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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브로 타브가 아다라서 곤란한 거 보고싶다. 그런데 이제 아스타리온한테는 쫌 다행이었다가 곤란했다가 다시 다행인 걸로.
아, 얘 나 좋아하네.
언제부터인지 날짜까지 완벽하게 헤아릴 순 없지만, 타브가 아스타리온을 다른 동료들보다 조금 더 특별히 생각하게 되고 얼마 안 있어서 아스타리온은 그 사실을 기민하게 알아차렸을 것 같다.
타브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데에는 뱀파이어 스폰의 능력도, 200년 동안의 지긋지긋한 세월 속에서 쌓인 경험치도, 하다 못해 원한다면 서로의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올챙이의 힘도 필요하지 않았어. 그냥 눈만 마주치면 됐지. 일부러 별 것도 아닌 일로 비아냥대거나 투덜거려도 타브는 짜증을 내긴 커녕 아스타리온 눈치를 보다가 얼굴이며 귀끝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도망치곤 했으니까.
쟤는 뭐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게 왜 저렇게 쑥맥처럼 굴어? 라는 생각은 오히려 길지 않았을 거고, 생존 하나만을 지독하게 추구하는 아스타리온 입장에서야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어쩌다 보니 이 파티의 우두머리를 떠맡게 된 타브가 자기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거니까. 밉보이지만 않으면 나도 여기 있는 동안 편하겠구나 싶었던 거지.
그래서 아스타리온은 틈만 나면 거울을 보고 있었다느니 별을 보고 있는데 네가 시야를 가려서 방해가 된다느니 하면서 타브한테 짓궂은 농담을 가장한 수작을 걸었음.
그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자기 말에 휘둘리면서 웃거나 울상을 짓거나 하는 타브를 봤을 때 ‘얘 혹시 이런 거 처음인가.’ 하는 의심을 잠깐 하기는 했는데-
“…자기, 진짜 처음이구나.”
타인과의 로맨스라는 것도 결국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게 있어서, 아스타리온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주어진 퀘스트를 하나씩 달성하는 느낌으로 밟아가는 타입이었음.
그리고 타브와의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에메랄드 숲 야영지에서 벌어지는 파티만큼 적절한 순간이 없었지. 비록 바라지도 않던 영웅 노릇을 하고 받는 건 식초 맛이나 나는 싸구려 술뿐이고, 푹신한 침대는 커녕 사람들 눈을 피해 붙어먹느라 땅바닥에서 구르게 될 지언정 뭐 어때. 어차피 타브는 아스타리온 심기 안 거스르겠답시고 언젠가부터 도움이 필요하다는 애들한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만큼 눈이 돌아있었는데.
내가 너 못 본 척 할 수도 있었는데 구제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목숨을 가장 우선시하고, 날 위해 무엇이든 해줄 것처럼 굴어. 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손을 내밀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스타리온은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호의를 이용하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데에 온 신경을 다 쏟느라 타브가 평소보다도, 그러니까 고블린 군대를 마주하고 있을 때보다도 긴장한 기색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고. 옷자락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옆구리를 만지는 아스타리온의 차가운 손길에 타브가 부르르 떨었을 때도 그냥 민감한 체질이구나 하고 말았을 거야
그래서 결국에는. 기어이 머리 위에서 훌쩍이며 코 먹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아스타리온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가슴언저리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으면 좋겠다.
그제야 눈두덩이며 코며 할 것 없이 붉게 상기된 얼굴과 부끄러움과 곤란함에 글썽이는 눈물, 제 머리통은 고사하고 어깨도 제대로 못 잡고 달싹이는 어설픈 손을 본 아스타리온이 확신하는 거지. 얘 아다구나. 내가… 내가 처음이구나. 하고.
그렇다고 뭐 이제와서 하던 걸 그만둘 정도로 양심이 있는 사람, 아니 엘프였으면 애초에 이런 귀찮은 일은 시작도 안 했지.
아휴, 너는 동료 보는 눈 좀 길러야겠다… 속으로는 그런 뻔뻔한 말이나 생각하는 주제에 다정한 손길로 눈물을 닦아주고, 축축한 뺨과 턱에 입맞춰주는 아스타리온은 누가 봐도 상냥한 연인의 탈을 쓰고 있어서, 서투르기 짝이 없는 타브는 그가 의도한대로 조금씩 숨을 고를 수 있었음.
겨우 한숨 돌린 타브가 기껏 한다는 게 아스타리온이 자기 때문에 흥이 식은 건 아닌가 머쓱하게 올려다보는 거라서, 아스타리온은 서투른 애가 오해하지 않도록 그 입술에 다시 한 번 진득하게 키스나 해줬겠지. 대신 더 진도를 나가지는 않고, 흐트러졌던 옷매무새를 착착 정리해주고 그 옆에 누워가지고는 팔베개나 해주는 거 보고싶다.
글쎄. 이것도 아스타리온이 다년 간의 경험 끝에 체득한 노하우라면 노하우였는데... 대부분 어딘가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군가의 온기를 갈망하기 마련이었고, 어렸을 때나 받아봤을 이런 스킨십에 더 잘 함락되고는 했거든.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타브도 딱 그런 유형이었음. 아스타리온이 옆에 누울 때까지만 해도 어? 하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팔베개를 해주자마자 설레서 딱 죽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슬금슬금. 미소를 채 숨기지도 못하더라고.
그 꼴을 귀엽다고 안 하면 세상 뭘 보고 귀엽다고 하겠어. 아스타리온은 타인하고 몸을 맞대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심장께가 뻣뻣하게 굳어버려서 등까지 아프곤 했는데, 그날 밤은 그렇게 몸 한 면이 다 맞닿아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편안함만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잠도 안 자는 주제에 그냥 가만히 팔 내어준 채로 잠든 타브 얼굴이나 구경했으면.
아스타리온이 그 밤새 이성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남아있었으면 그때 ‘엥 나도 얘한테 그새 감겼나’ 싶었을 건데 자기부정으로도 바쁜 뱀파이어 스폰이라서 정작 자기 감정에는 둔했으면 좋겠다….
아니 왜 이렇게 길어지냐 아무튼 zipzip 해서,
아스타리온이랑 타브의 첫날 밤 거사가 그렇게 엎어진 이후로도 두 사람은 연인같은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뒤로 딱히 섹텐을 타지도 않고… 동료들이 보기에는 ‘뭐야 그냥 친구로 지내기로 했나?’ 싶을 정도로 스킨십적인 면에서 드라이해졌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둘 중에 누군가가 막 하고싶은 걸 참는 건 아니고. 타브는 정신없는 모험 중에 아스타리온이 그냥 텐트 안에 같이 누워서 잠들 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주는 것만으로도 이게 연애하는 맛이구나 하고 너무 행복해서 만족하고, 아스타리온은 아스타리온대로 자기의 안전을 보장받으면서도 몸은 섞을 일 없으니까 편안해지는 거
그런데 윈윈이라고 생각했던 이 관계가 아스타리온의 계획과 달리 점점 더 타브한테 진심이 되면서 균형이 무너지는… 그런 스불재가 보고싶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