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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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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는 여름에 빠졌던 똑같은 호수에 빠졌어. 어떻게 아냐면 글쎄, 본능이라고 해야할까. 몸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지. 물 속인데도 숨이 잘 쉬어져서 본능적으로 꿈인걸 알았지만 말이야. 물 온도는 차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고 그냥 딱 살갗의 온도같아. 저번에 빠졌을 때는 여름인데도 추웠던 것과 대비되지. 겨울 호수에 빠졌으면 얼음장 같아야 하는데 꿈이라서 그런가. 꿈이라 편리하네. 그러고보면 이 호수와 참 인연이 깊다 싶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몸에 추라도 메단것마냥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어. 숨도 쉴 수 있겠다, 수온도 적당하겠다 이대로 좀 쉬다가 올라갈까 망설일 때, 풍덩- 소리와 함께 아기 여우가 뛰어들었어. 아직 한참 어린 새끼라 털 색깔도 흙색깔과 비슷할만큼 작은 아기 여우야. 수영을 잘 할 줄 모르는건지, 아니면 할 줄 아는데 다리가 짧아 헤엄을 치지 못 하는건지 바둥거리면서도 저에게 다가오려 애쓰고 있었지. 이렇게 어린 여우가 어쩌다가 물에 빠졌을까. 이상하지. 숨은 쉴 수 있는데 몸은 가라앉다니. 보이지 않는 실에 손발이 묶이기라도 한듯이 꼼짝도 할 수 없었어. 


버둥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저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여우가 너무 가여워서 팔을 내밀어. 숨은 쉴 수 있을까? 자신도 숨을 쉴 수 있으니 이 작은 여우도 숨을 쉴 수 있는건지 몰라. 꿈인걸 알면서도 바둥거리는게 가여워서 끌어안아. 뭍으로 올라가야 편할텐데 왜 저에게 올까. 황후는 제 두 손바닥을 겨우 넘는 작디 작은 여우를 소중하게 끌어안았어. 춥지는 않으려나. 다행이 물온도가 딱 적당해서 춥지는 않을것 같은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기 여우에겐 추울수 있겠다 싶어. 물 속에서 안아줘봐야 얼마나 따뜻하겠냐만은 그래도 끌어안고 품에 꼭 안아.
그러면 저에게 안긴게 기분 좋은지 작게 울지. 여우가 우는걸 처음봐서 도대체 뭐라고 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애애앵 같은 소리를 내며 제법 야무지게 제 어깨에 앞발을 올려놓고는 가슴에 폭 파묻혀서 자리를 잡지. 크기가 너무 작아 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아서 황후는 어정쩡하게 팔을 들어올려 엉덩이와 허리가 구분도 가지않을만큼 작은 여우를 쓰다듬었어. 얼른 물 밖으로 나가야 할텐데. 딱 봐도 아직 어미 젖을 먹을 때인데, 이렇게 어린데 어쩌다가 물에 빠졌을까 싶어. 그러고보면 여우는 봄에 새끼를 낳지 않나? 겨울에 이렇게 새끼 여우가 돌아다니나? 

고운 하얀 모래의 호수 밑바닥에 누운채로 황후는 아기 여우를 끌어안았어. 아기 여우는 금세 잠이 든듯 가만히 제 배위에 꼬리를 말고 누웠지. 몸집이 너무 작아 꼬리도 짧은 탓에 잘 말리지 않았지만. 혹시나 추울까봐 제 손으로 살살 쓰다듬어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얼른 물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꿈인걸 자각해서 그런지 별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 묘하게 나른하고 졸린 것도 그렇고.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어버리고 싶어. 



웃기지. 자기가 먼저 잠들어놓고서는 이제 내가 잠들려고 하니까 막 깨우네. 작아도 저도 여우라고 쌀알같은 발톱으로 가슴팍을 박박 긁어대니 그리 아프지는 않아도 신경이 거슬려. 그래도 제법 날카로워서 옷감이 찢어질정도는 아니지만 계속 이렇게 박박 긁어대면 헤질지도 몰라. 마침 황제가 하사한 비단으로 만든 옷이라 나름 소중하게 아끼던 옷이라 황후는 아기 여우를 떼어냈어. 처음 보는 여우인데도 어쩐지 친근하지. 씁!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자 제 잘못을 알기라도 한듯이 끼잉- 소리를 내며 품에서 버둥거리기 시작하자. 어딘가 불편한가 싶어 살짝 풀어주면 세 손가락을 아프지 않게 살짝 깨물어. 그다지 아프지는 않지만 얌전하다가 갑자기 왜 이럴까 싶어서 가만히 바라보면 마치 저를 끌어당기고 싶은듯 손가락을 물고 앞발을 버둥거리며 헤엄을 치지. 체구 차이가 엄청난 탓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고. 

졸음이 쏟아져서 그런건지 묘하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호수의 물이 기분 좋아서 눈을 감고 있자니 잠 들지 말라는듯이 아기 여우가 작은 발로 뺨을 톡톡 내리치지. 그다지 아프지도 않고 하는 짓이 귀여워서 내버려뒀더니 두드리는 힘이 더 강해져. 쌀알같긴 하지만 그래도 저도 중형 맹수 티를 내는지 발톱이 제법 날카로웠거든. 앞발로 콩 하고 내리치는 정도지만 묘하게 따가워서 손을 내저어 막았어. 그런데도 앞발질은 계속 반복돼.

간신히 눈을 뜨면 아기 여우가 입을 오물거리며 뭐라고 말해. 이런, 아가야. 네가 그렇게 말을 해도 나는 못 알아듣는데. 안타까워진 황후가 저를 이끌려고 용을 쓰는 아기여우를 끌어안았어. 왜 힘들게 그래. 응? 위로 올라가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황후도 노력하지 않은건 아니야. 아까전부터 몸이 점점 납덩이마냥 무거워지고 있었거든. 손에 추라도 매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워서 여우를 쓰다듬기도 힘들 지경이야. 제멋대로 안 되자 아기 여우가 구슬프게 울지. 제 소맷자락을 물고 끌려다가 실패한 아기여우가 다가와 제 뺨을 날름 날름 훑어. 엄지손톱만한 작은 혀가 볼을 간지럽히는게 간지러워서 웃는데, 여우가 귀에다 대고 속삭여. 제이크- 하고.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황제의 목소리야.



그 순간 물에서 끌어올려진 것처럼 황후는 헐떡였어. 꿈에서 현실로 끌어올려진 순간이야.













황궁은 다시 한 번 발칵 뒤집혔어. 하필 그것도 선황후의 기일날에 예정보다 이른 황후이 출산이라니. 황제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거야. 황제도 날벼락이었지. 제례를 마치고 돌아와 잠든 황후의 뺨에 입을 맞추는데, 몸이 너무 차가운거야. 이상해서 이불을 들춰보니 이불 안은 온통 피바다였고. 

황실 법도 어쩌고 저쩌고. 그 때도 그놈의 법도 지키느라 산실에 들어가지도 못 했어. 물론 음인이 출산할 때 양인이 들어가보는게 오히려 악영향을 끼친다는건 알아. 불안에 날뛰는 양인은 향 조절을 제대로 못 하거든. 혹시라도 황후에게 영향을 끼치면 안 되기 때문에 태의며 산실청에 배속된 이들 모두 평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황제도 그걸 알아서 들어가면 안 된다며 저를 말리는 이들을 차마 뿌리치지 못 하고 발을 동동 굴렀지. 사당에서 돌아와 먼저 잠든 황후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히 이불 속으로 들어가다가 싸늘하게 식은 황후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태의의 처방에 따라 무려 황제가 내쳐졌지. 얼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얼마나 됐다고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나.  눈앞이 아찔해져 그만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호흡을 골랐어. 황후가 살려달라고 했어. 너무 아프다고, 살려달라고.  



이렇게 될까봐 두려웠던건데. 가슴 언저리에 돌이라도 얹어놓은것마냥 묵직하던게 이럴까봐 그랬던건데, 해맑게 웃음며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기대하는 얼굴에 차마 초를 치지 못 하고 불안을 삼켰던건데. 두 눈을 질끈 감으면 떠오르는건 흰 침의를 잔뜩 적신 붉은 피야.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 똑같은 날에. 

극도의 불안감에 황제는 덜덜 떨리는 제 손을 쳐다봐. 잠들어있는줄 알았던 황후는 사실 혼절해있던거였고, 등불을 가까이 대 비춰보니 축축한 것은 모두 피였지. 멍청이같이 그걸 꼭 확인했어야 했나봐. 혼절한 황후를 흔들어 깨우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 절망에 가득차 품에 껴안고 보듬느라 앞섭이며 손에 온통 피칠갑이야.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징그러워 미친듯이 닦아내는데 잘 지워지지도 않지. 마른 피가 굳어버린거야. 그나마 살짝 마른 피는 번져서 더욱 살갗 위를 붉게 만들 뿐이지. 당장 이 시뻘건 피를 닦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벅벅 문지를 뿐,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야 한다는 최소한의 상식조차 당황한 황제에게는 떠올리기 힘들었어. 보다못한 태감이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와 닦아냈지. 

그동안 황제는 멍하니 앉아 허공을 바라봐. 때때로 멈추었던 비명이 가느다랗게 침실 밖으로 흘러나올 때면 두 손으로 귀를 닫고 쪼그려 앉은채 바들바들 떨었지. 비명을 지를 힘도 없을까봐 차라리 비명이 들리는 쪽이 다행인걸까 생각하니 참담해. 비명의 유무로 황후의 죽음을 판가름 한다는게 얼마나 모순적이야. 비명이 끊길라치면 저들도 안달이 났는지 안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리고 애타게 황후를 불러. 정신을 놓으시면 안 된다고. 복도에 주저 앉은 황제는 체면은 나몰라라 하고 철푸덕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었어. 




톰도 그랬어. 아이를 살려달라고 그렇게 말했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톰의 부탁이었어. 마지막인걸 직감했는지 제 손을 꼭 붙들고느 끊어질듯한 목소리로 말했지. 자신은 괜찮으니 아이를 살려달라고. 제 명령을 기다리던 태의는 황후와 저를 번갈아보며 분부를 기다리고 있었고, 황후의 뻔하디 뻔한 부탁에 망설였지. 그 찰나의 망설임이 톰의 삶과 죽음을 가를줄 알았다면 망설이지 않았을텐데. 그 때는 미처 몰랐지. 그게 톰의 유언이자 마지막 말이 될거라는걸. 결정을 못 내려서 망설이는 저를 태의가 밀어냈고 그게 톰의 마지막이었지.  

바보같이 왜 망설였을까. 망설이지 말걸.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었대도 그렇지 멍청하게 망설이지만 않았다면, 아이 따위는 상관 없으니 황후부터 살리라고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망설인 덕분에 황제는 사랑하는 사람에 더해 아이까지 잃었어. 사산되어 세상 빛 한 번 받지 못 하고 이름도 받지 못 한 톰과 저의 아이. 모두 자신 탓이야. 망설이지만 않았어도 적어도 한 명은 구할 수 있었을텐데. 

몇 년전과 똑같은 날에, 똑같은 얼굴의 사람이 똑같은 이유로 고통받고 있다는 잔인한 사실에 눈 앞이 아찔햊혀. 하필 날씨도 꼭 그 날 같아. 지금처럼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거든.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을것처럼 끝도 없이 내리고 있었지. 상흔처럼 남아버린 그 날의 아픈 추억에 다시 새살이 돋는 일은 없었어. 제이크를 만나기 전까지. 


뭐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좋을텐데.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황제를 가장 괴롭게 했어. 극도로 긴장한 황제 또한 혼절하고 말았지.












온통 새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어. 이젠 너무 익숙하다못해 지긋지긋한 꿈이 또다시 반복되고 있었지. 온 세상을 다 파묻어버릴 것처럼 굵은 눈송이가 끝도 없이 내리는 날, 톰을 묻었어. 수없이 반복된 꿈 덕분에 이제 눈을 감아도 다음 단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어. 황제는 멀리서 자신이 관 위에 꽃을 올리고 있는걸 바라보았어. 꿈이 끝날 때까지 깨지 않으리라는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거든. 

톰을 잃은건 모두 제 탓이야. 눈물이 다 메말라버렸을까, 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아. 제 몸이 투명하게 투과되는 이 세상에서는 관조차 쓰다듬을 수 없어. 그럴 자격조차 없다는걸까. 어느새 동그란 봉분이 완성되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도 황제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 하고 서있었어. 과거의 자신마저 태감들에게 부축받아 실려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무덤 앞에 덩그러니 서 있었지.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라. 눈발이 날리는걸 헤치고 그 뒤를 힘겹게 따라오는 작은 여우가 있었지. 몇년간 꿈은 수없이 똑같이 되풀이 됐기 때문에 황제는 바로 알아차렸어. 원래라면 이러다가 봉분을 파헤쳐야 하거든. 흙에 손이 닿지 못 하고 그저 그대로 통과하여 흙조차 잡을 수 없는 몸으로,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동이 터오고 아침이 와서 꿈이 깰 때까지 그러곤 했어. 흙은 잡지 못 하면서 추위는 느끼다니 웃긴 일이지. 손이 곱아 붉게 물들어. 꿈이라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추운건 어쩔 수 없어. 


이번에도 그러겠거니 생각했는데. 저를 말리기라도 하듯이 제 소맷자락을 물고는 낑낑거리며 잡아 당기지. 제 발만큼이나 작으면서 말이야. 본래의 털 색깔인 주황빛도 띄지 못 할만큼 아직 작고 어린 주제에. 다칠까봐 황제는 아기 여우를 밀어내려다가 말았어. 어차피 또 투과하고 말텐데. 그래도 여태껏 꿈에서 다른 누군가가 나온적이 없었던지라 신기한 황제는 신기했지. 보통은 모든게 투과되서 잡을 수가 없는데 이 여우는 제 소맷자락을 잡아 당기네. 혹시나 쓰다듬을 수 있을까? 시험삼아 여우를 만져보는데 보드라운 털과 함께 따뜻한 체온이 느껴저. 

신기한 일이야.  보통 꿈은 늘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반복됐거든. 몇 년을 그랬어. 관에 꽃을 올리고 모두가 돌아간 황후의 무덤 앞에서 불가능한 것임을 알면서도 봉분을 파헤치다가 지치면 털썩 드러누워서 울기를 반복하는 것. 그게 꿈의 주된 내용이었거든.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꿈이 달라졌어. 못 보던 작은 여우가 나타난거야. 

딱 봐도 길 잃은 아기 여우인데, 혹시 어미가 나타나지 않으려나. 사람의 냄새가 묻으면 피한다는 말을 들은것 같아 황제는 마음껏 새끼 여우를 귀여워해주지도 못 했어. 혹시나 근처에 어미 여우가 있으면 겁을 먹고 나타나지 않을까봐 훠이훠이 손을 내밀어 내젓는데, 아랑곳 않고는 계속해서 요리조리 피하며 저에게 다가오려고 하지. 할 수 없이 황제는 봉분을 파헤치는걸 그만두고 아기 여우를 끌어안어. 추워서 안아달라고 그런걸까 싶어서 안아줬는데, 앞발로 가슴팍을 박박 긁어대는걸 보면 꼭 그런것 같지는 않고. 자꾸 손가락을 깨물고 잡아당기는걸 보면 어딘가로 저를 데려가려고 하는 모양이야. 하지만 황제는 이 꿈이 아침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걸 경험적으로 알거든. 



이렇게나 작은데 이 날씨에 그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얼어 죽고 말거야. 가슴에 품어주려고 하면 엄지만한 발톱을 세워서 박박 긁어대지. 아픈건 아니지만 성가셔진 황제가 어허, 쓰읍- 달래며 엉덩이를 톡톡 두들기는데도 변함이 없어. 배가 고파서 이러나. 어쩌지, 먹을거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온 세상을 덮어버릴것처럼 쏟아지는 눈 속에서 황제는 혀를 찼어. 꿈인걸 아는데도 내버려둘 수가 없어. 제 손도 이렇게 시려운데 얼어죽으면 어떡해. 다 자란 여우라면 털이 풍성해서 오히려 저보다 체온이 따뜻할테지만 아직 민들레 홀씨마냥 듬성 듬성 난 솜털로는 금방 얼어죽고 말거야. 차라리 꿈이 빨리 깼으면 좋으련만. 그 동안에는 꿈에서 깨기 싫었는데 꿈을 꾼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얼른 꿈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꾸 품에서 버둥거리기에 가고 싶은 곳이 있나 싶어서 내려주니 토도독, 눈밭 위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며 어디론가 향해. 톰의 무덤과 정반대 방향이라 황제는 마음에 거슬리지. 불러줄 이름도 없어 여우야! 외치며 따라가. 저가 따라오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토도독 발걸음을 옮기지만 황제에게 금방 잡히지. 폴짝폴짝 뛰어가봤자 다리 절반이 눈밭에 파묻히는데 금방 따라잡힐 수 밖에. 

처음 보는 여우인데도 왜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까 몰라. 눈이 묻어 솜털이 젖어 추운것인지 파르르 떨고는 끼잉...작게 우는데 안타까워서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사실 너무 작아서 머리인지 등인지 허리인지 구분도 가지 않지만. 기분이 좋아졌는지 날름날름 제 손가락을 핥고는 살짝 깨물어. 아프지는 않지만 깜짝 놀랄 정도는 되어서 황제는 저도 모르게 안았던 여우를 놓쳐버려. 이 추운날에 털도 눈에 다 젖어서는 어딜 가는걸까. 걱정이 된 황제는 저도 모르게 무덤을 등지고 여우를 따라가지. 











뭍에 올라온 물고기마냥 펄떡거리며 깨어난 황후는 쏟아지는 소음에 정신이 없어. 저를 부르는 시끄러운 소리와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뒤섞여 아우성이지. 물에서  소리를 듣는것처럼 웅웅 울려서 정확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어. 그저 제 주변이 시끄러운것만 간신히 알아챌 뿐이야. 몽롱한 정신을 일깨우는건 누군가 칼로 배를 난자하는듯한 고통이야. 그제서야 혼절하기 전의 상황을 떠올려. 황제가 저를 붙들고 뭐라고 했던것 같기도 한데...그런데, 왜 이렇게 춥지. 아픈 것도 아픈건데, 춥기도 해서 황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어. 추워...그랬더니 주변이 또 웅성웅성 하지. 좀 조용히 해줬으면 잘 수 있겠는데.

머리로는 지금 자신이 위험한 상황이라는걸 알면서도 감기는 눈은 어쩔 수 없었어. 그냥 이 지난한 고통도 끝나버렸음 좋겠고. 뭐가 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어. 그저 예상보다 일찍 나왔다는 사실에서 오는 본능적인 공포에 홀라당 삼켜져버렸지. 힘을 주라는데 어떻게 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래는 칼로 쑤시는듯이 저미는것 같고. 축축하게 젖어든게 피라는건 본능적으로 알아. 가물가물한 눈을 들어 새하얀 침의를 보면 새빨갛게 번져나가는 피가 보여. 큰일이네 싶으면서도 몸에 힘은 들어가지 않아서 축 늘어질 뿐이야. 원래 이런가? 아니면 아기 여우가 일찍 나와서 그런걸까? 설마 잘못되는건 아니겠지. 머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건 선황후야.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지. 그 사람도 이러다가 그렇게 됐을까. 나도...그렇게 되는건 아닐까.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폐하를 보고 싶은데. 불러달라고 했더니 안 된대. 원래 산실에 양인이 들어오는건 법도상 금지되어 있고, 법도가 아니더라도 불안정하신 폐하께서 지금 들어왔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대. 그런데 그런건 상관 없는데. 그냥 진짜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인데. 

황후는 자신이 우는지도 몰랐어. 그저 그 사람을, 루를 다시 보고 싶다는것 말고는 바라는게 없었지.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황제가 나타난거야.











기껏해야 황후와 떨어진 시간이라고 해봐야 몇 시간에 불과했지만 황제는 자신이 차라리 잠깐이나마 혼절해있었던게 다행이지 싶어. 계속해서 황후의 비명을 들었다간 견딜 수 없었을테니까. 저를 말리는 이들을 뿌리치고 황후에게 달려갔어. 이미 핏물 가득한 대야를 줄줄이 가지고 나올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방문을 막상 여니 혈향이 가득해. 눈 앞이 어지럽고 다리에 힘이 탁 풀려. 새하얀 침의가 온통 붉은데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황후가 기다렸다는듯이 저를 반기지. 보고 싶었는데 만나면 안 된다고 안 불러줬어요. 그게 그리 서운한듯이 속삭여. 황제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마찬가지로 저처럼 떨리고 있는 창백하게 질린 손을 붙잡아. 그리고 맹세하지. 지켜주겠다고 말이야. 저번처럼 멍청하게 망설이다가 잃는 일은 없을거라고. 

이미 자신이 황후를 발견했을 때는 혼절해있었고, 아마 그 상태로 봐서는 잠을 자다가 그대로 혼절에 빠진게 아닌가 싶어. 체온이 식은걸로 봐서는 제법 피를 흘린지 된 모양이고. 예상보다 한 달이나 일찍 진통이 시작된 바람에 아무것도 제대로 준비가 된 게 없어서 대처가 더욱 늦었지. 물론 언제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끔 해놨지만, 그래도 한 달은 너무 일렀지. 산실을 불침번 설 태의원의 의원들의 명단을 보고 받은게 겨우 며칠 전이야. 거기다 오늘은 선황후의 기일이라 제례 행사 때문에 황궁 모든 사람들의 정신이 거기에 빠져 있었단 말이야. 심지어 제례를 마치고 난 뒤에 황제가 발견한터라 늦은 시각이었기 때문에 불러모으느라 시간이 더 걸렸어. 




하얗게 질린 뺨 위에 입을 맞추고, 혈색을 잃고 메말라버린 입술 위에도 입을 맞춰. 아파서 울었을까. 무서워서 울었을까. 축축하게 젖은 뺨이 안쓰러워. 늘 저를 볼 때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창백하게 질린 뺨이, 꼭 누군가와 닮았어.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손을 붙잡은채 조금만 버텨달라고 말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거든. 그나마도 태의령이 아주 잠깐의 시간만을 허락했기에 곧 다시 나가봐야 해. 고통에 눈물로 어룽진 녹음이 안타깝고, 안쓰럽고,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아파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 해. 

짧디 짧은 만남의 시간이 끝나가. 본능적으로 깨달은 황후가 입을 달싹여 입을 열지만, 황제는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무서웠어. 듣기도 싫었고.더 이상 '만약에' 같은건 듣고 싶지 않아. 아이를 부탁한다거나 하는 말은 한 번으로 족해. 마르고 갈라 터져 핏기가 비치는 입술에 다시 한 번 입맞춤을 하고 땀으로 흥건한 이마며 뺨을 쓰다듬어. 그리고는 빌었지. 조금만 버터달라고, 나를 위해서라도 버텨달라고. 무서우니 더 이상 나를 혼자 남겨두지 말라고. 황제는 자신이 우는지도 몰랐어. 파들거리는 손이 제 뺨을 훑고 나서야 깨달았지. 자신이 여기서 불안하게 호들갑을 떨면 황후가 더 흔들릴까봐, 불안해져서 될 것도 안 될까봐. 애써 말을 잇고 있는데 끝내 눈물이 터졌나봐. 


아프고 힘든건 자신이면서 나를 달래네. 저보다 한참 어린 황후가. 아까는 살려달라고, 너무 아프다고 울었으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손을 잡아주는거 말고는 해줄게 없어. 황제면 뭘 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못 하는걸. 혹시나 이게 또 마지막 모습이 될까 눈에 밟혀서 차마 떠나지 못 하는데, 다급하게 달려온 태의가 이제 정말로 나가보셔야 된다며 저를 밀어내지. 아마 누군가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는건 이게 처음일거야. 하지만 자존심보다도 급한게 정인의 목숨 아니겠어. 그러니 황제는 결단을 내릴 수 밖에. 


무슨 짓을 하든 상관 없으니 황후를 살려 놓으라고. 내게 중요한건 오직 황후 뿐이라고. 아이는 얼마든지 다시 낳으면 될 일이지만 사당에 두 번째 초상화를 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루스터행맨

 
2024.02.08 23: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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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가ㅠㅠㅠㅠㅠ그 쬐끄만 게 아빠랑 엄마를 다 구하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습습 눈물난다 세가족 행복하게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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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23: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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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리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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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23: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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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롤 줄어드는게 아까워서 한줄한줄 내가 숨도 못쉬고읽음 이렇게 둘 다 힘들 일이냐ㅠㅠㅠㅠㅠ 이 고비만 넘기면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ㅠㅠㅠㅠ 결국 루스터도 톰 죽은 일 제 탓이라고 자책하다 우는게... 너무 마음아프네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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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8 23: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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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아아 센세ㅠㅠㅠㅠ보는 나까지 심장 떨리고 아찔하다...아기 여우가 황후와 황제 꿈 속에서나마 정말 힘내줬네! 이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말라고 낑낑대면서 어떻게든 이끌어줬어ㅠㅠㅠㅠㅠ똑같은 비극을 원치 않는 황제가 이번에는 황후를 살려 놓으라고 결단을 내렸는데...괜찮겠지? 황후랑 아기 여우 둘 다 무사했으면 좋겠다ㅠㅠㅠㅠ
[Code: d088]
2024.02.08 23: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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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선설리히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632b]
2024.02.09 00: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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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가 저 찌꼬만한 몸으로 여기저기 고군분투하는거 보니까 기특하고 안쓰럽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 루황제가 선황후 가고나서 망설인것에 대해 저렇게 죄책감을 가지는데.. 온갖 사랑 다 준 톰한테도 저렇게 미안해하고 사무치는데 제이크가 가게되면ㅠㅠㅠㅠㅠㅠㅠ 따라갈것만같아ㅠㅠㅠㅠㅠㅠ 아기여우야 쫌만 더 힘내줘ㅠㅠㅠㅠㅠ
[Code: 699b]
2024.02.09 01: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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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야ㅠㅠㅠㅠㅠㅠㅠ꿈마다 돌아다니면서 엄마아빠 둘다 깨우냐고ㅠㅠㅜㅠㅠ아가 고생이 많다ㅠㅠㅠㅠㅠㅠㅠㅠ 멀쩡히 태어나서 예쁨만 받고 건강하게 크자ㅠㅠㅠ
[Code: 0ea9]
2024.02.09 02:3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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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다ㅠㅠㅠㅠㅠ 제이크 쫌만 버텨ㅠㅠㅠ 아기여우도 둘다 깨우느라고 쪼끄만 몸으로 이렇게 고생하는데 장하다ㅠㅠㅠ 건강하게 행복하게 아기여우랑 다같이 꼭 살아야돼ㅠㅠㅠㅠㅠ
[Code: b227]
2024.02.09 04: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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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가 엄마아빠 구하려고 일찍 나오려나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새벽에 눈물 줄줄줄 흘리는 중ㅠㅠㅠㅠ 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센세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황후가 호수 바닥에서 편안해하는 거 무서워 눅겠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발 살려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ae84]
2024.02.09 13: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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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가 루황제랑 물만두 다 살리려고ㅠㅠㅠㅠㅠㅠㅠㅠ 절대 행복한 가족 돼야 돼 난 그걸 봐야만 하겠어ㅠㅠㅠㅠㅠㅠㅠ
[Code: 62e8]
2024.02.10 03: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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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 아임 크라잉ㅜㅜㅜㅜㅜㅜㅡㅠ센세 어나더ㅜㅜㅜㅜ
[Code: c862]
2024.02.12 22:4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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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설 잘보냈지? 새해 복 많이 받아
[Code: d5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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