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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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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아비, 저랑 뭘 하고 싶다고요?





대련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웃기지?
핰ㅋ 웃기지 않을 리가요? 저는 검을 쥘 줄도 모르는데요?



이연화는 갑자기 대련을 하자고 요구하는 적비성때문에 웃고 있었지만 등 뒤로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어. 이유를 깊이 파고들지 않아도 뭔가 잘못 대답했다가는 앞으로 고생길이 훤히 열릴수도 있겠다는 쎄한 예감이 들어서였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연화는 적비성이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긴 남자인지 몸소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었어. 그러니 적비성의 관심을 얼른 다른 곳으로 돌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연화가 재빨리 수줍은 표정을 꾸며내며 일부러 헛기침을 했어.



검 말고...저와 다른 걸 나눠보시는건요.



그럼 명백하게 그런 의도를 담고 살랑거리는 연화의 반응에 적비성이 피식 웃어버릴거야. 곤란할 때 발동하는 이연화의 세치 혀가 오히려 적비성에게 선명한 내면의 확신을 가져다줬거든. 적비성이 뻔뻔한 이연화의 태도를 감상하며 팔짱을 꼈어.



...흥미롭군. 이연화. 아니 이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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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는 적비성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자마자 마시던 차가 목에 걸려 품위고 뭐고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찻물을 뿜어버리고 말았어. 적비성의 눈이 위험하게 반짝이는 걸 보며 연화는 지금이야말로 300년 묵은 여우요괴의 순발력이 필요할 때라는 걸 직감했을거야. 위기에 몰렸긴 했으나 연화는 경험적으로 상대가 믿음을 확신하고 있을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어렵긴 해도 사기치기엔 가장 알맞은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연화가 말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어.



이상이라니, 그게 누군데요...?
시치미 떼지 마라. 넌 검을 들지도 못한다고 하지만 네가 가진 공력의 깊이는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아잇, 그건 산에서 당신처럼 어떤 노파를 구해주고 우연히 얻게 된 심법을 조금씩 수련해서 그런 거랍니다.
그 점도 비슷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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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는 조용히 은거하며 이따금 사람을 구할 때만 나타나 무기를 든다고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강호에서 가장 빠르다는 그의 상이태검과 한 번 겨뤄보고 싶었지. 그러나 늘 얼굴을 가리고 행적을 숨기고 다니는 터라 노력해도 만날 수 없었다. 그런데 네가 정말 이상이가 맞다면...이렇게 연이 닿게 될 줄이야.



그래. 바로 지금과 같은 귀찮은 상황을 피하려고 말이지. 연화는 어쩔 수 없이 무공을 써야 했을 때마다 이름을 바꾸고 꼬박꼬박 얼굴을 가리고 다녔던 스스로를 조용히 칭찬했어. 그리고 꽤 상기된 채로 이야기하는 적비성이 이상이에게 가지는 기대보다 실제 신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아보여 한결 마음을 놓았지. 하여간 무공 좀 한다는 인간들은 왜 이렇게 상대랑 겨루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어. 적비성은 특히나 그런 쪽으로 상식 밖의 촉이 발달한 것 같아 소름이 돋았어. 아니, 찍어서 맞출 정도면 대체 얼마나 무공에 미친 놈인 거야? 연화는 절대 엮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단호하게 잘라 말했어.



아비, 안타깝게도 저는 무공을 할 줄 몰라요.
정말이냐?
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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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적비성이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연화의 혈도를 짚었어. 적비성의 점혈도 훌륭했지만 적비성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연화는 꽤 아픈 자리를 노리고 들어오는데도 일부러 피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을거야. 적비성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이는 연화를 살폈어. 정말 이상이라면 자신의 수를 읽고 피했거나 맞받아쳤겠지. 그러나 적비성은 무력하게 당하는 이연화를 보면서도 묘하게 그가 이상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결국 찝찝한 상태로 한 발 물러나게 됐을거야.



알겠다. 일단은... 지켜보지.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적비성을 두고 연화도 한동안 대놓고 피곤해지겠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을거고.(징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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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이후로 연화는 외출을 할 때면 항상 조용히 자신을 따라붙는 적비성의 기척을 느끼게 됐어. 그게 대놓고 감시한다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가려운 곳이 거슬리는 것처럼 괜히 신경이 쓰여 미칠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한 번 눈 딱 감고 겨뤄줄까 싶다가도 적비성을 허락했다가 소문이 퍼져 웬 그지같은 어중이 떠중이들이 너도 나도 싸우자고 덤벼들면 더 골치아파질 게 분명해 연화가 마음이 약해질때마다 새롭게 다잡길 반복했을거야. 뭐 보통은 별 일이 없었으니까. 무공을 쓸 일은 가끔.. 정말 가아아끔 일어났고 연화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적비성에게 보란듯이 평범한 삶을 사는 자신을 보여주리라 다짐했지.



그랬는데..그랬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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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연화는 가격당한 옆구리와 복부를 팔로 감싸고 끙끙거렸어. 날이 날인가, 하필 우중충하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내릴 것 같은 산길에서 도적들 몇과 맞닥뜨리게 되어 연화가 협박을 당하게 된 거야. 사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잡스러운 놈들의 공격은 가볍게 피하며 골탕을 먹이고 나아가 흠씬 때려주면서 정신머리를 고쳐줬겠지만... 적비성에게 거짓말을 둘러댄 지금은 그럴 수 없어 연화는 별 것 아닌 발길질을 고스란히 맞을 수 밖에 없었을거야. 가진 걸 이미 다 내어 드렸다고 해도 막무가내야. 아무래도 발에 채인 곳이 멍이 들 것 같은게 욱씬거리는 고통이 기분나쁘게 들러붙어 연화의 짜증을 돋구고 있었어. 연화의 얼굴이 자연스레 곱게 찡그려졌어.



으억!!



그 때 별안간 풀숲 저편 누군가가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공력을 쏘아보내 도적들 중 한 녀석이 비명을 지르며 저 멀리로 나가떨어지게 됐어. 바로 가만히 있던 연화를 냅다 발길질하며 위협했던 덩치 큰 남자였지. 갑작스런 공격에 연화와 남은 패거리들의 눈이 둥그렇게 커졌고 놀란 도적들이 도망가기는 커녕 너도나도 경계하며 병장기를 꺼내들었어. 연화는 자길 도와주려는 건지, 일을 더욱 키우려는 건지 모를 적비성의 참견에 한숨을 쉬었어.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고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으면 이 자를 죽여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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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기세좋은 외침과 실력은 그닥 비례하지 않았는지 적절한 계산 없이 들이밀어진 칼 끝이 연화의 얼굴을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 상처를 만들어 내고야 말았어. 화끈한 느낌에 연화가 몸을 물리고 고개를 돌려 상처를 더듬으니 피가 옅게 뭍어나기까지 했지. 연화는 조금 고민하다가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히잉, 한껏 겁먹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이목을 끌었어. 그건 누가 봐도 한 번쯤 이 상심한 미인에게 말을 걸고 달래주고 싶은 가련한 모양새라 도적들끼리도 웅성대고 연화를 둘러싸기 시작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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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아깝지 않은가보군. 떨어져라.





그때,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못하고 나타난 적비성이 칼을 뽑아들고 무시무시한 검기를 날리며 도적들을 쓸어버리기 시작했어. 연화는 인질이 되어 함부로 흔들리면서도 맹수처럼 몸을 날리는 적비성을 꼼꼼히 눈에 담았어. 담대하고 망설임없는 움직임에도 불필요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이 깔끔해 보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적비성의 말이 허세가 아니라 진짜 보기 드물게 실력있는 고수가 맞았던거지. 내력까지 실려 묵직하고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초식 하나 하나가 펼쳐질때마다 도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낙엽마냥 바닥을 굴렀어. 음, 저렇게 강한 힘을 받아내려면 맞부딪치는 것보단 어느정도 흘려보내며 빈틈을 노리는 게 낫겠는 걸..? 압도적인 검술을 펼치는 적비성이 간만에 연화의 마음을 다른의미로 살짝 설레게 만들고 있었어.



적비성이 적을 쓸어버리며 매서운 눈을 하고 붙잡힌 연화에게로 점점 가까워졌어. 이미 저를 잡고 있는 사내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였고, 마침 막다른 곳에 몰려 도망갈 구석이 보이지도 않았지. 때마침 번개가 번쩍, 하늘을 두 쪽으로 갈랐다가 무너질 것 같은 천둥이 치며 스산한 분위기를 더해왔어. 연화는 사실 마음만 먹으면 저를 잡고 있던 사내를 피해 쉽게 도망쳐 나올 수 있었음에도 주변을 휘 둘러보다 조금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어. 적비성이 몸을 날리자 남자가 겁에 질려 연화의 팔을 아무렇게나 놓고 달아나려고 했어. 그 우악스러운 힘에 연화는 때마침 자연스럽게 산길 옆 절벽 끝으로 밀려나게 됐고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발, 두 발, 세 발을 허우적거리며 뒷걸음질치다 깊은 호수가 있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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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푸..! 콜록..콜록...





깊은 물 속까지 처박혔던 연화가 다시 숨을 틔우러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연화는 천지를 때리는 빗소리와 적비성이 다급히 저를 찾으며 부르는 소릴 들었어.



이연화!!!



물에 뛰어든 적비성이 빠르게 헤엄쳐 허우적거리는 연화에게로 다가왔어. 적비성은 갑작스레 물을 먹고 콜록거리는(것까지 모두 계산한) 연화를 붙잡아 끌고 얕은 뭍으로 데리고 나왔을거야. 물에서 빠져나오느라 기진맥진한 두 남자가 비가 오는데도 물가에 그대로 누워 헉헉 거친 숨을 골랐어. 적비성이 뒤늦게 연화의 안색을 살폈고 연화는 평범한 삶을 살다 봉변을 당한 나약한 서생 연기를 완성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덜덜덜 떨었겠지. 적비성은 이연화에게 괜찮냐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어. 그저 놀라서 쫄딱 젖어 떠는 이연화를 품에 한 번 안았다가 저보다 가늘고 서늘하게 차가운 몸에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이러다 큰일나겠다는 생각이나 했겠지. 설상가상으로 비를 맞으며 파들거리는 이연화가 꺼내는 말이라는 게



아비..콜록..너무..너무 추워요.



라서, 적비성은 긴말 할 필요없이 연화를 냅다 들쳐 업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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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겠다. 일단 비가 그칠 때까지 어디서 몸을 좀 말리다가 돌아가자.





적비성은 연화를 업고 주변을 살피다 호숫가 근처 동굴을 발견해 냉큼 뛰어들어왔어. 연화를 한쪽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앉힌 적비성은 다행히도 근처에 있던 아직 젖지 않은 땔감으로 동굴 한 구석에 얼른 불을 피울 수 있었겠지. 적비성이 먼저 젖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물기를 털고 적당히 널어 말리기 시작해. 그 덕에 이연화는 젖은 옷이 들러붙어 퍽 자극적으로 보기 좋은 적비성의 몸을 꼴깍 침을 삼키며 가장 좋은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었을거야. 상의를 모두 탈의한 적비성이 연화에게 가까이 다가왔어. 연화가 다 알면서도 순진한 눈으로 적비성을 물끄러미 올려다봤고 적비성은 연화를 일으켜 이제 꽤 커져 따뜻한 불가로 부축해왔어.



옷 벗어라.
...네? 콜록...갑자기 이..이런곳에서...
옷이 마르면서 점점 더 체온을 뺏길거다. 그러니 벗어라.



연화가 창백해진 얼굴로 머뭇거리니 적비성이 연화를 돌려세워 손수 옷을 벗겨주기 시작했어. 거침없고 간결하지만 신속한 손길이 마치 조금 전 구경한 적비성의 무공과 닮아있었어. 적비성의 손이 살갗이 언뜻언뜻 훤히 비치는 속의 매듭에 닿았을 때, 연화가 차가운 손으로 적비성의 손을 붙잡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만류했어. 그럼 적비성이 허, 어이없는 소릴 냈겠지. 분명 저번에는 부끄러움이고 뭐고 제 앞에서 먼저 옷을 벗어던지며 올라타 유혹해왔으면서? 적비성은 괜한 억지를 부리며 저를 가로막는 연화의 옷을 강제로 벗겨버리려다 작게 상처난 뺨을 마주하고 움찔하며 손길을 멈췄어. 어딘가 마음 한 켠이.. 꼭 제가 다친 것처럼 아리고 따끔거리고 서러워 그대로 지나치기가 불편해서. 그래서 적비성은 연화의 옷을 모두 벗기는 대신에 금창약을 찾아와 연화를 앉혀놓고 손수 약이나 발라주고 말았을거야.



춥다면서 고집부리긴.
..읏, 그, 그래도 여긴...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적비성이 쪼그려앉은 연화의 뒤로 자리를 옮겨 허락없이 연화를 바싹 끌어 안았어. 그 덕에 천 아래로 드러나 솟은 연화의 탄력있는 등줄기부터 매끄러운 굴곡을 만들어내는 어깨까지 적비성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올 수 있었지. 연화는 온 몸에 치덕치덕 휘감긴 젖은 천 덕에 정말 이상하게도 그와 맨몸을 껴안고 닿아있을 때보다 더 빈틈없이 닿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거야. 적비성도 적비성대로 이리저리 편한 자세를 고쳐보며 연화를 더 깊숙히 안았어. 적비성의 말대로 그의 맨몸이 내뿜는 열기가 참 덥게 느껴졌어. 그리고 귓가에 닿았다 흩어지는 그의 호흡이 무척 간지럽기도 했고..



이연화.



또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한창 내리는 빗소리와 섞여들어 평소와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했어. (그게 실은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대낮에 낯선 야외에서 헐벗고 살을 맞대고 있는 상황 때문일지는 몰라도) 여튼 적비성은 어떨런지 몰라도 연화는 어느새 담백한 음식을 먹다가 도수가 꽤 있는 좋은 술을 한 모금 넘겼을 때처럼 몽롱하고 자극적인 운치에 취해 남몰래 헤롱거리고 있었지. 적비성은 그런 연화가 아직도 추위를 타고 있거나 다소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오해해 팔에 좀 더 단단히 힘을 주었어. 연화의 뺨이 복숭아빛으로 예쁘게 물들었어.



나는 아직도 네가 무공을 하지 못한다는 걸 완전히 믿을 수 없다.
....흐으응, 또 그 말씀이시네요.
네가 숨기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네가 이상이같은 고수인데 무공을 숨기고 있든, 정말 무공을 하지 못하든 전부 상관없어졌다.



적비성은 연화가 도적들을 만나 대치했던 상황을 빠르게 복기해보다 연화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푹 한숨을 쉬었어. 이연화가 함부로 발길질 당하는 것도, 멀쩡한 얼굴에 상처를 달게 된 것도 전부 다 적비성이 잠자코 지켜볼 수 없을만큼 열받는 일들 뿐이었겠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지. 이연화가 떠밀려 뒷걸음치다 절벽 아래로 뚝 떨어져버리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이후로 적비성은 그의 말처럼 사소한 건 신경쓰지 않기로 결심했어. 연화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이전엔 해 본적도 없었으나, 차라리 아예 해 본 적도 없는 게 나을뻔한 충격을 줬어. 덧붙여 연화를 가득 안고 있어도 금새 눈앞에서 사라져 잘못될 것만 같은 불안이 적비성의 심장을 쿡쿡 들쑤셨다 숨어버리길 반복했지. 마치 질 나쁜 덫에 실수로 걸려 우스운 꼴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그 망할 덫의 관리인은 심심하면 저를 뒤흔들어놓는 이연화였고, 적비성은 그걸 알면서도 어딘가 비밀스러운 이연화에게 호기심을 쏟는 일을 멈출 수 없었어.



그러니까 이연화, 혹시라도 스스로를 다치게 하지 마.



연화를 타박하던 적비성은 연화의 젖은 머리카락을 한 쪽으로 넘겨 정리해주다 단정한 흰 목덜미 한 쪽에 작게 난 점을 발견했어. 머리카락을 드리워 보이지 않던 곳에 숨겨져있던 작은 존재를 의식하고나니 왠지 쉽게 눈을 뗄 수 없었지. 적비성이 복잡한 심정으로 미간을 찡그려. 하.. 이연화가 이상이인지의 정확한 증거는 택도 없이 이연화도 모를 이연화의 음란한 구석만 하나 더 알게되다니... 연화 때문에 쌓인 심화를 달리 풀길 없던 적비성은 조금 짖궂은 마음이 되어 일부러 그 곳에 입술을 묻고 지분거리며 연화를 희롱했어. 그럼 힉, 소리를 내며 화득 몸을 굳혔던 이연화가 몸을 비틀며 적비성을 밀어냈겠지. 살갗에 금방 생긴 옅은 자국을 달고 연화가 몸을 돌려 적비성을 뾰족하게 흘겨봤어. 이연화의 뾰로통한 표정을 멍하니 보던 적비성이 그대로 도망가버리려는 연화를 당겨 서로 얼굴을 마주볼 수 있도록 바로 앉혀버렸지. 두 사람의 거리가 만족스러울만큼 가까워지자 이번엔 적비성이 고개를 기울이며 연화의 목덜미가 아닌 입술로 천천히 찾아들었어.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점점 더 세차고 씨끄럽게 변하고 있었어. 그러나 두 사람은 몇 번이나 입술이 떨어졌다 다시 포개어지며 노골적으로 깊어지는 접문에 열중하느라 그 누구도 비 오는 소리를 크게 신경쓰지 못했을거야. 정신없이 흘러들어오는 적비성의 기운에 연화가 또 밭은 숨을 학학거리며 저릿거리는 입술을 떼어냈어. 입 안 이곳저곳을 부드럽게 자극당하고 있자니 적비성을 함부로 도발한 뒤에 겪었던 수치스러운 과거들이 사르르 녹아 순간의 마음 가는대로 적비성을 조르고 싶어졌어. 연화가 적비성의 잘생긴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덧그리듯 쓰다듬다가 한 번 더 가볍게 입을 맞추고 적비성을 바라봤어. 촉촉하고 천진한 눈동자가 적비성을 담고 데구르르 굴렀어.



진짜 따라다니면서 비무하자고 안할거예요?
..상대해 줄 생각도 없으면서 묻지마라.
글쎄요...당신이 착하게 말 잘 들으면 또 모르지요.



이연화가 적비성의 몸을 아찔하게 더듬으며 훑어내렸고 적비성은 연화의 맑은 눈 너머로 불붙어 타오르기 시작한 애욕을 읽어내고 차마 할 말을 잃었어. 부끄러워했다가, 대범했다가, 어린아이처럼 순진했다가, 사기꾼처럼 약아빠졌다가, 대체 여우같은 이연화의 본모습이 몇 개인줄 모르겠어. 그럼에도 분명한 건 이연화의 모든 모습이 적비성에게 밉지않고 퍽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점이었지. 그 사이 연화의 손이 적비성의 탄탄하게 조여진 복부를 지나 아랫도리를 쓰다듬었고 적비성의 이마에 불끈 핏대가 솟아올랐어. 적비성이 침음하며 급히 정신을 가다듬었어. 적비성은 버릇없이 신난 연화의 못된 손을 떼어내고 쓸데없는 짓은 할 수도 없게 연화를 다시 몸으로 가두어 안았어.



안돼. 감기 걸려.
히잉, 그럼 비 그칠 때 까지만..? 딱 한 번만..?



그럼 몸이 달아 근질거리는 이연화가 적비성의 허벅지 위에서 귀엽게 교태를 부리며 되도않는 설득을 해보겠지. 적비성이 꾸깃하게 눈을 감은 채 이연화한테 넘어가지 않으려고 꿋꿋하게 버텨보겠지만...글쎄, 이연화도 점점 힘을 받아 저를 찔러오는 적비성의 것을 느끼며 적비성을 유혹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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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아안참 뒤 비가 그치면 전과는 사뭇 다른, 매우 상쾌해보이기까지 하는 적비성이 다리 다 풀려서 걷지도 못하는 이연화 업고 설렁설렁 연화루로 돌아오기나 했겠지 뭐 🤭





연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