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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로는 워낙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임신 소리 듣자마자 환호성이나 놀람 보다는 앞으로 내가 일을 더 많이 해야겠네... 집도 넓혀서 이사해야겠네... 차도 바꿔야겠네... 이런 생각부터 머리에 싹 든 거지. 물론 우와- 정말이야? 정도의 반응은 했지만 류지가 기대한 건 켄지로가 엉엉 울면서 고맙다고 무릎 꿇는 거였거든; 암튼 켄지로 현실적인 고민에 빠진 동안 류지 포크레인으로 땅굴 파기 시작함. 아... 켄짱은 결혼 생각 없구나... 나는 그냥 연애상대로 좋은 사람일뿐이구나... 하긴 아빠 되기 싫을 수도 있지... 나보다 더 착하고 귀엽고 참하고 섹시한 사람이 부인이길 바라나봐... 괜히 말했다... 그냥 혼자 알아서 할 걸...

그리고 결국 새벽에 사부작사부작 짐 싸서 집 나가버릴듯. 옷도 얇게 입고 긴 소매로 눈물 꾹꾹 눌러 닦으면서 새벽길 걷는데 막 서럽고 세상이 싫고 난 이제 애기랑 단 둘이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하니까 배도 고프고... 암튼 눈물만 나오겠지. 켄지로는 아침에 눈 떴는데 집이 텅 빈 느낌 들어가지고 고개 갸웃 할 거임. 그러다 얘가 집나갔다는 거 깨닫고 전화기에 불 낼듯 부재중 통화 남기기 시작함. 류지는 혼자 정처없이 걸으며 핸드폰 벨소리 애써 무시할 거고, 켄짱이 자기 찾는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혹시 애기 지우란 소리일까봐 무섭고 마음 복잡할 것 같다. 결국 모텔방 하나 얻어서 장기 숙박으로 결제 갈기는 류지일듯. 켄지로는 어제 잠들기 전에 미리 애기침대랑 임산부한테 좋은 것들 싹 인쇼로 시킨 상태였음 좋겠다. 그것들 배송 예정일 문자는 주루룩 들어오는데 류지만 연락이 안 되고 속 터져 죽을 지경이겠지.

그러다 한 달 정도 흐르고 나서 집에 두고 온 노트북 챙기러 왔다가 켄지로한테 홀랑 잡히는 거 보고 싶다. 켄짱 출근 안 했어? 하고 놀란 토끼눈으로 물어보니까 켄지로는 화 내려다가 갑자기 얼굴 일그러뜨리며 울어버리겠지. 어디 갔었어... 애기 아빠 만들어 놓고 애기랑 도망치는 게 어딨어... 하면서 류지 껴안고 오열함. 그제야 집안에 애기 물건 쌓여있는 거 발견하는데 덩달아 눈물 터져서 이제 집에 홍수나야지. 나는 켄짱이 아빠 되기 싫은 줄 알구... 혼자 키우려구... 별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그래서 내가 켄짱 부인 하기엔 부족한 사람 같아서 영원히 눈 앞에서 사라져 줄라구 그랫다 왜!!! 하면서 눈물 콧물 뚝뚝 흘리겠지. 켄지로는 슬프고 어이없고 화나는데 또 류지 얼굴 보니까 마음 다 녹아내려서 웃다가 울다가 난리 날듯. 그렇게 한 달만에 재회한 예비 엄빠한테 안정기가 뭐죠...? 재회떡 치고 밤새 꽁냥꽁냥 애기 이름 지으며 껴안고 잠들겠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켄지로의 수난대 시작되겠지. 물조 밥조 안아조 업어조 옷입혀조 머리감겨조 노래해조 춤춰조 발주물러조 하며 24시간 불러대니까 켄짱 살 쏙 빠지는 거 ㅇㅇ 그래도 류지 통통하게 살 오른 모습에 안 먹어도 배불러서 마음만은 든든한 켄지로였음 좋겠다.

켄지로류지 켄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