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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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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는 어리둥절해. 자기가 글쎄 한 달동안 혼수상태로 누워있었다는거야. 가장 먼저 확인해본 배는 동산처럼 불러와있던게 거짓말처럼 꺼져있어. 마지막 기억이 배 속을 난자하는듯한 고통이었기에 일어나자마자 꺼진 배를 확인한 다음 눈물부터 터져나왔지. 어떡해. 내가 너무 늦었나봐. 내가 너무 늦게 정신을 차렸나봐. 어떡해. 우리 아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렇게 조심했는데 결국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내게 되다니 허탈해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마른 성대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말을 안 한 것 같이 탁하고 긁힌 목소리야.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웅크린채 꺼진 배를 감싸안고 우는데, 저를 발견한 궁인들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오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하며 달려온 궁인들이 태의를 불렀고, 원자마마께서는 무탈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다시금 안도의 눈물이 터져나왔어. 그 때즈음 전갈을 받은 황제가 헐레벌떡 뛰쳐와 저를 감싸안았고. 파르르 떨리는 턱과 뺨에 와닿는 뜨거운 액체는 믿기 어려웠지만 눈물이야. 세상에 확제의 옥루라니, 선황후의 기일 때도 본 적이 없는데.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황제가 꽉 끌어안은 탓에 눈물이 쏙 들어갈 지경이야. 푹 꺼진 배를 붙잡고 내가 미안해, 여우야 내가 미안해. 그렇게 엉엉 울다가 전갈을 받고 달려온 황제가 끌어안은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어찌나 놀랐는지 눈물이 쏙 들어가버렸지. 덜덜 떨리는 손이 뺨을 쓰다듬고, 눈가며 귓가며 목덜미를 정신없이 쓸어내리던 황제가 덥썩 껴안는 바람에 아이 얘기는 꺼내지도 못 했어. 다자고짜 황제가 끌어안는 바람에 황제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느라 혀를 살짝 씹었거든.  

너무 오래 기다렸다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는 줄 알았다고. 그 때처럼 또 나를 버려두고 갈까봐 두려웠다고. 두려움과 서러움이 뒤섞여 하얗게 질린 얼굴이 너무 낯설어. 호수에 빠졌다 깨어났을 때도 그랬던것 같은데 아마 그 때를 떠올렸나봐. 맞닿은 가슴을 너머 심장이 쿵쿵 거세게 울리는 고동소리까지 들려. 환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큰 심장소리야.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궁인들이고 황제를 따라온 태감들이며 전부 다 눈물을 찍고 있어서 얼떨떨해. 사실 눈을 좀 오래 감았다 뜬 것 같긴 해. 꿈이 엄청나게 길었으니까. 한 달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몸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손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데다가 팔도 잘 들리지 않아. 황제의 등을 쓰다듬으려다가 깨달은 사실이지. 한 달 동안 혼절해 있었다는게 정말 사실인가봐. 




뻣뻣해진 손으로 어색하게나마 적셔진 황제의 뺨을 훑어내. 척척하게 젖은 손가락 끝이 아직 믿기지 않아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잠시도 떨어지는걸 용납 못 한다는듯이 다시 숨막히게 끌어안아. 조금 전까지 저도 울고 있던 주제에 황제가 우니 괜히 같이 안도가 됐나봐.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고 사죄를 해야 하는데, 따뜻한 품에 안겨있자니 저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삐죽삐죽 새어나오지. 기나긴 꿈 끝에 간신히 제이크, 제이크, 제이크....정신 나간것처럼 제 이름을 반복해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게 황제라니 믿기지 않아. 바깥으로 튀어나온듯 거세게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아. 눈을 감으면 꿈 속에서 저를 안내했던 아기 여우가 잔상처럼 스쳐지나가. 아기 여우가 안내한 끝에는 사당 옆에 있는 황제가 있었고. 사당을 보고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상태였는지 깨달았던거지. 마냥 꿈 속에서 헤맬게 아니라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걸.

황제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선황후의 기일 전날이야. 염려가 가득한 눈을 하고서 안심이 안 된다는듯이 저를 바라보며 말하던 황제야. 저녁까지 제례가 이어질것 같으니 나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잠들가고. 그러면 금방 찾아가겠다고 그랬지. 기일인데다가 하필 또 저도 선황후와 비슷한 상태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안 좋을까 싶어서 저는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었어. 분명 그랬는데 그게 한 달 전의 일이 될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황제에겐 날벼락이었고 황후는 그저 얼떨떨하기만 하지. 




결국 그 품에 안겨서 얼마나 울었나 몰라. 아기 여우가 저를 깨우지 않았다면 잠과 같은 죽음에 가라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야. 시간 감각도 기억도 모두 사라진 곳에서 황제를 발견했을 때의 심정이란. 한동안 불러온 배 때문에 마주 끌아안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마음껏 끌어안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 설레. 사실 배가 불러오기 전엔 이렇게 안아본 적도, 안겨본 적도 없어서 어색하기만 해. 누군가의 심장소리를 이렇게 가까이 듣는 것도 처음인데 그게 무려 황제의 쿵쾅거리는 고동소리라니. 

하지만 눈물을 그치고 나니 민망해져. 정작 마음을 졸였던건 황제일텐데, 꿈에서는 황제에 대한 생각조차 나지 않았으면서 막상 눈 앞에서 보고 나니 엄청나게 그리운거야. 이상하지. 보고 있으면서도 보고싶다니 말이야. 하지만 실컷 울고 나니 쑥 꺼진 배에 대해서 궁금해져. 아직 아이 얼굴도 보지 못 했단 말이야. 그래서 황후는 조심스럽게 황제에게 아이를 보고 싶다고 말해. 그런데 어라, 황제의 반응이 이상해. 가장 기뻐해야 할 황제가 묘한 표정으로 저를 굽어보는 거야. 표정은 분명히 다정하고 저를 아끼는게 분명한데, 검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낯설어. 굳게 다물린 입은 뭔가 저에게 숨기고 있는게 있는것 같고. 

가슴이 철렁해. 혹시, 혹시 잘못됐나. 원자마마께서는 무탈하시다는 궁인의 말이 거짓말이었나. 그래서 내 눈을 피하나. 간신히 그쳤던 울음이 형상화되지 않은 공포에 먹혀들어가. 목끝까지 차오른 공포에 파르르 입술이 떨리지. 혹시, 혹시....우리 아이는요. 목구멍이 턱 막혀와. 잘 구부러지지도 않는 손으로 감히 황제의 팔을 붙잡고 거의 말해달라 애원을 했지. 황후가 또다시 눈물을 후두둑 떨구면 황제는 서둘러 황후를 끌어안고 달랠거야. 그대가 생각한 그런게 아니고 아이는 무사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지. 하지만 이미 움트기 시작한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아.

 








불안해하는 황후에게 결국 황제는 아이를 안겨줬어. 받아든 황후는 약간 황홀에 가까운 얼굴로 강보에 싸인 아이를 바라보지. 그런데 문제가 있어. 아이를 안아들며 이름이 뭐냐 묻는데 황제가 대답이 없는거야.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짓고 싶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상적으로 낳을거라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였고 황후는 자신이 한 달이나 혼절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 했으니 당연히 이름이 있을걸 생각했던거야. 그런데 이름을 아직 안 지었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 이름이 없대. 놀란 황후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어보지. 혹시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장애를 갖고 태어나 금방 죽을것 같은 아이에겐 이름을 안 지어주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야. 다행이도 황제가 화들짝 놀라며 그건 아니래. 아무 문제 없고, 건강하게 태어났대. 

발간 뺨과 다갈색 곱슬머리 그리고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 그 모든 것이 황제와 꼭 닮았어.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을까. 공주도 아니고 황자인데. 제 눈으로 봐도 아픈 곳이 없는 건강한 아이야. 아무리 황제라도 원자의 이름을 한 달이나 안 짓는게 가능한 일일까. 혹시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건 아닐까. 뭔가를 숨기는듯한 황제의 모습에 자꾸 불안해져.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을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 해달라고 하고 싶은데 차마 못 묻겠는거야. 혹시나 부정의 대답이 돌아올까봐, 그래서 황제가 이렇게 대답하길 저어할까봐. 조금전까지 세상 서럽다는듯이 울었던 황제가 슬금슬금 제 눈을 피하는게 마음에 걸려. 









궁인들이 부른 태의가 들이닥쳐 한바탕 눈물을 쏟고 돌아간 참이라 마치 태풍이 지나간듯해. 태의 말대로 오래 누워있었던 탓인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 탓인지 어지러워. 살짝 이는 현기증에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지만, 바깥 공기를 맡고 싶은걸 어떡해. 누워있는 동안 시간이 흐른탓에 겨울이 이제 거의 끝난것 같아. 황제가 호들갑을 떨며 피운 화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손 끝에 느껴지는 온도가 이제는 매서운 추위가 지나갔다는걸 말해주고 있었지.

바깥이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뻣뻣한 몸을 좀 움직이고 싶어 일어나려는데, 황제가 만류해. 만류하다못해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제 허벅다리를 붙잡지. 황제가 침상 아래에 무릎을 꿇자 황후는 화들짝 놀라며 만류해. 황급히 일어나려고 하는데 황제가 슬픈 얼굴로 만류하며 일어나지 못 하도록 다리를 끌어안아. 하지만 그렇다고 황제가 무릎을 꿇는데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이상하잖아. 황제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나는데, 일어나기는커녕 발바닥에 힘을 주자마자 주저앉아버렸어. 이게 무슨 일이지? 황후가 살짝 입을 벌린채 멀거니 제 다리를 내려다보았어. 바싹 여위기는 했지만 그래도 걷는데는 문제가 없을줄 알았어. 어딘가 다친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문제가 전혀 없어보였는데.

황후는 황제에게 설명과 이해를 요구하는 눈빛을 빛내며 돌아봤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황제에게서 돌아오지. 한 달동안 누워만 있느라 근육이 다 빠진데다가 굳어서 어차피 걷기 힘든데다가, 신경이 손상됐대. 황망한 얼굴로 다리와 황제를 바라보니 황제가 슬픈 얼굴로 다리를 어루만져. 빛을 보지 못해 새하얀 발목부터 천천히 타고 올라간 손이 무릎을 너머 허벅지 중간쯤에서 멈추지. 황제의 한 손은 황후의 무릎을 매만지고 한 손은 황후의 뺨을 어루만졌어. 발견이 늦어서 손을 쓸 수 없었다고. 지금은 오래 누워있어서 근육이 다 빠진데다가 뻣뻣해서 더 걷기 힘들지만, 걷는 연습을 하면 많이 나아질 수 있대. 태의 말에 의하면 그랬지. 



아까 태의가 한 말에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생각이 얼굴로 드러났을까? 황제가 슬픈 얼굴로 덧붙여. 자신이 직접 말 하는게 나에겐 덜 충격일것 같아서 자신이 직접 말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대. 안 그래도 막 깨어난 상태라 모든것이 혼란스러울텐데 너무 많은 정보가 일시에 흘러들어오면 더 혼란스러울까봐 그랬다는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발을 내딛자마자 고꾸라진탓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발가락도 움직이고 발목도 분명 돌릴 수 있는데, 걸으려고 발을 바닥에 낻딛자마자 욱씬거리는 통증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왔지. 다신 걷지 못 하는건 아닐까. 혹시 이 사람 옆에서 평생 나는 걸을 수 없는건 아닐까. 어쩌면 당연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몰려와. 아이가 걷는데 나는 걷지 못 하면 어떡하지. 아이가 걸음마를 하는 동안에도 걷지 못 하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밀려들어오는 바람에 목이 메어오는데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꺼풀이 이제 당길 지경이라 울 수도 없어. 

내가 무심했어. 잠 들기 전의 불길함을 무시하면 안 됐었던건데. 싸르르 아파오는 아랫배는 그냥 선황후의 기일이라 신경이 쓰여서 그러려니 하면 안 됐었던건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아이까지 위험해질 뻔 했잖아. 그리고 또 황제가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겪게 할 뻔 했고. 결과적으로는 한 달이나 혼절해있는 바람에 아이에게 이름도 지어주지 못 하고, 걱정이란 걱정은 다 끼치고 결과적으로는 다리도 절게 됐지. 

여태까지 황제가 우는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충격인지 몰라. 한 달 동안 눈을 뜨지 못 했다는 것도,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못 했다는 것도 다 미안하지만 무엇보다도 황후는 황제가 자책을 하는게 가장 마음에 걸렸어. 자신이 조금만 일찍 왔었어도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면서 오열하는 황제를 어떻게 탓할수 있겠어. 굳이 따지자면 제 책임도 커. 콕콕 쑤시는 아랫배를 선황후의 기일이라 신경이 쓰여서 그런거겠거니 무시했기 때문이야. 그 때 태의를 불렀다면, 그래서 태의의 참관 하에 아이를 낳았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거야. 한달동안 혼절해서 심려를 끼치지도 않았을거고. 그러니 이건 온전히 누군가의 탓을 할 수도 없는 일이야. 




하지만 황제의 생각은 달랐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느라고 평소보다 사당에 오래 머물렀던게 황제는 마음에 걸렸지. 쓸데없이 오래 머물지만 않았어도 황후를 좀 더 일찍 발견했을텐데. 거기다 태의에게 미리 말을 듣긴 했지만 정말로 걷지 못 하고 쓰러지는 황후를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아. 걷는 훈련을 하면 걸을 수 있다니? 그럼 완벽하게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가지 못 한단 말인가. 노한 음성이 태의를 나무랐지만 태의는 제 목을 자른다고 하셔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어. 신의 머리가 잘려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솔직히 황후마마께서 눈을 뜨신다는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이야. 하긴 애초에 저가 황후를 발견했을 때조차 시신이라 착각할 정도로 싸늘했거든. 흰침의는 시뻘건 피로 낭자했고. 두터운 솜이불이 그나마 체온을 붙들기는 했지만 역부족이었을거고.


내 욕심이 과한걸까. 황후가 눈을 뜨지 않을 때는 눈만 뜨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제는 눈을 뜨는걸 보니까 더 많은걸 바라게 돼. 황후가 눈을 뜨고 저를 알아보고 말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설령 기억을 잃고 백치가 되더라도 눈만 뜨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손을 움직여 아이를 안아보고 저를 마주안아 주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 하고 더 많은걸 바라게 되나봐. 호수에 빠졌을 때처럼 싸늘한 체온은 아니지만 죽은 것처럼 잠만 자고 일어나지 않을 때, 미지근한 온도의 손을 붙잡고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랬지. 여태 내가 황후의 감정을 무시하고 모른척 했던게 이런 식으로 돌아오나봐. 자책감에 스스로 채찍질했지.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주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아직 읽어줘야 할 편지가 한참이나 남았는데 이젠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떠나려하다니 나중엔 숫제 분노까지 몰려왔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같은 날에 또 황후를 잃게 만들 수 있냔 말이야. 
 

천만다행으로 당장 황후를 잃지는 않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어. 하지만 모순적으로 꿈에서는 그리도 귀엽던 아기여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원자가 태어났을 때는 정작 황제는 쳐다보지도 않았어. 비정한 아비라 황후가 실망한다해도 어쩔 수 없어. 정말로 이 아이가 아니었으면 황후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거라는 생각만 끊임없이 되풀이 됐으니까. 











아이 이름은 알버트로 정하기로 했어. 걱정과 달리 한 달 정도 일찍 태어난것 치고 알버트는 아주 건강했지. 황실의 첫 후계자이자 적자가 태어나 모두가 기뻐했지만 단 한 사람, 황제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어. 건강한 적자가 태어났다한들 황후가 다리 한쪽을 절게 생겼는데 그게 지금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야. 정작 황후는 아이가 건강하다며 본인은 기뻐했지만.
자신의 상태에 놀라고 위축되긴 했지만 금세 씩씩해진 황후는 태의와 궁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걷는 연습을 시작했어.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까지는 낫고 싶다는 황후의 의지였지. 목발을 짚고서도 해맑게 웃는 황후를 보면서 대견해. 저라면 벌써 이 나이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며 절망할 것 같은데, 저보다 훨씬 강한것 같아. 저에게 총애를 기대하지 말란 말을 듣고도 계속해서 저를 좋아할만큼. 희망 한 점 없었을 시절부터 저를 좋아해왔던 황후야. 톰의 죽음에 몇 년이나 머무르면서 헤어나오지 못 했던 자신과 달리, 황후는 결국 자신이 본인을 좋아하게 만들었잖아. 저라면 첫날밤에 큰 상처를 입고 최대한 아는 척도 안 했을지 모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후는 꾸준히 노력을 했지. 


황후는 씩씩하게 재활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황제는 내팽개쳐놓았던 정무를 다시 돌보기 시작했어.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지. 황실에 귀한 적자가 태어난데다가 어쨋든간에 황후도 무사히 눈을 떴잖아. 원자는 한 달이나 황후 얼굴도 보지 못 했으면서 본능적으로 느끼는게 있는지, 유독 황후 곁으로 가면 순해졌고 말이야. 그러니 황제는 구태여 지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황후에게 미주알 고주알 말 할 생각이 없어. 지난 한 달동안 자신이 원자를 품에 안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 말이야. 





황궁 사람들은 황제의 기분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라, 원자에 대한 황제의 한달간의 냉대는 당연히 비밀이 되었어. 굳이 황제가 함구하라 짚어주지 않아도 당연한 비밀이 되었지. 황후가 원자를 품에 안겨줬을 때 어색하게 받아드는 것을 그저 아이가 낯설어서 그런거라 여겼어. 보통 유모가 돌보지 황제가 직접 돌보는 일은 없을테니까. 황후가 불편한 다리로 절룩거리며 유모가 안아든 아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황제는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았지. 황후는 너 때문에 내 다리가 이렇게 됐다 같은 원망 따윈 하지도 않고 그저 사랑스럽다는듯이 아이를 받아들어. 마치 사랑을 넘어 경탄에 가까운 표정이라 없던 심술도 샘솟아. 혹시 나를 볼 때 이런 표정이었을까? 여태 황후의 얼굴을 그렇게 많이 봤는데도 이런 표정은 처음인것 같아. 아이에게 질투하는 아비라니. 스스로 자조하면서도 어쩔 수 없어. 이 표정은, 이 사랑스러운 표정은 나만의 것이고 싶으니까. 

영문을 모른채 유모에게 아이를 넘겨준 황후의 턱을 붙들고 입을 맞춰. 여태 배가 불러 제대로 끌어안지 못 하고 겨우 조심스럽게 가벼운 입맞춤이나 하다가, 드디어 이제서야 제대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됐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었던건지 채 발화되지 못한 발음은 그냥 입 안으로 삼켜져버려. 갈 길을 찾지 못 하고 허공에서 배회하는 손을 붙들어다가 자연스럽게 제 목에다 둘러. 발긋해진 뺨과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달큰한 금목서 향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웠지. 한 달간 내내 맡지 못 했던 향이거든. 뺨을 마주대고 어깨가 맞닿도록 밀착한채 달아나려는 혀를 옭아매. 분명 향만 금목서의 향이 날텐데 입 안도 금목서를 한움큼 씹어먹은양 달큰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엉뚱한 상상이 피어올라. 



아직 몸이 완전히 다 낫지 않은 사람이라 조심이 대해야 하는데,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나 금세 붉어진 뺨이 사랑스러워서 참기 힘들어. 불편한 다리에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저에게 기대게끔 몸을 틀어 당긴채 입맞춤을 이어가. 달큰한 향에 마치 취하기라도 한듯이 정신없이 입술을 가르고 들어갔지. 저보다 한참이나 입 안이 작은듯 혀로 목구멍 근처의 점막을 간지럽히면 황후는 금방 숨이 넘어갈듯이 굴곤 했지. 도돌도돌한 입천장이나 입 안 깊숙한 곳을 간질여대면 어깨를 움츠리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어댔고. 

  하지만 체력이 바닥의 바닥을 친 황후는 황제의 거친 입맞춤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손을 파닥거리며 밀어내. 보는 눈이 많다며 살짝 밀어내는 손짓도 어쩐지 교태스럽게 느껴져. 보는 눈이 많다니. 이미 옛날 옛적에 다 고개를 숙인채 종종걸음을로 물러난지가 언제인데. 고개를 모로 돌린채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것도, 분명 체력이 바닥난 사람에게는 버거운 입맞춤이라 그랬을 터인데. 한 번도 황후가 그렇게 느껴진 적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야. 한달 혼절해 있다 일어난 어린 황후가 갑자기 변했을리는 없고 아무래도 제 머리가 이상졌나봐.

하지만 이런걸 티 낼 수는 없으니까. 본의 아니게 황후에게 숨기는 것들이 많아졌지. 매일같이 찾아오는 악몽을 모른척 태연하게 넘기는 것도 할 줄 알게 되었고.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황후는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새벽에는 약에 취해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들었거든. 악몽을 꾸다 일어났을 때 황후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황제는 거의 잠을 자지 못 하는걸 감수하고서라도 황후의 옆을 고집했어. 그러니 눈을 뜨고 있을 때만이라도 맨정신에 황후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을 수 밖에.







루스터행맨

2024.02.17 19:2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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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선설리
[Code: ac96]
2024.02.17 19:35
ㅇㅇ
모바일
아진짜미쳤다.... 그간 제이크가 마음고생하던거에서 루황제 시점이 더 많이 부각되는데 진짜 서사 미쳤네....
[Code: ac96]
2024.02.17 19:37
ㅇㅇ
모바일
진짜 대박이라 말이 안나오는데 어떻게 이렇게 감정과 행동들이 이해안되는거 없이 완벽하지 두려워하고 조금은 비겁한 모습까지 진짜 살아숨쉬는 인물같다
[Code: ac96]
2024.02.17 19: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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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감동이 심함 이런 무순이 있다니 오늘부터 한글자 한글자 뜯어먹으면서 버텨야지 진짜 루행이 둘 다 마음 놓고 행복해지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Code: ac96]
2024.02.17 19:38
ㅇㅇ
깨어나서 다행이다!ㅠㅠㅠㅠㅠ물론 황후가 많이 쇠약해져 있고 걷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누구 하나 잃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어서 안심이야...한 달간 냉대당하고 이름도 없이 황제에게 방치된 아기여우에게는 안쓰러운 일이지만ㅠㅠㅠㅠ이제 이름도 갖고 사랑도 받으며 자랄 일만 남았으니 다행인걸까? 황제가 아주 조금 질투하기는 해도 괜찮겠지!ㅠㅠㅠㅠㅠ
[Code: c3a4]
2024.02.17 19: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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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황후 아무쪼록 건강해졌으면ㅠㅠㅠㅠㅠㅠㅠ알버트도 루황제도 황후도 같이 행복해져라ㅠㅠㅠ
[Code: a713]
2024.02.17 20: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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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 뭔가 속이 문드러진 것 같은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직 알버트를 아이보다는 황후를 죽게할 뻔한 존재 정도로밖에 못 보는 것 같고ㅠㅠㅠㅠㅠㅠㅠㅠ 근데 그 마음이 너무 이해 가고 안타까움ㅠㅠㅠㅠㅠㅠ 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물만두 건강하게 재활하고 루황제 마음 보듬어주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bb16]
2024.02.17 20: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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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리이이이이!!!!!!!!!
[Code: 1f10]
2024.02.17 21: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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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다리고 애지중지하던 아기여우가 드디어 태어났는데도 한번도 안아보지않고 되려 질투하다니.. 진짜 예전의 루황제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제이크에 대한 사랑이 정말 신실하다는걸 여실히 느낌ㅠㅠㅠㅠㅠ 제이크 이제 한쪽 다리는 영영 제대로 쓸 수 없다는데도 크게 좌절하지않고 아기여우랑 발맞춰걸으려 열심히 재활하는거 정말 강한 사람맞는거같음.. 제이크를 사랑하기전 루황제의 겉치레뿐인 다정과 외면에 상처받을때는 약하게 느껴졌었는데 알버트를 위해서 꿋꿋하게 노력하는걸 보니까 제이크의 단단한 면모가 보이는거같아 너무 좋당.. 지금은 루황제도 불안하고 위태위태하지만 강한 제이크의 의지와 사랑, 그리고 알버트의 성장이 다시 루황제를 일으키고 치료하고 위로해줄거같음... ㅎㅑ진짜 센세 내 인생 무순임ㅠㅠㅠㅠ 나랑 결혼해빨리ㅠㅠㅠㅠㅠ
[Code: 211e]
2024.02.17 21: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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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만두 드디어 깨어났네ㅠㅠ 루황제 물만두 알버트 다 행복하자ㅠㅠㅠㅠㅜㅜㅜㅜㅜㅠ
[Code: 6cdf]
2024.02.1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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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루황제 상태가 불안불안하다 어째ㅠㅠ
[Code: 6cdf]
2024.02.17 21:32
ㅇㅇ
이제 행복할 일만 남은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8d62]
2024.02.18 00: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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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황제가 알버트 대하는 내막 알고 제이크 또 상처받거나 자책하면 어쩌지 근데 또 그사람이 매일같이 내 옆에서 악몽 꾸는 걸 또 알면? ㅠㅠㅠㅠ 사랑하는데 고비가 많네 그래도 지금 재활하는 제이크보면 단단하게 이겨낼 것 같음ㅠㅠ
[Code: 4711]
2024.02.18 03: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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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서 다행이다ㅠㅠㅠ 황제는 매일 악몽 꾸고 말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강한 물만두가 옆에 있으니까 행복할 수 있겠지 애기랑 알콩달콩 살아야돼ㅠㅠㅠ 근데 다리가 이럴 수 있는거냐고 속상ㅠㅠㅠㅠ
[Code: 301f]
2024.02.18 17: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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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우리 만두 ㅠㅠ 만두가 고난이 많네 ㅜㅜ
[Code: 34ff]
2024.02.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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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몸이 제일 고생한 황후는 아이러니하게도 혼절해 있어서 그 지옥같은 시간을 모르는 게 다행인지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루황제 이해한다ㅠㅠㅠㅠㅠ 톰 때도 그랬는데 완전 더블 트라우마 ㄷㄷ 이제 왠지 황후 소생 아기씨는 더 보기 어려울 거 같지 않냐 하 개맛도리야ㅠㅠㅠㅠㅠㅠ
[Code: f2ac]
2024.02.25 10: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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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보고 다시 복습하러 왔는데 한달이나 제이크 저 상태로 기약없이 누워있고 깨어나고나서도 다리... 안좋아졌다는 말까지 전해야했을 루황제 생각하면 알버트한테 정을 줄 여유가 없는게 이해가기도 하면서ㅠㅠㅠㅠ 그냥 마음 아프다
[Code: cc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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