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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9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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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집에 가고 싶다....리스에게 반응한 카일 덕분에 묵묵부답으로 일삼은 벌거숭이 남자에게 듣지 못한 절차를 끝내기 위해 경찰이며 요원까지 우르르 리스를 둘러쌌다. 덩치들이 움직이자 일제히 시선이 쏠렸다. 오히려 이젠 환자복을 입고 있는 카일이 튀지 않았다. 카일은 그 자리 그대로 서 리스를 기다렸다. 경찰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어본 뒤 카일과 무슨 사이냐고 물었다. 요원을 흘긋 보니 이 사태에 대해서 모르는 얼굴이다. 신참이군. 카일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 카일은 수인이었고 군인이며 군견이다. 잠시 보류해둔다 했으니 소수만 알고 있을 것이다. 리스는 아무렇지 않게 애인이라 말했다. 애인? 경찰이 적고 있던 펜이 멈추고 둥글게 선 이들끼리 각자 눈이 마주친다.



"플레이 도중에 제가 기절해서 병원에 데려온 것 같습니다."
"......아...네...."



뻔뻔한 리스의 태도에 사방으로 눈이 흩어졌다. 수첩을 쥐고 있던 경찰은 큼 헛기침까지 했다. 카일이 깨벗고 나온 걸 직관한 요원은 얼굴이 빨개졌다. 세상에 그 제임스 소령이.....남자 애인에....어떤...플..레이를.....경찰은 모자로 인사 후 먼저 떠났다. 신참 요원 대니엘은 리스를 데려다줘야 하나- 찰스라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방금이 웃는 낯이었는지 얼굴이 싹 굳은 리스가 대니엘 앞에 섰다. 



"그런데ㅡ 감시 인력을 줄인다더니 여기서 뭐하는 건가?"



'제임스 리스에게 들키지 말고 감시해라.' 대니엘의 임무는 쉬었다. 동기 한명은 꿀 빤다 부러워했고 한 기수 선배는 '너 좆됐네.'라 했다. 눈 앞의 리스를 보니 좆된 게 맞다. 대니엘은 눈물을 삼키며 돌아갔다.
리스는 여전히 멀뚱히 서있는 카일에게 다가갔다. 멀쩡한 척 하다 쓰러지기까지 했으니 머쓱해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기 무섭게 카일이 핸드폰을 건넸다. 부재중 전화가 다섯개나 찍혀있었다. 오웬이다.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황급히 받았다. 형!! 걱정을 꾹꾹 눌러 담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웬. 나 괜찮아. 방금 일어나서 전화를 이제 받았어. 미안해."
"병원에서 연락와서 전화 거니까 한번 받던데 누구야? 누가 병원에 데리고 간거야?"



카일이 받았나 보다. 리스가 그랬니 눈짓했는데 표정 변화 하나 없다. 개 일 때보다 얼굴을 읽기 어려웠다. 여보세요? 형? 재촉하는 오웬에 일단 와서 설명할게...오웬 쪽에서 전화가 끊겼다. 할 일이 많아진 기분에 사라진 두통이 느껴진다. 구겨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른다. 내려간 시야에 진흙 투성이가 된 카일의 발이 보인다. 리스도 신발이 없어 병원에서 준 슬리퍼를 신었지만 발은 깨끗했다. 넘어져서 찢어진 눈썹만 빼곤 뻐근한 부위도 쓸린 상처도 없었다. 한 치의 흩트림 없는 카일의 곧은 어깨와 넓적한 앞판에 리스보다 크게 보였는데 덩치는 몰라도 키는 리스보다 조금 작았다. 순찰을 도는 경찰도 너무 빨리 사라져서 못 잡았다고 했었다. 자기를 없고 뛰다니...피가 난 흔적은 없지만 환자복을 입고 맨발로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볼게 뻔했다. 편의점에서 슬리퍼를 사 카일에게 신겼다. 제일 큰 사이즈라 했는데 한참 작았다. 발도 크네. 카일은 묵묵히 리스를 쫓았다. 밖으로 나가자 바로 오웬이 보였다. 목소리만큼 걱정이 한 가득인 오웬이 리스를 졸졸 따라오는 카일에 표정이 달라졌다.



"누구야?"



자칫하다간 튀어나와 카일을 제압할 오웬의 기세에 리스가 잠시 말을 고른다. 카일이 상처 받을 수 있으니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말로.



"그때 말했던...."
".....개라며?"



오웬은 직업상 남들은 조심할 단어를 정확하고 거리낌없이 말했다. 리스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방금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정할 순 없었다. 지금 카일의 모습은 무슨 말을 덧붙여도 수상했다. 리스는 별 다른 말 없이 카일에게 오웬을 소개했다. 오웬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카일은 고개로 인사했다. 짧은 머리에 꼿꼿한 자세가 누가봐도 군인이었다. 차라리 인간형태가 나았다. 리스를 만난다고 나왔는데 다른 냄새라도 뭍혀오면 페이스가 난리일테니. 대치 상태로 있던 셋은 오웬이 뒤돌자 풀렸다. 오웬이 먼저 운전석에 앉고 리스가 뒷문을 열고 카일을 태운 뒤 조수석에 앉았다. 오웬이 보기엔 지극정성인 에스코트에 리스를 경악하고 쳐다봤다. 리스는 모른 척 앞을 봤다. 집으로 가는 길에 셋은 침묵을 택했다. 뒷좌석 가운데 좌석이 불편할 텐데도 카일이 굳이 리스와 오웬 사이에 앉아 전방주시를 했다. 리스는 고집스러운 카일을 알기에 조금 편히 시트에 기대기라도 했지 오웬은 수상하고 덩치 산만한 남성이 불편하게 해 어깨에 담이 올 뻔 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 내리지 않는 오웬에 리스가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도 그럼 이만. 하고는 떠났다. 망할 사육사. 오웬은 그럴 때마다 "사육사가 아니라 구조대라고." 말했다. 집은 아침 그대로였다. 외출 후라 카일의 발을 씻겨야한다고 습관대로 움직이려다가 병원에서 도망나온 듯한 카일의 행색에 그만뒀다. 종아리까지 진흙 투성이인 카일은 씻긴 씻어야 했다. 뒷문을 열어주는 리스에게 경악하는 오웬이 떠올랐다. 그래 적당히 해야지.



"어..카일 일단 씻고 올래? 옷은 앞에 준비 해둘게." 



카일은 평소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로 들어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에 귀를 대보니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안도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카일에게 입힐 옷을 찾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리스가 살이 빠진 뒤 산 옷들은 뒤질 필요도 없이 한눈에 담겼다. 대충 잘 늘어나는 옷을 욕실 앞에 두고 점심을 만들려 주방으로 갔다. 메뉴는 빨리 만들 수 있는 스파게티로 정했다. 리스만큼 큰 카일이 얼마나 먹을 줄 몰라 있는 대로 면을 풀었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에 기척이 섞여 뒤를 돌아보니 리스에게도 벙벙한 옷이 딱 붙어 이젠 카일이 불편해보였다. 웃음이 나오려다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 참았다고 생각했지만 카일은 이미 리스가 웃음이 터진 걸 알았다. 말하지 않아도 식탁에 앉는 카일에 리스도 다시 요리하며 옷장 깊이 박혀있는 옛날 옷이라도 꺼내야겠다 싶었다. 토마토 소스와 면을 볶다가 두 손을 쓰게 되면서 리스는 알았다. 양을 솔찬히도 많이 했네...족히 사인분은 돼 보였다. 산처럼 쌓인 스파게티를 카일의 앞에 두고 평소라면 옆에 앉았을 리스가 민망해서 맞은 편에 앉았다. 리스는 최대한 카일을 신경쓰지 않고 먹으려 했다. 더 이상 놀랄 일이 뭐가 더 있는 건지ㅡ케이크에 얼굴이 박힌 파티 주인공처럼 스파게티에 고개를 묻고 먹는 카일에 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카일을 불러버렸다. 크리스! 마치 물 속에 뛰어드는 강아지를 멈춰 세우려는 보호자처럼 말이다. 이미 코 끝이며 수염까지 토마토 소스가 덕지덕지 붙은 카일이 눈으로 물었다. 먹는데 왜? 그게 개 일때 합찹찹 소리내며 먹는 카일이랑 너무 똑같아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어...



"옆에 포크 있는데...."



리스가 제 포크를 흔들며 카일의 포크 쪽을 콕 찔렀다. 카일은 입안에 있는 스파게티를 우물우물 씹으며 포크를 잡은 리스의 손을 빤히 쳐다봤다. 꿀꺽 음식물이 넘어가는 소리가 크다. 카일은 리스를 보며 손을 더듬어 포크를 찾고 쥐었다. 잡고 있는 손이 어설프다. 한입 먹고 힐끔 카일을 보니 아이가 모래놀이를 하는 것마냥 포크에 걸린 면들이 적든 많든 떠서 다 흘리고 먹고 있다. 잘 먹는 걸 보면 유치한 음식 투정은 아닐 테고 먹는 방법으로 뭐라고 하기엔 다 컸다고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건장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라 튀어나오려는 말을 누르기 위해 입에 스파게티를 넣었다. 결국 싹싹 비운 스파게티 접시 앞에 카일은 이제 옷까지 엉망이었다. 입을 막을 스파게티도 없어 리스가 "어...카일 다시 씻어야 겠다..옷도 다시 줄게.." 카일이 고개로 대답하고 일어났다. 리스는 서랍 맨 밑에 뭉텅이로 있는 옛날 옷을 다 꺼내 빨래를 돌렸다. 카일이 추울까 하나 들고 얼른 갔는데 어디서 스파게티를 한 그릇 더 먹은 듯한 꼴의 카일이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수염이 다 젖어 물이 뚝뚝 흐르는데 여전히 스파게티가 덜 닦여 있었고 옷도 어느 정도 젖어 있었다. 



"크리스 뭐..."



잇지 못한 말 뒤로 아이같이 포크를 쥐는 카일이 지나갔다. '사람이지만 개로 지낸 지가 오래됐죠. 그냥 인간이었던 개입니다.' 찰스의 말도 뒤따랐다. 단순히 사람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반 평생 개로 살았던 거다. 오웬의 차에서 가운데에 앉았던 카일, 티셔츠 앞뒤를 신경 안 쓰는 카일, 주먹으로 포크를 쥐는 카일...카일의 젖은 수염에서 떨어진 물자국이 리스를 깨웠다. 




"...수염을 깎아야 겠다."




리스는 테라스 의자에 카일을 앉히고 품에 한 가득을 채우고 왔다. 카일의 목에 수건을 둘러주고 얽혀 있는 긴 수염을 잘라냈다. 따뜻한 물론 적셔 온 타올로 카일의 얼굴을 풀어주고 쉐이빙 폼을 가득 짜 버석한 수염을 웬 할아버지로 만들었다. 카일의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고 면도칼로 사각사각 수염을 베어냈다. 어색한 상황과 작지만 날카로운 칼이 살갗을 스치자 카일이 얼굴을 슬슬 뒤로 뺐다. 리스가 "씁. 가만히." 명령조에 카일이 몸을 굳혔다.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곤 열심히 참았다. 숨까지 천천히 쉬느라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다. 리스는 입술이 말릴 만큼 집중했다가 얼굴에 닿는 시선이 뜨거워서 마주치진 못하고 "크리스 눈 좀 감아줄래." 하자 하늘색 눈이 감기는 게 어렴풋이 스쳤다. 눈을 감자 조금 나아진 감각에 카일이 숨을 적게 쉬어 부푼 흉곽에 공기를 뺐다. 개일 때랑 달리 높아진 시선에 카일이 신경이 자꾸 곤두섰다. 공기가 털이 아니라 맨살에 얹혀지는 것까지 느껴졌다. 기묘하게 다른 차이들이 버거웠다. 리스의 목소리 또한 배로 부드럽게 들려서 집중하려다가도 탁 풀렸다.
카일이 군대에서 제일 잘했던 건 집중이었다. 집중은 승률을 올렸고 높아진 승률은 안전성을 이어 성공으로 이끌었다. 조금이라도 어릴수록 짐승의 감은 살아 있었고 두 세살 차이라도 늙은 군인은 제대 당했다. 카일이 군대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짐승이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동물 형태에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자유를 억압받고 짐승으로, 개의 감각으로 살면서 남들은 잊는 오감을 유지했다. ㅡ대령은 카일을 아꼈다. 개로서 말이다. 대령에게 크리스 카일은 군인이 아니라 군견이었으며 '카일'이었다. 대령은 카일을 집까지 데려와 키웠다. 대령과 같이 살며 그를 지키고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안정을 배웠다. 그떈 그게 맞았다. 아니다라 하는 사람도 없었고 나날이 개 같아지는 카일에게 칭찬만 해줬다. 카일은 어렸다. 꽉 막힌 텍사스에서 벽으로 세상을 차단한 군대에 들어온 나이가 열일곱이었으니. 



"자 됐다."



빠르고 꼼꼼한 리스의 손에 카일의 얼굴이 깨끗해졌다. 서류에서 본 앳된 얼굴이 성숙하게 나이 먹었다. 개일 때도 잘생겼더니. 바람이 그대로 느껴지는 시원한 얼굴에 카일이 제 얼굴을 더듬는다. 영문 모를 표정이다. "세수하고 와." 등을 떠밀자 갸웃대며 욕실로 갔던 카일이 곧바로 우당탕 소리를 내며 뛰어왔다. 카일이 손으로 자기 얼굴을 막 가리켰다. 수염 어디디갔냐는 말인 것 같다. 



"왜 어색해? 잘 어울려."



미안한 기색은 불구하고 카일 입장에서 쌩뚱 맞은 반응을 하는 리스에 카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 크리스가 맞네. 개일 때 마음에 안 들면 지었더 표정이다. 빙그레 웃는 리스에 카일이 이빨을 드려내고 다시 돌아갔다. 으르렁? 지금은 개가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둘은 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게 둘의 소통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카일은 인간형, 사람이었다. 리스도 카일도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카일은 몰라도 리스는 물어볼 게 많았다. 문득 최악의 상황이 생각났다. 설마. 머리보다 몸이 카일을 찾았다. 거실에서 둘은 딱 마주쳤다. 세수하라고 보냈더니 물장난을 친건지 머리도 모자라 상체가 다 젖었다.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 물에 리스가 수건을 들고 다가가니 카일이 푸다다닥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세상에 크리스. 차가워!" 영락없는 개의 행동이다. 그래도 머리카락이 마르지 않자 또 흔들려는 카일을 진정시키기 위해 소파에 앉혔다. 머리를 탈탈 털어주다 "크리스." 하니 제법 순한 눈으로 올려다 본다. "크리스 내 이름이 뭐야?" 입을 뻐끔하다 다무니 텁 소리가 났다. "응?" 다시 물으니 빈 소리로 아-소리가 난다. 



"오 크리스.."



반 평생을 개로 산 카일은 씻는 법도 먹는 법도 말하는 법도 모든 행동이 개로 그쳐있다. 카일은 어떤 망할 놈의 말처럼 사람이었던 개라는 빌어먹을 표현이 맞았다. 분하게도. 왜 그러냐는 얼굴에 스무 살도 안 됐던 얼굴이 겹친다. 리스는 한번 카일의 얼굴을 쓸었다. 리스는 모르지만 악몽을 꾸는 지난 밤처럼 슬프게 구겨지는 얼굴은 눈을 뜨면 이런 모양이구나, 카일은 평소처럼 리스의 손에 가만 기대었다. 여전히 푸른 눈. 을 바로보는 리스의 눈은 아침에 카일의 발목에 스쳤던 풀색이다. 물기에 어려 차갑다가 간지럽히던 것들. 리스가 손을 떼자 카일의 시선이 따라갔다. 조금 더 있어도 되는데. 둘 다 알 길이 없는 말이다. 리스는 나긋이 웃어보인다.



"그럼 이제 칫솔 써야겠네?"



카일이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진다. 양치껌이나 줘! 하지만 우우하는 소리만 나올 뿐이다.





하루가 길었다. 카일이 이제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는 걸 알았으니 방을 저대로 둬선 안됐다. 저건 강아지 방이니까. 강아지 두 마리가 누울 정도로 큰 잠자리지만 지금 카일에겐 조금 큰 베개였다. 문제는 침대 뿐만 아니라 입고 있는 리스의 옷도 작았으니 카일에게 맞는 옷이 필요했고 발도 리스보다 커서 신발도 점심을 먹는 양은 확실히 개일 때보다 배가 크니 장도 봤어야 했다.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카일에게 모자를 씌우고 선글라스도 껴줘야 했다. 왱알대던 카일이 선글라스를 끼니 조용해졌다. 선글라스도 사야겠네. 쇼핑 리스트가 추가됐다. 다행히 카일은 리스를 잘 따라왔다. 옷도 입어 보라면 입어보고 신발도 신고 벗고 귀찮은 티 안내고 잘했다. 나온 김에 다 사려고 몇 군데 더 들리려 했는데 생각보다 벌써 지쳐보이는 카일에 침대만 주문 시키고 돌아왔다. 저녁은 햄버거였다. 카일이 한입 왕 하자 잘 못 쥔 건지 포장지와 함께 떨어진 내용물에 리스가 크게 웃어버렸다. 바로 옆에서 직관한터라 웃음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눈물까지 매달며 비웃는 리스에 카일은 한참 감자튀김만 씹었다. 다정한 리스가 다시 햄버거 모양으로 만들어 주고 동그란 모양을 어디로 잡는지 카일의 손을 빌려 잡아줬다. 카일은 가르쳐주면 곧장 잘 따라했다. 아직 양치질은 어려워 해서 같이 욕실에 들어가 거울 한번, 리스 한번 보고 따라했다. 삼분 넘게 하는 양치질에 둘 다  입가에 거품이 자글자글 했다. 그 모습이 루시에게 양치질을 가르쳐준 때가 기억나 리스가 몰래 웃었다. 넌 참 잘 웃네. 카일이 속으로 말했다.

잘 시간이 됐는데도 카일은 여전히 건장한 사람이었다. 침대가 없어서 개로 변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그냥 자려나보다 물어보지 않고 생각했다. 나중에 동물형으로 변할 수도 있는 거니까. 카일을 부담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리스가 제 침대를 양보하려고 담요를 들고 나왔다. 이미 카일이 소파에 누워있다. 카일이 좋아하는 자리였다. 물론 길게 누운 폼 때문에 소파에 꽉 차 좋아하는 부분인지 모호했다. "여기서 잘거야?" 수염이 까슬하게 올라 온 얼굴이 끄덕인다. "그래 내일이면 네 침대가 생길거야." 카일에게 이불을 덮어줬다. "잘자 크리스." 눈을 바라보며 끄덕. 동물형일 때도 소통이 잘 됐는데 사람으로 소통하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리스에겐 카일은 카일 그대로 느껴져서 어색하게 대할 수 없었다. 되려 마트에서 만난 이들이 '저 게이부부는 정말 크네.' 하며 쳐다보는데 게이부부라 오해받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가까웠다. 둘은 신경쓰지 않았지만 밖에서 인간형으로 그렇게 붙어 다니면 안됐다. 아마 오웬이 봤다면 기함했을 거다. 리스가 불을 끄고 들어갔다. 어둠에 빨리 익숙해지는 카일은 찬찬히 천장부터 창문으로 들어오는 나뭇가지 그림자와 소파 헤드의 끄트머리를 살폈다. 이건 달라지지 않았네. 누운 자세는 개나 사람이나 비슷했다. 오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는지 잠이 빨리 왔다. 카일은 리스가 책장 넘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일찍 잠에 들었다.


눈이 떠졌다. 수인은 기본적으로 일반 사람보다 체력도 청력도 후각도 신체적인 부분이 뛰어났다. 오죽하면 수인이 운동선수가 되려면 동물형의 피가 몇퍼센트만 섞여있어야 했다. 카일은 훌륭한 군견이였으므로 새로운 몸으로 변하고 아무리 지친 오늘이었어도 리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오늘따라 고통 쪽인 소리가 컸다. 카일은 조심히 항상 그랬던 것처럼 까치발을 들고 리스의 방으로 갔다. 발을 뗄 때마다 발톱이 스치는 착착 소리가 아니라 살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개일 때보다 더 조심히 열 수 있었다. 그땐 문이 좀 세게 열려도 리스가 깨지 못했다. 아마 악몽을 꾸면 귀가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큰 덩치를 훈련 받은대로 기척없이 다가갔다. 몸이 변했어도 잊지 않았다. 리스를 토닥이기 위해 그의 침대에 손을 댔는데ㅡ시야가 뒤집혔다. 리스는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카일이 침대에 엎드려 있다. 카일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만 껌벅였다. 팔이 뒤로 꺾여 꽈악 조여졌다. 카일의 머리 위 등 쪽에 리스의 가파른 호흡이 쏟아졌다. 그제서야 카일은 자기가 리스에게 제압당한 걸 알았다. 분명 리스는 자고 있었다. 몸이 구를 때도 눈 감지 말라는 법을 배워서 흔들리는 시야에 매서운 녹색이 걸렸던 것 같다. 그동안은 개라서 몰랐던 걸까. 숨을 크게 내쉬던 리스가 깜짝 놀라며 카일에게 떨어졌다. "크,크리스 미안해. 난, 난 사람인 줄 알고. 어,괜,괜찮아? 다친 곳 없어?" 리스가 말까지 더듬으며 카일을 살폈다. 카일도 놀라긴 했다. 리스도 군인이었으니 사주경계가 몸에 배었을 거고 까딱하면 방어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보기 좋게 틀렸지만. 카일을 일으키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챙겨주는 리스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흠뻑이다. 카일이 손을 들어 리스의 둥그런 이마를 훔쳤다. 길고 큰 손은 이마의 땀을 한번에 닦아냈다. 카일의 행동에 리스가 살풋 눈을 접었다. 휴우...리스가 방금보단 안정된 숨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야..? 잠이 안 와? 소파 불편한 거야?"



진정한 만큼 물어보는 리스에 카일은 부러 고개만 저었다. 니가 울었어. 속으로는 무슨 말을 못 할까. 운다는 표현을 손으로 할 줄 몰라서 카일을 전달하지 못 했다. 허나 알고 있어도 리스가 울었단 사실은 말하지 않았을 거다. 리스가 우는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꽤나 피곤했던 리스는 카일을 침대로 이끌었다. "그래 일단 자고 일어나서 얘기하자..." 다정한 리스는 카일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등을 돌린 채 금방 잠이 들었다. 스위치가 꺼진 사람처럼. 방문을 열었을 때 불규칙적이게 움직이던 가슴과 달리 새근새근 차올랐다 꺼지는 등은 편안해 보인다. 카일은 정자세로 고개만 돌려 리스를 보다 천장으로 돌렸다. 턱에서 느껴지는 심장 박동이 아닌 아주 가까이서 들리는 숨소리는 조금 새로웠다. 면적이 넓은 인간의 몸은 발끝까지 옆에 있는 이의 체온을 빨아들였다. 따뜻했다. 보송한 거 같기도. 

아침에 일어나니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리스는 어제의 일이 꿈인가 싶었다가 옆의 베개 가운데가 푹 패인 자국에 진짜란 걸 알았다. 누워있던 자국대로 구겨져 있는 침대를 손바닥으로 피자 온기가 따라왔다. 간밤에 따뜻하게 잔 기분이었다. 무슨 아기인가. 커다란 카일의 뚱한 얼굴이 생각났다. 아 요즘 너무 웃어서 크리스가 싫어하는데. 웃음 지우고 나가기까지 십여 분 정도 걸렸다. 방을 나가자 소파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난 카일의 머리가 까치집이라 더 크게 웃어버렸다.




오랜만에 돌아간 인간형이 마음에 들었는지 카일은 며칠 사람으로 지냈다. 그렇다고 둘의 사이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일찍 일어나 러닝도 뛰고 아침 먹고 카일이 설거지 하는 리스 옆에 딱 붙어 있길래 의중을 몰랐는데 다음날 나서서 설거지 하는 카일에 가르쳐 줄 일이 많아진 것만 빼고는 말이다. 세탁기 돌리는 법, 빨래 개는 거, 중국 요리 음식을 먹다가 생각보다 젓가락을 잘 한다는 걸 알았다. 한번은 카일이 자꾸 속옷을 안 입고 바지만 입길래 몇 번 알려줬다. 그럴 땐 리스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조금 민망했다. 안 불편해? 하니 카일은 당당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속옷을 답답해했다. 개일 때는 몰라도 사람일 땐 입어야 해...처음으로 어르고 달랬다. 루시가 네살 때 자꾸 유치원을 갈 때마다 수영복을 입겠다고 때를 쓰곤 했는데 그때 같았다. 개를 키우는 건 애 키우는 거랑 똑같다더니 맞네. 며칠은 배우고 따라하고 투닥대고 나쁘지 않았다. 이제 abc를 가르쳐볼까 했는데 저녁에 카일이 쓰러졌다. 주방으로 가던 길에 쿵 소리가 나 쫓아가니 카일이 카일로 변해있었다. 반가움은 커녕 큰소리로 쓰러진 터라 리스가 놀라 뛰어가다 자기도 넘어질 뻔 했다. 묵직해진 카일을 흔드는데 반응이 없다. 이번엔 리스가 카일을 안았다. 뒷좌석에 카일을 눕히고 차를 출발했다. 일반 병원은 갈 수 없었다. 지금은 개니까. 수인 병원은 조금 멀었다. 생각나는 사람은 한명이었다. 오웬.






"과로래."


과로. 리스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말하지 않아도 알았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거야. 분명 힘들었던 거겠지. 내가 너무 사람 모습이 좋은 티를 냈나? 그런 비슷한 말을 했을까? 대하는 모습이 달랐을까? 얼굴이 다채롭게 변하는 리스에 오웬이 짝! 박수를 쳤다. 헛생각을 하던 리스의 초점이 뚜렷해졌다. 



"형이 생각하는 거 그런 거 아니야. 카일? 쟤 인간형으로 변한 거 거의 처음 아니야? 에너지 쓰는 법이 다른데 동물형으로도 변했어야지. 쟨 그냥 무식하게 힘으로 사람 모습으로 버틴거야. 애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랑 똑같아. 어떤 모습을 써야할지 어떻게 써야할지 본인이 알아야지. 지금 수액 맞혀놨어. 조금 있으면 일어날거야."



큰 병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니 다행이었다. 리스는 일반인 군대라 수인에 대해 잘 몰랐다. 상식으로 빠삭하게 알았지만 그들이 몸소 느끼는 건 알 수 없었다. 종마다 다른 특색도 있었고 부모부터 조부모 그 위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아주 작은 염색체로 평생 수인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카일의 같은 경우도 처음이다. 오웬도 카일의 상태에 놀랐다가 진료 후 설명을 듣다 맥이 팍 풀렸다. 갈 길이 멀었구만. 근데 형. 어?



"옷 가져왔어?"
"....가져왔겠니."
"아 또 알몸남 난리 나겠네."
"차 가져왔어..."






뿌꾸프랫 카일리스

 
2024.02.19 01: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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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악 센세왔어!!!!!!!!!!!!!!!
[Code: 0508]
2024.02.19 01: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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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ㅁㅊ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인이래.. 플레이했대.. 소령님 이 퐉스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인데ㅠㅠㅠㅠㅠㅠㅠㅠ
카일 너무 귀여워.. 언제 말할 수 있게 될까? ㅠㅠㅠㅠㅠㅠㅠ 자유롭게 동물형과 인간형을 왔다갔다할 수 있게되면..ㅎㅎ... 진짜 플레이 ㅎㅎㅎ 도 할 수 있겠지.. 너무좋다 센세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0508]
2024.02.19 01: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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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아ㅠㅠㅜㅠㅠ 카일 덩치 산만한데 하는건 애기라서 리스가 아기 가르치는듯 챙기는거 미쳐써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c314]
2024.02.19 01: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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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곳이 천국입니까
[Code: c314]
2024.02.19 01: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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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미치겠다 센세 ㄹㅇ 개섬세하네...진심 개존잼 마스터피스
[Code: 0e89]
2024.02.19 02: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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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나 어지러워... 이거 볼라고 여태 안자고 잇엇그나 진짜 필력도랏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세 최고야........ 억나더로 함께햐.... 감히 오웬 페이스도 기대해도될까 ㅠㅠㅠㅠㅠ
[Code: 4dca]
2024.02.19 03: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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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밌어요 센세...
[Code: 05ac]
2024.02.19 08:1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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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28d3]
2024.02.19 08: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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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내가 월요일을 버틴 이유는 이게 다 센세를 만나기 위함이었구나 ㅠㅠㅠㅠㅠ 흑흑 덩치큰 게이부부 영사하세요
[Code: e80a]
2024.02.19 09: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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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월요일 아침을 시작할 양식을 센세가 주셨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너무 좋아ㅠㅠㅠㅠㅠㅠㅠㅠ 필력 진심 미쳤다.... 페이스가 날뛴다는 언급나온거보면 페이스오웬도....? 햐 너무 마히따....
[Code: 6856]
2024.02.19 09: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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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가져왔어?"
"....가져왔겠니."
"아 또 알몸남 난리 나겠네."
"차 가져왔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미치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6856]
2024.02.19 11:5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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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몸남 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보고싶다~~!!!!!!!!!!!
[Code: 0229]
2024.02.19 13: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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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재밌어서 아껴읽었는데 결국 다 읽었네 ༼;´༎ຶ ۝༎ຶ`༽ 다음편 올라올 대까지 하루 한줄만 읽을걸
[Code: 7e03]
2024.02.19 16: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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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 센세 고마워 ㅜㅜ 넘 좋다
[Code: 4853]
2024.02.19 18:5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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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센세가 억나더를 주셨어요 ㅌㅌㅌ
초반부터 리스 ㅋㅋㅋㅋ 플레이 ㅌㅌㅌ 요망폭스 흑흑 리스그 카일 하나하나 알려주는거 너무 보기좋다
알몸남으로 깨어나서 겪는 우당탕탕 카일 육아 생활 보고싶어 ㅜ
[Code: 1b3a]
2024.02.21 13: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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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소중한 어나더ㅜㅜ 너무 재밌어
[Code: 2766]
2024.02.23 10: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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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ㅏㅏㅏㅏㅏㅏㅏ 센세ㅔㅔㅔㅔㅔㅔ
[Code: 4e61]
2024.02.25 01:5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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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대작일 줄 알았어 내 ㄴ눈은 틀림이 없다고 센세
[Code: fd53]
2024.03.02 12: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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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복하다…읽는내내 힐링되는 기분…센세 사랑해요..
[Code: 38c0]
2024.03.21 15: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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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기다리고 있어…. 사랑해
[Code: 7915]
2024.03.24 12:2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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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새.. 보고십어..ㅠㅠㅠㅠㅠ
[Code: 63ab]
2024.06.02 22: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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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따,, 아기자기한 일상물 최고야..
[Code: 20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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