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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4 18:27
근데 안사귀는 걸로. 알못 ㅈㅇ

준섭이 생각나게 만드는 다정한 형, 농구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게 만들었던 형,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빛나는 형 하나하나 지나다보면 자기가 대만이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깨닫는 태섭이겠지.

그 형이 계속 내 옆에 붙어있었으면 좋겠는데 자기랑 있었으면 좋겠다고 욕심부리면 오히려 떠나간다는 걸 알아서 차마 욕심도 못내고 좋은 후배 정도로 머물고 싶었을 것 같다. 그래서 그 형이 졸업할 때 꽃다발은 커녕 이젠 가서 사고치지나 마요. 하고 틱틱거렸는데 원하는 대학가서 걱정 사라지니까 그때 그 다정함만 남은 형은 그냥 웃으면서 갈때쯤엔 좋은말만 해줄수있는거아니냐 이자식이. 하고 말겠지. 그래서 태섭이도 졸업했다고 모르는 척 하지나마요. 내 덕에 대학간 사람이. 하고 피식 웃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서 한동안 연락안했을 것 같다. 고등학교에서 고작 1년 같이 농구했던 애가 계속 연락하면 귀찮아할까봐. 가끔 백호가 만만이 요즘 날라다니나봐! 같은 말해도 어엉 그러냐. 하고 말겠지. 먼저 연락한 건 대만이 아니었을까? 윈터컵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잔뜩 예민해진 태섭이한테 어느날 연락해서 잘지내냐? 너는 선배한테 연락 한 통 없냐. 다음주에 놀러간다. 하고 뚝 끊을 듯.
진짜 그 다음주에 거의 일년만에 보는 거면서 어제도 본 것처럼 야 니네는 변한게 없냐. 하면서 한손에 간식거리 사들고 온 그 형. 다른 애들도 익숙하게 만만이도 똑같거든? 그니까 대만군 대학갔다는거 뻥아냐? ...웃쓰.. 뭐??! 이자식들이 기껏 선배가 찾아왔더니!! 하며 장난치는데 태섭이는 거리감느끼겠지. 윈터컵때도 조금 길어서 이마가리던 머리는 조금 더 길어서 찰랑거리고, 대학생활은 잘 맞는건지 얼굴도 좋아보이고, 어쩐지 더 다정하고 철없는 모습은 그대로인데 저 사람만 훌쩍 멀어진 것 같아서

어중간하게 거리두고 서있는데 정대만이 먼저 와서 잘지냈냐? 할 것 같음. 예..뭐, 하는데 뒷머리 긁적거린 정대만이 그르냐... 하더니 다시 다른 농구부원들한테 이 선배가 대학농구가 뭔지 보여주마. 갈듯. 그렇게 그 날은 어색하게 헤어졌는데 태섭이 집가서 후회했을듯. 그냥 왜 연락을 안하냐고 투정이라도 부릴 걸, 말걸면 더 다정하게 대답해줄걸, 윈터컵 보러오라고 말해볼걸, 다음에 경기하면 나도 초대해달라고 해볼걸...하면서

그해 윈터컵에서도 우승은 못했겠지. 그래도 북산이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팀이라는 걸 보여준 시즌이었을 듯. 다른 팀들에 비해 일찍 윈터컵을 종료하고나니 이틀 뒤인 크리스마스에도 할 게 없겠지. 다른 농구부원들이 뒷풀이라도 하자고 했지만 딱히 그럴 기분도 아니고.. 어딘가 허한 기분이고... 그래서였을까 가만히 누워있다가 충동적으로 정대만한테 전회를 걸게된건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약속이 있던건지 주변이 시끄러운 상태에서 전화를 받은 정대만의 목소리를 듣자니 괜히 전화했나, 왜 전화했지 하면서 차마 말을 못꺼내는데

송태섭이냐?

하는 목소리가 들리겠지. 괜히 땀이 차는 것 같은 손을 한번 꽉 쥐었다가 풀면서 네... 송태섭인데요. 하니까 우당탕. 하며 야 잠깐만 하더니 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시끄럽던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져.

그... 어쩐일이냐?
...
뭐냐
...
무슨일있냐?
...
야 송태섭

끊겼나?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있으니까 피식 웃음이 나와. 어쩐지 긴장도 풀리는 것 같아서 툭 내뱉어

윈터컵 떨어졌어요.
어?
제법 열심히 노력했는데 아직 부족한가봐요.
음...
선배가 없어서 그렇잖아요.
....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전화해서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윈터컵 떨어졌으니까 실성했다고 생각하려나. 하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드는데 으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

그래서 이 엉아가 보고싶어서 전화했냐?
아 진짜 뭐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긴장이 풀려서 그제서야 평소같이 대꾸할 수 있었을 듯. 분명 멀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통화하니까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턱끝까지 차오르는 꾹 누르겠지.

너도 이제 졸업이네

그 말에 정신이 확 들듯. 그러게, 태섭이도 윈터컵이 지나면 졸업이야. 졸업을 하면 어떻게 만나지. 더이상 이렇게 투정뷰리며 전화하는 것도 어렵고, 오며가며 만나는 것도 줄어들고... 입이 마르는 기분인데 수화기너머로 야 정대만 니 뭐하는데!! 하는 소리가 들려

아이씨 들켰다. 야 태섭아, 나 들어가봐야겠다.

끊는다?
... 선배
엉?
내일 뭐해요. 잠깐봐요.
어엉?
... 아니에요. 끊을게요.
두시.
네?
두시에 ㅇㅇ앞에서 봐.

뚝 전화가 끊겼어. 내일...? 두시?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인데 그만큼 갑자기 잡힌 약속에 멍해졌다가 정신이 들어. 꿈인가? 수화기를 들고있던 손을 들어서 뺨을 때려봤어. 아픈데...

엄마!!! 송태섭 미쳤나봐!!!


다음날 태섭이는 이른 아침부터 바빴겠지. 그냥 평소입었던 편한옷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어. 그래도 잘보이고 싶은데... 이옷저옷 꺼내입고 머리도 올렸는데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감고 다시 올리고 정신차리니까 한시야. 아씨. 급하게 신발 신고나가려다가 쬐끄만게 야한향수 뿌리네. 했던 그 선배 말이 생각나서 다시 방에 들어가서 향수도 뿌렸어.

시간 맞춰 장소로 가면 정대만은 이미 도착해서 서있을 거 같다. 야 왜이렇게 늦게와. 지금 두시거든요. 그르냐.

단둘이 만나면 어색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없었어. 꼭 고등학교때같았겠지. 같이 햄버거 사먹고, 게임방가서 게임하고 서로 닮았다고 놀리면서 못생긴 인형 하나씩 뽑아서 주고받았겠지. 문득 하늘을 보니까 까맣게 어두워져있겠지. 후. 하고 내뱉는 숨에 입김이 흩어지겠지. 주변을 보니까 내일이 크리스마스라고 온갖 조명장식에 캐롤이 흘러나와. 길거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커플이라 갑자기 긴장도 되고 커플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조금 들떴다가 헤어지기 아쉬운데 원온원이라도 하자할까... 좀 그런가. 하고 무심코 바닥을 봤는데 자기 운동화랑은 정반대인 로퍼가 보이겠지. 그 신발을 보니까 갑자기 찬물을 맞은 것 처럼 정신이 들듯

갑자기 다시 멀어진 기분이야. 낡은 운동화랑 제법 값이 나가는 것 같은 로퍼... 안어울리는 조합이라고 땅땅 판결이라도 받은 것 같아. 영원히 이 기억을 묻어둔 채 살아가겠지. 하고 코만 괜히 훌쩍거리는데 정대만이 불쑥 말해.

원온원?
예?
원온원한판하자.
이 어두운데 뭔... 그리고 그쪽 신발을 봐요.
겨우 이런 신발로 이 정대만이 포기할 것 같냐?
아니 옷차림도 이런데
쫄?
아! 해요. 나중에 발아프다고 하기만해.

정대만에 휩쓸려 결국 잘 넘긴 머리가 흘러내릴 정도로 원온원 했겠지.

태서바. 나 발아프다.
발아프다고 하기만 해보랬죠.

그러면서도 걱정되니 신발 벗어봐요. 하는 태섭이겠지. 아 됐어 발냄새날듯. 그럼말고. 이자식이. 정대만이랑 있으면 늘 이런식이겠지 걱정,불안이 잔뜩 생겼다가도 휩쓸리고 나면 뭘 고민했는지, 불안해했는지 다 잊게되는거야.

태서바.
왜요 아직도 발아파요?
또 하자
발아프다해놓고 무슨 농구
아니 농구말고
그럼요
이렇게 또 보자. 같이 이렇게 만나서 밥먹고 놀고 농구하고
농구 맞네
눈치도 빠른 게 왜그르냐 진짜
....
계속 보고싶다는 거 잖아.

대화가 없는 둘 사이로 눈이 내리며 적막을 메꿔주겠지.

선배는 뭐가 그렇게 쉬워요.

송태섭이 꼬박 일년을 고민하다 결국 못꺼낸 그 말을 정대만은 너무 쉽게 꺼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내뱉으면 코트바닥에 그낭 앉아서 송태섭을 올려다보던 정대만이 웃으며 말하겠지.

넌 생각이 너무 많아.
...
그냥 내가 좋다고 말해

그러면 송태섭 정대만 멱살잡고 입부터 맞출것같다. 혀섞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담백한 입맞춤. 그냥 꾹 입만 대고있다가 입술떼면 둘 사이에 하얀입김이 섞이겠지.
멱살잡고 한 로맨틱하지도 않은 첫키스지만 둘다 귓가가 새빨개져있을 듯. 멱살잡혀있던 정대만이 송태섭한테 이마 콩 맞대면서 무식해. 하면 손끝 파르르 떨며 잡고있던 멱살 놓은 송태섭이 조용하게 말하겠지.

좋아해요.
나도.

이후 롱디도 잘 견뎌내는 태대일듯. 한참뒤에 그때 신었던 로퍼 뒷축 하나도 안닳아있는거 보고 신발 아껴신네요? 하면 갑자기 얼굴시뻘개진 정대만이 뭐래 하길래 붙잡아서 쇼파에 같이 누워서 추궁하면 너한테 잘보이려고 그때 신고 안신었어. 하는 정대만보고 아침부터 해버렸을듯