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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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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나 뜨거운 볕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얼굴이 훌렁 타버린다는 사월의 해는 정수리도 모자라 등까지 데웠다. 카일은 몸을 터는 대신 귀를 한번 쫑긋였다. 금방 복귀 시켜준다더니 또 행색은 내고 있어 어울려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제대했던 전우들과는 다르게 조촐하기 그지없지만 어찌됐든 카일은 오늘 반 평생 몸 담고 있던 군대에서 전역한다. 사실 전역하기 보다는 쫓겨난다는 표현이 맞지. 순수하게 몸으로 따지면 카일은 이미 명예제대를 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도 남았을 시점이다. 하지만 카일만큼 국가에 충성하는 이도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이도 없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다 법적으로 위험하자 급하게 처리 당하게 됐다. 카일 정도 군에 복무한 군인은 앞에서 뭐라 하든 서서 잘 수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생색들을 대충 귀로 흘리고 요란한 군가가 끝나고 앞에서 오는 악수에 반사적으로 앞발을 내밀었다. 가벼운 인사 후 카일은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차에 군말 않고 탔다. 멀어지는 동료들에게 끝까지 뒤통수만 보인 채 워낙 외진 장소라 도착까지 걸릴 시간을 예상한 듯 몸을 말고 앞발에 얼굴을 놓았다. 눈을 조금 들자 빽빽한 나무잎 사이를 통과한 빛들이 반짝반짝하다. 몰려오는 피로감을 삼킨다. 군대에선 함부로 깊은 날숨도 못 쉬었다. 거친 산길에 흔들리던 차가 조금 안정돼서야 카일은 눈을 감는다.


카일은 군견으로 전역했다. 


*



아침부터 연락도 없이 찾아온 정장들에 리스의 기분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올 때마다 좋은 일이 없었기에 없는 척하고 싶었지만 리스가 집을 비우는 일은 없었다. 집에 들여보내고 싶지 않은 인간들이라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비춘다. 찰스는 리스의 날선 반응에도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리스."
"할 말이 뭡니까."
"역시 마음이 빨리 통해서 다행입니다. 요즘 외출이 뜸하시던데 군에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래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이라며 건넨 서류에는 신상정보였다. 크리스토퍼 스콧 카일. 사진은 두개였다. 사람 형태에는 엑스가 쳐져있었다. 찍은 지 오래 됐는지 앳된 얼굴이었다. 옆에 선명한 사진은 개였다. 수인이다. 인간 사진에 엑스자가 쳐져있는 건 어떤 뜻인지 모르지만 관심 없다. 대충 서류를 훑어 본 리스가 설명하라는 듯 눈만 들어 쳐다봤다. 여전히 매서운 눈이다. 찰스는 두려움 대신 웃는 낯을 했다. 



"이번에 전역한 군견 카일입니다. 입대 당시엔 수인이었지만 인간 모습은 거부해서 지금은 군견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군견으로서는 제대하는 게 맞는데 사람으로는 아닌터라 잠시 유급했습니다. 마땅히 돌봐줄 가족이 없어 소령님께 맡깁니다."



서류에서 제일 눈에 띄던 부분이 있었다. 처음 입대한 부대가 ㅡㅡ였다. 대다수가 수인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취급이 아주 악질이라 리스 귀에도 들어오곤 했었다. 작전 중 대령이 죽고 난 뒤 불합리한 했던 일들이 바깥에 알려지면서 공중분해 됐던 걸로 기억한다. 젊고 영특한 수인들도 많을텐데 유급시키는 걸 보니 꽤나 훌륭한 군인이였나보군. 아니면 충성심이 남다르다던가. 리스가 문을 닫고 제대로 찰스 앞에 섰다. 회복 중이라 살이 많이 빠졌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기골이 장대하다. 찌푸려진 미간이 그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걸 대신했다. 



"감시인력을 늘리겠다는 소리인가?"
"오 아닙니다. 오히려 감시인력이 줄어들죠. 카일에겐 GPS 칩이 심어져있습니다. 안그래도 감시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으셨습니까. 귀찮은 일은 없을 겁니다. 사람이지만 개로 지낸지가 오래됐죠. 그냥 인간이었던 개입니다."



인간이었던 개. 살아있는 사람 얼굴을 지우는 일도 서슴없더니 여전한 곳이다. 일반인보다 수인의 수는 적지만 영향력은 아주 넓다. 바깥에선 수인을 대놓고 차별하는 이는 없다. 있더라도 미움을 사는 일이다. 진절머리 난다.



"원래 그렇게 말하나?"
"...네?"
"원래 그딴식으로 말하냐고 물었네."
"..실례했습니다."



당당히 눈을 보고 있던 찰스가 눈을 피했다. 그 덕에 메스꺼운 속이 조금 풀렸다. 찰스 뒤로 항상 보던 승용차 한대와 지긋지긋한 군용차가 보였다. 리스는 망설임 없이 성큼 발걸음을 뗐다. 트렁크 앞에 대기하고 있는 둘이 리스 너머를 쳐다봤다. 허락이 떨어졌는지 차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 누가 시킨건지 리스만큼 큰 개가 정자세로 앉아있었다. 영락없는 개인데 꼬리는 흔들고 있지 않았다. 리스가 주먹을 쥐고 천천히 카일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카일은 고개를 빼고 몇번 킁킁대다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리스는 조금 눈을 접고 웃어보였다.



"안녕 크리스. 난 제임스야."



컹. 카일이 소리 없이 주둥이를 뗐다 닫았다. 짖지 않고 대답한다. 쥐었던 주먹을 살살피며 카일의 턱을 긁었다. 혹여나 놀랄까 느리게 머리도 쓰담다 등까지 죽죽 만졌다. 카일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손길을 내치진 않지만 반가워 보이진 않았다. 그만 만지겠다는 뜻으로 툭툭 두어번 두드리고 허리를 폈다. 그리곤 바로 가자 하며 카일을 불렀다. 폴짝 차에서 내린 카일이 리스를 따라갔다. 모두 말없이 둘을 보고 있었다. 뻣뻣히 서있는 찰스를 지나 집 문을 연 리스가 카일을 먼저 들여보냈다. 리스도 집에 들어가고 닫히기 전 작은 틈으로 찰스에게 말했다. "이제 가게." 돌아오는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이 닫혔다. 그제야 찰스는 리스와 대화할 때부터 차곡차곡 쌓인 숨을 한번에 후욱 빼냈다. 참 적응되지 않는 사람이다. 얼마 안가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무작정 데려오긴 했지만 아주 어릴 때 이후 리스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다. 루시가 키우고 싶다 했을 때 키웠어야 했나...뒤를 돌아 집안을 보니 거실과 부엌 한 가운데 트렁크 안에서처럼 카일이 우뚝 앉아있다. 이제 막 전역했으니 아직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괜찮아 크리스. 편하게 있어." 컹. 소리 없는 대답과 함께 카일은 그대로다. 일단 혼자 두고 긴장을 풀게 하려고 빈 방으로 카일을 이끌었다. 리스는 들어가지 않고 문을 열어주니 카일이 쳐다봤다. 윤기가 비치는 갈색 털, 제대로 옆에 서니 종 중에서도 큰 편인지 리스 허리께를 훌쩍 넘어선 덩치다. 그리고 까만 주둥이에 파란 눈. 눈이 아주 새파랬다. 시선이 뺏겨 한참을 보고 있었다.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카일이 곧 푸릉 콧소리를 냈다. 아, 고개짓으로 답하자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짧은 수색 후 자리를 잡는다. 말그대로 빈방이라 카일이 있으니 가정집에 걸려있는 강아지 액자 같았다. 누군가 이 방에 있는 건 처음이었다. 감시 당하는 목적으로 제 발로 들어오고 리스의 생활 반경은 아주 단순했다. 침실 빼고 여러 방 중 하나를 열었는데 볕이 잘 들어보여 다행이었다. 음.


"..물이라도 마실래?"


고개를 한번 젓는다. 군인다운 신속하고 간결한 답이다. 



"밥은..아무거나 괜찮나?" 위아래로 끄덕. "사료?" 끄덕. "아니면 사람식?" 또 끄덕.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 건지 그렇게 훈련 받았는 지 모를 일이다. 개인 성향은 밟아 뭉게버리는 곳이니 싫다해도 설령 죽음으로 이어져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짖는 것도 고사하니 물어볼 수 없다. 차라리 오웬을 부르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일 일수도 있다. 오웬이 거부하겠지만. 쉬라는 말을 남기고 리스가 나갔다. 멀어지는 발걸음을 듣고나서야 긴장을 풀었다. 좋은 사람이다. 카일이 찾아볼 순 없었지만 제임스 리스 소령은 군대 내에서 유명했다. 나중엔 군대 밖에서도 유명해졌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렸다. 사람들이 모이면 항상 그 이야기를 했으니. 별 소리를 다 들었지만 트렁크가 열리자 햇빛과 쏟아진 리스는 아주 부드럽게 웃어줬다. 만지는 손길 또한 자상했다. 어느 사람이 말한 것처럼 사납지도 않았고 차가워 보이지도 작은 살기도 없고 오히려 일반인 같았다. 무슨 생각으로 저를 받아줬는지 모른다. 아직 복수할 꿍꿍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들은 크리스가 어색해서, 차마 알아낼 수 없다. 발치에 닿는 오후에 긴장을 풀어본다. 가까워지는 기척이 없어 몸을 낮추고 다시 앞발에 고개를 놓았다. 조용한 마을이다. 어쩌다 지나가는 차 소리도 평화로워 카일은 오랜만에 아무 생각없이 낮잠에 들었다. 




차고에서 소리가 들렸다. 카일은 눈을 뜨기 전에 자세를 잡았다. 해는 이미 카일의 뒤편을 쬐고 있었다. 목이 조금 말랐지만 참았다. 대신 귀를 세웠다. 트렁크가 닫히고 짐이 있는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컸다. 키를 꽂고 열리고 들어오고 닫힌 뒤 부엌으로 가 짐을 내려놓는다. 냉장고 문이 열렸다 닫히고 꼴꼴꼴 물을 따르고 짐을 정리한다. 부산스럽게 몇 번을 왔다갔다 찬장을 열고 닫고 발걸음이 이쪽으로 가까워진다. 이미 카일은 부동자세를 잡아서 그대로 리스를 맞이했다. 맞이하려 했다. 문 앞에서 발이 멈춰선다. 똑똑, 노크다. "카일 나야. 들어갈게." 개한테 노크라니. 문을 열고 들어 온 리스의 손에 스테인리스 물그릇이 들려있다. 카일 앞에 두자 찹찹 귀여운 소리를 내며 먹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갔을 때랑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카일에 놀랐다. 설마 계속 저 자세로 기다린 건지 쉬고 있다가 다시 취한 건지 알 길이 없어 못 물어봤다. 금세 물 한 그릇을 다 비운 카일에 물은 계속 구비를 해둬야겠다 생각했다. 다시 나갔다 들어온 리스의 품에는 물과 함께 파란색, 녹색, 핑크색...색색의 장난감들이 있었다. 와르르 카일 앞에 두지만 반응이 없다. 딱히 반응을 기대하진 않았다. 뭐냐고 묻는 카일의 눈에 어깨만 으쓱했다. 카일을 두고 리스는 몇 번 방을 드나들며 잠자리를 배치해 주거나 물을 채워주고 혹시 몰라 사료도 부어놨다. 제법 강아지 방스러워졌다. 카일을 돌아보니 여전히 그 자리 그 자세로 앉아있었다. 이제보니 사진이 아니라 동상 같기도. 



"사료는 아직 먹지마. 저녁 준비할 거야. 같이 먹어야지."
옆에 와서 먹겠다는 소린가.
"내일은 동네를 둘러보자. 가까운 공원도 있고 산책하기 좋아."
산책...?
"알러지 같은 거 있어?"
예?
"아 참고로 난 마요네즈를 안 좋아해. 좋아하면 준비해 줄 수 있는데 맛은 장담 못 해..잘 안 먹어봐서."
..농담 아닌 거 같은데.

대답 없는 카일에도 리스는 계속 말을 걸었다. 저녁이랑 관련 된 건지 아스파라거스를 먹냐 버섯 좋아하냐 레어, 미디엄 스테이크 굽기 정도까지 물어봤다. 카일은 이쯤되면 희한해서 피하고 싶었지만 대답하는 게 의무라 고개를 젓고 끄덕이고 리스의 장단에 맞췄다. 리스도 물어보다 아 지금 건 괜히 물어봤다 싶었는데 귀찮아하는 눈치에도 굳이 굳이 대답해주는 카일 모양새가 귀여워 언제까지 답해주나 싶어 물어봤다. 리스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ㅡ어느 날 발가락을 찧어 입을 벌렸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을 가다듬어도 이렇다할 소리가 없었다. 순간 목이 너무 죄여와서 물을 마시니 팔뚝만한 물병을 다 비웠다. 급하게 마시느라 젖은 턱이 얼굴이 너무 차가웠다. 하루종일 말할 일이 없었다. 말을 나눌 이가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종양을 드러낸 머리는 멍청해지질 않아서 아니 멍청해져서? 그간의 대화들이 자꾸 떠올랐다. 칼날이 피부를 긋듯 선명하게. 언제는 혼자 답하는 날도 있었다. 머리에서 재생되고 입 밖에서 송출했다. 약을 먹으면 기억이 안 나서 약을 끊었다. 약을 안 먹으면 정신이 나가서 누군가 찾아왔다. 그 과정이 더 싫어서 약은 챙겨먹었다. 지금도 딱히 말할 거리는 없지만 소리 없는 이 대화가 편하다 느껴졌다. 파란 눈이 말을 건다. 



"그래 밥부터 차려야겠다."




농담이 아니었다. 저녁을 식탁에 앉아 먹을 뻔 했다. 의자에 앉은 카일의 모양새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옆자리에 앉을지 맞은편에 앉을지 고민하던 리스가 거실의 낮은 테이블에 두 그릇을 놓더니 티비 보면서 먹자고 했다. 자상한 건지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거절할 상황이 아니라 그냥 따랐다. 친절하게 조각내 준 스테이크를 첩첩 먹는 카일의 머리를 쓰담다 리스가 미안하다 했다. "아 미안 잘 먹길래." 개 취급인지 사람 취급인지. 티비에서 나오는 방송을 보며 둘은 저녁을 먹었다. 리스가 칫솔과 양치껌을 들었을 때 카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양치껌을 선택하자 리스가 웃었다. 그린 듯 휘어지는 눈으로 "알았어 양치는 나중에 하자." 그럼 나중엔 양치를 시켜줄거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큭, 소리내 웃는다. 낮에 봤던 험악한 사람은 어디갔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 이불은 뭐가 좋아 베개 줄까 불 켜놓을까 문 닫을까? 질문에 시달리다 드디어 리스가 나갔다. 낮잠을 잤는데도 피곤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에 다시 앉았다. 똑똑. 두 번의 노크 후 리스가 뭔가를 들고 왔다. 귀가 늘어진 하늘색 토끼 인형이다. 카일 옆에 뉘여주더니 "우리 딸 건데 이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잤어." 루시는 빨간색도 좋아하고 파란색도 좋아했어. 흩어지는 목소리에 카일이 대답하지 못 했다. "잘자 크리스." 크고 약한 손이 머리를 쓰담고 갔다. 집이 조용해지고 가끔 신호처럼 작동하는 가전소리만 들릴 때 카일은 몸을 말았다. 머리맡에 있는 인형에서 리스 냄새가 난다. 리스 냄새만.






새벽에 아픈 소리가 들렸다. 귀가 파닥였지만 잠꼬대 같아 다시 잠들려는 무렵 이젠 우는 소리가 났다. 카일은 꼭 확인해야 하는 버릇이 있었다. 숨 죽여 문을 열었다. 오늘 채워진 카일의 방과 다를 게 없는 리스의 방에 둘러볼 필요 없이 침대로 다가갔다. 앞발만 올려 보니 이불을 몸에 꽁꽁 싼 리스가 창백한 얼굴로 주륵주륵 울고 있었다. 낮에 험상궂은 리스다. 볼에 코를 대어 조심스레 깨워봤다. 큰 인형처럼 이불과 뭉쳐있음에도 리스의 체온이 낮았다. 한번 더 대자 그가 툭 "루시." 굴러떨어지는 목소리에 방으로 갈 타이밍을 놓쳤다. 그의 배 쪽에 머리를 올렸다. 빠르게 뛰던 심장이 차차 원래 맥박을 찾아갔다. 잦아진 숨소리에 카일이 눈을 감았다.

아침에 리스가 깼다. 카일이 방으로 돌아간지 한시간 뒤였다. 




리스는 약속을 지켰다. 대체 어제 뭘 얼마나 산건지 하네스까지 둘러주곤 동네를 산책했다. 이 시간쯤이면 카일은 한창 훈련할 때라 몸이 근질거리긴 했다. 티를 안 내려 했지만 눈에 띄게 가벼워진 카일의 발걸음에 리스가 웃음을 참았다. 카일이 앞서 나가는 터라 흔들리는 꼬리도 보였다. 조금 더 걸어 공원도 갔다. 몇몇 사람들이 반려견과 있었다. 아무리 살이 빠졌어도 큰 리스와 견줄 만큼 큰 카일은 공원에 들어설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우습게도 서로가 각자 눈에 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카일의 줄을 풀어줬다. 리스가 앉자 카일은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뛰어갔다가 나왔다 여기저기 활보했다. 리스는 시력이 좋은 편이라 눈으로 카일을 잘 따라갔는데 잔디에 이리저리 몸을 비비는 것도 봤다. 저러니 영락없는 개였다. 한참을 헥헥 대며 뛰는 카일에 목이 마를까 불렀다. "크리스!" 그러나 피하듯 그가 풀숲으로 사라진다. 놀라서 허리가 펴졌다. 풀숲 한 쪽이 바람의 방향이 아닌 엉망진창으로 흔들리다 속에서 카일이 불쑥 나왔다. "크리스!" 다리도 긴 녀석이라 파사삭하면 어느새 저 쪽으로 달려나갔다. 토끼나 짐승을 포착했다기엔 집요하지 않았다. 리스는 주저하다


"카일!"




카일이 가던 길도 멈춰 우뚝 멈춰 리스를 봤다. 점으로 작아졌던 카일이 커지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털이 삐죽삐죽 서서 몸 곳곳에 잔디가 붙어있다. 그렇게 달려다닌 거 치곤 지쳐보이지 않았다. 불러놓고 말 없는 리스에 바깥이라 카일이 크게 짖었다. 웡! 정신 차린 리스가 물을 챙겨줬다. 꼴깍꼴깍 목 넘김을 들으며 카일에게 붙은 풀을 뗐다. 사람의 손길이 익숙하고 겁도 없고 똑똑한 녀석인데 카일을 제 이름을 못 듣는다. 불려보지 못해서겠지. 카일. 큰 귀가 쫑긋한다. 말 없이 카일의 목덜미를 긁어줬다.



***



리스와 카일은 잘 지냈다. 갑작스러운 동거치곤 서로에게 좋은 메이트였다. 리스는 제가 이렇게 말 많은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이제 카일은 리스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크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럼 리스는 알았어 이제 그만할게. 하곤 삼십분 뒤 또 물어보고 있다. 리스가 챙겨주려 하면 카일은 알아서 했다. 문도 잘 여는 똑똑한 강아지니까. 가끔 리스가 카일이 수인인 걸 까먹고 있는 것 같으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음에 안든다는 뜻이다. 그럼 리스는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아. 소리를 낸다. 또 미안미안. 리스는 참 미안할 일이 많다. 미안하면 안하면 되는데.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카일은 전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해서 말할 수 없었다. 요즘은 리스의 아침 러닝도 따라간다. 아침엔 신경 쓸 눈도 없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군인들이라 둘 다 아침 활동을 더 좋아했다. 밥 먹는 자리는 카일이 정한다. 당황스러웠던 식탁에서도 먹기도 하고 로데오 경기가 있는 날은 티비 앞에서 먹는다. 로데오 경기를 찾아보는 카일에 리스가 고향을 물었다. 몇 번의 도리도리 끝에 텍사스에서 걸렸다. 난 캘리포니아인데. 캘리포니아. 리스랑 잘 어울렸다. 카일이 웃는 모양새를 하자 리스가 소리쳤다. 왜 웃어? 아마 리스는 카일이 웃은 이유를 끝까지 모를거다.

단출한 리스의 일상에 카일이 끼니 하루가 빠르게 흘렀다. 카일 덕에 바깥도 자주 나가고 햇빛도 맞아주니 몇 주만에 리스의 낯이 조금 건강해졌다. 먹는 입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마트도 자주 갔다. 마트 주인도 리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애인이라도 생겼수다? 마트 주인의 물음에 리스가 자랑하듯 말했다. 개랑 살기 시작했어요. 애인보다 더 좋은 거구만! 화통한 주인장의 웃음 소리에 리스도 웃었다. 웃음이 많아진 건 좋았다. 아마 찰스가 보면 깜짝 놀랄 테지. 운동량도 더 늘고 밥도 잘 챙겨 먹으니 안 붙던 살도 조금 쪘다. 헐렁했던 옷이 보기 좋게 맞아보였다. 괜찮아져서 약을 멈췄다. 두통도 없었다. 간혹 밤마다 끙끙댔지만 카일이 왔다간 걸 리스는 몰랐다. 아픈 밤에는 누가와도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견딜만해서 그런 줄 알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 다음날 땅의 흙내음이 촉촉하고 뭉게구름이 몇가닥 낀 게 나가면 카일이 좋아하 것 같아서 하이킹을 가려 했는데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카일에겐 티내지 않았다. 평소처럼 러닝도 나갔다. 하지만 리스의 몸이 무거워 평소랑 속도가 달랐다. 카일은 진작에 알았다. 전날과 비교해서 리스의 안색이 매우 안 좋았다. 약을 먹고 있는 걸 몰랐어서 그냥 컨디션 저하인가 싶었다. 카일의 아침을 차려주곤 방에 들어가 더 자겠다는 리스가 문을 열다 쓰러졌다. 전조 없는 상황에 우당탕 큰소리가 나며 리스가 앞으로 넘어져있었다. 카일의 피가 빠르게 식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형상은 죽은 시체 같았다. 죽지 않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거다. 카일이 핸드폰으로 911을 눌렀다. 리스가 들어보지 못한 목청으로 컹!컹! 짖었다. 구급대원은 빠르지만 침착하게 질문했다. 카일도 항상 그렇듯 답했다. 곧 구급차가 출발한다 했다. 카일은 발을 동동 굴렀다. 뒤집은 리스가 점점 차가워졌다. 숨은 미약했고 카일에겐 실낱같이 느껴졌다. 늦는다. 늦어. 이러면 죽어. 카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차라리 자기가 리스를 데려가는 게 빨랐다. 카일이 리스를 업었다. 문이 쾅! 부서질 정도로 세게 열렸다. 리스의 집 앞에서 잠복하고 있던 요원이 놀라 일어났다. 따라가려 했지만 시동을 거는 와중에 사라졌다. 아니 리스 소령집에서 나온 이가 맞나? 처음엔 리스 소령이 초능력을 부리는 줄 알았다. 날아다녀서! 곰곰이 따지니 거대한 덩어리는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소령을 태운? 업은? 벌거숭이를 제대로 본 게 맞았나? 뭐라고 보고를 하지?? 






아침인 줄 알았다. 눈을 뜨면 아침이었으니까. 일어나려는데 순간 핑 돌았다. 힘 없이 누윈 몸에 천장을 마주보니 병원이다. 병원? 커튼을 치자 간호사가 달려온다. 환자분 천천히 일어나세요! 상황이 좋지 않다. 쓰러진 게 분명하다. 의식 없이 병원으로 온 거다. 습격을 받았나? 집에서? 카일, 크리스는? 리스를 몇 번 겪었던 간호사는 물어보지 않아도 리스가 원하는 답변을 줄줄 해줬다. 환자분은쓰러져서병원에왔고다행히보호자가데리고오셨어요그동안약을안드셨나요?진통제랑같이넣었습니다오분만있다가일어나세요.



"....오웬, 오웬이 왔나요?"



아안그래도작성된보호자랑달라서일단연락은드렸는데같이오신분은....일단옷은드렸어요아그리고그렇게오셔서경찰도왔는데놀라지마시고나가셔야겠어요. 간호사가 말을 빨리하는 건지 머리속에서 테이프가 빨리감기를 하는 건지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 못 했다. 보호자? 오웬이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놀러왔다 발견한 건가? 내가 옷은 안 입고 있었나? 경찰이 왜 왔지..? 쓰러진 게 맞다고 확인하듯 살짝 찢어진 눈썹이 욱신했다. 시계는 열두시를 지나고 있었다. 아침에 러닝을 뛰고 왔었으니 꽤 지난 시간이지만 쓰러지자마자 발견됐나 보다. 혼자 있을 땐 하루가 지난 다음 발견되기 싫은 놈들한테 도움받곤 했었다. 응급실에서 나가니 확보한 시야에서 검은 정장과 경찰 무리들이 보였다. 몰래 가려는데 그 옆에 환자복을 입은 커다란 남자가 리스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머리가 버석하고 정리되지 않은 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무시하고 가려 했다. 남 시선 따위야 무시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데 마주친 눈이 새파랬다. 집에 두고 온 개가 떠올랐다. 갈색 머리, 큰 덩치, 시린 눈. 같이 온 보호자. 



"크리스..?"



환자복을 입고 다리를 떡 벌리고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남자가 일어나자 옆에 있는 장정들보다 머리 하나 우뚝 크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놀랬다. 다른 이들을 놀래켜놓고 여전히 리스만 보고있다. 맞다. 크리스다. 그게 크리스 카일과 진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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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꾸프랫 카일리스
 

2024.02.05 01:0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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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이다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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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01: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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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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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01: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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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떡하냐 나붕 진짜.. 처음 시작부터 심장이 막 두근두근했는데... 진짜 ... 리스 울때 카일이 코로 살짝씩 깨우다 배 위에 머리 대고 눕는데서 울고 말았음 센세ㅠㅠㅠㅠㅠㅠㅜㅠ ㅠㅠㅠㅠㅠㅠ 아 분위기 너무 다정하고 좋다ㅜㅜㅜㅜㅜ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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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02: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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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ㅁㅊ 크리스 알몸으로 리스 들고 뛴거야? 미치겠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카일은 리스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크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환자복을 입고 다리를 떡 벌리고 있던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두개 너무 좋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은근히 개그가 있는거 같은데 센셐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99dc]
2024.02.05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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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센세 진심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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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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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존나 대작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3964]
2024.02.0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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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센세
[Code: b51a]
2024.02.0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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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대작이야
[Code: b51a]
2024.02.0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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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의 앞에서 기념촬영 좀 해야겠어 세상에 📸📸📸📸📸
[Code: b51a]
2024.02.05 08:2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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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센세 ㅜㅜ 어나더 ㅜㅜㅜㅜ 둘이 이제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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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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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이 리스 배 위에 머리대주는거 따뜻한 장면인데 왜 슬프지ㅠㅠ 그걸 리스가 모르는 것도ㅠㅠㅠㅜㅜㅠㅜㅜㅠㅠㅠ
[Code: d76d]
2024.02.0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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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Code: e1e2]
2024.02.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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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짱이다 최고.......센세최고..
[Code: f978]
2024.02.05 13:1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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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Code: 4bc3]
2024.02.0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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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의 시작을 뵙습니다..
[Code: 4bc3]
2024.02.05 18:1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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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임이 크리스라고 부르는 거 못 알아듣다가 마지막에 알아듣는 거..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de: 54bd]
2024.02.05 19: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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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어나더 없으면 나 네이비씰 입대한다
[Code: 1fdc]
2024.02.0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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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억나더를
[Code: a073]
2024.02.05 22: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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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 재밌어!
[Code: 8028]
2024.02.0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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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카일은 리스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하면 크흥..!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거 진짜 볼수록 귀엽고 웃김ㅋㅋㅋㅋㅋ
[Code: 3194]
2024.02.0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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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미쳤어.. 마지막에 고민하다 사람으로 변한 벌거숭.. 아니 카일 시발 하ㅠㅠㅠㅠ 센세 제발 어나더요ㅠㅠㅠㅠ
[Code: e430]
2024.02.08 00: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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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미미미ㅣ미칭 이런 대작이ㅠㅠㅠㅠㅠㅠㅜ센세 필력 뭐야ㅠㅠㅠ나 영화 보는줄ㅜㅜㅜ너무 생생해서!!! 센세 이제 내꺼에오
[Code: 2a3f]
2024.02.19 15: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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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좋아 ㅜㅜ
[Code: b0e7]
2024.06.02 01:2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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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알러지있냐고 묻는데 카일 속으로 예? ㄹㅇ 당황한거 같아서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bcc8]
2024.06.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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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너무 맛잇다 진짜 이런 개깟띵무순을 왜 이제 알앗지!!!!! ㅜㅜㅜㅜㅜㅠ 하 어나더가잇다는게 존나 큰축복 사랑해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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