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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 날조, 노잼ㅈㅇ 문제시 칼삭

 

예상치 못한 말에 저도 모르게 눈을 굴리던 연화가 놀란 표정을 감추며 빙긋 웃었다.

 

이야, 적 맹주가 나를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그래, 내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나랑 함께하고 싶으셨나?”

너만큼 나를 잘 아는 이는 없다. 너만큼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이도 없고. 나를 괴롭게 하던 일도 너와 있으면 별 것 아닌 게 된다. 그뿐이야.”

대마두께서 나를 이렇게 총애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장난기가 묻어나는 말투와 달리 연화의 웃음에는 힘이 없었다. 한때는 검을 겨누던 사이였지만 많은 일을 겪으며 정이 들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상대방만큼 서로를 잘 아는 이가 없었고, 다병과 비성만큼 연화를 편안하게 만드는 이도 없었다. 함께한 세월을 너무 쉽게 등져버렸나,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건가, 감상에 젖은 연화를 현실로 끌어낸 것은 어김없이 적비성이었다.

 

이연화, 이제 나와 같이 갈 마음이 생겼나?”

으음, 글쎄?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물어봤지, 이유를 말해주면 따라가겠다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적 맹주는 나와 있고 싶다고 했지, 무얼 하고 싶다고 말하진 않았잖아.”

 

그러니 당분간은 우리 둘 다 여기서 지내야겠어, 연화가 코를 찡긋거리며 웃었다. 비성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떠나질 못하는 거지? 가족의 정이라는 것 때문인가? 가족이 그렇게 중요한가?”

가족의 따스함을 모르고 살다가 의지할 곳이 생기니 안락함을 누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야. 적 맹주도 알다시피 지난 십 년 동안 사형의 시신을 찾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모든 게 끝나니 허무하더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떠돌던 차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고, 많은 생각을 할 필요 없이 사니 좋더라고. 그래서 당분간은 유유자적 지내볼까 해.”

너를 십 년 만에 다시 만났을 때도 그렇게 복잡하게 사는 것 같진 않았는데.”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연화가 눈을 가늘게 뜨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적 맹주가 얼마나 안다고 그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하지 않나?”

아무튼 나는 아직 떠날 생각이 없으니 그런 줄 알아.”

 

그럼 더 이상 할 말은 없는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 줘, 연화가 손을 휘저었다. 비성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구겼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연화의 방을 나선 비성은 곧장 린신에게 향했다. 약초를 다듬으며 여유를 즐기던 린신은 난데없이 드리워진 그림자의 원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할 말이 있소.”

거기 서 있지 말고 일단 이리 와서 앉게.”

이연화를 데려가야겠소.”

 

할 말이 있다며 갑자기 찾아오더니 대뜸 연화를 데려가겠다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상상 이상이군, 린신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앉으시오.”

길게 말할 필요가 있나? 각주의 생각을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떠나고 말고는 연화의 판단인데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나? 혹시 나 때문에 떠나지 못하겠다고 하던가?”

이연화는 떠날 생각이 없으니 각주가 설득해주시오.”

연화가 자네한테는 그런 말 안 하던가? 본인은 대여섯 살 먹은 꼬맹이가 아니라 이립이 넘은 청년이라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소.”

 

그 말에 린신이 미간을 구기며 주먹으로 가볍게 탁자를 내리쳤다. 누가 봐도 못마땅한 기색이었으나 맞은편의 사내는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가 아니었다. 아이고 연화는 어떻게 저런 놈을 데려왔담, 린신이 화가 치미는 것을 억누르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가 정말로 연화가 그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고 생각하나. 연화는 어린아이가 아니야.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할 능력이 있다는 거지. 똑똑한 아이이니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도 없네.”

그렇다면 이연화에게 떠나도 좋다고 말하시오.”

 

린신의 미간이 깊게 패었다. 꽉 막히고 융통성 없기로는 양나라의 소경염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여기 더한 놈이 있었구나, 말을 이어갈수록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자네연화에게는 떠나자고 말을 한 거지? 그런데 연화가 거절한 거고?”

그렇소.”

연화가 뭐라고 거절하던가?”

당분간은 여기 머물겠다고 했소. 의지할 곳이 생기니 안락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좋다고 했소.”

자네는 왜 연화를 데려가려는 거고?”

이연화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소.”

어째서지?”

예전부터 이연화는 강호가 어울리는 사람이었소.”

이런 데서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지 말고, 검과 지략으로 강호를 제패하려는 포부를 가져야 한다는 건가?”

맞소.”

그런 삶이 어울린다고 누가 그러던가? 그 아이는 편안하게 살 권리조차 없나? 그리고 연화의 삶을 왜 자네가 판단하나?”

 

린신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애당초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이였다. 연화와 동고동락하며 가깝게 지낸 이이니 웬만해서는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지만, 연화의 인생에 간섭하려 드는 것만큼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도대체 자네가 뭐라고 자꾸 그 아이의 삶에 간섭하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럴 수 없어. 자네가 연화의 정인이기라도 한 건가?”

정인이면 간섭해도 되는 건가?”

당연히 아니지. 그리고 자네는 연화의 정인이 될 수 없어.”

왜지?”

자네 같은 이를 만나기에는 우리 연화가 너무 아깝거든.”

 

린신이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몸을 떨더니 손을 내저었다.

 

백번 양보해서 연화를 데려가고 싶은 자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주겠네. 다만, 내가 연화의 친부는 아니지만 그 아이를 아끼는 마음만은 진심이란 말이지. 자식이 편안한 길 놔두고 고생길을 선택하는 데 가만히 있을 아비가 어디 있나? 나는 연화만 원한다면 천년만년 데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이곳을 물려주고 싶네.”

 

물론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연화를 상상하자 린신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생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다니, 비성은 그가 참으로 실없고 단순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 이연화를 아낀다면 그가 옳은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하지 않나?”

연화는 생각이 많고 신중하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잘못된 것 같아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거쳤을 테니 나는 그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러니 자네도 진정 연화를 생각한다면 그 애의 의사를 존중해줘.”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마음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지, 린신이 차를 홀짝이며 덧붙였다. 제 앞의 청년은 연화를 좋아한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막역한 벗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상대방의 인생에 간섭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제 자식을 마음에 두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비의 마음은 흡족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서툴고 미흡해, 자신의 마음을 앞세워 연화를 괴롭게 할까 걱정이었다.

 

혹시 남몰래 연화를 데려갈 계획이 있었다면 포기하게. 자네는 연화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연화가 그걸 바라지 않는다는 것쯤은 자네도 충분히 알겠지. 나도 가만히 앉아서 아들을 뺏길 생각이 없고 말이야.”

 

비성이 못마땅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린신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더니 장난 섞인 목소리로 푸념했다.

 

그래, 우리 연화가 너무 예쁜 게 죄인 걸 어쩌겠나그렇다고 금족령을 내릴 수도 없으니 참으로 난감해.”

금족령이라니, 정말로 이연화를 가둬 둘 생각인가?”

가두다니 가당치도 않은 소리. 그만큼 우리 애가 빼어나니 참으로 곤란하다는 거지. 이번만 해도 말이야. 연화가 랑야각을 벗어나자마자 자네를 데려오지 않았나? 이러다가 외출할 때마다 사람이 꼬이면 피곤해서 어떡하냐는 말이지.”

그럴 일은 없소.”

자네가 어떻게 장담하지? 연화를 따라다니면서 그 아이에게 들러붙는 사람들을 다 떼어내기라도 할 셈인가? 물론 자네의 무공 실력이라면 연화의 주변을 얼쩡거리는 이들을 다 날려버리고도 남겠지. 그런데 자네가 무슨 명분으로?”

 

제법 단호한 목소리에 린신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 말에 비성이 팔짱을 낀 채 몸을 뒤로 젖혔다.

 

각주는 아까부터 자꾸 명분을 찾는군. 각주는 내가 이연화의 정인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각주의 생각이고. 이연화의 인정을 받으면 그 명분이라는 것도 생기겠지?”





랑야방 연화루 각주종주 정왕종주 비성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