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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6 02:32
자오윈란은 황제의 즉위를 도운 공신임
황제가 계승권을 얻고, 즉위할 때까지 옆에서 보좌한 책사였음
황제는 쌍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황제 즉위 후 하나는 타국에 볼모로 가고
남은 황자는 태자가 되었음


태자는 모든 걸 눈치채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았음
그가 알지만 함구하는 사실은
자오윈란이 황제의 남첩이지만 첩지 대신 관직을 받은 것
그리고 자오윈란이 타국과 내통하며 제 쌍둥이에 대한 소식을 몰래 수집하고 있다는 것도

태자는 자신이 힘을 얻게 된다면 자오윈란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칼을 갈았음


하지만 자오윈란에 대한 황제의 총애가 깊어 그는 권세가 대단했고
황제가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 친정을 나갔다가 붕어했을 때
곁에 있었던 신하로 유언을 받드는 고명대신이 되기까지 함



황제 사후 자오윈란은 전선을 수습하고 방어선을 구축한 후 황성으로 복귀함
그리고 황제의 유언을 공표했음 그 내용은
선황의 유지를 받들어 타국에 볼모로 보냈던 2황자를 모셔오고
황후를 폐위해 냉궁에 유폐하도록 하며
자오윈란을 태자의 보정대신으로 임명해 태위의 지위를 주니
태자는 황제 즉위 후 모든 국사를 보정대신과 논의해 처리하라는 것이었음


태자는 명을 받들어 즉위했으나 선황이 사후에도 자오윈란을 지키기 위해 그의 지위를 높여주고
태자의 생모인 황후까지도 폐위시켜 모친에게 태후가 될 자격을 빼앗은 걸 더더욱 원망하게 되었음
하지만 태자는 십여 년간 선황과 자오윈란을 따라다니며 정치와 군사를 배웠고
처세술과 권모술수를 익혔기에 누구보다도 자오윈란에 대해 잘 알지만
동시에 그를 속이려면 적어도 그의 앞에서는 마음을 다해 그에 대한 경애를 표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음
그래서 태자는 자오윈란을 스승이자 선배처럼 받들며 늘 예를 갖추어 대했음


자오윈란은 황후는 싫어했으나 제가 열댓 살때부터 지금까지 십사오 년 가까이 보아온 태자를 아끼고 귀애했음
저와 태자의 나이는 열살 남짓 차이가 있어 막내둥이 동생이 있다면 이 정도일 거라 여겼음
자오윈란은 태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조당과 전장에서 마주했음
태자를 볼 때면 일찍이 볼모로 끌려간 2황자가 떠올라
태자의 쌍둥이도 함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늘상 해 왔음
그러던 중 선황이 전쟁터에서 병사하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자 이를 돕는 동시에 2황자를 귀국시켰음


하지만 새로 즉위한 황제의 눈에는 자오윈란의 마음이 보이지 않았음
2황자를 불러들이는 자오윈란의 저의가 무엇일지에 대해 새 황제는 의구심을 품었음

황제는 갓 스물이 된 청년으로, 아름다운 용모와 현란한 말솜씨로 민심을 쉽게 얻었음
조정 내에 제 세력을 확보하고 굳건히 키우기 전까지는 인내심이 필요하단 걸,
새 황제는 너무나도 잘 알았음
매일같이 자오윈란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뱃속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지만
마음을 억누르고 늘 그의 의견을 물으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데에 열중했음


즉위한 지 한 달 가량의 시간이 흐른 날, 황제는 소식을 들었음
제 쌍둥이 형제가 귀환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이었음

소식을 들은 자오윈란의 얼굴이 이제껏 봤던 뺀질한 낯빛에서 온갖 꽃이 개화하는 듯한
화사함으로 물들었음
황제는 순간 당혹스러워서 그의 얼굴을 차마 마주볼 수 없었음
자오윈란은 선황의 유언이 있었으니 제가 몸소 황자를 영접하겠다고 아뢰고는 대전을 나섰음
황제는 자오윈란에게 가타부타 이야기하지 못한 채로 그가 니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음


자오윈란이 없는 동안 황제는 고심했음
자오윈란이 제 쌍둥이를 자기 편으로 끌여들여 조정에서의 세를 확장한다면 제 권력은 한층 더 위태로운
지경으로 치닫게 될 것이니, 우선 그에게 작위와 봉토를 하사하되 당분간 황궁에 머물게 하면서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상책이었음 완전히 제 수족이 되면 좋겠으나 그와 자오윈란의 관계가 더욱 발전하는 건
정말 좋지 않으니까 저와 쌍둥이 형제의 관계가 성립되기 전까지만이라도
둘이 외부에서 따로 만날 빌미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음


며칠 후, 자오윈란은 2황자와 함께 입궁했음
2황자가 황제에게 인사를 올렸고, 자오윈란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걸 지켜보았음
황제는 인사를 받은 후 그 동안 고생이 많았다며 제 쌍둥이를 다독이고,
어린 나이에 궁을 떠나 제 집이 그리웠을 테니 당분간 황궁 내에 머물도록 명함

그런데 이를 자오윈란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음
황궁에 기거할 수 있는, 약관의 나이를 넘긴 사내는
황제와 황위 계승권이 있는 황자가 아니라면 환관이어야 하는 법이니
황제의 명은 황궁의 법도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지
황자의 저택을 따로 하사하고 그곳에 기거하게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음

젊은 황제는 화가 났음
감히 신하가 짐의 집안일에 간섭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고 하며
자오윈란이 보정대신인 점을 보아 한 번은 넘기겠지만 다시 이러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노해서 고함쳤음
그리고는 덧붙였음

그대도 선황 시절에 영춘궁에서 머물렀던 일을 짐이 기억한다고


자오윈란의 동백꽃처럼 붉었던 입술에 핏기가 가셨음
희게 질린 그 얼굴을 보니 황제는 뱃속에 뭔가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음
그리고는 손을 까드득 움켜쥐었음

자오윈란은 평소의 가면같은 얼굴이 깨져나간 채로 황제를 마주보았음
감히 용안을 대면하는 신하의 눈매에는 혹한기의 동토에 부는 칼바람과 같은 기색이 잠시 스쳤음
그리고
폐하께서 선례를 기억하신다니 그를 따르시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물러났음
말없이 자오윈란이 사라진 뒷모습을 좇는 2황자의 무표정한 얼굴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음

황제는 불쾌했으나 동시에 기꺼웠음
유들유들한 그 낯짝을 뜯어낸 기분이란 짜릿하고도 달콤했음
다시 한 번 그 날것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제 살을 내어준대도 괜찮을 것 같았음






혐관으로 시작되는 세가완삼 궁중 치정극이 보고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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