


어으어...차마 음식을 뱉지도 못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미간을 일그러 뜨리던 주자서가 능글거리며 저를 보며 웃는 공준을 노려보다 이내 자포기자기한 듯 우물우물 음식을 씹기 시작했지. 넌 나중에 두고 보자 공준...묶인 몸이 풀리면 제일 먼저 머리에 꿀밤을 날려버리겠다 다짐하며 야무지게 입안의 음식을 씹어 넘기던 주자서는 곧 표정이 풀어졌어. 그의 요리가 제법 맛이 괜찮았거든. 잘 먹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공준이 곧바로 다음 요리를 덜어 스푼에 옮기자 주자서가 음식을 삼키곤 말했지. 넌 안먹냐?


"전 아까 먹었어요."

"아까?"

"네."


까다로우신 도련님의 입맛을 맞추려 수없이 요리의 간을 봤던 공준은 다시 스푼을 들어 그에게 요리를 먹여주었어. 떽떽 거릴 땐 언제고 어느 새 고분고분 아기새처럼 잘도 받아먹는 주자서를 그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공준은 아침부터 한 고생이 보람이 있다고 느끼며 눈을 접어 웃었지. 이런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객행자서 공준철한 사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