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싹 바뀌어 개고생하는 일이 일어났으면
ㅁㅅ적 허용으로 임신 된다 쳐
ㅋㅂㅈㅇ ㄴㅈㅈㅇ ㅅㅅㅊㅈㅇ




"적당히 해라. 애 떨어질라."

쉬는 시간 교실을 뛰어다니다 자신의 책상에 부딪힌 친구의 뒤통수를 향해 던진 수겸의 짜증스런 말에도 신경쓰는 사람은 누구 하나 없었다.
거슬리는 일이 있거나 사고가 터지거나 답답한 플레이를 목격하면 애 놀란다거나 태교에 안 좋다는 식의 소릴 하는 게 수겸의 평소 입버릇이다 보니 이번에도 또 비슷한 류의 잔소리겠거니 하고 모두 방금 전 들은 말을 무시하고 있을 때, 수겸이 어깨에 걸치고 있던 현준의 저지 재킷 주머니에서 착착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고 앞자리 친구의 등을 쿡 찔렀다.

"왜?"
"다음 수업 시간에 나 어디 갔냐 물어보면 보건실 갔다고 해. 그리고 종례 때 담임 오면 그거 좀 대신 내 주고."
"어, 뭐... 그런데 이게 뭔데?"

수겸이 들은 척도 않고 바로 일어나 복도로 나가버린 뒤 접힌 종이를 펼쳐 본 녀석은 잠시 눈을 비비더니 옆자리 의자를 발로 찼다.

"아, 왜 깨워!"
"...너 이 글씨 뭘로 보이냐..."
"....임신, 확인서. 뭐야, 너 여친이랑 사고쳤어??"
"눈이 있으면 거기 인적사항을 봐라."

종이를 받아든 친구의 눈이 인적사항란에 닿았다.
익숙한 흘림체로 휘갈겨 써진 이름을 확인한 녀석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아악!!"
"왜? 뭔데?"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교실 안의 모두는 숙연해졌고, 방과 후 수겸의 짐을 챙기러 잠시 들른 현준만 이유없는 따가운 눈빛 세례를 받았다.



"아무리 졸업을 앞둔 3학년이긴 해도 너무 급하게 사고친 거 아니야?"

친구의 질문에 수겸은 얘 뭐래니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결혼한 지가 언젠데... 사고가 아니라 계획한 거다. 이 타이밍이어야지 시즌에 지장 안 주고 뛸 수 있어."
"이번 겨울엔?"

농구부 3학년 전원이 은퇴까지 미루고 윈터컵을 목표로 하는 걸 알기에 당연히 저런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때면 아직 못 뛸 만큼 몸이 힘들지 않을 시기니까. 그리고 풀타임 출장은 안 할 테니 전력엔 지장 없어."

눈맞은 연인들이 급하게 사랑을 나누다 삐끗해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부부끼리 철저히 계산한 결과란 것부터 놀라운데, 그 계산의 초점이 전부 농구란 것도 그저 놀랍기만 하다.

"결혼하자마자 3학년 인터미들 끝나고 시도했을 때는 실패하고, 고등학교 와선 1학년 인터하이 때부터 주전 선발이었으니 3년 내내 시도할 생각 자체를 못 했는데 이번이 딱 좋은 기회 아니냐. 안그럼 진짜 은퇴하고 난 다음인데 그건 너무 늦지."

일반적인 18살의 입에서 듣기 힘든 얘길 쭉 듣던 친구는 이젠 납득을 포기하고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이게 김수겸이지.



누구에게나 인정받은 고래 쇠심줄같은 정신력 덕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뒤로도 딱히 변한 점이 없는 수겸의 모습을 보고 모두는 임신 기간 내 전 과정이 평탄히 진행되리라 예상했다.

애가 효자네 성격 무던한가보지 소릴 들으며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중.

"누가 성격이 무던해...?"

지옥이 찾아왔다.



점심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옥상으로 피신해 그늘진 자리에 누워 있던 수겸은 익숙한 발소리에 눈을 떴다.
수겸이 제 곁에 자리잡고 앉은 현준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자, 현준이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 수겸에게 덮어 주며 물었다.

"오늘도 안 되겠어?"

말없이 고개만 젓는 수겸의 대답에 현준이 한숨을 흘렸다.

지독한 입덧은 세상 모든 냄새를 적으로 돌리게 했다.
음식 냄새는 물론이고 물에서마저도 비릿한 향이 느껴져 특정 브랜드의 미네랄 워터, 그것도 유리병에 든 것만 마실 수 있었다.
교실 안을 떠다니는 각종 향 때문에 보건실에 가면 또 특유의 약 냄새가 거슬리고, 부실에 가도 먼지 냄새며 땀내에 헛구역질이 난다.
집에서 늘 쓰던 섬유유연제의 향도, 비누나 치약의 향과 맛도, 샴푸나 바디워시는 물론 그냥 수돗물만 틀어 놔도 바로 신물이 올라온다.
심지어 이젠 농구공에서 나는 특유의 가죽 냄새에도 반응해 뒤틀리는 위장이 짜증나다 못해 기가 막힐 지경에 이르른 수겸은 허하게 웃으며 현준을 올려다보았다.

"넌 밥 안 먹고 여기 왜 와 있어."
"내가 밥이 넘어가면 그게 인간이냐."

물이나 간신히 마시며 버티다 간간히 떠오르는 것 몇 가지로 최소한의 영양 공급만 하며 지낸 게 벌써 며칠 째인지, 안 그래도 별로 살이 붙은 편이 아니던 수겸의 얼굴선이 더 날렵해진 느낌이 들어 걱정인데 지금 밥 생각이 날 리 없다.

저 모든 향을 역하다 느끼는 수겸이 딱 하나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제 체향이란 걸 알고부터는 최대한 수겸의 옆에 붙어 지내기로 작정한 현준은 피곤한지 눈을 감아 버린 수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지금은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아니. 생각만 해도 향이 코끝에 떠도는 기분이라... 아."

인상을 찌푸리던 수겸이 반짝 눈을 뜨곤 얼굴을 쓰다듬던 현준의 손을 쥐었다.

"푸딩. 집 앞 편의점에서 파는 유리병에 든 거."
"사 올게."
"오후 수업은 어쩌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툭툭 턴 현준이 학교 뒷편을 가리켰다.

"뒷문 근처에 같은 브랜드 편의점 있잖아."
"거기까지 돌아갔다 올 시간이 되나? 게다가 나가려면 교무부장에게 사유서 써서 내고 외출증부터 끊어야 할 텐데."

자신의 말에 눈짓으로 뒤편 담장을 가리킨 현준이 손가락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걸 본 수겸은 아이고 하며 머리를 짚었다.
뒤편 담장은 두 사람의 키에 비하면 낮은 편이라 예전엔 자주 넘어다녔지만, 그러다 몇 번 걸린 뒤로 위쪽에 철조망이 생긴 상태다.
그걸 넘어갔다 온다니.

수겸의 생각을 읽은 현준이 한 군데를 가리켰다.

"저쪽 허술한 데로 가면 돼."
"봐서 다칠 것 같으면 포기하고 와라."

무단외출을 시도한 현준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옥상으로 돌아와 수겸의 앞에 편의점 봉투를 내려놓았다.
푸딩의 씰을 벗겨낸 수겸이 일단 냄새부터 확인하곤 웃는 걸 본 현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오래 걸렸다?"
"가까운 데 재고가 하나 뿐이라 한 블럭 뒤쪽까지 다녀왔어."

그 말에 습관적으로 시간을 계산한 수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피드업 연습 효과가 좀 있나본데. 세트 늘릴까?"
"그래도 되고."

어느 새 집어든 푸딩 한 개를 다 먹은 수겸이 두 번째 씰을 벗기다 말고 손을 뻗어 현준의 손가락을 쥐었다.
가늘게 앉은 피딱지에 수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기어이 다쳤구나."
"긁힌 거야."
"긁힌 건 상처 아니냐."
"이따 너 내려갈 때 보건실 들러 반창고 받아가면 된다. 환기 어느 정도 될 때까진 거기 있을 거지?"
"보건실도 역하긴 마찬가지지만 교실보단 나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수겸에게 현준이 셔츠 위에 껴입고 있던 니트를 벗어 건넸다.

"그거랑 코트 가져가서 덮고 있어."
"그러다 감기 걸린다."
"교실에 체육복 있으니 그거 걸치면 돼."

기어이 수겸에게 니트를 건넨 현준은 말없이 두 개째 푸딩을 입에 떠넣는 수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체육 수업이 끝난 뒤의 교실은 시큼한 땀내며 흙먼지의 냄새와 머리며 얼굴 등을 적신 수돗물의 소독약 냄새로 다른 수업 때보다 몇 배는 견디기 힘들다.
잠시 비상계단에라도 피신해 있어야겠다 생각한 수겸은 코와 입을 막은 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뒤 눈을 뜬 곳은 학교도 집도 아니었다.

"깼어요?"

친절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간호사가 손등에서 링거 바늘을 뽑아내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의식은 돌아온 모양인데 너무 깊이 잠들었길래 일부러 안 깨웠어요. 보호자 분은 진료접수 차 데스크에 가셨으니 돌아오시면 그때 천천히 일어나시고, 어지러우면 휠체어 가져다 드릴 테니 얘기하세요."

수겸의 손등에 지혈밴드를 붙인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 잠시 뒤 돌아온 현준은 침대에 걸터앉아 눈만 꿈벅이는 수겸을 안고 등을 토닥였다.

"너 교실에서 쓰러졌어. 옆에서 받아 준 덕분에 외상은 없는 것 같은데 온 김에 상태 보고 가자. 어차피 며칠 뒤 받을 정기검진 당겨서 받는다 생각해."

현준의 손을 빌려 일어나 걸어간 대기실에서 얼마쯤 앉아 기다리자 곧 수겸의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에선 몇 번인가 봐서 익숙한 의사가 웃으며 두 사람을 반겼다.

"아가는 잘 크고 있으니 걱정할 일이 없는데, 태아 체중은 늘었는데 거꾸로 체중이 줄었네요. 오늘 정신을 잃은 것도 빈혈이라 그런 거고. 잘 안 먹어요?"
"그게... 입덧이 좀...."

상태를 설명하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증상도 기간도 다르니 어쩔 수 없네요. 지금처럼 최대한 조금씩이라도 자주 먹으며 적응하는 수 밖에. 정 힘들면 수액이라도 놔 드릴 테니 오시고요. 원래 예민하고 까탈스런 성격이었나요?"
"전혀요."

수겸의 강한 부정에 의사의 눈길이 옆에 앉은 현준에게로 향했다.

"그럼 이건 보호자 탓인데."
"...저요?"

느닷없이 돌려진 화살에 어리둥절한 현준을 본 의사가 싱긋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 했다.

"입덧이 심할수록 응석받이에 어리광이 심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게 다 옆에서 받아 주는 사람 때문에 그런 거예요. 뱃속 아가도 뻗을 자리는 보고 눕는 거 몰라요? 받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대개 임신 증세도 무던하게 넘어가는데 옆에서 안절부절 오냐오냐 해 달라는 거 다 해 주는 사람이 증세를 심하게 키우는 겁니다. 가끔은 단호해질 필요도 있어요."

진료를 받고 나와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내내 현준의 머리 위엔 물음표가 떠 있었다.

"내가 뭘 그렇게 받아 줬다고..."

그냥 평소처럼 했을 뿐인데 과하게 응석을 받아 줘서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들으니 억울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다.
계속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뭘 어쨌길래 하고 중얼대는 현준의 목소리에 수겸도 슬슬 지쳐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투덜대려 입을 열었는데.

"복숭아가 나오던가..?"

튀어나온 전혀 엉뚱한 소리에 입을 틀어막은 수겸이 내가 왜 이러지 놀라는 것과 달리 현준은 휴대전화를 끄집어내서는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어, 아빠 휴가 아직 남았지? 반차 쓰고 나와서 병원 근처 과일가게 가보세요. 선물용 과일바구니 중 복숭아 든 거 있으면 그거 좀. 거기 없으면 백화점 지하. 거기도 없으면 도매시장. 어, 또 필요한 거 생기면 연락할게요."

옆에서 듣는 것 만으로도 황급히 휴가 신청을 하는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필요한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현준은 수겸을 돌아보며 보고하듯 말했다.

"한 군데는 있을 걸. 그거면 돼?"
"저랬다가 사 온 순간 못 먹고 또 구역질하면 어쩌려고."
"너 빼고 남는 입이 몇인데."

그래, 이게 너무 당연한 수순이라 문제였던 거다.
응석을 부리는 사람도 받아주는 사람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도록 쭉 저렇게 살아 왔었으니까.
이래서야 임신 기간 내내 입덧으로 시달린대도 변명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쓴웃음만 흘리던 수겸은 현준의 팔에 머리를 기대며 작게 중얼거렸다.

"할 만 하네."

심각한 입덧으로 고생을 할 만도 하고, 이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면 그 고생도 할 만 하고.



다음 날 등교하자마자 갑작스럽게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수겸의 상태를 걱정스레 물어 본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그 원인에 수긍하면서도 이번엔 쏘아보는 걸로 모자라니 눈에 띄기만 하면 바로 등짝부터 한 대 내리칠 생각을 하며 곧 나타날 현준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입덧 얘긴 카더라 썰일 텐데 왠지 그럴듯해서 급 보고싶어졌다

슬램덩크 하나후지 현준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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