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연갤 - 중국연예
- 중화연예
https://hygall.com/577997948
view 9262
2023.12.25 22:32
망천화처럼 이연화 해독할 수 있는 약초가 있는데, 형질을 바꾸는 부작용이 있어서 떨떠름해하던 이연화와 그런 게 뭐가 중하냐 하던 주변사람들이 우당탕하는 게 보고싶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여러 장의 쪽지와 서류를 나란히 놓고 고민하던 운피구가 천천히 말했다.
"첩자들의 정보를 조합해 보면, 이들 중 삼분지 이 정도는 음모와 무관한 자들로 보입니다."
"삼분지 이라. 정말 많이 줄어들었군. 수고했어, 피구."
"그래도 아직 남은 사람이 오십 정도인데, 이 다음엔 어떻게 할 셈이야? 또 음식 이름을 적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방다병이 물었다. 잠시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가, 이연화는 곧 엷게 웃었다. 방다병의 얼굴이 불안해졌다.
"또 왜 그런 표정인데?"
"방다병. 원래 혼사라는 건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거잖아?"
"그건 정상적인 혼사일 때 얘기지만, 그렇긴 하지. 갑자기 왜?"
"소문과 구혼서로만 상대를 파악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역시 진솔한 대화가 오고가야 하지 않겠어."
"뭐...네가 직접 구혼자들을 만나볼 셈이야?"
방다병은 퍽 해괴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미간을 구겼다. 이연화가 천연덕스럽게 그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건 무슨 반응이야, 방소보. 나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인데 그 정도 일은 당연하지. 피구, 두 번째 과제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내가 전달하는 걸로 할게. 그때 적당히 미끼를 던져볼 테니, 새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줘."
이연화가 하늘을 살짝 가리키며 말했다. 요 며칠 동안, 이곳을 들고 나는 모든 새들은 설령 객들의 소유라 해도 반드시 일차적으로 백천원의 감시망을 거쳤다. 운피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낯빛은 어쩐지 어두웠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석수를 비롯한 호위 인력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이연화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호위 인력이라니, 그런 게 왜 필요해? 나와 적 맹주가 한 자리에 있는데."
"석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주십시오. 어제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녔습니다."
운피구가 피로한 눈으로 말했다. 이연화가 순간 쓴웃음을 지었다. 이연화의 체취가 퍽 충격적이었는지, 석수는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이 정신 나간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절부절못했다(방다병을 향한 추가적인 비난은 덤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세부사항은 원주들의 결정에 따를 테니 부탁하네."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상이였던 시절에는 아무도 자신을 나서서 지키려 들지 않았는데, 이연화가 된 후로는 무공을 어느 정도 되찾았음에도 과보호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당장 꺼질 등불처럼 살아온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연화, 너 어제 했던 말이 진심은 아니지?"
틈 나는 대로 백천원의 사건 자료를 보기 위해 발을 옮기다가, 이연화는 나란히 걷던 방다병을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난데없는 질문을 던진 청년은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살짝 그늘진 눈밑과 빨간 눈동자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무슨 말? 어제 내가 한두 마디를 한 것도 아니고."
"너 정말로, 마지막에 괜찮은 사람이 남으면 혼인할 생각 있어?"
방다병이 맛없는 음식을 빠르게 내뱉듯이 물었다. 이연화는 진심으로 놀라, 방다병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방다병, 지금 그게 진지하게 묻는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 멍청이를 타박하듯 건네며 그 가슴팍을 손등으로 탁 때리자, 방다병의 얼굴로 묘한 안도가 번졌다. 청년은 짐짓 흥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었다.
"넌 가끔 진심을 거짓말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고, 거짓말을 진심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잖아.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확인은 무슨 확인. 나는 혼인 생각 없어, 십 년 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갑자기 웬 헛소린가 했더니."
이연화가 무심히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방다병이 슬쩍 의아한 빛을 띠었다.
"왜? 십 년 전부터는, 네 몸이 안 좋았으니까 그렇다 쳐.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 네가 음인이 됐기 때문이야?"
"뭐? 그런 거하곤 다르지. 형질과 무관하게, 나는 혼인하기에 좋은 사람이 아냐."
이연화가 코웃음을 치며 자료실로 발을 들였다. 종이와 먹의 냄새가 편안하게 밀려들었다. 방다병의 눈이 더욱 의아해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이게 설명씩이나 해야 하는 일이냐, 방소보? 이상이든 이연화든, 주변에서 일이 끊이지 않는단 말이야. 정착해서 살아가기엔 이미 쌓아버린 은원이 너무 많다고. 나 하나 죽지 않게 챙기는 것만도 힘들어. 이런 사람은 누구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아. 누가 평생 위험하고 떠도는 삶을 원하겠어."
이연화가 건성으로 늘어놓으며 두루마리의 산 앞에 앉았다. 뭐라 떽떽거리는 답이 돌아오리라 예상했지만, 방다병은 그저 생각에 잠긴 듯 조용했다. 두루마리 하나를 펴 들고 읽으면서, 이연화는 하효혜의 말을 그대로 읊어주었다.
"내 일은 됐으니, 너는 나중에 정착할 마음이 생기면 못 이기는 척 하고 그냥 부마 자리를 수락하도록 해. 황궁 사람이 되면 강호의 은원도 함부로 따라가지 못할 테니까."
"누가 그런 걸 원한대?"
방다병이 갑자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연화가 퍼뜩 눈을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청년은 드물게도 정말 기분이 상해 보였다.
"공주님과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우린 그냥 좋은 친구라고. 몇 번씩이나 얘기했잖아."
"당장 부마가 되라는 게 아니라, 네가 나중에 그럴 마음이 들면 그러라는 뜻이야."
"난 강호의 협객으로 살아갈 거야. 평생 위험 속에서 떠돌아도 상관없어."
방다병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선언이었으나, 어쩐지 오늘의 청년은 더욱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연화가 미간을 좁히고는 상대를 훑어보았다. 평소보다 방다병을 각별히 도발하거나 자극하지도 않았는데, 당최 왜 이리 극적으로 반응하는지 금방 알 수가 없었다.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듯 빤한 시선을 보내자, 방다병은 쩔쩔매다가 곧 바락 외쳤다.
"그러니 부마가 되란 말은 하지 마. 알았어? 난 너랑 강호를 누비다가 은퇴할 거니까!"
그렇게 못을 박고, 방다병은 홱 발길을 돌려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 어안이 벙벙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연화는 곧 두루마리 하나를 들어 손처럼 흔들며 외쳤다. "방다병! 방다병, 어디 가! 같이 일해야지, 방 형탐!" 그러나 방다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연화는 당황스러운 동시에 억울한 심경으로 눈을 깜박이다 외쳤다.
"쟤 왜 저래?"
-
이연화는 왜 저러는 걸까? 적비성은 내심 신음을 흘리듯이 생각하며 팔짱을 끼었다.
처음 후보들 앞에 섰을 때와 다른 차림으로, 이연화는 미끄러지듯 조용히 움직여 연회장에 들어오던 참이었다. 수십 명이 지나친 집중력으로 그 움직임을 쫓았다. 오늘 옷은 누가 골라주었는지, 단정하면서도 적당히 나풀거리는 연푸른색이 썩 어울렸다.
"제가 늦지는 않았겠지요? 일단 편히 드시지요. 어떤 이야기든 음식보다 중하지는 않으니까요."
이연화가 예의바른 미소를 띤 채 건넸다. 담박한 눈매가 보기 좋게 휘어져 있었다. 적비성의 눈에는 기품 있는 가면에 불과했지만,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저 모습이 서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그저 고아하고 아름다울 터였다. 후보들이 얼른 수긍하는 소리를 냈다. 저놈은 자신에게 얼마나 시선이 들러붙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담담히 이용하는 건가? 적비성은 가면 아래에서 뚱한 표정을 지은 채 그 꼴을 바라보았다.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연화는 편히 식사하라 했으나, 후보들 중 누구도 정말 집에 온 것처럼 편히 먹지는 못했다. 모인 사람들 모두, 이 자리가 상당히 중요한 기회임을 알았다. 그들은 마치 황궁에 초대받은 사람들처럼 단정히 앉아 음식을 먹었다. 적비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대충 맞춰주는 것도 꽤 피곤하다 생각하며 닭다리 살을 젓가락으로 발라냈다. 마음 같아서는 손으로 들어 뜯고 싶었다.
"제가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단지 두 번째 질문을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식사가 대략 마무리되던 시점에서야, 이연화는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씹던 것을 멈추고 이연화를 돌아보았다. 이연화는 반상 위의 잔에 차를 따르며 이었다.
"여러분 모두 제게 궁금하신 점이 많으리라 여깁니다. 저 또한 여러분을 서면으로만 알 뿐, 개개인의 면면을 알지 못하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나, 적어도 혼인이라는 중사를 논하자면 서로에 대해 더 아는 편이 좋을 듯하여 이렇게 모여주십사 청했습니다. 이연화에게 묻고 싶으신 점이 있다면 기탄 없이 말씀해 주시지요."
이연화가 빙긋 웃으며 건넸다. 후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것은 양날의 칼 같은 기회였다. 궁금증을 풀고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두 번째 문제의 답과 상관없이 집에 돌아가게 될 수도 있었다.
"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동그랗고 부리부리한 눈의 공자가 먼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적비성이 짙은 눈썹을 살짝 들었다. 거침없는 태도였는데도 썩 밉지 않았는데, 그 직설적이고 쾌활한 인상이 퍽 방다병을 닮아 있었다. 이연화가 한 손을 가볍게 내밀었다.
"말씀하시지요."
"아, 저는 화련산장의 서호천이라 합니다. 며칠 전 이 문주의 무위를 보았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예전처럼 회복하신 겁니까?"
"아...무공을 펼칠 만한 일을 겪으시게 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공자의 말씀에 답하자면, 아직 십 년 전만큼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내력을 모두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요. 지금은 과거에 비해 이 할 정도의 내력만 남은 상태인 데다, 어째선지 내력을 쓸 때마다 형질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서 퍽 곤란하답니다."
이연화가 정말 무안한 듯한 미소를 띠고는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무인들은 놀란 소리로 웅성거렸다. "그게 이 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내력이었다고?" "이상이 이야기는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왜 내력을 쓰면 조절이 안 된다는 거지?" 서호천이 서글서글한 눈을 반짝이며 뺨을 붉혔다. 청년은 반상을 꽉 쥔 채 언성을 높였다.
"저, 혹시! 혹시, 최종 후보로 뽑히지 못하더라도, 비무 한 번을 청하면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적비성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자신도 매우 청하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애송이들과 함께 묶이기는 싫었다!). 둥그레진 눈으로 서호천을 바라보던 이연화가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는 혼인보다 대련을 원하셔서 구혼서를 넣으신 분 같습니다."
"아, 그런...그런 건 아닙니다만! 제가 어릴 때부터 이상이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서호천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적비성은 가면 아래에서 눈을 굴리며 술잔을 채웠다. 서호천 또래의 젊은이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흰 옷에 긴 머리를 단정하게 늘어뜨린 옥면 공자였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이유라면, 구혼보다는 백천원의 형탐으로 지원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겠소?"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서호천이 홱 고개를 돌렸다. 빛나던 얼굴이 순식간에 냉담해졌다.
"구 공자, 오늘은 별로 취하지도 않았는데 무례하게 끼어드는군요. 풍양산장에서는 그것이 예의라고 가르칩니까?"
구 공자라고 불린 사람이 발끈했다. 술병을 들었던 오른손으로 힘이 들어갔다. 이미 집안 사이에 존재하는 앙금이 있었던 듯, 두 청년은 서로를 험한 눈으로 노려보더니 점차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화련산장의 어르신들도 판단력이 흐려지셨나 보오. 이상이의 구혼자로 공자를 택하다니."
"제가 어때서요? 술에 취해서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는 누군가보단 내가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상황이었소. 술을 입에 잘 대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보다는 차라리 낫지!"
"술을 잘 못하는 게 어때서요? 영약을 쏟아부어 내공만 늘리고, 정작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는 누구보다는 훨씬 낫지요!"
"뭐라-."
유치한 말다툼이 격해질수록, 두 공자의 주변에 있던 지인들까지 끼어들어 한두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문간에서 타오르는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석수가 나서기 전-석수는 감히 문주를 앞에 두고 이 따위 소동을 벌이는 자들에게 크게 노한 듯했다-구 공자가 손에 들었던 술병에 내력을 가득 실어 서호천에게 던졌다. 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 내가 너보다 무공이 떨어진다 여기느냐? 그럼 이걸 한번 받아봐라!"
주변 사람들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당혹한 서호천이 얼른 손을 들어 방어하려던 순간, 그 앞으로 푸른 옷자락이 펄럭였다.
불덩어리처럼 흉흉하게 날아오던 술병이 부드러운 손에 막혔다. 최소한의 내력이 묘리를 띤 채 술병을 감쌌다. 곧 깨질 것처럼 파르르 떨며 날아온 술병은, 훌쩍 나타나 빙글 돌며 술병을 잡아낸 이연화의 손에서 바로 잠잠해졌다. 아주 희미한 연꽃 냄새가 피어오르다가 바로 사라졌다. 머리장식의 긴 끈이 나풀거리다 가라앉았다. 좌중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흠. 이연화가 술병의 냄새를 잠깐 맡았다. 그 입가로 반사적인 미소가 스쳤다.
고개를 들어, 이연화는 한 손으로 술병을 기울였다. 허공에서 떨어진 술이 그 입술 안으로 흘러 떨어졌다. 유려한 옆얼굴과 쭉 뻗은 목선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러 사람이 홀린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적비성은 그만 속으로 한숨을 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이 거푸 말했던 대로, 이상이는 음인이든 양인이든 이상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양인일 때부터 시선을 잡아채며 사람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진주가 잠깐 진흙 속에 묻혔더라도 결국 눈에 띄는 것처럼, 이상이에게는 오만함이 정당화될 만큼의 재능과 매력이 있었다. 사람은 늘 강하고 빛나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었다. 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타인의 눈길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형질이 바뀐 지금, 그 주의에는 퍽 달갑잖고 주제넘은 관심까지 뒤섞여 있었다. 후보들을 슥 훑어보다, 적비성은 많은 자들이 각려초에게 보내던 시선을 떠올리고는 더욱 불쾌해졌다. 이연화의 의도가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그는 과도한 열중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십 년 전에도 타인의 관심이나 집착을 인지할지언정 크게 신경 쓰지는 않던 작자였으니, 아마 지금도 비슷할지 몰랐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골치 아픈 지점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위기감을 가지란 조언은 어디에 갖다 버린 걸까? 금원맹주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자신은 아무데나 조언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당히 해. 퉁명스레 전음을 쏘아 보내니, 이연화는 순간 한쪽 입매를 올려 웃고는 술병을 구 공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구 공자는 날카롭고 준수한 용모에 어울리지 않도록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연화가 빙그레 웃었다.
"자, 좋은 술을 앞에 두고 너무 흥분하지 마시지요. 무림인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은 듯하니, 강호 출신이 아닌 분들께도 편안히 말씀해 주십시오. 부디 술병보다는 말로 해주시길 청합니다. 이연화는 그리 풍족하지 않아, 백천원의 기물을 깨시면 곤란해진답니다."
이연화가 농담처럼 맺자, 몇몇 사람이 웃음을 흘렸다. 경직되었던 공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이후의 대담은 비교적 순탄히 흘러갔다. 이연화에게 집중된 분위기가 후보들의 기세 싸움 따위로 다시 흩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사람들은 이연화의 인생관이나 반려에게 바라는 점, 앞으로 하고픈 일 등에 대해 물었다. 문사 몇은 이연화에게 시를 읊어주겠다며 일어나기도 했다. 이연화는 진실과 거짓을 두루뭉술하게 섞어 좋은 말로 대답하면서, 역으로 몇몇 사람들의 배경이나 일에 대해 물었다. 분명 저 교활한 눈으로 상대의 옷이나 말, 표정을 꿰뚫어보고 있겠지. 적비성이 내심 코웃음을 치며 조용히 술을 마셨다.
저녁이 무르익고 많은 말들이 오갔을 즈음, 한 남자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이 문주. 저도...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무엇입니까?"
"제가...그, 물론 헛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남자가 뜸을 들였다. 적비성이 의아하게 그를 보았다. 적비성이 알기로, 저 남자는 다른 건물에 후보로 잠입한 백천원의 첩자였다. 한동안 망설이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얼굴로 말했다.
"문주께서...음인이 되시긴 했지만, 자녀를 생산하실 수는 없는 몸이라고 들었습니다."
적비성은 잠시 술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냐, 이상이? 금원맹주는 당장 그렇게 묻고픈 것을 참으며, 부릅뜬 눈으로 이연화를 돌아보았다. 참 가증스럽게도, 이연화는 '당황한 기색을 잘 숨기는 동시에 조금 기분이 상한 얼굴'을 기막히게 연기하고 있었다.
본편 이후 시점으로 ㅅㅍㅈㅇ 다병연화 비성연화
여러 장의 쪽지와 서류를 나란히 놓고 고민하던 운피구가 천천히 말했다.
"첩자들의 정보를 조합해 보면, 이들 중 삼분지 이 정도는 음모와 무관한 자들로 보입니다."
"삼분지 이라. 정말 많이 줄어들었군. 수고했어, 피구."
"그래도 아직 남은 사람이 오십 정도인데, 이 다음엔 어떻게 할 셈이야? 또 음식 이름을 적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방다병이 물었다. 잠시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가, 이연화는 곧 엷게 웃었다. 방다병의 얼굴이 불안해졌다.
"또 왜 그런 표정인데?"
"방다병. 원래 혼사라는 건 서로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거잖아?"
"그건 정상적인 혼사일 때 얘기지만, 그렇긴 하지. 갑자기 왜?"
"소문과 구혼서로만 상대를 파악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 역시 진솔한 대화가 오고가야 하지 않겠어."
"뭐...네가 직접 구혼자들을 만나볼 셈이야?"
방다병은 퍽 해괴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미간을 구겼다. 이연화가 천연덕스럽게 그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건 무슨 반응이야, 방소보. 나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인데 그 정도 일은 당연하지. 피구, 두 번째 과제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내가 전달하는 걸로 할게. 그때 적당히 미끼를 던져볼 테니, 새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줘."
이연화가 하늘을 살짝 가리키며 말했다. 요 며칠 동안, 이곳을 들고 나는 모든 새들은 설령 객들의 소유라 해도 반드시 일차적으로 백천원의 감시망을 거쳤다. 운피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낯빛은 어쩐지 어두웠다. "그런 자리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석수를 비롯한 호위 인력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이연화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호위 인력이라니, 그런 게 왜 필요해? 나와 적 맹주가 한 자리에 있는데."
"석수를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주십시오. 어제 하루 종일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녔습니다."
운피구가 피로한 눈으로 말했다. 이연화가 순간 쓴웃음을 지었다. 이연화의 체취가 퍽 충격적이었는지, 석수는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 이 정신 나간 계획에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절부절못했다(방다병을 향한 추가적인 비난은 덤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세부사항은 원주들의 결정에 따를 테니 부탁하네." 이연화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상이였던 시절에는 아무도 자신을 나서서 지키려 들지 않았는데, 이연화가 된 후로는 무공을 어느 정도 되찾았음에도 과보호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당장 꺼질 등불처럼 살아온 기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연화, 너 어제 했던 말이 진심은 아니지?"
틈 나는 대로 백천원의 사건 자료를 보기 위해 발을 옮기다가, 이연화는 나란히 걷던 방다병을 의아하게 돌아보았다. 난데없는 질문을 던진 청년은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살짝 그늘진 눈밑과 빨간 눈동자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무슨 말? 어제 내가 한두 마디를 한 것도 아니고."
"너 정말로, 마지막에 괜찮은 사람이 남으면 혼인할 생각 있어?"
방다병이 맛없는 음식을 빠르게 내뱉듯이 물었다. 이연화는 진심으로 놀라, 방다병을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방다병, 지금 그게 진지하게 묻는 말이야? 당연히 아니지." 멍청이를 타박하듯 건네며 그 가슴팍을 손등으로 탁 때리자, 방다병의 얼굴로 묘한 안도가 번졌다. 청년은 짐짓 흥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었다.
"넌 가끔 진심을 거짓말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고, 거짓말을 진심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잖아. 확인해보고 싶었을 뿐이야."
"확인은 무슨 확인. 나는 혼인 생각 없어, 십 년 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없을 거야. 갑자기 웬 헛소린가 했더니."
이연화가 무심히 투덜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방다병이 슬쩍 의아한 빛을 띠었다.
"왜? 십 년 전부터는, 네 몸이 안 좋았으니까 그렇다 쳐.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전혀 없어? 네가 음인이 됐기 때문이야?"
"뭐? 그런 거하곤 다르지. 형질과 무관하게, 나는 혼인하기에 좋은 사람이 아냐."
이연화가 코웃음을 치며 자료실로 발을 들였다. 종이와 먹의 냄새가 편안하게 밀려들었다. 방다병의 눈이 더욱 의아해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이게 설명씩이나 해야 하는 일이냐, 방소보? 이상이든 이연화든, 주변에서 일이 끊이지 않는단 말이야. 정착해서 살아가기엔 이미 쌓아버린 은원이 너무 많다고. 나 하나 죽지 않게 챙기는 것만도 힘들어. 이런 사람은 누구와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아. 누가 평생 위험하고 떠도는 삶을 원하겠어."
이연화가 건성으로 늘어놓으며 두루마리의 산 앞에 앉았다. 뭐라 떽떽거리는 답이 돌아오리라 예상했지만, 방다병은 그저 생각에 잠긴 듯 조용했다. 두루마리 하나를 펴 들고 읽으면서, 이연화는 하효혜의 말을 그대로 읊어주었다.
"내 일은 됐으니, 너는 나중에 정착할 마음이 생기면 못 이기는 척 하고 그냥 부마 자리를 수락하도록 해. 황궁 사람이 되면 강호의 은원도 함부로 따라가지 못할 테니까."
"누가 그런 걸 원한대?"
방다병이 갑자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연화가 퍼뜩 눈을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청년은 드물게도 정말 기분이 상해 보였다.
"공주님과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우린 그냥 좋은 친구라고. 몇 번씩이나 얘기했잖아."
"당장 부마가 되라는 게 아니라, 네가 나중에 그럴 마음이 들면 그러라는 뜻이야."
"난 강호의 협객으로 살아갈 거야. 평생 위험 속에서 떠돌아도 상관없어."
방다병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선언이었으나, 어쩐지 오늘의 청년은 더욱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연화가 미간을 좁히고는 상대를 훑어보았다. 평소보다 방다병을 각별히 도발하거나 자극하지도 않았는데, 당최 왜 이리 극적으로 반응하는지 금방 알 수가 없었다.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듯 빤한 시선을 보내자, 방다병은 쩔쩔매다가 곧 바락 외쳤다.
"그러니 부마가 되란 말은 하지 마. 알았어? 난 너랑 강호를 누비다가 은퇴할 거니까!"
그렇게 못을 박고, 방다병은 홱 발길을 돌려 재빠르게 자리를 떴다. 어안이 벙벙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연화는 곧 두루마리 하나를 들어 손처럼 흔들며 외쳤다. "방다병! 방다병, 어디 가! 같이 일해야지, 방 형탐!" 그러나 방다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연화는 당황스러운 동시에 억울한 심경으로 눈을 깜박이다 외쳤다.
"쟤 왜 저래?"
-
이연화는 왜 저러는 걸까? 적비성은 내심 신음을 흘리듯이 생각하며 팔짱을 끼었다.
처음 후보들 앞에 섰을 때와 다른 차림으로, 이연화는 미끄러지듯 조용히 움직여 연회장에 들어오던 참이었다. 수십 명이 지나친 집중력으로 그 움직임을 쫓았다. 오늘 옷은 누가 골라주었는지, 단정하면서도 적당히 나풀거리는 연푸른색이 썩 어울렸다.
"제가 늦지는 않았겠지요? 일단 편히 드시지요. 어떤 이야기든 음식보다 중하지는 않으니까요."
이연화가 예의바른 미소를 띤 채 건넸다. 담박한 눈매가 보기 좋게 휘어져 있었다. 적비성의 눈에는 기품 있는 가면에 불과했지만,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저 모습이 서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그저 고아하고 아름다울 터였다. 후보들이 얼른 수긍하는 소리를 냈다. 저놈은 자신에게 얼마나 시선이 들러붙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담담히 이용하는 건가? 적비성은 가면 아래에서 뚱한 표정을 지은 채 그 꼴을 바라보았다.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연화는 편히 식사하라 했으나, 후보들 중 누구도 정말 집에 온 것처럼 편히 먹지는 못했다. 모인 사람들 모두, 이 자리가 상당히 중요한 기회임을 알았다. 그들은 마치 황궁에 초대받은 사람들처럼 단정히 앉아 음식을 먹었다. 적비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대충 맞춰주는 것도 꽤 피곤하다 생각하며 닭다리 살을 젓가락으로 발라냈다. 마음 같아서는 손으로 들어 뜯고 싶었다.
"제가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단지 두 번째 질문을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식사가 대략 마무리되던 시점에서야, 이연화는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씹던 것을 멈추고 이연화를 돌아보았다. 이연화는 반상 위의 잔에 차를 따르며 이었다.
"여러분 모두 제게 궁금하신 점이 많으리라 여깁니다. 저 또한 여러분을 서면으로만 알 뿐, 개개인의 면면을 알지 못하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으나, 적어도 혼인이라는 중사를 논하자면 서로에 대해 더 아는 편이 좋을 듯하여 이렇게 모여주십사 청했습니다. 이연화에게 묻고 싶으신 점이 있다면 기탄 없이 말씀해 주시지요."
이연화가 빙긋 웃으며 건넸다. 후보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이것은 양날의 칼 같은 기회였다. 궁금증을 풀고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두 번째 문제의 답과 상관없이 집에 돌아가게 될 수도 있었다.
"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동그랗고 부리부리한 눈의 공자가 먼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적비성이 짙은 눈썹을 살짝 들었다. 거침없는 태도였는데도 썩 밉지 않았는데, 그 직설적이고 쾌활한 인상이 퍽 방다병을 닮아 있었다. 이연화가 한 손을 가볍게 내밀었다.
"말씀하시지요."
"아, 저는 화련산장의 서호천이라 합니다. 며칠 전 이 문주의 무위를 보았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예전처럼 회복하신 겁니까?"
"아...무공을 펼칠 만한 일을 겪으시게 하여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공자의 말씀에 답하자면, 아직 십 년 전만큼 회복되지는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내력을 모두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요. 지금은 과거에 비해 이 할 정도의 내력만 남은 상태인 데다, 어째선지 내력을 쓸 때마다 형질을 조절하기가 어려워서 퍽 곤란하답니다."
이연화가 정말 무안한 듯한 미소를 띠고는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무인들은 놀란 소리로 웅성거렸다. "그게 이 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내력이었다고?" "이상이 이야기는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왜 내력을 쓰면 조절이 안 된다는 거지?" 서호천이 서글서글한 눈을 반짝이며 뺨을 붉혔다. 청년은 반상을 꽉 쥔 채 언성을 높였다.
"저, 혹시! 혹시, 최종 후보로 뽑히지 못하더라도, 비무 한 번을 청하면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적비성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자신도 매우 청하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애송이들과 함께 묶이기는 싫었다!). 둥그레진 눈으로 서호천을 바라보던 이연화가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공자는 혼인보다 대련을 원하셔서 구혼서를 넣으신 분 같습니다."
"아, 그런...그런 건 아닙니다만! 제가 어릴 때부터 이상이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서호천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적비성은 가면 아래에서 눈을 굴리며 술잔을 채웠다. 서호천 또래의 젊은이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흰 옷에 긴 머리를 단정하게 늘어뜨린 옥면 공자였다. "그런 어린아이 같은 이유라면, 구혼보다는 백천원의 형탐으로 지원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겠소?"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서호천이 홱 고개를 돌렸다. 빛나던 얼굴이 순식간에 냉담해졌다.
"구 공자, 오늘은 별로 취하지도 않았는데 무례하게 끼어드는군요. 풍양산장에서는 그것이 예의라고 가르칩니까?"
구 공자라고 불린 사람이 발끈했다. 술병을 들었던 오른손으로 힘이 들어갔다. 이미 집안 사이에 존재하는 앙금이 있었던 듯, 두 청년은 서로를 험한 눈으로 노려보더니 점차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화련산장의 어르신들도 판단력이 흐려지셨나 보오. 이상이의 구혼자로 공자를 택하다니."
"제가 어때서요? 술에 취해서 이성을 잃고 난동을 부린 적이 있는 누군가보단 내가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상황이었소. 술을 입에 잘 대지도 못하는 어린아이보다는 차라리 낫지!"
"술을 잘 못하는 게 어때서요? 영약을 쏟아부어 내공만 늘리고, 정작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는 누구보다는 훨씬 낫지요!"
"뭐라-."
유치한 말다툼이 격해질수록, 두 공자의 주변에 있던 지인들까지 끼어들어 한두 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문간에서 타오르는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석수가 나서기 전-석수는 감히 문주를 앞에 두고 이 따위 소동을 벌이는 자들에게 크게 노한 듯했다-구 공자가 손에 들었던 술병에 내력을 가득 실어 서호천에게 던졌다. 흰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 내가 너보다 무공이 떨어진다 여기느냐? 그럼 이걸 한번 받아봐라!"
주변 사람들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당혹한 서호천이 얼른 손을 들어 방어하려던 순간, 그 앞으로 푸른 옷자락이 펄럭였다.
불덩어리처럼 흉흉하게 날아오던 술병이 부드러운 손에 막혔다. 최소한의 내력이 묘리를 띤 채 술병을 감쌌다. 곧 깨질 것처럼 파르르 떨며 날아온 술병은, 훌쩍 나타나 빙글 돌며 술병을 잡아낸 이연화의 손에서 바로 잠잠해졌다. 아주 희미한 연꽃 냄새가 피어오르다가 바로 사라졌다. 머리장식의 긴 끈이 나풀거리다 가라앉았다. 좌중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흠. 이연화가 술병의 냄새를 잠깐 맡았다. 그 입가로 반사적인 미소가 스쳤다.
고개를 들어, 이연화는 한 손으로 술병을 기울였다. 허공에서 떨어진 술이 그 입술 안으로 흘러 떨어졌다. 유려한 옆얼굴과 쭉 뻗은 목선이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러 사람이 홀린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적비성은 그만 속으로 한숨을 쉬며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이 거푸 말했던 대로, 이상이는 음인이든 양인이든 이상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양인일 때부터 시선을 잡아채며 사람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진주가 잠깐 진흙 속에 묻혔더라도 결국 눈에 띄는 것처럼, 이상이에게는 오만함이 정당화될 만큼의 재능과 매력이 있었다. 사람은 늘 강하고 빛나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었다. 작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타인의 눈길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형질이 바뀐 지금, 그 주의에는 퍽 달갑잖고 주제넘은 관심까지 뒤섞여 있었다. 후보들을 슥 훑어보다, 적비성은 많은 자들이 각려초에게 보내던 시선을 떠올리고는 더욱 불쾌해졌다. 이연화의 의도가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 그는 과도한 열중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십 년 전에도 타인의 관심이나 집착을 인지할지언정 크게 신경 쓰지는 않던 작자였으니, 아마 지금도 비슷할지 몰랐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골치 아픈 지점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위기감을 가지란 조언은 어디에 갖다 버린 걸까? 금원맹주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자신은 아무데나 조언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당히 해. 퉁명스레 전음을 쏘아 보내니, 이연화는 순간 한쪽 입매를 올려 웃고는 술병을 구 공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구 공자는 날카롭고 준수한 용모에 어울리지 않도록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연화가 빙그레 웃었다.
"자, 좋은 술을 앞에 두고 너무 흥분하지 마시지요. 무림인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은 듯하니, 강호 출신이 아닌 분들께도 편안히 말씀해 주십시오. 부디 술병보다는 말로 해주시길 청합니다. 이연화는 그리 풍족하지 않아, 백천원의 기물을 깨시면 곤란해진답니다."
이연화가 농담처럼 맺자, 몇몇 사람이 웃음을 흘렸다. 경직되었던 공기가 순식간에 풀어졌다.
이후의 대담은 비교적 순탄히 흘러갔다. 이연화에게 집중된 분위기가 후보들의 기세 싸움 따위로 다시 흩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사람들은 이연화의 인생관이나 반려에게 바라는 점, 앞으로 하고픈 일 등에 대해 물었다. 문사 몇은 이연화에게 시를 읊어주겠다며 일어나기도 했다. 이연화는 진실과 거짓을 두루뭉술하게 섞어 좋은 말로 대답하면서, 역으로 몇몇 사람들의 배경이나 일에 대해 물었다. 분명 저 교활한 눈으로 상대의 옷이나 말, 표정을 꿰뚫어보고 있겠지. 적비성이 내심 코웃음을 치며 조용히 술을 마셨다.
저녁이 무르익고 많은 말들이 오갔을 즈음, 한 남자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이 문주. 저도...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무엇입니까?"
"제가...그, 물론 헛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남자가 뜸을 들였다. 적비성이 의아하게 그를 보았다. 적비성이 알기로, 저 남자는 다른 건물에 후보로 잠입한 백천원의 첩자였다. 한동안 망설이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얼굴로 말했다.
"문주께서...음인이 되시긴 했지만, 자녀를 생산하실 수는 없는 몸이라고 들었습니다."
적비성은 잠시 술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대체 무슨 속셈이냐, 이상이? 금원맹주는 당장 그렇게 묻고픈 것을 참으며, 부릅뜬 눈으로 이연화를 돌아보았다. 참 가증스럽게도, 이연화는 '당황한 기색을 잘 숨기는 동시에 조금 기분이 상한 얼굴'을 기막히게 연기하고 있었다.
https://hygall.com/577997948
[Code: cff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